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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quer_R

무채색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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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masquerR
작품등록일 :
2018.08.02 17:46
최근연재일 :
2020.05.08 00:06
연재수 :
81 회
조회수 :
9,399
추천수 :
82
글자수 :
474,693

작성
19.01.24 10:39
조회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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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1쪽

문 앞에 엎드린 불행#7

DUMMY

시오르의 기억에 따르면, 계단은 아무리 많아 봐야 한두 층을 오갈 정도였다. 스테니언스 도서관이 지하가 있다는 소문은 듣지도 못했고, 애초에 남자를 쫓아 조금 달린 게 전부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마저 가슴이 아플 만큼 숨이 찼다.


건강이 나쁘고 체력이 약한 것이 어이없을 정도로 그의 탈출을 더디게 했다. 별다른 마법도 없이, 로브를 쓴 남자는 시오르의 바로 뒤까지 다가왔다. 마법에 능숙치 못한 시오르는 마력의 흐릿한 흔들림을 느꼈다. 다음 마법이 그를 덮치려고 하고 있다.


절박하게 마력을 흘리고 최대한 넓게 펼친다. 시오르의 마력이 일순간 남자의 마법을 막아낸다. 하지만 유리가 부서지듯이 푸른 가루가 흩날린다.


"어딜 도망가!"


발목을 붙잡히자, 그대로 계단에 머리를 박는 시오르. 침착하게 몸을 돌린 그는 다가오는 남성을 향해 마력을 구체로 만들어 던졌다. 여자는 이 상황을 보고 팔을 뻗었다. 푸른 방어막이 시오르의 구체를 완벽하게 막아냈다.


그러나 시오르의 구체는 발작하듯 크기를 키워나갔다. 고의로 폭주시킨 마력은 일순간에 폭발하며 두 사람의 시야를 가려버린다. 틈이 생긴 시오르는 빠르게 작은 칼 모양 마력을 만들었다. 손에 쥔 마력으로 발목을 묶는 마법을 잘라냈다.


코와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고 달린 끝에, 드디어 계단 끝에 발을 디뎠다. 여기서부턴 틀릴 일 없이 사람들이 있는 곳까지 갈 수 있다. 그랬기에 그간 다물었던 입을 열었다.


"도와주세요!"


모퉁이를 향해 달리던 시오르는 고개를 뒤로 돌렸다. 남자는 여전히 자신을 향해 달려왔고, 여자는 어떤 마법을 쓰려고 했다. 충분히 벌어들인 거리였기에 이대로라면 그의 탈출이 명확했다.


하지만 그간 참아왔던 것은 시오르의 정신만이 아니였다. 갑작스레 밀려오는 격렬한 거부감과 울렁거림이 그의 걸음을 흔들었다. 다급하게 입을 막았지만, 지금까지 흘린 피보다 몇 배는 되는 양을 내뱉고 말았다. 손바닥을 적신 선혈은 그대로 목덜미를 타고 흘렀다.


겨우 사람들이 보이는 길목이 눈앞에 보일 정도로 달렸는데, 여기서 쓰러질 순 없었다.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는 이성을 어떻게든 붙잡은 시오르. 그는 주춤한 발걸음을 다시 내디뎠다. 남자의 팔이 시오르의 어깨에 닿기 전까지.


남자는 재빠르게 시오르의 얼굴을 가격했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시오르는 모퉁이에 몸을 박고 쓰러졌다. 바닥에 누운 시오르는 고통 속에서 손을 뻗었다. 저 멀리 보이는 사람들에게 금방이라도 닿을 것 같았다. 하지만 손과 함께, 시선은 완전히 땅에 처박혔다.


여자는 급히 천을 꺼내 시오르의 벌어진 입을 막았다. 세게 묶은 탓에 신음이 흘러나왔다. 마법도 걸지 않았으나 발작하듯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남자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와, 마법 쓸 줄 아는 녀석이였네."

"갑자기 이 녀석이 각혈하면서 비틀거린 거에 감사해."


여자는 시오르의 다리를 당기며 안쪽으로 계속 끌고 들어갔다.


"내 강화마법이 아무리 빨리 걸렸어도 위험했어."

"그게 어디야. 내 마법도 늦을 뻔했는데."

"그보다 얘, 몸 상태 안 좋은 것 같은데. 실험체로 써도 돼?"

"우선 데리고 가서 진단해볼까?"

"그보다 피는 어떻게 하지?"

"부하 중에 물 다룰 줄 아는 애가 있어. 지금 대기 중이니까 부르면 마르기 전에 가능해."


마력이 다시 시오르를 집어삼켰다. 허공에 뜬 채로 끌려가는 시오르에겐 더 이상 버틸 정신력이 없었다. 바닥에 떨어진 핏방울만큼 눈물만 흘렀다.


-----


"...왜 이렇게 늦지?"


레아는 입구와 건물 안을 번갈아 가며 확인했다. 아무리 봐도 리버스 가문의 문양은 보이지 않았고, 이상하게도 시오르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조바심이 들었지만, 이 정도는 참을 수 있었다. 스테니언스 도서관은 생각보다 크니까 멀리 있는 서고까지 갔을 수 있다고 스스로를 달랬다.


하지만 기댈 수 있는 곳이 그녀가 등지고 있는 기둥뿐인 것이 조금씩 두려움을 불렀다. 웅성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꾸만 그 사실을 떠올리고 주변을 둘러본다. 잠시 쉬거나 다른 일을 하고 싶어도, 혹시 길을 엇갈릴까 걱정되어서 참게 된다.


"아니야. 시온이 걱정하지 말랬잖아?"


지금의 시오르는 과거의 시오르와 다르다. 하지만, 그가 시오르인 것은 여전히 느껴진다. 따스한 마음과 예상외의 순박함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전처럼 시오르의 말을 떠올리고 따르게 된다. 그녀는 그게 너무 좋았다.


조금은 불안함이 가시자, 가슴에 손을 올리고 숨을 내쉈다. 잠깐이면 괜찮을 거라고 믿으며 기둥에서 등을 뗐다. 지금은 본격적인 봄을 알리는 두 번째 달이다. 게다가 오늘이면 친구나 선생님을 가끔 만날 수 있는 기간이다. 기왕에 시오르가 돌아왔다는 걸 모두에게 알리려고 했다.


인파가 드문 도서관 안쪽으로 들어온 레아. 시오르의 상태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까 고민이 됐다. 기억을 잃었다고 해도 괜찮을까? 그보다 악마와 계약하게 된 건 알고 있을까? 고민이 늘어나면서 고개는 아래로 내려갔다. 조용히 지나가던 레아는 문득, 앞에서 마력이 움직이는 걸 느껴졌다. 그녀는 누군가 마법을 쓰며 다가오는 것을 알고 걸음을 늦췄다.


"불쌍하네. 이렇게 흘렸으면 너무 세게 맞은 거 아니야?"


로브를 입은 마법사는 그렇게 투덜거리며 걸어왔다. 그 말에 레아는 바닥에 떨어진 피를 봤다. 무슨 일이 있었나 싶은 레아는 모퉁이에서 걸어오는 마법사를 보고는 질문했다.


"저기, 무슨 일 있나요?"

"아, 도서관에서 사고가 있었던 모양이에요. 늘 그렇잖아요? 칼립소 출신 마법사들의 융통성."


고지식하고 자존심 높은 것을 그리 비꼰 그는 피를 치우며 걸어갔다. 레아는 마법사가 한 말을 이해하면서도 기분이 나빴다. 하지만 그녀는 애써 표정을 관리했다. 도서관에서 일어난 소란을 정리하는 사람한테 투덜댈 만큼 속이 좁지 않았다.


"그럼 수고하세요."

"네, 아가씨도 수고하세요."


레아는 문득, 무슨 일이 있었나 궁금했다. 조용히 묻어두려는 것을 보면 어느 정도 직책 있는 사람일 것 같았다.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고요한 분위기와는 사뭇 어울리지 않았다. 그녀는 조심스레 마력을 집중해서 흩어진 마력을 봤다.


그녀의 시야에는 온갖 마력이 나타났다. 도통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색이 있었지만, 최대한 가려낸 끝에 4개의 마력을 확인했다. 두 사람이 바깥으로 나갔고, 한 사람은 안으로 들어갔다. 레아는 무심한 듯이 마법사가 왔던 길로 걸어갔다. 생각건대, 피를 흘리는 사람이 병원으로 호송된 것 같았다. 4번째 마력은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지만, 피에서 흐릿하게 흘러나온 것이니까.


창밖을 바라본 그녀는 마차에 사람이 실리는 것을 봤다. 멀리서 봐도 옷에 피가 흥건한 것이 보였다.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마법사가 말한 사고를 수습하고 있는 것이다. 안타깝다는 생각을 하며 레아는 뒤돌아섰다. 빨리 볼일을 보고 시오르를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았다.


--------


“하아.”


한숨을 깊게 내쉰 나르시아. 거리는 오늘도 사람들로 북적였다. 귀족이라 사람들이 알아서 피하려 했으나, 그러기 힘들 정도로 복잡했다. 네티아에서 넘어온 관광객들 탓이다.


세라스는 그 찝찝한 인파 속에서 쪄 죽어가고 있다. 안 그래도 열이 과한 그녀는, 제복을 벗을까 고민이 들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언니한테 붙는 것으로 위기를 넘기곤 했다.


성에나 다름없는 얼음이 세라스의 살에 닿자, 빗물처럼 흘러내렸다. 그 탓에 나르시아의 등골은 점차 눅눅해졌다. 그게 반복되기를 몇 번. 세라스는 나르시아의 마음도 모른 채, 고개를 들었다.


“무슨 일이야?”

“아니야. 좀 졸려서.”

“언니도 밤샌 거야?”

“....너만큼은 아니지.”


나르시아는 제복에서 얼굴을 뗀 세라스를 봤다. 누가 보더라도 명백히 저조된 분위기다. 눈 밑에 깔린 그늘은 잠을 설친 것을 입증했다. 어제 일이 너무 분했던 것임을 잘 알기에, 나르시아는 머리를 만지며 말했다.


“어차피 그게 정말 시오르였는지는 몰라. 그러니까 너무 신경 쓰지마.”

“근데 그거, 물어봤어?”


세라스의 질문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체이든 가주인 크리스랑 만났어. 원래는 시오르에게 전해줄 게 있었는데, 아침부터 떠났다더라고.”

“역시 그때, 걔가 있었던 게 맞을 거야. 분명 우릴 기다리려고 아침 일찍...!”

“진정해.”

“아, 그리고 생각을 좀 해봤는데. 분명 기억이 없다면 마법을 다시 배우려고 할 거 아니야? 그러면 기초 마법 관련 서적이 있는 곳만 뒤지면 돼. 그럼 확실하게 할 수 있어.”


품에서 일기장을 꺼낸 세라스. 오밤중에 열심히 쓴 것인지, 졸다가 위로 그어진 글씨가 종종 보였다.


“알았다니까.”


스테니언스 도서관 계단을 오르던 두 자매는 주변 사람들을 훑어봤다. 의도치 않은 여러 시선이 교차했다. 나르시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대고 있던 손을 치웠다.


칼립소 지역, 그것도 체이든 가문에서 나온 이들이 올 곳이 못 된다. 그녀가 아무리 인망 있는 가문이라도, 그녀의 가문은 이브리스 가문을 쫓아냈다. 이 사람들이 힘든 원흉이기도 하다. 단지 그들 사이의 신분 격차 덕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어째서인가 어떤 여자가 자신들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백금색 머리카락이 휘날릴 정도로, 다급하게 달려왔다. 그 모습에 나르시아는 자연스레 손을 아래로 내린 채, 마법진을 꺼내기 시작했다.


이에 반응하듯, 여자는 빠르게 멈춰서며 손을 내저었다.


“아, 잠시만요!”

“뭐지?”


나르시아는 수상한 여자를 게슴츠레 쳐다봤다. 아무리 봐도 평민쯤 되는 여자지만, 마법을 사용하는 걸 알아차릴 정도로 실력은 있었다.


“혹시 나르시아 리버스 씨 맞으시죠?”

“나르시아 기니쉬 리버스. 맞다만.”

“아, 저는 레아 에리스입니다. 시온의 친구예요.”


그 말에 두 자매는 눈을 크게 뜨고 다가왔다. 특히 세라스는 레아를 잡고 흔들어댔다.


“네가 걔 친구구나! 야, 시오르 걔는 어디 있어?”

“저...그게....”


세라스가 부담스러운 것인지 말을 더듬는 레아.하지만 나르시아는 단지 그것뿐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누구보다 자신들을 기다리는 것은 시오르임을 알기에.


“시온이...아까부터 보이지 않아요...!”


작가의말

다들 반갑습니다.

푹 쉬고 와서 기분이 좋네요.

다시 열심히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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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후기 20.05.08 92 0 1쪽
80 마지막 여명#5(完) 20.05.07 77 0 14쪽
79 마지막 여명#4 20.04.30 53 0 20쪽
78 마지막 여명#3 20.03.26 27 0 15쪽
77 마지막 여명#2 20.03.19 65 0 12쪽
76 마지막 여명#1 20.03.12 35 0 16쪽
75 잘못된 시작들#8 20.03.05 49 0 17쪽
74 잘못된 시작들#7 20.02.27 44 0 16쪽
73 잘못된 시작들#6 20.02.13 39 0 16쪽
72 잘못된 시작들#5 20.02.06 43 0 13쪽
71 잘못된 시작들#4 20.01.30 43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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