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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quer_R

무채색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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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masquerR
작품등록일 :
2018.08.02 17:46
최근연재일 :
2020.05.08 00:06
연재수 :
81 회
조회수 :
9,396
추천수 :
82
글자수 :
474,693

작성
19.10.10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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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정말로 잃어버린 것#5

DUMMY

시오르는 조심스레 책상에 있는 서럽을 열어봤다. 그 안에 담긴 많은 책을 하나씩 펼쳐본 그는, 천천히 그것들을 책상에 쌓았다. 작은 수첩부터 열쇠가 있어야 열 수 있는 책까지 종류는 다양했다. 다만, 그가 찾고 싶은 종류는 하나였다.


레아와 이야기를 나누며 지르빌로 향하던 때, 그녀는 시오르가 일기를 간혹 쓰곤 했었다고 말했다. 저택에 도착했을 때에 한번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는 그 전에 서재에 놓인 책들을 보고 깜빡 잊고 말았다. 그리고, 어제 저녁에 언급된 사건 덕에 다시 떠오른 참이다.


정말 나르시아는 자신을 미워했던 걸까? 전혀 믿고 싶지 않은 이야기다. 지금까지 그녀가 자신과 함께한 여정 속에서, 별다른 증오를 느끼지 못했다. 분명 알렌이 뭔가 착각하는 거라고 중얼거리며 손을 뻗었다.


"이건 약학에 관한 필기네. 학교에서 필기했던 건가?"


지금은 필요하지 않았지만, 관심은 가는 내용이기에 잠시 공책을 옆에 내려뒀다. 필기체부터 지금과 다르게 무척이나 날렵하고 꼼꼼했기에 알아보기 쉬웠다. 내용도 체계적으로 잘 정리되어있어서, 자필이라고 생각하면 조금은 기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으론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불안을 감출 수 없었다. 단지 기억에 없어서 느낀 괴리감이 아닌, 나르시아에 대한 모든 의구심이 알렌의 말을 반증하려고 떠올랐다. 형평성 없는 이야기를 사실로 믿고 싶지 않았던 시오르의 손은 점점 빨라졌다.


문 두드리는 소리에 잠시 고개를 든 그는, 하던 일을 멈추고 문을 열어주려고 걸어갔다. 문을 열어보니 새하얀 튜닉을 입은 레아가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안녕, 시온."

"레아? 이른 시간에 무슨 일이야?"

"아침도 먹었고, 오늘은 별일 없어서 말이야. 혹시 시간 있나 해서."

"들어와."


방 안으로 들어온 레아는 여기저기 꺼내진 책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찾는 거도 있는 거야?"

"응. 혹시 옛날에 내가 쓴 게 있나 싶어서. 그보다 무슨 일이야?"

"아, 그게 오늘 아침에 다들 분위기가 냉랭해서.... 혹시 어제 무슨 일 있었니?"

"...잠깐 말싸움이 있었어. 다행히 벨 누나가 말려줬고."

"그래? 난 반대일까 봐 걱정했는데...."


말끝이 흐려진 레아는 미안함을 느꼈다. 아침부터 괜히 분위기 안 좋아지는 이야기를 꺼낸 자신을 몇 번이고 자책했다. 앉지도 못한 채로 방 한가운데에 멈춰선 그녀를 본, 시오르도 마음이 편치 못했다.


시오르는 먼저 침대에 양 발을 올린 채로 앉았다. 신발을 벗고 앉은 그는 목덜미를 긁으며 그녀를 바라봤다. 여전히 결정이 서지 않는 것인지, 레아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눈을 마주하지 못하자, 시오르는 먼저 입을 열었다.


"더 할 말 있어도 앉기 전까진 안 들을 거야."

"뭐? 시온...."


어울리지 않는 짓궂음에 당황한 레아는, 그대로 피식 웃고 말았다.


"뭐야, 그게...."


완전히 농담과 거리가 먼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역시 그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설령 진담이라고 해도 이렇게까지 상냥한 선언도 없을 것이다. 서서히 가라앉은 슬픔은 잊어버린 채, 그녀는 조용히 의자에 앉았다.


이제야 마음이 좀 풀렸으리라 생각한 시오르는 안도하고 어깨의 힘을 풀었다.


"좋아. 그런데 레아, 혹시 저 위에 있는 공책 중에서 본 적 있는 거 있어?"

"글쎄.... 무슨 책을 들고 다녔는가까진 못 외웠는데...."


한참을 둘러보던 그녀는 어떤 책을 발견하고 손가락을 뻗었다. 책들 사이에 끼워진, 모서리에 쇠 장식이 박힌 책이었다.


"저건 본 적 있어. 내가 자주 빌렸거든."

"그래?"


레아가 마법으로 책을 빼내자, 시오르는 그것을 받아서 펼쳐보았다. 허공에 펼친 채로 넘긴 종잇장은 거의 흰 면이 없다시피 가득 채워져 있었다. 내용을 쭉 읽어본 그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애초에 일기장을 남한테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빌려줄 리가 없지 않던가. 자신의 실책과 함께 책을 덮은 그는 레아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옛날에 네 필기 덕에 어려운 시험 면한 애들도 꽤 있었거든. 내가 말했었지? 그 마력마법 교수님."

"매번 쪽지 시험 내시던 분?"

"응. 마도학에서 마력 기반의 마법을 버리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니, 어쩔 수 없이 듣는 사람들이 많으니 성적도 신입생 들어올 때마다 변동도 심해지고. 난리도 아니었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그는 책을 옆에 내려두고, 침대 위에 올려뒀던 책들을 훑어봤다. 도무지 18년간 살았던 사람이라 믿기 힘든 기록이다. 이 경이로운 수준까지 따라가는 데에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까? 그런 생각을 하니 조금 걱정이 앞섰다. 조금이라도 마법사다운 모습을 보이려는 생각에, 조바심이 안 들 수 없었던 시오르.


반면 레아는 조용히 시선을 서재로 돌렸다. 어쩌면 시오르가 찾는 책이, 그제 봤던 책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위치는 기억하고 있기에 그녀는 손을 뻗었다. 서재에서 날아온 책에 시오르는 당황하며 옆으로 피했다.


"레아? 그건 무슨 책이야?"

"그제 찾았던 책인데, 이상하게 자물쇠로 잠겨있어서. 보통 이런 책에 뭔가 중요한 내용이 있지 않을까?"

"하지만 열쇠가 없어서 못 열어본 게 그거 하나뿐만이 아니라서...."

"그건 열쇠도 같이 있던데?"

"같이?"


책을 옆으로 돌리자, 양쪽 겉표지에 끼워진 열쇠가 눈에 들어왔다. 투박하지만 섬세하고 얇은 것이 분명 비싼 공책임을 알려줬다. 이런 열쇠는 네티아 마공학이 본격적으로 들어올 무렵에서야 나타난 양식으로 만들어진다. 그러면서도 책 사이에 열쇠를 끼워둔 것은 언제든 펼칠 수 있도록 준비하는 모습이다.


생각보다 비밀스럽지 않은 것은 확실히 의아했지만, 혼자 보관되는 위치가 달랐던 것은 어딘가 기묘했다. 상충하는 생각에 의문을 표하며 열쇠로 조심스레 공책의 자물쇠를 풀었다. 다만, 이번에도 그의 예상과는 조금 어긋났다.


안에 적힌 내용은 들어본 적 없는 이론이다. 필체는 분명 자신의 것이지만, 지금까지 듣고 배운 마법 중에는 없는 방식이다. 개개인의 마력이 다르기에 구분되며, 그렇기에 타인의 마력은 멋대로 자신의 마법으로 쓸 수 없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시작된 자문자답은 어떤 결론에 다다랐다.


만약 그 사람이 타고나는 재능처럼, 특정 마력이 특정 마법에 더 반응을 일으킨다면? 재능이 없다고 막힌 길 취급하지만, 만약 노력으로 그 길을 어떻게든 개척하면 월등한 힘을 쥘 수 있지 않을까? 마법을 보조하는 도구가 있듯, 마력 자체로 마법을 보조해낼 수 있다면?


말도 없이 조용히 책을 집중해서 바라보기 시작하자, 레아도 내용이 궁금해져서 그에게 다가왔다. 너무 그에게 가까이 가는 것은 신경 쓰여서 고개를 열심히 기웃거렸다.


"무슨 내용이야?"

"신기한 견해인데.... 봐봐."

"어디.... 마력 자체로 마법을 보조하는 경우는 자주 있잖아."

"근데 여기서 말하는 보조는 익숙치 않은 마법을 능숙하게 활동하게 해주는 의미의 보조야."

"재능을 마법으로 해결한다고? 그게 가능하면 그 어떤 것보다 마력이 더 중요한 거 아니야?"


다음 장으로 넘긴 그들은, 결국 과거의 시리스도 그들의 말에 동의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사람마다 다른 재능과 마력에 척도를 두고 절대적인 기준을 새기는 것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관련한 실험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뽑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을 정리하고, 새로운 방면으로 마법에 대한 고민을 이어나갔다.


무식하게 마법에 마력을 더 소진하는 방식의 구체화을 이야기하다가, 갑작스레 다중영창을 위한 범용식 마법진에 대한 고찰 같은 복잡한 소리가 나왔다. 두 마법사는 혼란스러운 느낌을 받았다. 게다가 몇 개는 지금 생각해도 망상에 불과했지만, 일부는 분명하게 가능성 있는 가설이다. 알고 있던 지식이 흔들리더니 결국 두 사람은 동시에 눈을 뗐다.


"...이게 정말 내가 썼다고?"

"...시온, 혹시 철학에 관심 가졌던 거 아닐까?"

"글쎄, 그래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아서 다행이야."

"맞아. 나도 다시 봤는걸? 너도 이런 허무맹랑한 소리도 할 줄 알고 말이야. 그것도 이렇게 자물쇠 있는 공책에다가."


레아의 말에 시오르는 피식 웃었다. 그러던 중, 유독 눈에 들어온 쪽이 있던 그는 눈동자를 굴렸다.


"왜?"

"이 부분만 혼자 헐거운데?"


이상하리만큼 외곽 부분이 색이 바래고 구부러진 쪽을 본 두 사람은 그 내용을 읽어봤다. 마력을 보조하는 도구 중, 특정 마법을 중점적으로 돕는 도구가 있다. 그런 장비와 비슷한 역할을 해줄 마법을 개발하면, 조금 더 순도 높은 마력의 영향으로 유용하지 않을까 싶다는 고민이다.


이에 관해 마도구에 관한 해석이 빼곡하게 늘어섰고, 그에 상응하고 비슷한 구조의 마법이 열거되어있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마법진을 마력석으로 유지해서 발동시키는 방안까지 모색했다. 본래의 고민과는 조금 엇나갔지만, 마력의 흐름이 끊어지거나 망가진 사람들이 재활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는 전망이 적혀있었다.


이 중, 시오르는 유독 다급하게 새겨진 글씨들을 주목했다. 오히려 마력의 흐름에 동조해야 하는 탓에, 자칫하면 설계와 반대로 완전히 흐름을 망가트릴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사람이 직접 쓰기 전까진 효과나 영향력을 분명하게 잴 수 없다. 그런 불안정한 부분을 보완하려 한 흔적은 많았지만, 최종적으로 마지막 끝부분에 적힌 글씨는 '지금 수준으론 완성할 수 없음'이라는 평가였다.


서술된 예상 부작용이, 나르시아와 세라스의 증세와 비슷한 느낌이 든 시오르. 생각해보면 모종의 사건 이후로 강함을 손에 넣었다고 했다. 그 사건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은 채로.


"이거 혹시...."


혼자 생각하는 시오르의 모습을 바라보는 레아. 그녀는 그가 혹시 기억을 떠올린 것인가 내심 기대했다. 하지만, 시오르는 책의 내용만 꼼꼼히 살필 뿐이었다. 이에 여전히 떠오르지 않은 것이라 생각하며 아쉬워했다.


분명 자신에 관한 많은 이야기가 있을 텐데, 아직도 떠올리지 못하는 것은 불안했다. 어쩌면 정말, 과거의 시오르와 작별을 고해야 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려왔다. 과거에 한 약속마저 모래성처럼 무너질 것 같은 미래는 그녀를 괴롭게 한다.


자신도 몰래 뻗은 손은 시오르의 팔목을 붙잡을 것만 같았다. 황급히 자기 팔을 끌어안은 그녀는 살짝 웃으며 아무 일도 없는 듯이 그를 바라봤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 침착해진 눈빛은 왠지 손톱으로 찌르면 눈물이 한가득 나올 것만 같아 보였다. 그의 오른쪽 눈동자에 담긴 원은, 왠지 흐려져서 사라질 것 같았다.


작가의말

늦은 밤까지 바쁜 하루를 보내고 왔습니다.

정말 힘들었어요...ㅠ

여러분들은 힘든 하루가 되질 않길 빌며, 오늘도 감사 인사 드리고 물러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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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후기 20.05.08 92 0 1쪽
80 마지막 여명#5(完) 20.05.07 77 0 14쪽
79 마지막 여명#4 20.04.30 53 0 20쪽
78 마지막 여명#3 20.03.26 27 0 15쪽
77 마지막 여명#2 20.03.19 65 0 12쪽
76 마지막 여명#1 20.03.12 35 0 16쪽
75 잘못된 시작들#8 20.03.05 49 0 17쪽
74 잘못된 시작들#7 20.02.27 44 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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