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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난성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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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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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7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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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3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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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눈에는 눈, 이에는 이-효자 융 2

DUMMY

8. 눈에는 눈, 이에는 이-효자 융 2






“군군, 신신, 부부, 자자.(君君, 臣臣, 父父, 子子.)”

“하하하하.”

“하하하하하.”


똘망똘망한 세자의 입에서 나온 서연 주제였다.

뻔하고, 기초적이고 정치의 세계를 책으로만 접한 어린아이가 닳고 닳은 고인물 정치인들과 아비이자 임금 앞에서 서연를 갖기엔 최고의 주제가 아닐 수 없었다.

마음만 먹으면 임금과 신하들 모두에게 구렁이 담 넘어가듯 실렁실렁 아름다운 마무리를 할 수 있는.


덥고 습한 여름 서연을 짧고 굵고 시원하게 끝낼 수 있겠다는 생각에 모두가 기대에 차 있었다.

21세기나 15세기나 학술 발표 길어서 좋아할 사람은 없으니까.


“시작하기 전, 어찌 도승지의 얼굴이 그리 힘들어 보이는가?”


지금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도승지 송영을 보고 성종이 물었다.


자칫 일전의 난신적자(亂臣賊子)로 투옥되었던 문신 하나를 복계(覆啓)하자는 청이 무산된 데에 대한 뒤끝으로 보일까 도승지 송영은 최선을 다해 온건한 얼굴을 하려 했다.

그럼에도 성종의 눈엔 낯빛이 어두워 보였던 것.


건강이나 복계의 청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문제는 서연 전, 시강원 수업이었다.


세자 융으로부터 받은 질문에 도승지의 간 쓸개가 한여름 석빙고에서 꺼낸 얼음 녹듯 했기 때문이다.

어린 세자의 질문이라고는 하지만 실상은 강도 높은 추궁에 가까웠다.


대놓고 현행 정치에 대해서 이야길 하지 않지만, 세자 융이 하는 질문을 하나로 수렴하면, 결국, 절대 왕권 강화였다.


이제, 세자 융의 다음 타켓은 서연 장의 고위 관료들이었다.

조선 유교 정치의 핵심이자 파괴자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시작하라.”

“예, 전하.”


「군자사불출기위(君子思不出其位)」


소주제가 되는 글귀를 서지훈은 미리 크게 써 왔다.

피피티로 프레젠테이션 하는 세대인 만큼 임팩트있게 시각적으로 찍어 눌러 놓고 시작하기 위함이었다.


“논어, 위정편에 나오는 말로써, 군자는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벗어나지 않고, 맡은바 충실해 수행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지요. 헌데, 대주제와 어떤 면에서 부합하는지 말해 보아라.”

“예, 전하. 세자로서 생각해 보았나이다.”

“......?”

“저 글귀에 나온 군자는 신료들이 올린 결정지 위에 용상에 앉아 옥새나 찍는 방관자를 의미함인가? 말이옵니다.”

“뭐라!”

“세자 저하······. 어찌 그런 위험한 발언을 서연에서 하시는 것이옵니까.”


가장 앞에 앉은 영의정은 하얀 눈썹이 이마 저위로 봉긋하게 솟을 정도로 눈을 땡고랗게 뜨며 세자 융의 발언을 저지하였다.


“훈도를 맡은 세자사 도승지 송영은 시강원에서 무엇을 하다 왔기에 이런 사달을 만드는 거.”

“이는 어린 세자 저하의 불충이 아니라 방향을 제시하는 훈도의 문제라 사료되옵니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만약 세자 융이 연산의 길을 그대로 갔다간 정적이 될 훈구파들은 득달같이 세자 융의 말에 칼을 꽂아댔다.


성종 역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지금 당장 스치기만 해도 터질 것만 같았다.

신료들이 세자에게 만류하듯 계속 질타하려 하자, 성종은 그만하라는 듯 손을 들어 올렸다.


“세자는 시강원에서 배운 지식을 논하고자 함인가, 아니면 신료들 앞에서 과인을 능욕하고 싶은 것인가.”


이런 반응은 이미 계산된 것이다.


아비이자 군왕 앞에서 저런 개소릴 지껄이는 세자.

지금 이 순간을 슬기롭게 넘기지 못한다면, 당장 폐위가 된다 해도 할 말이 없는 것이었다.


현 중전이 진성을 낳았기에 그쪽에 기대하는 대신들은 얼마나 물 만난 고기와 같겠는가.


세자의 저런 질문에 도승지 송영은 바닥에 고개를 처박았다.

이제 곧 자신이 당한 질문 세례를 다른 대신들이 당할 테니.

이미 도승지는 시강원에서 겪을 만큼 겪은 뒤다.

고작 저 한 줄로, 질문과 답변을 오십 번 넘게 했으니······.

훈도로 참여한 임시 제자사 도승지 송영의 대답이 불분명하면, 같은 질문을 돌려가며 다른 온도의 말로 세 번이고 네 번이고 뚜렷하고 명쾌해질 때까지 질문했다.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몰라요’하는 표정으로 성종의 질문에 대답했다.


“전하.”

“말해 보라.”


어지간해선 절대 쪼는 일이 없는 서지훈이었지만, 노기 어린 성종의 목소리에 살짝 움찔했다.


“조선은 유교와 성리학을 근간으로 운영되는 국가가 아닙니까?”


사뭇 진지해진 세자 융의 얼굴과 목소리에 성종은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하다.”

“소자는 최근 왕자이민위본 고군자용기심 고이정도이행; 신자이군위본 고충실이보국(王者以民為本,故君子用其心,故以正道而行;臣者以君為本,故忠實以報國)에 대해서 깊은 생각을 해보았나이다.”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가?”

“왕은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군자는 올바른 도리를 행하며, 신하는 임금을 근본으로 삼아 충성을 다해야 한다는 의미인 줄로 아뢰옵니다.”

“어디서 그런 말을 생각하게 되었는고?”

“맹자와 서경에서 읽은 바를 종합하였나이다.”

“허면, 어찌 과인을 옥새나 찍는 뒷방늙은이처럼 구술하였는고?”


슬슬.

성종은 물론이고, 서지훈이 결코 앞서 실언을 한 것이 아님을 눈치챘다.

유교 경전과 해석을 줄줄 꿰고 있는 이들이다.

이들을 자가당착(自家撞着)에 갇혀 왕을 옥죄이고 있음을 인정하도록 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선 아예 처음부터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 실행하는 것이 완전히 모순됨을 눈으로 그려주어야만 했다.


조금 전까지 어린 아가의 눈망울로 ‘아무것도 모르겠어요’하던 세자 융의 눈빛이 돌연 매섭게 변했다.

그 눈과 마주친 신료들은 한결같이 고개를 숙이거나 돌리기 마련이었다.


그제야 성종 역시 세자 융의 의중을 파악했다.

그러면서도 군왕으로서 더욱 강하게 세자를 몰아붙였다.


“명확하게 답을 해야 할 것이야.”

“예, 전하.”


서지훈은 존경의 표시로 성종에게 목례를 한 뒤, 또다시 신료들을 무섭게 내려보며 말했다.


“임금이 국가의 대소신료를 정하여 올바른 정치를 하고, 이에 신료들이 뒷받침되어야 함은 유교 사상과 학문 그리고 예와 의, 충을 따르고 행함에 있어서 무척 중요한 사안이라고 배웠습니다. 허나 세자로서 작금의 조선에선 과연 신하들이 입으로는 성리학에 입각하여, 유교에 입각하여 라는 말을 줄줄줄 달고 살지만, 과연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허허. 이런······.”

“저하, 어찌 그런 생각을······.”

“천부당만부당하신 말씀이옵니다.”

“그래요?”

“조선의 신료들은 세자 저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오로지 전하의 국가 운영에 든든한 배경이 될 뿐. 결코, 세자 저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함부로 신하의 도리 그 이상을 주청드리지 않습니다.”

“그런가요?”

“전하, 신들의 충심을 받아주오소서.”

“전하. 신들의 충심을 받아주오소서.”


이에 서지훈은 매서웠던 눈 대신 다시 열세 살 어린아이로 돌아가 천진난만한 얼굴로 성종을 보며 말했다.


“전하, 소자의 충심도 받아주오소서.”

“하하하하. 이거이거. 세자에게 한 방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드는구나.”

“소자가 아직 배움이 부족하여, 궁금한 것을 서연에 참가한 많은 실력 있는 유학자이자 고위 신료들에게 묻고 답하며 견문과 능력을 넓히라는 전하의 말씀을 따랐나이다. 혹, 전하의 치세에 누가 되고, 신료들의 충심을 오해하였다면, 어린 세자의 학문적 갈증이었다 어여삐 여기소서.”

“하하하. 다소 당돌한 부분은 앞으로 세자가 많이 배우며 지식이 아닌 겸손으로 매워야 한 부분인 듯싶구나.”


성종과 고위 관료들은 세자 융이 말하고자 하는 문구를 왜 지금 인용하는지 모르지 않았다.

최근까지도 서경권의 확대냐, 축소냐를 두고 잊혀질만 하면, 화두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21세기를 살다 온 서지훈의 입장으로서 서경권의 장단점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서경권이라는 것 자체가 관료의 임명과 법령 운영에 대한 서명권이다.

삼권분립이 있던 시대를 살다 온 마당에, 서경권의 확대가 나쁘다고만은 보지 않는다.

하지만······.


‘누구 좋으라고?’


시강원에서도 그랬지만, 서연이 벌어지는 경복궁에서도 이 말이 입술을 살살살 간지를 정도로 서지훈의 뇌리에서 맴돌았다.


권리는 누릴 수 있는 상황과 조건이 필요하다.

현 조선의 관원이 청백리 백 퍼센트로 구성되어 있다면, 까짓거 지금 조용히 있다가 서지훈이 훗날 임금이 되었을 때, 제대로 열어줄 수도 있는 노릇이다.


비단 너튜브 방송 때문만이 아니라, 서지훈으로 살았던 대학 4학년 때.

졸업 논문을 준비하면서 ‘국가 정치와 경영’에 대한 논문을 수십 개 읽으면서 깨달은 바가 있다.


「세계의 경제는 해 처먹기 위한 주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인다.」

「이를 위한 가장 견고한 룰이 종교이며, 동아시아는 유교가 대표적이다.」


그러니, 훈구파 사림파 할 것 없이 서지훈의 눈엔 모두 똑같이 보일 수밖에.

큰 테두리는 유교.

왕도 정치 추구.

실상은 붕당 지지.


‘이이이이 유교 꼰대들.’


“전하께서 내리신 말씀 뼛속까지 깊이 새기겠나이다. 소자는 다음 주제를 진행해도 되겠나이까.”

“물론이다. 오늘 서연은 무척 흥미로운 시간이 될 것 같구나. 하하하.”


세자 융의 말을 들은 신료들은 그제야 도승지 얼굴이 허옇게 질려 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나 배웠네. 쇼를 하되, 절도 있고, 정적을 만들지 않도록.’


서연이긴 했지만, 스스로 충성 맹세를 고위 신료들은 아주 잠깐이긴 하지만, 서경권에 대한 이야기를 입밖에도 내지 않았다.


성종이 세자 융을 생각하는 마음을 여기서 엿볼 수 있었다.

이참에 서경권에 대해서 아예 쐐기를 박을 수도 있었으나, 신료들이 먼저 입을 열기 전까지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장차 조선을 이끌 군왕이 될 세자에게 정적을 만들어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서연에서의 유쾌함은 세자의 똘똘함을 보는 것으로도 충분했다.


***


용상에 오르기 전, 서지훈은 지식과 사람들에 대한 빌드업도 중요했지만, 그보다 제대로 된 자기 재산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했다.

돈이 많은 군왕이자, 미친 군사력을 보유한 군사 통수권자가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경제력이기 때문이다.


“뭐? 무엇을 하고 싶다고?”



작가의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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