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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채색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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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masquerR
작품등록일 :
2018.08.02 17:46
최근연재일 :
2020.05.08 00:06
연재수 :
8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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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03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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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정말로 잃어버린 것#4

DUMMY

저택으로 돌아온 시오르와 레아는, 경비병이 열어준 문을 통과해서 안뜰에 발을 들였다. 곧 저녁이 오는데도 바쁘게 정원을 다듬는 시종들의 모습은 퇴근을 준비하는 것 같았다. 하루가 끝나가는 모습에 시오르는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사람들 사이에서 살면서 바라보는, 그런 별것 아닌 순간들이 행복하게 다가왔다. 상상 속에서만 펼칠 수 있던 모습을 각양각색으로 보는 일로 충분했다. 그리고, 정오 무렵에 들었던 남동생을 만날 생각에 발걸음은 한결 가벼웠다.


저택의 문을 열고 들어오자, 그 안에는 의기양양한 표정의 세라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살짝 들어 올리고는 그에게 말을 걸었다.


"다행히 늦지 않았네."

"먼저 왔어?"

"오히려 최고야. 마침 앉혀놓고 기다리던 중이었거든."


식당으로 향한 일행은 식당으로 향했다. 시오르는 바닥에 묻은 흙을 보고 확실히 다른 사람이 왔다는 게 느껴졌다. 온종일 청소하는 복도인 데다가 다른 사람들의 신발에는 흙먼지가 없었던 점이 그 근거였다. 그리고 문이 열리자, 예상대로 한 사람이 느긋하게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의자 너머로 보이는 듬직한 덩치와 흙빛으로 탄 피부는 남자의 기력을 부풀리는 것 같았다. 자신보다 두 살 어리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 시오르는, 세라스와 레아를 번갈아 가며 바라봤다. 하지만 레아는 알렌을 직접 본 적이 없어서 고개를 내저었다.


당당하게 걸어간 세라스는 의자에 앉은 남자에게 가서 당당하게 말했다.


"알렌, 데려왔어."

"...정말이길 빌게."

"그럼. 정말이고 말고."


고개를 돌린 알렌은 머지않아서 눈을 휘둥그레 뜨고 말았다. 약간 사각진 그의 얼굴이 입이 벌어지면서 조금 더 시오르와 닮은 얼굴형이 되었다. 시오르도 알렌의 검은 단발을 보고, 이렇게까지 비슷할 수 있는 것인지 놀라워했다.


다만, 기묘한 것은 기괴하게 비틀린 왼쪽 눈동자였다. 핏줄을 그린 듯이 뻗은 마력은 그의 눈으로 흘러들었다. 치료와 관련된 마법을 배운 레아는, 그것이 무슨 흔적인지 알아차렸다. 홀로 보랏빛을 내는 눈동자는 격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형?"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난 알렌은 시오르에게 달려가려고 했다. 당황한 탓에 의자에서 일어서는 것부터 야단이지만, 다행히 의자가 넘어지거나 부서지지 않았다. 겨우 시오르 앞에 다다른 알렌은 팔을 부들거리며 그의 어깨를 짚었다.


"정말 형이야...?"

"알렌, 근데 말이야...."

"아니야. 내가 말할게."


시오르는 처음 보는 동생의 얼굴을 말없이 쳐다봤다. 벽안인 자신과 눈동자 색은 달랐지만, 세라스와 같은 흑안인 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그저 건강하게 성장한 자신을 보는 것 같이 기묘함을 느꼈다. 자신이 눈물을 흘린다면, 이런 모습일 것 같다는 사실도.


하지만, 그 안에는 그리움을 담아내지 못하는 불안감이 서려 있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기억을 잃어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믿고 있었는데, 너무나도 거리감이 느껴져서 자기 자신에게 당혹감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해야 할 말이 있기에, 그는 목에 힘을 주어서 목소리를 내었다.


"사실 기억이 하나도 없어."

"무슨 소리야?"

"낙인이 찍힌 시점을 기점으로, 18년 간의 기억이 하나도 없어. 아직도 내가 리버스 가문의 장남인지...."


억장이 무너질 듯한 표정을 한 알렌은 세라스를 바라봤다. 그녀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내저을 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럼 이 여자는?"

"아, 레아 에리스입니다. 이름 들어보셨죠?"

"아...."


그 말을 들은 알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레아 누나라면 늘 형이 말하던 그 친구구나. 반가워요. 여긴 무슨 일로?"


알렌이 내민 손을 잡고 악수한 그녀는 눈동자를 살짝 떨구며 말했다.


"제가 처음 시온을 찾아냈어요. 그 뒤로 기억을 떠올리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집에 다다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었어요."

"알렌, 이 언니랑은 말 놓기로 했는데 혹시 불만 없지?"

"그럼. 누가 들으면 내가 제일 나쁜 사람인 줄 알겠어."

"나쁜 건 맞지. 요즘 집도 잘 안 들어오고 말이야."


아픈 구석을 찔린 것인지, 연달아 안 좋은 소식에 착잡함을 감추지 못하는 알렌. 다시 눈을 돌려서 시오르를 바라봤지만, 그에게선 익숙한 차분함이 옅어진 것만 같았다. 어쩔 줄 몰라서 눈동자를 돌리는 모습은, 어딘가 익숙하면서 안타까운 일이었다.


"걱정하지 마. 누가 뭐래도 형은 내 형이야. 리버스 가문의 장남이 없으면, 내가 차남으로 불릴 수도 없잖아."

"고마워."

"드디어 우리 남매가 모두 집에 모일 수 있게 됐네...."


세라스는 우울한 분위기에 휩쓸린 듯이, 기운 없는 모습으로 중얼거렸다. 모두가 듣기엔 충분했으나 아무도 구태여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침묵이 떠돌던 중, 세라스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며 말했다.


"아마 언니는 곧 올 거야. 저녁은 어떻게 했어?"

"먹으면서 왔어. 잠깐 방에 있어도 괜찮지?"

"그럼 우리만 먹으면 되겠네. 조금 있다가 부를 테니까 나와."

"그래."


천천히 걸어 나가는 알렌은 무언가 생각난 것인지, 문을 열지 않고 멈춰 섰다. 그러나, 혼자 뭔가를 생각하더니 그대로 문을 열고 나갔다. 오늘따라 정적이 다가오는 시간이 많아진 듯, 세 사람은 알렌이 나간 방향을 바라봤다.


그리고 제일 먼저, 입을 연 것은 레아였다.


"혹시 실례가 되지 않으면 한 가지 물어봐도 될까?"

"뭔데?"

"그 왼쪽 눈. 어쩌다가 그렇게 된 거야?"


세라스는 그 질문을 듣고 옆머리를 넘겼다.


"바깥에서 놀다가 사고가 있었어. 응급조치를 하긴 했는데, 그게 잘못돼서 정작 치료받을 땐 흐름을 되돌릴 수 없게 됐어."

"눈동자가 보라색으로 변색될 정도면...."

"그나마 그때, 근처에 얘가 있어서 산 거야. 안 그랬으면.... 아니, 생각을 말자. 아무튼 저녁 준비해놨을 테니까, 바로 자리에 앉아."


---------


사람 하나가 그대로 누워도 될만한 소파가 거대한 탁자를 두고 세 방면에 모두 놓여있다. 방 안에 있는 물건들은 대부분 자리를 비운 듯이 허전했지만, 다행히 꽃병이나 마력등 정도는 충분히 있었다. 은은한 불빛 덕에 그림자 드리워진 방은 사람이 있는 곳만큼은 밝았다.


응접실과 거실의 구분이 힘들다면, 거기에 있는 사람들의 행색을 보면 되는 법이다. 허벅지 부분이 무척이나 널널한 반바지와 땀 자국이 남아있는 민소매를 입은 알렌은 한쪽 팔걸이에 팔꿈치를 대고 턱을 괬다.


건너편에 앉아 있는 세라스는 양 무릎을 가슴 쪽으로 끌어안은 채로 조용히 옷자락을 털었다. 얇은 탓에 피부와 안에 입은 속옷이 비칠 듯했으나, 성인들의 옷이 아니기에 단순히 바람만 잘 통하는 잠옷은 그녀가 1년 새에 잘 샀다고 생각하는 물건 중 하나다.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르시아는 난롯불 앞에 서서 고개를 높이 들었다. 대각선으로 뻗은 사슬 문양이 새겨진 방패는 자랑스럽게 한쪽 벽면을 차지했다. 계약, 특히 연결에 능한 그들의 문장은 때때로 마법의 역사에도 남겨질 업적에 일조했다. 이제는 체이든과 크게 떨어진 탓에 그 명예는 왕성 앞에 쌓은 모래성처럼 초라했지만, 역사에 부끄럽지 않은 명예로운 이름을 남겼다.


그런 가문의 일원임은 누구도 꺾을 수 없는 자부심이다. 귀족이라면 누구나 가져야만 하는 자긍심이다. 그런 말을 듣지 못하게 된 지, 시간이 참 많이 흘렀다. 세라스는 여러 의미로 조숙해졌고, 알렌은 다른 사람으로 느껴질 만큼 성장했다.


하지만, 혼자 쭈뼛하게 정자세로 앉은 시오르만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리버스 가문의 일원으로서 회복되긴 힘들다는 거지."

"말도 안 돼. 우리에게도 받아들일 권리가 있잖아!"

"알렌, 그렇다 한들 낙인은 벗길 수 없어."


나르시아의 날 선 말에 알렌은 불쾌함을 느꼈다. 그것은 표정으로 드러났지만, 나르시아는 그것을 보지 않았다.


"테사르노에서는 복권을 반대했어. 게다가 그때, 우리가 내쫓은 것도 아니라는 점을 걸고 늘어졌단 말이지."

"그건...."


세라스도 무언가 반박하려고 했지만, 말을 잇지 못했다. 그저 고개를 돌려서 시오르를 흘깃 볼 뿐이다. 대화의 진중함에 너무 긴장한 것인지, 그는 고개를 섣불리 들지 못했다.


"자진해서 모든 권리를 포기했다. 그 말이 이렇게 돌아올 줄 누가 알았을까?"

"형이 포기한 덕에 얻은 것들도 있으니까, 우리도 포기하고 나서야 할 일이잖아."

"말조심해, 알렌."


고개를 돌린 나르시아는 눈매가 옆으로 째진 상태였다. 푸른 눈동자가 화염처럼 일어나며 알렌을 비난했다. 이에 알렌은 혀를 차고는 눈을 돌렸다.


"나도 애썼어. 근데 조사 결과만 받아 가고, 평민인 채로 두고 대기하라고만 하는데 어쩔 건데? 네가 가주 대리로 가서 대신 이야기해 볼래?"

"저기...."


시오르가 고개를 들고 입을 열자, 리버스 남매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향했다. 그는 여전히 눈은 아래로 향한 채, 조심스레 하려던 말을 꺼냈다.


"복권은 늦어져도 괜찮은데, 혹시 테사르노 보고는...."

"이것도 별로야. 네 등에 새겨진 낙인, 어째서인가 손상됐어. 막아둔 걸 억지로 뚫어버려서 다른 낙인에 영향을 주지 않을까 염려 중이라고 해."

"으...."


시오르는 역시나 그런 일인가 싶어 고개를 떨궜다. 라흐벨과의 이야기를 통해 낙인이 망가졌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의 폭과 사용하는 마법의 출력이 달라진 것을 납득해버린 그였다. 악마를 막아서기 위해 새긴 낙인이니만큼, 그것을 경계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래도 이건 너무 괴로운 일이라고, 시오르는 생각했다. 누가 보더라도 가족들이 싸우는 모습이 험악했다. 세라스는 주눅 들고 말아서 기운이 없었고, 알렌과 나르시아는 터질 듯이 기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모두가 항상 화목할 수 없다는 말을 들어본 적은 있었다. 그렇다고, 그것이 자신의 앞에서 일어날 때 별일 아닌 듯이 넘길 수 있게 되는 건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할 무렵, 나르시아는 푸른 제복을 펄럭이며 주변을 배회했다.


"시오르, 그렇다고 우리가 널 내칠 생각은 없다고 다시 말해둘게. 이건 세라스도, 알렌도 동의하는 일이야."

"맞아. 그보다 대체 여기서까지 그렇게 있을 거야?"

"그렇게라니?"

"좀 편하게 있어. 등도 안 대고 뻣뻣하게 허리 세우고 뭐 하는 거야? 책상에 뭐 올려뒀어?"

"아니, 그게...."


당황하며 팔을 내젓던 시오르는 눈치를 보며 몸을 뒤로 물렀다. 확실히 푹신한 감각에 몸에 오는 무리는 덜했다. 하지만 마음이 편치 못한 탓에, 여전히 편한 느낌을 받기는 어려웠다. 곧장 앞으로 튀어나온 시오르.


"우리 네 명만 이야기하는 게 이상해서.... 문득 생각난 건데...."


어딘가 주저하는 기색이 만연했던 시오르의 모습에, 나르시아는 눈을 감았다. 혹시나 해서 건너뛰었던 이야기가 하필 이 순간에 나올 것 같아지자, 그녀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혹시...누나가 가주인 건...."

"하아.... 그래, 네 생각대로야."

"...그렇구나."


시오르는 더 말하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그런 모습에 알렌은 얼굴을 찌푸리고는 두 자매를 바라봤다.


"대체 얼마나 이야기를 안 한 거야?"

"이야기를 할 상황이 아니었어. 그리고, 말하기엔...."

"알렌, 대체 집에 오자마자 그렇게 투덜거려야겠어? 세라스랑 내가 논 줄 알아?"

"언니."

"솔직히, 집에 딸랑 편지 한 장 두고 툭툭 나가면 다른 사람들도 곤란한 거 알잖아? 그런 네가 우리한테 뭔 이야기를 안 했다는 둥 할 자격이나 있어?"

"적어도 지금 집안 사정도 제대로 말 안 한 건 가주로서 책임을 다 못하는 거라고 생각이 안 들어? 우리한테 지금 얼마나 형이 필요한데?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다 아는데 누나가 나랑 이야기를 안 하려고 하니까 그렇지. 집안 사람들 다 알거든?"

"너 지금 말 다 했어?"


자리에서 일어선 알렌은 나르시아의 앞까지 걸어갔다. 나르시아의 기분을 대변하듯, 그녀의 제복 위에 서린 얼음 조각은 날카롭기만 했다. 당황한 시오르는 그대로 두 사람을 말리려고 달려갔다.


"잠시만!"

"넌 빠져있어."

"왜? 지금은 집안 사람 아니라고 하게?"

"논점 흐리지 말고 똑바로 말해. 뭐가 불만인데?"

"누나가 더 잘 알지 않아? 우리가 집안 이력을 크게 따지고 사는 사람들도 아니고, 부모님이었다면 어떻게든 가족으로 다시 넣었을 거야. 게다가 프라하 형이 도와준다는 것도 거절했다면서."

"누가 그런 소릴...."

"오면서 누구 도움받아서 왔는데? 애초에 형이 가문에 다시 편입되는 게 싫은 거잖아. 노력도 제대로 안 해놓고 남들 시선 핑계 삼고!"


이해하기 힘든 상황에 시오르는 팔을 어중간하게 든 채로 멈춰 섰다. 그게 사실이더라도 모종의 이유가 있을 수 있다. 말 못 할 이유가 있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알렌이 과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반대로 알렌의 주장이 타당하다면 그의 분개는 이해할 수 있는 행동이다. 시오르는 그렇기에 어느 쪽도 말리지 못했다. 진실을 모른다면, 괜한 참견이 될까 두려웠다.


"하긴 맨날 치졸한 속내 드러낼까 봐 말 안 하는 버릇은 여전하겠지! 누나가 계약 마법에 재능이 없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열등감 때문에 악마랑 원해서 계약했을 텐데 말이야!"

"알렌! 지금 싸우자는 거냐?"

"왜? 겁나?"

"두 사람 다 그만둬! 우리가 싸우려고 모였어?"


상황이 격해지자, 세라스가 직접 나서서 두 사람을 말렸다. 이에 조금은 누그러든 두 사람은 서로를 흘겨보고는 고개를 획 돌렸다. 꼴도 보기 싫다고 중얼거린 나르시아는 제복에 붙은 얼음 조각을 털어냈다. 알렌은 저려오는 눈동자를 손바닥에 파묻었다. 양 눈을 가린 그는 짜증 내듯 중얼거렸다.


"형 쫓겨난다고 좋아했던 주제에...."


혼자 중얼댄 것이 나르시아의 귀에 시비로 들렸기에, 그녀는 한껏 핏발이 선 눈동자로 앞을 노려봤다. 당장이라도 화내려던 그녀는 입을 열려던 순간, 그녀는 흠칫 놀랐다. 자신에게도 들릴 정도의 목소리였다면 두 동생에게도 안 들렸을 수 없었다.


그의 중얼거림은 거실의 시간을 멈추게 했다. 세라스는 경악한 채로 세 사람을 번갈아 가며 바라봤고, 시오르는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이 자리에서 제일 나와선 안 될 말을, 자신이 직접 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알렌은 손바닥 안에서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니, 형. 잠시만. 내가 말한 건 그런 게 아니라...."


하지만, 이미 시오르는 아무것도 듣고 있지 않았다. 파르르 떨리는 손은 멈출 생각도 하지 않았고, 한번 주저앉은 시선은 올라올 생각이 없었다.


"...나 참, 집안 꼴 좋다."


문 사이로 들려온 목소리에 나르시아는 시선을 옮겼다. 조용히 지켜보던 라흐벨은 마법으로 시오르를 붙잡고, 그대로 방 바깥으로 끌고 갔다. 저항조차 없이 끌려가는 모습에 반사적으로 손부터 뻗은 세라스는, 강력한 마력에 반발당해서 뒤로 밀려났다.


"윽!"

"대체 악마가 가만히 있는데, 사람끼리 그러고 싶냐?"

"뭐 하는 짓이죠?"

"얘랑 할 이야기가 있어서 왔더니, 이야기는커녕 잠이나 재워야겠어. 난 간다."


그렇게 거실문이 닫히고, 라흐벨은 시오르의 뺨을 살짝 쳤다.


"야, 시오르. 정신 차려."

"...이해 못 하겠어."


레아와 두면 좀 나아질까 싶었던 라흐벨은,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시오르보다 레아의 상처가 심각하다. 잘못했다간 두 사람 다 상처만 벌어질 상황이 짐작된 라흐벨. 시오르의 팔목을 붙잡은 손은 그녀도 모르게 약간 힘이 들어갔다. 결과적으로 그가 리버스 가문에서 쫓겨난 건 자신 때문이니까.


용케 아무에게도 탓하지 않은 그의 모습은 대견했지만, 반대로 죄책감이 그녀를 뒤덮었다.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눈동자에서 슬픔이 한 조각 흘러나왔다. 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닦아주진 못했다.


작가의말

개천절에 한글날까지.

여러모로 휴일이 많아서 기분이 좋네요.

오늘도 제 글을 봐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물러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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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후기 20.05.08 92 0 1쪽
80 마지막 여명#5(完) 20.05.07 77 0 14쪽
79 마지막 여명#4 20.04.30 53 0 20쪽
78 마지막 여명#3 20.03.26 27 0 15쪽
77 마지막 여명#2 20.03.19 65 0 12쪽
76 마지막 여명#1 20.03.12 35 0 16쪽
75 잘못된 시작들#8 20.03.05 49 0 17쪽
74 잘못된 시작들#7 20.02.27 44 0 16쪽
73 잘못된 시작들#6 20.02.13 39 0 16쪽
72 잘못된 시작들#5 20.02.06 43 0 13쪽
71 잘못된 시작들#4 20.01.30 43 0 15쪽
70 잘못된 시작들#3 20.01.23 37 0 14쪽
69 잘못된 시작들#2 20.01.16 42 0 15쪽
68 잘못된 시작들#1 20.01.09 42 0 15쪽
67 갈라지는 비극#3 19.12.01 32 0 12쪽
66 갈라지는 비극#2 19.11.28 30 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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