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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채색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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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masquerR
작품등록일 :
2018.08.02 17:46
최근연재일 :
2020.05.08 00:06
연재수 :
81 회
조회수 :
9,397
추천수 :
82
글자수 :
474,693

작성
19.08.01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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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죽음의 삶#1

DUMMY

밴딜의 기수들이 시오르의 주변을 맴돌았다. 그들의 깃발은 요란스럽게 펄럭였다. 마치 바람이라도 부는 것처럼, 광폭하게 날뛰는 깃발은 갑작스레 아래로 젖혀졌다. 기수의 공격을 막아낸 시오르는 레아의 손을 붙들고 앞으로 달려갔다.


강철 정령과 바위 정령은 즉각 시오르가 옆길로 새지 못하게, 양옆으로 퍼졌다. 그 중, 람파라 불리는 바위 정령은 확실하게 하고자 도로에 박힌 돌을 끄집어 올렸다. 산탄마냥 퍼진 바위 조각에, 그는 급히 몸을 틀어서 이동했다. 레아의 손끝을 타고 밀려오는 마력이 그의 맥박도 빠르게 만들었다.


가까스로 방향을 트는 데에 성공한 두 사람. 레아가 급히 마법으로 저항해보지만, 기수들이 난폭하게 공격하는 와중이라 집중이 되지 않았다. 엉성하게 나간 마법은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저 터지고 부스러졌을 뿐, 기수들을 저지하기엔 부족했다.


창백한 빛이 안색으로 보일 정도로 가까워진 상황. 레아는 조급한 마음에 급히 마법을 사용했다. 손에서 튀어나오던 마력은 불안정했다. 바람 앞에 놓인 종잇조각처럼 불안하게 흔들리던 마력은, 이내 시전되던 마법을 이뤄내지 못한 채 폭발했다.


"꺄아악!"


앞으로 균형이 기울어진 레아는 간신히 넘어지는 것을 면했다. 시오르는 다급히 방어막을 쳤으나, 기수들은 무참히 방어막을 짓뭉개고 지나갔다. 틈을 파고는 바니르는 쇠창살로 두 사람을 긁어냈다. 팔을 다친 시오르는 상처를 부여잡았다. 따스한 피가 찢어진 옷자락을 타고 번졌다.


뺨을 베인 레아는 시오르의 상처를 메꿨다. 강화마법을 사용하느라 마력이 상당히 떨어졌을 텐데, 그녀의 헌신에 시오르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자신이 어떻게든 버텨내지 못하면, 둘 다 살아서 갈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그녀의 판단은 당연했기에, 무거운 책임을 느꼈다.


"밀집. 수호."


긴 영창을 방해받았던 그는, 짧은 영창으로 다시 방어막을 구축했다. 투명하지 않고 푸른 빛을 자아내는 모습에 밴딜은 얼굴을 찌푸렸다.


"재능도 좋군."


경멸하는 것인지, 감탄하는 것인지 모를 말을 시오르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조금만 더 강하면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감각이 불안하기만 했다. 상대가 수를 더 숨기고 있지 않을까, 헛된 생각 탓에 치명적인 일격을 허용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그를 주저하게 했다.


분명 자신은 모두에게 인정받을 정도의 마법사였다. 기억이 없는 탓에, 그 힘을 필요할 때에 쓰지 못하는 것은 서러웠다. 이 상황을 과거의 자신이라면 넘어섰을까? 눈앞에 튀는 기수들의 마력이 불꽃처럼 선명하게 일어났다.


그때, 시오르는 그 마력의 기이함을 느꼈다. 기수의 형태 없는 검과 마력의 움직임이 일치하지 않았다. 그 잠깐의 의문을 뒤로 한 채, 주저앉은 레아를 일으켜 세웠다.


"으으.... 다 싫어...."

"레아, 여기서 주저앉으면 안 돼."


물론 레아도 알고 있다. 여기서 주저앉아봐야, 시오르의 발목을 붙잡는 민폐를 끼치는 것뿐이다. 그렇기에 그의 목소리에 겨우 몸을 일으키는 것은 가능했다. 하지만 마법을 유지할 집중력을, 두려움이 서서히 갉아먹은 탓에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시오르는 손을 내밀어줬다. 몇 번이고, 자신을 일으켜 세웠다. 분명 시오르라면 자신을 구해줄 것이라는 생각에 그녀는 손에서 마력을 끌어올렸다.


"레아?"


레아의 마법이 무엇인가 알기 위해, 고개를 돌린 시오르. 서서히 드리워지는 그림자는, 옅게 반짝이던 레아의 눈동자를 점차 짙은 빛으로 물들였다. 하얗게 흘러내리는 석재를 피하고자, 레아는 시오르를 끌어당겼다.


"지금 건물을...."

"미안. 이거 말고는 방법이 없을 것 같았어."


시오르는 이미 기수들과 정령들이 주변을 파괴해뒀음은 알고 있다. 하지만, 마법으로 마을을 건드는 것은 꺼렸다. 만약 안에 사람들이 아직 있더라면, 무슨 사고로 이어질지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레아는 살기 위해서 갈라진 건물을 고의로 무너트렸다.


방어막이 걸러낸 먼지 사이로, 람파가 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그녀에게 뭐라고 말을 건넬 시간은 없다. 살기 위해서 한 일을 나무랄 일도 아니고, 감사를 표할 만큼 넉넉한 상황도 아니다. 그의 손바닥 앞에 펼쳐진 마법진은 재빠르게 마법을 구현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별처럼 날아간 마력은 바위로 된 부분을 정확히 타격했다. 람파는 어쩔 수 없이, 질이 떨어지는 바위나 어중간한 흙을 긁어모았다. 검의 형태를 한 바위들은 바스러지듯 먼지를 날렸다. 크게 위로 솟구친 검은 그대로 바닥을 내리찍었고, 시오르가 설치했던 방어막을 두 동강 냈다.


골목으로 뛰어 들어간 두 사람은 서로에게 가까운 벽에 마법진을 남겼다. 급격히 모습을 감췄으나, 뒤이어 따라온 바위 정령에 반응하듯 다시 점등됐다. 시오르가 새긴 마법진에서 사슬이 튀어나오고, 레아의 마법진은 이를 끌어당겨서 그물처럼 얽었다. 람파는 그 사이에서 발현된 마력에 의해, 몸을 잃고 뒤로 퇴각했다.


레아는 쉬지 않고, 다가오는 정령을 경고했다.


"위!"

"위험을 배제하는 것이 계약."


하늘 위에 떠 있던 바니르는 건물에 붙어있는 쇠를 마구잡이로 끌고 왔다. 창의 형태로 변형된 쇠는 모조리 그들을 향해 추락했다. 궤도를 예측할 수 없도록, 기괴한 방향으로 날아드는 쇠창살은 재빠르게 그들의 진로를 저지했다.


시오르는 바닥에 있는 마력을 끌어올려, 발판 삼아 저지선을 넘어갔다. 레아가 강화 마법으로 균형을 잡게 도와주는 사이, 공중에 뜬 채로 몸을 뒤로 돌린 시오르. 가리킨 방향에 선 바니르는 상대의 공격을 감지하고 육신을 이룬 강철을 뽑아서 벽처럼 넓게 폈다.


손가락 끝에서 나간 마력은 신속히 바니르의 강철에 박혔다. 크게 폭발한 마력은 형체를 잃지 않고, 그물처럼 넓게 퍼지며 바니르를 감쌌다. 정령의 육신을 짓누르던 마력은, 정령이 내뿜는 마력을 이기지 못하고 찢어졌다. 하지만, 그로 인해 육신이 많이 부스러졌다.


"됐어!"


레아는 시오르의 몸을 붙잡고 한 바퀴 크게 돌았다. 다시 손을 잡은 두 사람은, 균형을 똑바로 잡은 채로 도망칠 수 있게 되었다. 정령의 마력은 인간의 마력과 말도 안 되는 수준이지만, 그것을 세상에 온전히 끌고 올 수 없다. 문을 열어준 인간의 마력에 의존하기에, 여러 제약이 분명 있는 법이다.


가령, 시간이나 한도 위력을 가늠할 수 있다면 수준 낮은 정령은 충분히 막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시오르는 저지에 성공했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자신의 마법은 남들이 말하는 만큼, 상당한 순도의 마력을 들이붓는 식이니까 이용하면 된다는 판단이다.


"고마워, 레아!"

"자주 있던 일이잖아."


흐릿하게 웃은 레아는 금세 미소를 잃었다. 전방에서 다가오는 두 기수와 밴딜은 이제 와서 피할 방도가 없었다.


"시온...!"

"레아, 나 믿지?"


갑작스런 질문에 레아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하지만, 이미 그녀의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당연하지."

"그럼 방어 좀 부탁할게!"


그 순간, 시오르는 방어막을 유지하지 않고 온 마력을 끌어들였다. 밴딜은 싸늘한 눈으로 손가락을 그어, 기수를 출정시켰다. 당황한 레아는 방어막을 치긴 했으나, 시오르의 방어막보다 얇았다.


"어떻게 하려고?"

"돌파해보려고!"


턱 밑까지 올라온 울컥임은, 자신의 지병 탓임을 알고 있었다. 라흐벨은 늘 마력을 과도하게 쓰지 말라고 말했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증세는 대부분 그를 감도는 마력 때문이라, 갑작스러운 변화는 몸에 부담이 왔다. 하지만 그 부작용이 이제야 나타난 것은 행운이라 생각했다. 그간 잘 버텨준 자신의 몸에 감사하며, 그는 전방을 전부 가릴 정도로 큰 마법진을 불러냈다.


빠르게 회전한 마법진을 보고, 밴딜은 자신의 마력을 밀어 넣었다. 흐름이 꼬인 마법진은 완성되지 못한 채로 원을 유지했다. 하지만, 중앙에 문양이 사라지고 나서야 그는 시오르의 확신에 찬 표정을 확인했다.


"제길! 그런 거였나!"


하지만, 시오르는 손가락을 튕기며 마법진을 가동했다. 고의로 비운 원 사이로 들어온 밴딜의 마력이 주변으로 밀려 나갔다. 여전히 그들을 향해 다가오던 기수의 일격에, 당황한 레아는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방어막에는 아무런 피해도 오지 않았다.


눈을 뜬 레아는 시오르가 밴딜을 지나쳐가는 것을 확인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서 고개를 돌리자, 시오르는 기쁨에 찬 표정으로 소리쳤다.


"성공이야!"

"...시온, 뭘 한 거야?"

"기수는 환영이 맞았어! 저 마법사가 그 환영에 맞춰서 마법을 쓰고 있었던 거야!"


기수의 공격과 어긋난 마력. 그 이유를 알아차린 시오르는 밴딜의 마력을 역이용했다. 집중력이 마법의 많은 것을 좌지우지하는 만큼, 자신이 날린 마법들이 충돌하지 않게 하는 집중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마법도 아닌 마력으로 저지하려던 판단이, 오히려 기수의 공격처럼 사용한 마법을 방해하게 된 것이다.


며칠 되지 않는 사이에, 큰 발전을 보인 시오르의 모습에 레아는 놀라고 말았다. 많은 배움 끝에서야 겨우 마법으로 싸울 수 있게 된 자신조차 그런 어긋남을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완전히 바닥부터 시작했음에도 마법사로서 싸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생각했다. 시오르의 마법은 공격에 적합하지 않았다. 적을 말려 죽이는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 밴딜을 저지할 방법은 없을 것이다. 자신이라면 어떻게든 공격할 수 있지만, 더 격한 마법을 사용하려 했다간 목숨을 걸어야만 했다.


"역시 시온이야!"


레아는 그 사실을 구태여 말하지 않고, 그를 칭찬했다. 괜한 사실을 말해봐야 겨우 얻어낸 기세를 꺾을 뿐이다. 그런 와중, 주변에 다른 마력을 느끼고 고개를 돌린 두 사람.


큰 교차로를 뚫고 지나간 순간, 우측에 한 마법사가 조용히 마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붉게 물들인 제복은 주변을 불사르고 온 듯 강렬했고, 마법사 또한 그런 모습에 걸맞은 인상을 하고 있었다.


"겨우 찾았네! 그 망할 마법사!"


세라스의 양손은 불타고 있었다. 그녀의 마력을 장작 삼아 타던 불길은 주인까지 집어삼키진 않았다. 하지만, 던져진 불길은 분명 사람들이 아는 화염이다. 바닥에 떨어진 불씨는 나뭇조각에 빌붙어, 기세를 키워나갔다.


두 마법사를 쫓던 밴딜은, 갑작스레 사각에서 날아온 화염을 피할 수 없었다. 세라스의 화염에 휩싸인 그는 비명을 지르며 균형을 잃었다. 뱀처럼 길길이 날뛰는 불길은 로브와 살점을 파고들며, 깊게 스며들었다.


땀을 흘리며 뚜벅뚜벅 걸어온 세라스는 불길로 난폭하게 밴딜을 제압했다. 귀족의 위상과 걸맞지 않은 그녀였으나, 화염을 양탄자 삼듯이 다가오는 지금의 모습은 오만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리버스 가문의 이름을 걸고, 날 화나게 한 대가를 치르게 해주겠어!"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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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후기 20.05.08 92 0 1쪽
80 마지막 여명#5(完) 20.05.07 77 0 14쪽
79 마지막 여명#4 20.04.30 53 0 20쪽
78 마지막 여명#3 20.03.26 27 0 15쪽
77 마지막 여명#2 20.03.19 65 0 12쪽
76 마지막 여명#1 20.03.12 35 0 16쪽
75 잘못된 시작들#8 20.03.05 49 0 17쪽
74 잘못된 시작들#7 20.02.27 44 0 16쪽
73 잘못된 시작들#6 20.02.13 39 0 16쪽
72 잘못된 시작들#5 20.02.06 43 0 13쪽
71 잘못된 시작들#4 20.01.30 43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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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잘못된 시작들#2 20.01.16 42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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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갈라지는 비극#3 19.12.01 32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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