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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quer_R

무채색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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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masquerR
작품등록일 :
2018.08.02 17:46
최근연재일 :
2020.05.08 00:06
연재수 :
81 회
조회수 :
9,393
추천수 :
82
글자수 :
474,693

작성
19.01.10 13:44
조회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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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2쪽

문 앞에 엎드린 불행#6

DUMMY

"으...."


시오르는 책을 든 채로 의자에 앉아서 곁눈질하기 바빴다. 1층 복도 쪽에 있는 그의 모습은, 남의 뒤를 밟는 미숙한 남자로 보였다. 책을 보다가도 무슨 소리만 나면 힐긋 눈을 들었다. 하지만 그가 생각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책에 집중하기 힘들었던 그는 열심히 머리를 움직였다. 몸을 기울여서 다른 길로 들어선 귀족을 바라보거나, 다가오는 사람들 탓에 놀라서 책을 놓치기 일쑤였다. 그런 모습에 레아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왔다.


"저기, 시온. 목 안 아파?"

"조금 아프긴 한데...."


한숨을 쉰 레아는 그를 바라봤다. 아픈 것보다 가족을 만날 생각에 들뜬 것이 무척이나 아이 같았다. 원래부터 그런 기질이 있긴 했지만, 지나치게 어려진 것 같아서 이젠 걱정이 될 지경이라고 생각했다.


"일단 좀 쉬고 있어. 내가 입구에서 보고 있을게."

"괜찮아. 아, 그리고 이거 좀 알려줄 수 있어?"


시오르가 말한 것은 자신이 보고 있던 책에 적힌 마법에 대한 내용이다. 이에 레아는 그의 옆에 앉아서 고개를 옆으로 젖히며 말했다.


"너도 알다시피 이런 마법은 거리에 대한 개념이 필요해. 네가 가진 상식과 눈에 보이는 목표 지점, 그리고 실제 거리. 세 가지의 일치가 필요한 거야. 그래서 무언가를 발사하는 마법들은 사거리를 두면, 더 가지 않아도 되는 만큼 위력을 아낄 수 있어."

"반대로 모자라면 그대로 흩어지고?"

"그래서 이런 건 마법사들이 위협용으로 쓸 때가 많아. 방어막도 있으니 딱 그것만 부수기도 하고."


그렇게 한참을 마법에 관한 이야기를 하던 두 사람. 지나가던 사람들이 볼 때는 어린 연인들의 연애 행각 같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레아는 시오르에게 거의 기댄 듯이 붙어있었다. 거기에 일절 신경 쓰지 않는 듯한 시오르의 태도는 보는 이로 하여금 여러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두 사람 다 그런 자각을 하지 못하고 책에 적힌 내용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눌 뿐이다. 겨우 이야기를 끝마치자, 레아는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이 정도면 됐어?"

"고마워. 역시 레아야."

"말했지만 너한테 그런 말 들으면 내가 이상한 기분이 든다니까."


그렇게 웃던 레아는 시오르의 어깨에 붙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봤다.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그녀는 부끄러움이 훅 밀려와서 빠르게 그에게서 물러났다.


"아무튼, 좀 쉬고 있어. 입구 쪽 조금 둘러보고 올게."

"고마워. 일단 다른 책 가지고 올게."


레아의 부끄러움을 모른 채, 그는 도서관 계단을 밟고 올라갔다. 책을 빌렸던 서고로 들어간 그는 앞에 앉아있는 사서에게 책을 내밀었다. 외눈 안경을 쓴 젊은 남자는 말 없이 그것을 받아들고 종이를 건넸다. 그가 책을 빌렸을 때, 작성한 명부다.


다음 책을 빌리기 위해서 서고를 나와 아래층으로 내려간 시오르. 그는 지금까지 배운 내용을 바로 이 자리에서 시도해볼 수 없다는 것이 아까웠다. 얼른 가족을 만나고, 마법도 시도해보고 싶었기에 내려오는 발걸음은 터덜터덜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조그마한 쇳조각이 떨어진 것이라 눈치챈 사람은 근처에 있던 시오르 말고는 없었다. 그는 조심스레 그것을 집어 들고 고개를 들었다. 그 방향으로 누군가가 걸어가고 있었다.


"저기요. 이거 떨어트리셨는데요."


아무래도 그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것인지, 로브를 쓴 사람은 조용히 안쪽으로 들어갔다.


"저기요!"


시오르는 쇳조각을 들고 그 사람을 따라갔다. 그가 들고 있던 쇳조각은 예술품의 일부인듯, 화려한 장식이 새겨져 있었다. 마력이 미미하게 흐르는 것을 파악한 그는, 그것이 가공된 것임을 알아차렸다. 이런 물건은 비싼 것이기에 서둘러서 발걸음을 옮겼다.


발소리를 쫓아 달린 그는 도서관 안에 있는 작은 통로를 발견했다. 일전에는 리든의 성으로 쓰였다는 레아의 말처럼 나선형으로 작게 난 계단은 병사들이 출입하는 것처럼 섬칫했다. 계단을 내려가는 로브 자락을 본 시오르는 다시 한번 다급하게 소리쳤다.


"저기, 이거 떨어트리셨어요!"


그 말에, 앞으로 나아가던 발소리가 멈췄다.


"뭐지?"


시오르는 차분한 남성의 목소리에 안심하며 못 쉬었던 숨을 마저 내쉬었다. 시오르는 쇳조각을 건넸다.


"내 실수군. 고마워."

"뭘, 이 정도로요."


남자는 그것을 받아서 로브 안쪽 주머니에 넣었다. 다시 계단 위를 올라가는 시오르를 가만히 보던 남자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손을 들었다.


"저기, 잠깐만 기다려줄래?"

"네?"

"내가 사례를 못 했었지."

"아, 괜찮아요. 그런 거 가지고 뭘 받겠어요."


시오르는 가만히 서 있었지만, 남자는 천천히 계단을 올라왔다. 그림자가 지고 마력등도 없는 어두컴컴한 곳이기에, 시오르는 남자의 얼굴을 아직도 보지 못했다. 그나마 하얀 장갑과 갈색 로브 정도만 분명했다.


"이건 꽤나 귀한 철이야. 설명하자면 좀 긴데...."


잠시 턱을 짚던 남자는 무언가 떠오른 듯이 손가락을 튕겼다.


"간단히 말하면 마력을 끌어당겨서 저장하는 철이야."

"귀하긴 하지만 금처럼 귀한 건 아니잖아요. 만들면 되는 거고."

"물론 그렇지. 하지만 이건 방금까지 마력이 없었거든."


남자의 말에 시오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지금은 가득 차서 잘못 건들면 부서지겠어. 무슨 말인지 아니?"

"제가 들고 오는 사이에 마력을 흡수했다고요?"

"그래. 잘 아는구나. 손 좀 줘보겠니?"


아무런 생각 없이 손을 내민 시오르는 손끝에 무언가 묻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왼손으로 오른 손가락에 묻은 것을 털어봤지만, 회색 빛깔의 무언가는 그의 손에서 벗겨지지 않았다.


"뭐가...묻었네요."

"묻은 거 아니야."


그 순간, 시오르의 오른쪽 손목에 붉은 마법진이 나타났다. 마치 수갑처럼 그의 손을 그 자리에 고정하고 묶어버리자, 일순간 당황한 그는 팔을 뒤로 당겼다. 당연하게도 그것은 그를 놔주지 않았다.


"이건 마력을 빨아들인 흔적이지. 원래대로라면 금방 사라지지만, 워낙 쏟아져 나온 게 많아서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거지."

"저기, 이건 뭐에요? 풀어주세요."

"가만히 있어 봐."


조금씩 날카로워지는 목소리에 시오르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하지만 붉은 마법진은 점차 그의 팔목을 조이기 시작했다.


"아주 흥미로운 일이야. 재미있는 물건을 맡긴 거였군. 그리고 덤으로 이런 녀석까지 만나다니."

"으으...."

"잠깐 따라와 주지 않을래?"

"안돼요.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서...."

"허락을 구하는 게 아니란다."


붉은 마법진은 획 하고 하늘 위로 올라갔다. 그에 따라 시오르의 몸뚱이도 위로 올라갔다. 오른팔을 고정 당한 채로 허공에 매달린 시오르는, 눈앞의 남자에게서 벗어나고자 버둥거렸다.


남자는 손가락들을 꿈틀거렸다. 시오르의 주변으로 푸른 마력이 솟구치며, 그의 온몸을 묶기 시작했다. 시오르도 저항해보려고 마법을 사용했지만, 구조를 알 수 없는 마법이 먼저 그의 전신을 속박했다. 완전히 무력화된 것을 파악한 남자는 시오르를 바닥에 내려뒀다.


쓰러지듯 떨어진 시오르는 팔을 움직여봤다. 붉은 마법진은 사라졌으나, 계단 한 개를 잡기 힘들 정도로 온몸이 무거웠다.


"자, 그럼 가자."

"뭐하는...짓이에요...."

"조용히 있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아니, 내가 직접 조용히 시키는 게 나으려나."


그렇게 중얼거린 남자의 말을 끝으로, 무언가가 시오르의 뒤에서 날아왔다. 평평한 면이 그의 머리를 가격하고 시오르의 비명이 들려왔다. 머리를 부여잡거나 몸을 웅크리고 싶어도 몸이 따라주지 않았기에, 더욱 괴로워 보였다.


"어, 안되네."

"그걸로 사람이 쉽게 기절하는 것도 웃기겠다."


계단 밑에서는 같은 로브를 쓴 다른 여자가 올라왔다. 완전히 어둠으로 잠긴 와중에도, 여성이 올라왔음을 충분히 알 수 있는 목소리였다.


"뭐야, 마중 나왔어?"

"계단에서 꽁시랑거리는 게 시끄러워서 와봤더니. 나 참, 대뜸 일반인 잡아다가 뭐 하는 건지."

"하지만 이 녀석, 마력 양이 상당해. 분명 너도 관심이 갈 거야."

"그래. 알아보라는 건?"


두 사람의 대화 속에서, 시오르는 어떻게든 탈출해보려고 몸을 움직이려 했다. 여전히 몸은 굳어버린 채로 움찔거릴 뿐이다. 혹시 다른 방법이 있나 고민하던 그는, 로브 안쪽에 있는 어떤 그림이 보였다.


갈색 로브 안쪽의 그림. 그것이 선명하게 무엇인가 알아볼 순 없었으나, 두 사람이 입고 있는 옷에는 분명 귀족들의 문양이 있음을 알아차렸다. 이에 그는 두 사람이 귀족임을 알아차렸다.


그렇다고 상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큰 불안감을 느꼈다. 그간 그가 봐온 사람들은 전부 좋은 사람에 속한다. 하지만 이들은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거기에 귀족이라면 평범한 사람 하나는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이 그를 두렵게 했다.


겁먹어봤자 도움이 되는 게 없다. 그렇게 마음을 잡은 그는 손끝에 최대한 마력을 집중했다. 어떤 방식의 마법인지 모르면 부딪쳐봐야 한다.


"그래. 좋은 결과야. 그 녀석들의 장비를 좀 더 조사하면 우리 원하는 대로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연구 자체는 비리드도 하는 것 같던데."

"그야 원소마법 중 철 위주로 다루는 놈들이니까."


손끝에 닿는 마력을 부여잡고, 어떻게든 비틀어보려고 힘쓴다. 밧줄처럼 늘어진 것이 아니고 자루처럼 평평하다. 그렇기에 겨우 맞닿은 마력은 물처럼 흘러 샌다. 시오르는 이것을 벗겨내는 대신, 찢어버리는 것으로 결정했다.


두 귀족이 눈치 못 채는 사이에 손가락의 감각이 돌아왔다. 그간 배운 마력의 흐름과 회복마법을 응용해서 손등과 손바닥의 감각도 어떻게든 되찾아본다. 다행히 발각되지 않았는지, 두 귀족은 여전히 대화하느라 바쁘다.


"반대로 트집 잡는 건?"

"안돼. 아버지도 우리가 이러는 건 몰라. 게다가 한창 바쁜데 주변 소문 관리해야지."

"하기야...."


한숨을 턱 쉬던 여자는 벌벌 떨고 있는 시오르를 힐긋 바라봤다. 배를 움켜쥔 채로 계단 위로 기어가려는 모습이 하찮게 느껴진 것이다.


"그래서 어디에 쓰려고?"

"실험체로 써야겠어. 저 정도 마력을 가진 녀석이면 죽지 않고 오래 버틴다고."

"좋아. 애들 불러올게."


여자가 물러나려고 할 때, 시오르는 손끝에 모은 마력을 칼처럼 날카롭게 다듬었다. 배 아래에 숨긴 오른손으로 겉에 감싸진 마력을 찔러넣는다. 연결이 허술해진 마력이 종잇장처럼 찢어진다. 물가에서 솟구쳐나오듯이 모든 제약이 시오르에게서 벗겨진다.


"뭐야?"


시오르는 황급히 계단 위로 달렸다. 도움을 요청하려면 못해도 들어왔던 골목 입구까진 도망쳐야 한다. 자신보다 몇 배는 강할 마법사를 뿌리치고.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시간조차 없다. 두려움과 다급함 속에서 분명한 것은 위기감이다. 넘쳐 흐를 듯한 잔을 옮기듯, 다른 것은 신경 쓸 수 없다. 하지만 그 본능만큼 이 순간에 필요한 것도 없다. 문을 두들기듯이 다급한 울림이 계단을 채웠다. 흘러넘친 소리는 더 크게 아래에서 울려오고 있었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소리에, 시오르는 눈을 질끈 감고 달렸다.


작가의말

오늘도 보러 와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려요!

그리고 17일은 휴재입니다.
공지에도 적어두겠습니다.
그럼 다다음주에 뵙도록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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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후기 20.05.08 92 0 1쪽
80 마지막 여명#5(完) 20.05.07 77 0 14쪽
79 마지막 여명#4 20.04.30 53 0 20쪽
78 마지막 여명#3 20.03.26 27 0 15쪽
77 마지막 여명#2 20.03.19 65 0 12쪽
76 마지막 여명#1 20.03.12 35 0 16쪽
75 잘못된 시작들#8 20.03.05 49 0 17쪽
74 잘못된 시작들#7 20.02.27 44 0 16쪽
73 잘못된 시작들#6 20.02.13 39 0 16쪽
72 잘못된 시작들#5 20.02.06 43 0 13쪽
71 잘못된 시작들#4 20.01.30 43 0 15쪽
70 잘못된 시작들#3 20.01.23 37 0 14쪽
69 잘못된 시작들#2 20.01.16 42 0 15쪽
68 잘못된 시작들#1 20.01.09 42 0 15쪽
67 갈라지는 비극#3 19.12.01 32 0 12쪽
66 갈라지는 비극#2 19.11.28 30 0 16쪽
65 갈라지는 비극#1 19.11.21 31 0 13쪽
64 정말로 잃어버린 것#9 19.11.14 43 0 19쪽
63 정말로 잃어버린 것#8 19.11.07 55 0 14쪽
62 정말로 잃어버린 것#7 19.10.24 38 0 14쪽
61 정말로 잃어버린 것#6 19.10.17 36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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