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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채색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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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masquerR
작품등록일 :
2018.08.02 17:46
최근연재일 :
2020.05.08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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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4,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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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28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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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모든 마법은 머리에서부터#6

DUMMY

부서진 열차 뒤로는 한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 옷 대신 온몸을 덮은 썩어빠진 붕대와 초점을 완전히 잃은 공허한 눈은 결코 평범한 사람이 아님을 알렸다. 다만 난도질 된 것처럼 생긴, 방금 만들어진 듯한 고급진 로브를 두른 그녀는 고개를 비틀며 서 있었다.


뺨이 시퍼런 멍으로 얼룩진 여자는 손가락을 구부리며, 무언가를 셈하고 있었다. 왼팔을 집어삼키는 듯한 수상한 문양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꿈틀거렸다. 그런 모습이 일행은 싸늘히 굳어버렸다.


그녀에게서는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짙은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건물이 무너지며 흩어지는 파편처럼, 폭력적으로 주변에 퍼져나갔다. 이를 알아차린 시오르는 작게나마 방어막을 펼쳐서 레아를 지켰다. 그리고 라흐벨에게 물었다.


"저 사람도 정령이야...?"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어."


라흐벨은 검은 연기를 채찍처럼 휘두르며 주변을 지켜나갔다. 스멀스멀 기어오는 마력은 화살처럼 주변에 처박히며 열차의 벽을 뚫고 나갔다. 펼쳐진 마법진은 지워지고 새로 그려지기를 반복했다.


겨우 기세를 되찾은 나르시아는 물통을 엎은 뒤, 바닥에 놓인 웅덩이에 손을 댔다. 푸른 마력이 핏줄처럼 뻗어 나갔다. 빠르게 일그러진 물은 순식간에 얼어붙으며 눈앞의 적을 향해 돌진했다. 날카로운 가시가 손아귀처럼 적을 찔렀다.


"얼음?"


하지만 수상한 여자는 다치지 않았다. 저항하는 기색도 없었는데, 얼음으로 이뤄진 가시는 차가운 가루가 되어 바스러졌다. 여자의 주변을 감싸는 마력이 그 얼음을 타고 솟구쳤다. 보이지 않는 마력이 나르시아의 손에 닿을 듯이 돌진했다.


나르시아는 빠르게 팔을 떼고 뒤로 물러났다. 그 상황에 맞춰, 세라스는 준비했던 화염을 적에게 던졌다. 거대한 방패 모양의 화염은 주변의 마력을 집어삼키며 점차 크기를 키워나갔다. 나르시아는 손가락을 원형으로 모으고 그 위에 마법진을 고정했다.


"얼려라."


주먹을 움켜쥐자, 일순간에 허공에 수많은 얼음이 나타났다. 갑자기 텁텁하고 미적지근한 공기를 느낀 시오르는 고개를 돌렸다. 주변을 감싸는 수많은 얼음은, 모두 대기 중의 물기였다. 이내 얼음이 뿜어내는 한기에 다시 정신을 차릴 무렵, 레아가 그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시온, 빨리 도망치자."

"그래. 누나!"

"알아! 안다고!"


라흐벨은 신경질을 내며 마법을 연사했다. 나르시아가 마력이 더 퍼지지 못하게 얼린 것을 휘둘렀고, 튕겨 나간 세라스의 화염을 푸른 열화로 바꾸어냈다. 곤란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라흐벨은 눈앞의 적에게 소리쳤다.


"감히 뻔뻔하게 모습을 드러내...?"

"벌써 몇 번째 실책이지, 라흐벨? 열 번째? 아니, 여기까지 순순히 왔으니 11번째겠네."

"왕의 명령을 수행하는 자에게 무슨 짓이지? 정체를 밝혀라!"

"아, 얼음을 다루는 마법사. 방금 건 재미있었어. 예상 못 한 공격이거든."


여자는 낄낄거리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정서 없이 떠돌던 마력이 응집했다. 푸르게 퍼져나간 마력은 그대로 물이 되어서 나르시아에게 날아갔다. 당황한 그녀는 자신의 마법으로 물을 조작하려 했지만, 나르시아의 마력을 거부하고는 분해시켰다.


그렇게 나아간 물은 라흐벨의 검은 마력에 막혀서 바닥에 흘렀다. 땅에 닿는 순간,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며 주변을 날카로운 얼음으로 채웠다.


"하지만 부족하잖아. 발상이 모자란다고. 파괴적인 형상, 그 위력의 한계를 더 멀리 짚는 게 없어."

"에나스, 네가 남을 가르칠 형편은 되나 봐?"


주변에 흩어진 에나스의 마력이 점차 라흐벨에게 빨려 들어갔다. 하지만 에나스는 어쩌라는 듯이 손을 내밀며 말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계약으로 묶여서 날뛰지도 못하면서."

"적어도 너한텐 아니야."

"벌써 52번째야. 거짓말도 티가 안 나야 할 텐데.... 어떻게 만나는 내내 전부 셀 수 있을 정도지?"

"닥쳐. 니 새끼 탓에 여기까지 왔어. 내가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아?"


점차 격해지는 발언 속에서, 시오르의 불안은 커져만 갔다. 사람을 가차 없이 죽여버리던 그때의 모습이 떠올라서 식은땀이 흘렀다. 하지만 불안이 커지는 것은 다른 이유도 있다.


라흐벨이 온 것은, 마왕과 그들의 부하들을 처리하러 온 것이다. 400년 전에 세상을 파멸로 몰아넣었던 이들이 남았기에 그들을 토벌하겠다고 했다. 그럼 눈앞의 존재는 그들 중 한 명이라는 소리다.


"주인님은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아."

"아직도 잘 살아있는 모양이네? 분명 그렇게 찢어발겨놨는텐데."

"다 아는 건 묻지 말자고."

"그럼 너만 알 만한 거 물어보자. 지금까지 우리를 여기까지 끌고 온 거냐?"

"그것도 이미 답을 알고 있잖아?"


여기까지 오는 게 모두 계획대로라고 에나스가 말했다. 이에 시오르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앞을 바라봤다. 레아 탓에 자신을 발견한 게 아니라면, 진작에 공격하지 않은 것도 이상하다. 반대로 레아 때문에 발견된 거라면 우연일 뿐이다.


"뭔가 이상해. 거짓말이야."

"조용히 있지 그래?"


에나스는 시오르를 노려봤다. 초점이 없는 눈동자는, 이상하리만큼 분명하게 시오르를 보고 있었다. 탁한 보랏빛 눈동자가 그를 잡아먹을 것 같았다. 하지만 시오르는 굴하지 않았다.


"당신이 누구든, 그럴 권리 같은 건 없어."

"아아, 역시 첫 번째야."


갑작스레 감탄하듯 말한 에나스는 로브를 뒤집어썼다.


"이 불행한 만남을 축복받아야 해. 마법사, 너와 내가 만난 이 순간을 말이야...."

"피해!"


라흐벨의 말과 함께, 수많은 것들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보이지 않게 설치되어있던 방어막들이 무너졌다. 목표는 누가 보더라도 시오르. 그는 미처 피하지 못했기에, 다급하게 손으로 마력을 방출했다.


엉성하게 펴진 마력은 방어막이 되기 전에, 에나스의 손길에 흩어졌다. 그녀의 뒤를 가격하는 무수한 마력들은 로브에 집어 삼켜져서 사라졌다. 부상 하나 없이 접근한 그녀는 시오르의 목덜미를 마력으로 졸랐다.


"케윽...​."


점차 위로 들리는 그의 모습에, 모두가 초조함을 드러냈다. 당사자는 다급하게 목을 조르는 마력을 풀어내려고 했지만 강철을 손톱으로 긁는 것 같았다. 격한 거부반응을 일으키며 시오르의 마력은 반사됐다. 에나스는 이 모습에 만족한 듯, 일행을 둘러보며 말했다.


"모든 건 처음일 때가 제일 다행스러운 법이야. 자, 가자. 주인님이 널 기다리신다."

"누구 멋대로."


그 순간, 에나스의 팔목을 자르는 거대한 검은 마력이 지나갔다. 팔을 잘린 에나스는 자신의 마법이 일부 풀어지는 것을 알아차리고, 뒤로 물러났다. 라흐벨은 거대한 대검을 휘두르고는 그 마력을 터트려서 에나스 주변의 모든 마법을 억지로 터트렸다.


분홍빛 머리카락은 어느새, 촉수처럼 스멀거리며 검게 물들었다. 얼굴은 그저 연기가 돼서 흔들리고 있을 뿐이다. 이런 모습에 에나스는 갑자기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대했다.


"정말로?"

"이름을 걸고라도 절대 못 넘겨줘."

"그러겠지. 기껏 그 분신을 부숴가면서까지 하는 거 보면 말이야."


라흐벨 앞에 그려진 마법진은 검은 산양의 모습을 이뤄냈다. 그것을 휘감은 검은 원은 마치 피가 흘러내리듯 천천히 아래로 흘러내렸다. 그 불길한 형태를 완성한 라흐벨은 고개를 돌렸다.


"시오르, 미안하지만 계약을 이행해줘야겠어."

"계약....?"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시오르는 왼손에 격한 통증을 느꼈다. 고개를 돌려보니 손등에는 라흐벨의 마법진과 같은 산양 문양이 나타났다.


"이건...."

"지금 이렇게 되는 건 원치 않았는데."


잠자코 이 상황을 지켜보던 에나스 같았지만, 라흐벨의 마법진을 지워내고 다른 마법을 파훼하는 것으로 보아 그런 건 아니었다. 그만큼 절실한 상황이었기에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납득할 시오르였다. 자신에게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각오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각오가 끝난 순간, 시오르는 비틀거리며 균형을 잃었다. 옆에 있던 레아가 다급하게 붙잡은 덕분에 겨우 일어서 있을 수 있었다. 피곤함과 어지러움에 당황한 시오르는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알아챘다.


자신의 몸에 있는 마력이 서서히 라흐벨에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몸을 가득 채우고 있던 거대한 마력이, 반절 넘게 고갈되어가며.


"시오르!"


세라스는 시오르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리고는 재빨리 나르시아 쪽으로 끌고 갔다. 레아는 시오르의 팔을 어깨에 메고는 마력으로 몸을 강화했다. 재빨리 그를 옮긴 일행은 라흐벨을 바라봤다.


검은 균열이 점차 느려지는 열차 위에 펼쳐졌다. 그 안에서 나오는 검은 마력은 보이지 않는 마력을 밀쳐내며 주변을 점거했다. 검게 피어난 마력 수정은, 개방된 열차 안임에도 너무나도 짙어진 마력 농도를 짐작할 수 있게 했다.


"나는 라흐베르의 심장. 죽음으로 이끌고, 시험하는 자."


불안정한 머리는 어느새 원래 모습을 되찾아갔다. 하지만, 찬란하게 흩날리던 분홍색 머리카락은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는 연기 같은 검은 머리카락이 흔들리고 있었다.


사람의 형체만큼은 유지했으나, 온통 검은색으로 덮인 전신은 그녀가 인간이 아님을 체감하게 해줬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시오르는 착잡한 기분을 느꼈다. 마력이 만들어낸 화려한 왕관은 어딘가 쓸쓸한 빛을 내며 라흐벨의 머리에 씌워졌다.


기존의 옷은 사라지고, 온통 검은 드레스가 라흐벨의 몸을 보호했다. 짙은 마력 탓에 에나스의 마법 몇 개를 재빠르게 튕겨냈다. 이 모습에 에나스는 손가락을 구부렸다.


"세 번째? 아니, 분신이 저 모습인 건 첫 번째잖아. 그래. 이번엔 첫 번째야."

"몇 번째이든 상관없어."


핏빛처럼 싸늘하지만, 금방이라도 타오를 듯한 적안이 자신의 적을 바라봤다.


"그다음을 셀 일이 없을 테니까."


그 말을 들은 에나스는 피식 웃더니, 얼굴을 부여잡으며 폭소했다.


"하하하! 그래! 몇 번이고 마주했었지! 그 모습, 바로 그 모습!"

"나르시아, 지금부터 목숨 걸고 시오르 지켜."

"진작에 그럴 생각이야."

"누나...."

"...신경 쓰고 가. 그리고 한동안, 이 근방에 오지 말라고 알려."


나르시아는 빠르게 바닥에 남은 물기를 얼음으로 바꿨다. 그 얼음을 계단처럼 깐 그녀는 재빠르게 시오르와 레아를 데리고 이동했다.


"아, 안되지. 안돼. 내가 바보도 아니고."

"에나스, 내가 있는데 고개를 당당히 드러낸 네 실책이야."

"실책? 아니, 12번째야. 라흐벨."


공허한 눈동자는 자신을 노려보는 적안을 괄시했다. 에나스의 손가락이 하나 더 접히는 순간, 라흐벨은 주변에서 밀려드는 무언가를 알아차렸다. 그것의 정체를 알았기에 더욱 식겁한 그녀는 주변을 둘러봤다. 당황한 듯한 눈동자에 만족한 듯, 에나스는 입을 열었다.


"내가, 그리고 주인님이 그런 실수를 할 리 없잖아?"

"도망쳐!"


라흐벨의 마법이 발동되자, 시오르 일행에게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짙은 마력이 다가왔다. 그것이 견고한 방어막이 된 것을 보자, 시오르는 레아를 보며 말했다.


"레아, 서두르자!"

"알겠어!"


시오르는 레아에게 업힌 팔을 풀고 달려갔다. 세라스는 그들의 대화에 사막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무것도 없어야 할 황량한 사막에, 무언가가 그들을 향해 돌진해왔다.


나르시아는 얼음을 끌어모아서 그것들을 향해 발사했다. 날카로운 형태였음에도 일절 피해 없이, 그것들이 달려왔다. 점차 멈춰버린 열차에서 멀어지고 있음에도, 또 다른 마력이 방출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그 마력에 공명하듯, 달려오는 무언가의 속도가 빨라졌다.


"마흐니, 증오하던 세상에 다시 살아난 네 분노를 풀어놓자!"

"웃기지 마!"


라흐벨과 에나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마력이 폭죽처럼 폭발하기 시작했다. 뒤를 돌아볼 생각도 들지 않을 만큼, 일행은 앞으로 달려가야만 했다. 자신들을 향해 달려오는 추격자, 검은 마력으로 만들어진 늑대를 피해 도망가야만 했다. 가능하면 멀리, 더 멀리 가야만 했다.


울부짖은 늑대들의 목소리가 사막을 물들였다. 어둠은 그들을 비호하듯 천천히 빛을 삼켜갔다. 무엇이 그들을 향해 달려오는 것인지 알았기에, 일행의 안색은 창백하기 그지없었다.


작가의말

슬슬 병원 VIP라 자부해도 될 것 같은 하루였습니다.

저번주는 본인이 병원에서 검사를 받느라 휴재까지 했는데, 이번주는 가족이 입원한 관계로....

아무튼 돌아왔으니 이번에도 열심히 해보도록 하죠.

여러분들 모두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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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후기 20.05.08 92 0 1쪽
80 마지막 여명#5(完) 20.05.07 77 0 14쪽
79 마지막 여명#4 20.04.30 53 0 20쪽
78 마지막 여명#3 20.03.26 27 0 15쪽
77 마지막 여명#2 20.03.19 65 0 12쪽
76 마지막 여명#1 20.03.12 35 0 16쪽
75 잘못된 시작들#8 20.03.05 49 0 17쪽
74 잘못된 시작들#7 20.02.27 44 0 16쪽
73 잘못된 시작들#6 20.02.13 39 0 16쪽
72 잘못된 시작들#5 20.02.06 43 0 13쪽
71 잘못된 시작들#4 20.01.30 43 0 15쪽
70 잘못된 시작들#3 20.01.23 37 0 14쪽
69 잘못된 시작들#2 20.01.16 42 0 15쪽
68 잘못된 시작들#1 20.01.09 42 0 15쪽
67 갈라지는 비극#3 19.12.01 32 0 12쪽
66 갈라지는 비극#2 19.11.28 30 0 16쪽
65 갈라지는 비극#1 19.11.21 31 0 13쪽
64 정말로 잃어버린 것#9 19.11.14 43 0 19쪽
63 정말로 잃어버린 것#8 19.11.07 55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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