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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채색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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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masquerR
작품등록일 :
2018.08.02 17:46
최근연재일 :
2020.05.08 00:06
연재수 :
8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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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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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글자수 :
474,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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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16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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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3류 서사시#5

DUMMY

나무에 등을 댄 프라시온과 미네트는, 자신의 손을 옭아매는 마력을 더듬었다. 망치처럼 묵직한 느낌이 가슴팍과 팔을 완전히 봉쇄했다. 그새 자신들이 쓰던 마법을 비슷하게 따라 하는, 시오르를 바라봤으나 그는 애써 그런 시선을 모른 척 고개를 돌렸다.


"자, 그럼 직접 들어보자고."


세라스는 만족한 듯, 양 허리에 팔을 얹고는 당당하게 말했다. 입가에 서린 미소는 마치 자기가 다 이겨놓은 듯한 모습이다. 이에 한심하다는 듯이 코웃음을 친 프라시온.


"참나, 누가 보면 네가 이긴 줄 알겠어."

"우리가 이겼잖아?"

"그래. 성깔은 네가 이겼다. 하여간에 한 마디를 안 지려고 꿍시렁꿍시렁. 퉷."


그런 이들의 앞으로, 나르시아는 천천히 걸어왔다. 사람들이 다니는 길가를 치우고 오자는 레아의 의견을 수렴해서, 잠깐 길가를 정리한 그녀는 조금 지쳐 보였다.


"언니, 다녀왔어?"

"시온, 별일 없었지?"


호다닥 달려온 레아는 시오르의 상태를 살폈다. 얼굴부터 더듬어가며 서서히 시선을 내리던 그녀는, 자신이 치료해둔 부위가 잘 아물었음을 확인했다. 시오르는 괜찮다며 고갯짓을 하고는 뒤로 물러섰다. 이제 미세 가문의 두 사람에게 질문할 시간이다.


"서로 귀족이니, 곱게 가는 게 어때?"

"정적 몇 명 사라지는 걸 반길 가문은 많지 않을까, 미네트?"

"리버스 가문은 그런 과격파 부류가 아닐 텐데?"

"너희들 혓바닥 굴리는 실력에 따라 다르겠지."


싸늘한 표정으로 그녀가 내려다보자, 미네트는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돌렸다. 눈을 마주친 시오르는 어딘가 시선을 제대로 두지 못하는 느낌이 들었다. 발걸음을 옮긴 나르시아는 프라시온을 툭툭 발로 찼다.


"사실 다른 것보다 제일 궁금한 건, 네가 시오르한테 한 짓인데...."

"내가 뭘?"

"약물 투여를 봐줘야 할 만큼 큰일이 있지 않았던가?"

"그러니까 내가...."


알 게 뭐냐는 듯한 태도에 화가 났는지, 프라시온의 눈앞까지 날카로운 얼음이 솟구쳤다. 순간 행동을 멈췄기에 다행이지, 조금만 옆으로 갔으면 눈뿐만 아니라 얼굴까지 찢어질 뻔했다.


"워우."

"대체 이르미온이라는 이름이 왜 나오는 거지?"

"이르미온? 그 괴담을 믿는다고?"

"시오르의 입에서 나온 말이야."

"쟤가 약 정신에 헛소리한 거라고는 생각 안 하나 보군. 솔직히 나로서도 어처구니없는 처사인데."


얼음은 녹아서 프라시온의 다리를 적셨다. 으슬한 느낌에 살짝 몸을 떤 그는 여전히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저 녀석을 처리해서 입막음이라도 하려고 했던 건 사실이야. 하지만 내가 왜? 저 촌구석 마법사 하나 못 알아봐서 생긴 오해일 뿐이라고."

"그만큼 네가 세상 물정 몰랐던 거지. 어떻게 시오르를 몰랐지?"

"사실이야. 솔직히 어제서야 알았다고."


미네트의 말에 나르시아의 미간은 조금 펴진 듯 했다.


"나름 시오르라는 이름은 대충 알았어. 어느 집안 귀족 놈이 철모르고 천한 애들이랑 친했는가 싶었지만, 그런 놈들은 대개 별거 없는 애들이잖아. 그냥 기억에서 잊었을 뿐이고."

​"아무튼 질문에는 아직 답하지 않은 것 같은데?"

"몰라."

"나도 처음 들어."


하지만 시오르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는 분명 그들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 발터라는 인물과 이르미온이란 조직. 둘 다 분명했지만, 이들은 거짓말을 했다. 그 사실에 시오르는 입을 열었다.


"하지만 분명 두 분 다 그렇게 말했었어요."

"야, 아무리 그래도 그런 끔찍한 소리 하는 거 아니야. 이르미온이라니. 그런 게 실존하면 내가 살아있는 것도 신기하거든?"

"그러겠지. 전쟁 중에 살아남으려고 이브리스 가문 바짓가랑이 붙잡고 구걸한 게 너희 가문이니까 말이야."

"말 다 했어?"

"더 해?"


나르시아는 놀리듯이 대답했다. 프라시온의 표정은 점차 일그러졌다. 살랑거리는 바람에도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 와중, 미네트는 목줄 묶인 개처럼 레아를 노려봤다. 레아는 아까 싸움에서 했던 말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짐작하며, 시오르 뒤로 숨었다.


"레아?"

"무슨 일인데, 시온?"

"아니, 아무것도."


그제야 시오르는 미네트와 눈을 마주했다. 그런 거냐고 작게 중얼거린 그녀는, 시오르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게 신경 쓰여?"

"친구니까요."

​"단지 그거 때문에 눈까지 부라릴 건 없잖아?"


아직도 분이 덜 수그러든 미네트는 애써 표정을 폈다. 푸른 눈동자는 흐릿하게 떨려왔으나, 눈앞의 적을 분명히 조심하고 있다.


"다만, 한 가지 거래를 하고 싶은데."

"뭐죠?"

"우리가 그냥 가게 해줘. 우리도 아무 일 없었다는 거로 할 테니까."


시오르는 그 말에 무언가 턱 밑까지 울컥하고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자신들은 거절했던 것을, 자신에게 똑같이 제안하는 것이 어이가 없었다.


"미네트, 재미있네. 네가 그런 말을 할 처지야?"

"서로 바쁜 일 있는 거 아니었어? 마법도 제대로 안 쓰고 걸어 다닌다니. 산책 나온 게 아닐 텐데. 오는 길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봐?"


의표를 찔린 나르시아였으나, 여전히 싸늘한 표정으로 일관했다. 반면 세라스는 불같이 화를 내며 그녀에게 다가왔다.


"언니, 헛소리 못하게 혼쭐을 내주자."

"하지만 우리도 제시간에 도착을 못하면, 반대쪽에 연락해둔 부하들이 올 거라고. 정말 시간을 끌고 대답을 듣겠다면, 그 정도는 각오해야지. 안 그래?"

"반대로 그 전에 입을 열게 할 수 있지."


얼음으로 만들어진 세검이 미네트의 뺨을 긋고 지나갔다. 붉은 피가 검을 타고 흘러내렸으나, 떨어지자마자 보석처럼 얼어붙었다. 고개를 살짝 틀어 자신의 뺨을 확인한 그녀는, 검은 겨눈 나르시아를 노려보며 말했다.


"실례도 정도가 있지."

"말해."

"다시 말하지만, 몰라."

"유감이야."


그 순간, 시오르의 마력이 나르시아의 팔을 붙잡았다. 날카로운 얼음날이 어느새 미네트의 팔뚝 끝에 살짝 닿아있었다. 말리지 않았더라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시오르."

"그래도 이건 좀 아닌 것 같아서 그래요."

"...후."


한숨을 깊게 내쉰 나르시아. 이내 마법을 거두고는 시오르를 노려보았다.


"얘들을 풀어줘서 볼 이득 하나 없어."

"하지만 손해도 없잖아요."

"이르미온에 대한 정보는 분명 알고 있는 애들이야. 그러니 내버려 두면, 그것대로 곤란해."


시오르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목숨을 위험하게 하는 이들은, 바로 자신이 묶고 있는 이들 때문에 온 것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해선 그들을 풀어주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자신은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아니다. 때로는 시시한 결말이 나오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법이다. 가슴 한구석이 쿡쿡 찔렸으나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여기에 대충 묶어두고 가요.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아무것도 묻지 않고?"

"본인들이 모른다고 하는 데다가 말할 생각이 없다니까, 그 정도 고생만 하게 해줘요. 어차피 부하들 온다니까 놔두면 알아서 데려가겠죠."


그의 선택이 납득이 가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지나가는 것은 좋지 않았다. 살짝 떨리는 팔을 보면, 그도 그 점을 신경 쓰는 것 같았다. 나르시아는 시오르의 얼굴을 바라봤다. 고집을 굽힐 것 같지 않은 모습이다. 어제 봤던 것과 같은 표정임을 알고,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그게 허튼 생각이 아니길 빌게. 네 목숨이 달린 일인 만큼."

"그래서 그 이르미온인가 뭔가 하는 녀석들이 나타났다고?"

"이제 와서 모른 척하긴 좀 아닌 것 같은데. 하얀 복면의 암살자."


나르시아의 말에 미네트의 입꼬리는 슬쩍 꿈틀거렸다. 하지만 그것을 보지 못한 나르시아는, 고개를 돌려서 일행 쪽으로 움직였다. 다들 정말 그래도 되냐고 시오르에게 묻자, 그는 어차피 말하지 않을 거라면 시간이라도 낭비하지 말자고 설득하고 있다.


얼굴을 부여잡은 그녀는 화가 날 것 같았다. 일전의 시오르가 저렇게 굴더라도 괜찮던 것은, 그가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을 죽이려던 사람들을 봐주려는 머저리로 느껴졌다.


대화가 끝난 것인지, 일행은 나르시아를 보고 있었다. 손을 얼굴에서 내린 그녀는 세 사람에게 다가갔다. 레아나 세라스도 그닥 동의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정말 그래야겠어?"

"안전한 게 우선이야. 괜히 놔뒀다가 또 그런 짓 하러 올 놈들이고."

"역시 다들 별로인가요?"

"그렇지. 뭐라도 정보가 나와야 우리가 안심할 수 있으니까."


세 여자의 의견을 듣고, 한층 침울해진 듯한 시오르. 역시 불가능한 일인가 생각하며 고개를 돌렸다. 스스로도, 그저 사람이 죽는 꼴을 보기 싫어서 막아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동경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현실과 다르다. 따라 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그럼 반대로, 뭐든 내뱉으면 곱게 갈 수 있단 소리지?"

"미네트, 또 무슨 생각이야?"

"글쎄. 프라시온. 빨리 마을로 가서 목욕하고 쉬고 싶은 생각 뿐이라고 하면 믿을 거야?"


혀를 찬 프라시온은 자신을 묶은 마력을 보고는, 알아서 하라고 중얼거렸다. 자신의 앞에 모인 시오르 일행을 올려다본 미네트는 씨익 웃었다.


"하루에만 사람을 몇 번이나 놀래키는지 모르겠어. 미네트."

"잘 생각해보니 우리가 무슨 거짓말을 해도, 너희가 믿어야만 한다는 걸 떠올려서 말이지."

"그땐 직접 찾아갈게."

"자, 빨리 이르미온에 대한 정보나 내뱉어."


미네트는 발로 툭툭 차는 세라스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머리를 저어서 그녀를 밀어냈다.


"지금은 적어도 정보를 말하려는 내가 더 위라고 생각하다만."

"뺨으론 모자랐나봐?"

"성급하게 안 굴어도 잘 말해줄게. 어떤 게 진실일지는 너희들이 알아서 찾아보면 좋겠네."


특이하게도 능청거리는 듯이 말하지 않고, 차분하게 말한 그녀는 고개로 프라시온을 가리켰다.


"저기 모지리가 용병 무리들 고용하는 일이 많은 녀석이라 말이야."

"뭐, 모지리?"

"아무튼 그런 애들 중에서, 상당히 특이한 놈들이 있거든. 상징도, 조직명도 없는 이상한 녀석들이."


그 말에 시오르의 눈동자는 조금씩 흔들렸다. 나르시아가 말한 이르미온의 특징과 같았다.


"우리가 그 녀석들을 이르미온이라고 부르는 건 그런 이유야.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우리에게 알려진 이르미온과 다른 조직이야."

"다르다고?"

"그런 식으로 핑계를 대려고?"

"아니, 정말이야. 그 녀석들은 중개업자 같은 거거든."

"...중개?"


시오르는 중개라는 말을 더듬었다. 확실히, 발터라는 이는 '이런 의뢰를 받아줄 사람은 많다'는 투로 말했었다. 그들이 직접 나서지 않는 것인가 생각하면, 직접 적국의 주요 인물을 살해하는 조직이라기엔 무언가 행동력이 없어 보였다.


"용병들과 사이가 좀 있다면 충분히 연이 닿는 정도야. 그러니 정말 그들이 이르미온이 맞나는 직접 확인해. 주요 거래처까지 알려줘야 하나? ...아, 표정 보니 말해줘야겠네. 레이션으로 가봐."

"레빈스 북쪽에 있는 도시?"

"리든이랑 가까우니까 연락 닿는 게 쉬웠지."


이에 고개를 끄덕인 나르시아는 시오르를 바라봤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그에게 말없이 묻는 것이다. 시오르는 잠시 고민하는 듯싶더니, 레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레아, 혹시 저번에 가지고 있던 조난용 신호탄 있지?"


작가의말

보통 대청소라는 건 1월에 하기 마련입니다만

하도 결심이 늦어서 5월에나 하게 됐네요

앞으론 4달 미리 결심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봐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려요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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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후기 20.05.08 92 0 1쪽
80 마지막 여명#5(完) 20.05.07 77 0 14쪽
79 마지막 여명#4 20.04.30 53 0 20쪽
78 마지막 여명#3 20.03.26 27 0 15쪽
77 마지막 여명#2 20.03.19 65 0 12쪽
76 마지막 여명#1 20.03.12 35 0 16쪽
75 잘못된 시작들#8 20.03.05 49 0 17쪽
74 잘못된 시작들#7 20.02.27 44 0 16쪽
73 잘못된 시작들#6 20.02.13 39 0 16쪽
72 잘못된 시작들#5 20.02.06 43 0 13쪽
71 잘못된 시작들#4 20.01.30 43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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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갈라지는 비극#2 19.11.28 30 0 16쪽
65 갈라지는 비극#1 19.11.21 31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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