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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채색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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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masquerR
작품등록일 :
2018.08.02 17:46
최근연재일 :
2020.05.08 00:06
연재수 :
8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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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글자수 :
474,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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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26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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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정말로 잃어버린 것#3

DUMMY

"맛있게 드세요."


원탁 위에 올려진 음식은 간단한 요리였다. 그릇에 담긴 빵은 직사각형으로 잘려서 수프 위를 떠다녔다. 수저를 든 시오르와 레아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시작했다. 원래대로라면 집에서 먹어야겠지만, 레아와 외출하는 김에 바깥에서 먹겠다고 했다.


낮이지만 식사를 마치고 일을 나갈 시점이라, 가게 안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전형적인 주황색과 갈색이 어우러진 모습은 무척이나 익숙했던 시오르. 그러면서도, 확실히 이질적인 것을 알아봤기에 눈길을 슬쩍 돌렸다.


지나가는 곳마다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을 향한다. 일부는 알아보고 다가오며, 다른 이들은 알아보고 기피한다. 이유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자신이 1년 전에 마을에서 벌어졌던 일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으...."

"시온, 무슨 문제 있어?"

"아니. 아까부터 시선이 좀 신경 쓰여서."


레아도 그 말을 듣고, 고개를 살짝 숙였다. 시오르는 조금 속이 먹먹했기에 수프를 한 입 마셨다.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첫 계약을 위해 정령을 소환할 때에 두 정령이 튀어나왔다고 한다. 한 명은 아무도 정체를 알 수 없었던 정령이고, 다른 한 명은 라흐벨이다. 당연하게도 그는 꺼림직한 두 정령을 무르고, 다른 정령을 소환하려고 했었다. 이를 도우러 왔던 마법사들도 그 의견에는 동의했다. 적어도 라흐베르의 심장과 함께 나온 정령은, 무언가 보이지 않는 강함이 있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계약을 성사하지 못할 것 같아지자, 라흐벨은 마을을 향해 거대한 마법을 전개했다. 만약 자신을 무른다면 그 즉시, 마을을 부숴버리겠다고 협박하며. 이에 시오르는 여러 복잡한 계약을 족쇄 삼아, 결국 라흐벨과 계약하게 되었다.


라흐벨의 말에 따르면, 그때 같이 나온 정령은 마왕의 종복 중 한 명인 리아였다. 그녀는 자신이 강림하는 데에 낌새 없이 끼어든 것을 보고, 분명 놔둔다면 시오르를 빼앗길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아직은 모자란 그녀는 터무니없는 협박을 했다고 한다.


그 뒤로도 라흐벨은 좋지 못했다. 시종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하루가 멀다 하고 계약을 이행시키기 위해서 자신을 쫓아다녔다고 한다. 그녀의 언급에 따르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들으면 거부하리라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기어코 그것이 무엇인지 설명하지 못했다. 그만큼 가혹한 일을, 기억도 없는 지금은 더더욱 무리라며.


피곤한 기색이 눈가에 들어나자, 레아는 걱정스레 팔을 뻗어서 그의 얼굴을 살폈다.


"요즘 너무 피곤한 거 아니야? 어제도 별일 없으면 방에서 나오지도 않고."

"그게.... 워낙 좋은 책이 많아서...."

"하, 그건 그래. 명망 높은 마법사들의 수기라던가, 상당히 이름 있는 자료라던가. 도서관에서는 볼 수도 없는 책까지 있으니까, 나도 혹하게 되더라."


레아도 수긍하는 일이다. 시오르를 부르러 갔다가, 자신도 시오르의 방에서 책을 보느라 바빴다. 정신 차리고 보니 단둘이서 한 방에서 상당히 붙어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구슬땀을 흘리며 조심스레 방을 나왔다. 어느새인가, 의식하지 않으면 무척이나 가까이 있어도 부끄럽지 않으니 한 편으론 거리감이 줄어들었다며 행복했던 그녀였다.


"아무튼, 너무 피곤해서 그럴 거야. 어제도 밤늦게까지 안 잤잖아."

"그러게. 바깥에 있던 마력등이 전부 꺼지는 걸 봤던 것 같으니까."


방이 조금 멀리 있는 레아도 아는 사실에, 그는 민망한 듯이 시선을 돌렸다. 코넥스 사람들이 슬쩍 자신을 보는 것은 착각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일로 투덜거려봐야 어떻게 될 일도 아니다. 그렇게 생각한 그는 레아의 걱정이 맞는 것처럼 수긍했다.


솔직히 부담스러운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누군가에겐 마을을 구한 영웅이나, 누군가에겐 위험을 품고 있는 마법사다. 악마와 계약한 마법사는 필시 누군가를 해치고 만다. 그런 말을 들을수록 시오르도 불안했다. 자신도 누군가를 정말 해치게 되는 걸까? 자연스레 시선은 레아에게로 돌아왔다.


그런 일은 일어나선 안 된다. 그런 생각이 들었기에 조금은 가슴이 아렸다. 음식을 먹던 그대로, 숟가락을 믈고는 고민에 빠진 시오르.


"시온, 그러다가 숟가락도 씹겠어."

"으? 아, 미안."


레아의 말을 듣고 숫가락을 입에서 뺀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사람 다 그릇을 비웠기에, 잘 먹었다는 인사를 건네며 가게를 나왔다. 바깥은 봄날에 걸맞은 화창한 날씨였다. 떠 있는 구름은 개어둔 이불처럼 푹신할 것만 같았다.


어느새 마을에서도 시오르가 기억을 잃어버린 채라는 사실이 퍼진 모양이다. 그렇기에 당혹스러운 반응은 많이 없어졌다. 지금도 무리 없이 마을을 돌아다닐 수 있는 건 그 덕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여전히 귀족이 아닌 그에게 공손한 자세를 취했다.


길거리를 걷는 시오르는, 라흐벨과 나눴던 밀담을 떠올렸다. 당분간은 너무 눈에 띄는 짓을 하지 말아줬으면 하고 부탁받았다.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며 웃어넘겼지만, 왠지 그녀의 표정은 무척이나 진지했다.


서로의 이야기를 나눠본 결과, 상황은 생각보다 많이 난잡했다. 루니르노가 점차 노골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 이르미온의 행동 양식을 본뜬 누군가가 있다는 점, 양쪽 다 피해가 심하다는 점. 그리고, 우연히 마주한 시나한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점.


그 이름을 들었을 때, 정말 나투르 왕국의 최고 마법사인 시나한이 맞나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시오르는,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거센 싸움이 일어나면 눈치채고 막으러 올테니까. 마음 같아서는 자신을 만나러 오고 싶지만, 그에게도 주어진 일이 있기에 그는 마경들을 수색하러 떠났다고 한다.


"레아, 근데 이대로 돌아갈 거야?"

"응. 생필품을 굳이 살 필요도 없고, 마을 반대편으로 돌아서 천천히 가면 적당하지 않을까?"

"좋지. 저번엔 테사르노 예배당 쪽만 가봤으니까."


이야기를 나누던 두 사람은, 어느덧 인적이 드문 거리로 향했다. 다듬어지지 않는 도로에 신발은 흙투성이가 됐다. 외곽으로 향하는 만큼, 말 같은 동물 소리도 자주 들렸다. 자신이 사는 지르빌과 비슷해지자, 레아의 표정은 조금 누그러진 것 같았다. 물론, 고개가 위로 향한 사이에 그녀의 발 앞에 나타난 돌이 가만히 있지 않았지만.


시오르는 냉큼 마법으로 돌을 치워버렸다. 레아는 자신의 다리 아래에 마력이 움직인 것을 알고 고개를 내렸다. 그 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시오르를 바라보자, 그는 팔을 내저으며 말했다.


"바닥에 돌이 튀어나와서! 놀랄 거 없어!"

"그래? 다행이다. 누가 밟고 넘어지진 않았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쉰 그는 다시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하고 있던 이야기가 끊어졌지만, 이내 주제로 돌아오는 데에 성공했다. 마을 사람들은 그런 광경을 익숙한 듯이 바라봤다. 이전에는 조금 더 침착하고 차분한 분위기였지만, 그 점을 제외하면 언제나 보던 풍경이다.


어머니 쪽이 평민인 리버스 가문의 아이들은 여러 의미로 자유분방했다. 장녀는 다른 이들에게 떠도는 차가움과 반대로 친절함을 베풀 줄 알았다. 다른 세 명의 예절은 그녀에게서 비롯된 게 분명할 정도로, 본보기가 되었다. 그래서 그녀가 가주에 오를 때에, 불평하는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장남은 그런 누나의 장점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마을에 무슨 문제가 생기면, 대체로 그가 직접 해결했다. 귀족들 사이에서도 괴짜로 이름나긴 했지만, 귀족들의 규율과 거리가 멀 뿐인 선량한 이였을 뿐이다.


"야! 거기 안 서!"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차녀인 세라스는 특이했다. 동네 아이들을 붙잡고자 두 발로 열심히 뛰어다니는 모습은, 그와 한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어려 보였다. 그녀의 모습을 알아본 시오르는 손을 흔들었다.


"세라스, 무슨 일이야?"

"저 녀석들이 감히 날 놀렸단 말이야!"


그 말에 레아는 헛웃음을 지었다. 보통 귀족을 대놓고 놀렸다간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는데, 세라스는 마법도 쓰지 않고 그들을 붙잡으려고 한 것이다. 착하다면 착하지만, 예절과는 거리가 먼 모습은 그녀가 알던 지식과 많은 괴리를 일으켰다.


세라스의 팔을 붙잡고 그만두자며 말리는 시오르. 학생 시절이 떠오른 레아는 피식 웃었다. 하지만 눈은 웃지 못한 채, 옆으로 쳐져 있었다. 천천히 그들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가자, 이미 시오르는 세라스를 체념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하아.... 그보다 길 잃어버린 건 아니지?"

"아니야. 마을 구경하려고 외곽으로 돌고 있거든."

"어쨌든, 늦지 말고 돌아와야 해. 오늘은 나름 중요한 날이라고."

"중요한 날?"

"어제 말했잖아."

"세라스, 어제 시온은 못 들었을걸? 나랑 나르시아 언니랑 안뜰에 있었을 때니까."


'그랬나?' 싶은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던 세라스는, 팔로 자기 생각을 흩트리곤 두 사람을 바라봤다.


"아무튼, 드디어 알렌도 집으로 온다고 연락이 왔다고."

"동생이라...."

"시온 동생이라면 되게 모험심 넘치는 꼬마로 알고 있는데."

"음.... 그럼 좀 당황할걸. 걔가 방향을 완전히 틀어서 말이야."


세라스는 잠시 침묵했다가 다시 이야기를 꺼냈다.


"원래부터 마법사보단 검사 같은 쪽에 적성이 있어서, 아예 그쪽으로 갈아탔거든. 언니도 왕국 기사단이라서 지인들 연결해줬고."

"생각해보면 너희 집안은 적성이 크게 갈리는구나."

"아무렴. 하나에 쏠린 재능만큼 중요한 건, 여러 갈래로 퍼진 재능이지."


세라스의 모습은 무척이나 자신이 넘쳤다. 하나의 마법을 깊게 파악해나가는 가문이기에, 다른 마법에 대한 지식은 필수 불가결이다. 결혼과 친목을 통한 교류가, 때때로 다른 가문의 마법을 갈취하기 위한 전쟁이 되곤 하는 이유다. 그렇기에, 재능이 여러 갈래로 나뉘면서도 하나의 선으로 이어진 것에 대한 자부심은 당연했다.


"최근엔 수련한다고 집을 떠났더니, 편지 받자마자 다급하게 오는 모양이야."

"근데 집 근방에는 안 머물러?"

"그게...."


주춤거리는 세라스의 모습은 기이했다. 시오르도 그 점을 인지했기에,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닐까 짐작할 수 있었다.


"사실, 알렌이랑 언니는 사이가 별로 안 좋거든."

"진짜? 분명 시온이 말하기론...."

"그 사이에 무슨 일로 싸웠나 봐. 아직도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레아는 걱정스러운 듯이 그녀를 바라봤다. 밝은 듯한 그녀에게도 나름대로 고민이 깊었던 것은 알고 있다. 누구나 마음속에 심각한 고민을 가지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그 마음을 이해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분명 가족이 다 모이게 됐으니 이젠 괜찮을 거야."

"그렇겠지? 고마워, 레아...언니."


시오르는 두 사람도 많이 친해진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남들 앞에서 언니라고 잘 하지 않았으니, 관계가 얼마나 진전되었는지 알 수 있는 상황이다.


"언제 오는지는 알아봤어?"

"글쎄. 오는 중이라고 했는데, 점심이 되도록 집에 없었던 거로 봐선 아직 오는 중일 것 같거든. 미리 경비대한테도 보고하라고 했으니 금방 연락 올 거야."

"그럼 저녁 전까지는 집으로 갈게."

"당연히 그래야지. 조금 이따가 보자고."


아이들에게 화내던 것도 잊은 채, 어디론가 향하는 세라스. 어디로 가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제복을 펄럭이며 즐거운 표정으로 멀리 가버렸다. 어중간하게 올린 팔을 천천히 내린 시오르는 뒤로 돌아섰다. 레아는 어깨를 으쓱이며 양손을 뒤로 모았다.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운 그녀는 시오르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작가의말

오늘도 제 글을 보러 와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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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마지막 여명#5(完) 20.05.07 77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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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마지막 여명#2 20.03.19 65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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