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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커 서재

내 일상


[내 일상] 오스트랄로피테쿠스킹 36화 후기

  이미 어제 써놨기 때문에 이번엔 업로드가 빨랐습니다.

  음... 오늘은 후기를 쓰는 데 시간을 좀 할애하도록 하겠습니다. 후기가 아마 상당히 길어질 듯합니다. 본문보다 더 길어질 수 있습니다. 두서없이 생각나는 대로 쭉쭉 쓸 거라 사족도 많을 겁니다. 

  말 그대로 작가 후기입니다. 대부분 개인적인 이야기니... 관심 없는 분들은 마우스 휠로 내리기보다 오른쪽 스크롤 바를 클릭하고 쭉 내려주십시오.


  ***

  문피아에 한 화씩 글을 올릴 때마다 대부분의 작가분들처럼 저 역시 두 가지 재미를 얻습니다. 하나는 새 댓글에 답댓글 다는 재미이고, 또 다른 하나는 선작과 추천 같은 지표가 조금씩이나마 늘어나는 것을 보는 재미입니다. 전자는 소통하는 즐거움이고, 후자는 성장을 지켜보는 보람입니다.

  (조회수는 마음을 비웠습니다. 골든 베스트였나 오늘의 베스트였나 아무튼, 그 어느 베스트 상위에 지속적으로 노출돼 클릭 시 최신 화로 넘어가는 대열에 끼지 못하면, 백이면 백, 조회수는 계속 줄어들 수밖에 없더군요.)

  

  제가 문피아에 들르는 시간은 보통 오전4~6시, 오후6~8시, 오후 10시 근처입니다. 일부러 습관을 들였습니다. 아니면 수시로 들락날락하면서 댓글 언제 달리나, 추천 언제 오르나 하면서 뭐랄까... 혼자서 피폐해지더군요. 작가분들이면 공감할 겁니다.

  아무튼, 어젯밤에도 10시에 문피아에 들어왔는데... 허... 선작이 8 줄었더군요. 상당한 쇼크였습니다. ‘식인’이라는 민감한 소재를 다뤄서 대량 선삭이 발생했구나, 싶었습니다. 실제로도 그렇겠죠? 이유라면 식인밖에 떠오르지 않습니다.

  침대에 누워서 베갯잇을 눈물로 적시며 울었습니다. 네, 농담이고요. 조금 서글픈 마음으로 잠을 청했습니다. 일어나 보니 선작이 3 올랐는데, 위로는 될망정 기분이 썩 개운하지는 않더군요. 낮까지 의욕도 별로 없고...

  하지만 담담히 말해서 이것은 저라는 개인의 감정일 뿐입니다. 이성으로는 십분 이해합니다.

  저부터도 호불호가 강합니다. 예를 들어 저는 TV 프로를 안 봅니다. 무한도전, 1박2일, 슈퍼맨이 돌아왔다 같은 예능들... 봐도 재미있는 줄을 모르겠더군요. 허준 이후로는 사극도 안 보고 드라마도 안 봅니다. 하나같이 재미가 없습니다.

  다큐는 즐겨 봅니다. 배우는 보람이라고 할까요? 뭔가 보고 나면 남는 게 있는 걸 좋아합니다. 몇 화인지 기억은 안 나도 앞서 옥수수 오메가3, 6 떠들던 것도 KBS? SBS? 아무튼, ‘옥수수의 습격’이라는 2부작 다큐를 본 것을 기억해뒀다가 나중에 좀 더 알아보고 정리해서 본문에 올렸던 겁니다.

  그래도 정글의 법칙은 그나마 좀 재밌게 봤네요. 하지만 분량 늘리기가 짜증스러워 초반에 하차했습니다. 실제로 볼 만한 내용은 한 10분 정도인 걸, 질질 끌고 사족 달아 50분으로 어찌어찌 늘리는 게 눈에 보이니... PD의 고충도 이해는 가는 바이나, 저는 그런 것이 너무 싫습니다. 시간이 아까워요.

  유일하게 왕좌의 게임만 보는 내내 감탄하며 봅니다. 발상, 전개, 인물, 연출, 대사, 반전...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더군요. 소설은 아직 못 봤는데, 드라마만으로도 언젠가 저런 명작을 쓰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곤 합니다.

  잡설이 길었는데 이 정도면 호불호가 상당히 강하다는 사실은 얼추 증명이 됐을 겁니다. 하지만 호불호가 이처럼 명확한 사람이라 남들의 호불호도 존중할 줄 압니다.

  식인이 불쾌해 하차한다... 이해합니다.

  독자들도 저마다 연령이 다르고, 성별이 다르고, 성장 배경이 다르고, (유전자 배열도 다르고,) 결국 어떤 가치를 수용할 것인지 말 것인지, 수용한다면 어디까지 수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기준점이 저마다 다르잖습니까.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원래 그렇습니다. 그 다양성이 인류에게도 유익하고요.

  다만 이 작품을 계속 읽어도 되나? 뭔가 좀 찝찝한데, 그래도 일단 두고는 볼까? 하는 독자분도 분명 계실 거 같고 해서, 사설을 좀 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품의 역사(?)와 취지, 그리고 방향에 대해서 말이죠.


  ***

  ‘오스트랄로피테쿠스킹’은 처음 기획할 당시 극도로 가벼운 유머물이었습니다. 애당초 회귀물, 회귀물 식상하다는 말이 많은데, 선사 시대로 회귀하면 조금 색다르겠다, 흠... 그럼 언제가 좋을까... 아, 그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들이 살던 시기가 좋겠군! 이름부터 독특하고, 일단 이름이 길어! 분량 뽑기는 일도 아니겠군! 그러면서 아무 계획 없이 무작정 썼습니다.

  하지만 지극히 당연하게도, 소재가 금세 동났습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 대해 아는 내용이 전혀 없으니까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그거 그냥 원시인 아닌가? 그리고 원시인이면 대충 짐승 가죽 옷을 입고 동굴에서 살면서 돌도끼 들고 우가우가! 몰려다니며 사냥이나 하다가 맹수 만나면 도망다니고 뭐 그런 거 아닌가? 싶었거든요. 

  참고 자료라고는 영화 고인돌 가족’하고, 베르나르의 ‘아버지들의 아버지’라는 소설 한 편뿐이었습니다. 그 둘마저도 기억이 가물가물했습니다.

  하하... 정말 쓸 게 없었죠. 정확히 말하면, 뼈대는 만들어 뒀는데 붙일 살이 없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3화인가, 4화인가까지 쓰다가 접고 습작 목록으로 옮겨두었습니다.

  그러다 비교적 근래에 동네 도서관의 신간 코너에서 ‘사람의 아버지’라는 제목을 우연히 보았습니다. 베르나르의 소설이 떠올라 추억 삼아 한번 뽑아 봤다가 흥미가 동해 아예 빌려 왔습니다. 소설은 아니고, 고인류와 진화론을 다룬 교양서였는데, 내용도 어렵지 않고 재밌더군요.

  한동안 고인류 관련한 책들만 골라 봤습니다. 여섯 권 정도 본 거 같은데 당장은 ‘인간의 본성들’, ‘인간 되기’ 정도가 떠오릅니다. 이쪽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는 ‘사람의 아버지’와 ‘인간 되기’를 추천합니다. ‘인간의 본성들’은 내용이 상당히 어렵습니다.

  아무튼, 이 책들을 읽고 나서는 그동안 고인류를 너무 쉽게 생각했구나, 하는 반성부터 하였고, 이제는 고인류 관련한 소설을 쓸 수 있겠다는 자신도 어느 정도 생겼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학문적 내용을 토대로 쉽고도 유익한 회귀물을 써보겠다! 하고 달려든 글이 지금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킹입니다. 

  처음에는 기원전 230만 년을 시간 배경으로 잡고 글을 썼습니다. 하지만 한계에 봉착했죠.

  230만 년 전이 오스트랄로피테쿠스들이 번성하던 시기임은 맞으나, 위기적 요소가 너무 없고, 그래서 이야기가 따분해질 가능성이 농후했습니다. 

  게다가 한 작가분의 조언으로 한국인 고등학생 은아라는 히로인을 즉흥적으로 추가했다가 스토리가 조금 꼬이는 바람에, 결국 리메이크를 한번 했습니다.

  아, 물론 그때 조언해주신 작가분에게 리메이크의 책임을 전가할 마음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감사하고 있어요. 원래 히로인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보이세이 ‘태사녀’였거든요. 

  그대로 밀고 갔다면 선작이 한 50은 됐을까요? 어쩌면 식인보다도 더 독자분들의 심리적 저항이 강했을지도 모릅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로맨스라니...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하는 걸 중시하는 독자분들이 보겠습니까?

  아무튼, 여기까지가 ‘오킹’의 역사가 되겠고... 


  ***

  이제는 작품의 취지와 방향을 말하겠습니다.

  그런데 작품의 취지는 쓰려고 보니 위에 이미 말했네요. ‘학문적 내용을 토대로 쉽고도 유익한 회귀물을 써보겠다!’ 입니다.

  어느 정도 눈치챈 독자분들도 계시겠지만, 중간중간 잡설처럼 나오는 고인류학 지식들은, 이 작품을 감상하는 데 도움이 되는 내용들이면서도, 솔직해 말해 전부 생략해도 작품 감상에 하등 지장 없는 내용들이기도 합니다.

  일례로 호모 에르가스터, 까짓것 모르면 어떻습니까. 그냥 키가 멀대 같고 잘 달리는  원시인 놈들이 삼손이를 방심시키고 은아를 잡아갔구나! 게다가 식인종이네! 하면 사실 끝입니다. 바로 이전 2화 분량을 완벽하게 이해하신 겁니다. 

  하지만 전 제 글이 누군가에게 유익하기를 소망합니다. 진한 여운이나 감동, 호쾌함 혹은 통쾌함, 이런 것들을 독자들에게 제공하기에는 이런저런 경험이 부족하고, 감성도  솜씨도 부족함을 스스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남들이 잘 모르는 걸 건드려 쉽게 풀어 제공하고, 아, 그 글 제법 독특하고 유익한 부분도 있었지, 라는 기억 정도는 독자들에게 남기고 싶은 마음입니다.

  따라서 중요하다 싶은 내용들을 이야기 진행과 결부해 앞으로도 틈틈이 제공할 계획이며, 식인처럼 불쾌할 수 있는 요소도 묘사를 간략화할지언정 그 자체를 작품에서 생략할 생각은 없습니다.

  일단 그런 내용을 다루지 않고는 이야기를 진행할 수 없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상세한 내용은 여기에 쓸 수 없지만, 어떤 반인륜적 행위들이 주인공들이 자율적인 도덕 공동체를 형성하게끔 하는 강력한 모티브로 작용하기도 하고요.

  애당초 현대인의 가치 기준으로 원시인들을 도덕적으로 재단하는 것부터가 무리수입니다. 음... 한번 식인부터 좀 이야기해 볼까요.

  식인의 이유는 크게 2가지입니다. 

  첫째는 생존, 둘째는 문화. 

  첫째, 생존으로써 식인은 말 그대로 먹을 게 없어서 사람을 잡아먹는 겁니다. 직관적으로 이해가 가능한 부분이니 부연할 것도 없겠죠.

  둘째, 문화로써 식인은 말 그대로 문화이므로, 훨씬 더 복잡하지만 주로 종교적 이유입니다. 강한 적을 죽이고 그 적의 고기를 먹음으로써 그 적의 강함을 흡수할 수 있다는 믿음에 의한 식인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 죽고 나면 그의 고기를 먹음으로써 그의 영혼을 품을 수 있다는 믿음에 의한 식인도 있고 그렇습니다. 그 문화가 개인에 국한된 것이든, 집단까지 확장된 것이든, 후천적 문화의 개입으로 식인이 발생한다는 데는 차이가 없습니다.

  이번에는 식인을 꺼리는 이유도 보겠습니다. 이것도 크게 2가지입니다.

  첫째는 본능, 둘째는 인간의 존엄성(크게 보면 도덕, 더 크게 보면 문화)입니다.

  동물(특히 고등 포유 동물)은 대부분 동족을 잡아먹지 않습니다. 본능적으로 꺼려합니다. 동족만, 혹은 동족 위주로 잡아먹도록 유전적으로 프로그래밍된 동물이 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 종은 멸종을 피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반대로 되어 있습니다. 동족을 잡아먹지 말라고. 

  그래서 사자는 사자를 잡아먹지 않고, 침팬지는 침팬지를 잡아먹지 않습니다. 보통은 그렇습니다. 

  하지만 예외도 존재하죠. 절대적 식량 부족 같은 한계적 상황에 자연적으로든 인위적으로든 직면하게 됐다든지, 복수심의 발로로 동족을 죽이고 뜯어먹는다든지...

  동물들은 무엇을 생각하든 그 이상으로 복잡하고 풍부한 감정을 갖고 있습니다. 상당수가 머리도 좋고요. 대부분이 훌륭한 사회성도 갖고 있습니다.

  대신 다른 종족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대하지 않습니다. 며칠 굶은 어른 침팬지는 같은 종족인 새끼 침팬지를 잡아먹는 데는 여전히 거부 반응을 보이고 인내심을 갖지만, 다른 새끼 사바나 원숭이를 잡아먹는 데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습니다.

  고인류의 식인도 이런 관점으로 이해하면 좋습니다. 어른이 아이를 잡아먹었다기보다는, 장성한 침팬지가 새끼 사바나 원숭이를 잡아먹었다고 봐야 더 정확합니다. 종족이 다른 겁니다.

  추가하면, 생물학적으로 현대인은 다 같은 종족입니다. 백인, 흑인, 황인, 홍인 할 것 없이 전부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입니다. 피부색은 멜라닌 세포 유전자로 결정되는 것이고, 이런 피부색으로 인간을 분류하는 건 오로지 문화적 의미만 있을 뿐입니다.

  그럼 인간이 식인을 꺼리는 이유, 2번째, 인간의 존엄성...

  의무론이니 공리주의니 사회 계약이니 그런 걸 여기서 하나하나 따지고 싶지는 않습니다. 식인하면 안 되는 이유는 사회의 존속이 위태롭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상호불신으로 인해 사회가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증대되고... 사회 방위론 입장으로 접근해도 되고...

  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식인을 금지해야 하는 근거로 인간의 존엄성을 꼽을 테니, 인간의 존엄성을 굳이 뽑았습니다.

  자... 다 차치하고 분명한 사실 하나는, 인간의 존엄성은 어디까지나 도덕의 영역이라는 겁니다. 

  만약 인간의 존엄성이 인간 세계를 넘어, 자연, 아니 우주 만물의 영역에서도 통용되는 절대적 가치라고 주장하는 분이 계신다면, 그분께 일주일 굶은 사자가 있는 우리 속으로 들어가 본인의 주장을 증명할 기회를 권하고 싶습니다.

  정말 인간의 존엄성이 절대적이라면 사자는 생각할 겁니다. 아, 눈부시도록 존엄한 인간이 내 우리로 들어왔구먼, 나는 절대 그를 잡아먹을 수 없어. 한 일주일 정도 더 기다렸다가 사육사가 주는 닭고기나 먹어야지. 네, 말도 안 됩니다.

  인간 존엄성은 인간들의 공동체 안에서 존재하는 도덕적 개념이고 가치입니다. 즉, 인간의 존엄성은, 인간은 존엄하다.’라는 사실, 즉 자연의 진리가 아니라, ‘인간은 존엄해야만 한다.’라는 당위, 즉 도덕의 진리와 연결돼 있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은 지성이 살아 있는 사회에 국한돼 존중받습니다. IS가 반인륜적 행위를 일삼는 건 그들에게 보편적 인류의 가치를 포함한 도덕적 지성이 부족하고, 그 지성에 대한 논의와 성찰, 반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곡된 종교적 광기와 중동의 복잡한 정 세가그런 지성이 발현될 기회를 박탈하고 있죠.

  고인류에게는 도덕이 없었습니다. 인간의 존엄성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식인은 물론이고 외적으로 인간과 비슷한 동물, 예컨대 원숭이나 침팬지를 잡아먹게 되면, 인간 존엄성에 대한 간접적인 훼손이 일어날 우려가 있고, 식인에 대한 심리적 허들이 낮아질 우려도 있으니, 원숭이와 유인원을 먹는 것 또한 금지해야 한다. 이런 류의 논리도 이들에게는 전혀 통용이 안 됩니다.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이해가 없었던 고인류는 배고프니까 ‘사람과’도 얼마든지 잡아먹었으며, 동족만이 잡아먹을 대상에서 제일 나중으로 미루어질 뿐입니다. 이것이 감히 진실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상당 부분 진실에 가깝습니다.

  음... 식인에 대한 독자의 불쾌감이 본능에서 비롯됐을 수도 있고, 도덕적 이성 혹은 감정에서 비롯됐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불쾌감 때문에 작품에서 하차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노릇입니다. 그것은 독자의 정당한 권리죠.

  다만 미처 이런 쪽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분들도 계셨을 수 있으니 생각거리 삼아 주절주절 떠들어 본 것이고... 

  뭐, 솔직한 심정은 그렇습니다. 독자분들이 소재와 관련해 좀 더 너그러워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불쾌할 요소에 대한 묘사 정도는 스스로 조절하고 있으니까요. 식인을 소재로 다룬 고어 영화와 이 작품에서 나오는 식인은, 묘사로 보든 내용으로 보든 많은 부분에서 다르다고 봅니다.

  그리고 뭐, 현대의 도덕적 잣대를 이 작품에 들이밀면, 전개와 관련해 제약되는 부분이 식인 말고도 많습니다.

  예컨대 임신 가능한 여자를 다른 부족에서 납치해 오는 보쌈 같은 경우는 그 원시적 유래가 여아 살해이고, 남녀 차별은 몸집의 차이에서 유래했습니다. 난교는 일상이었습니다. 일부일처제의 역사는 짧다는 말조차 미안할 정도로 짧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방금 위에 언급한 소재들 모두 작중에 나올 예정입니다.

  유래가 비도덕적이더라도, 혹은 비도덕적으로 여겨지더라도, 현대에 들어서 그것이 도덕적으로 바로 잡혔거나, 또는 바로 잡힐 수 있도록 자유로이 논의되고 있다면, 우리는 지성 있는 현대 문명 공동체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면 될 뿐입니다. 그리고 도덕적으로 옳지 못했던 과거로 돌아가지 않도록 경각심을 가지면 될 뿐입니다. 비도덕적 유래를 증오하거나 숨기는 데 급급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원래 없던 악습을 굳이 상상으로 만들거나, 비교적 짧은 역사를 갖고 현재도 지속 중인 악습(ex. 여성 할례)을 굳이 원시 시대로 옮겨서 다루며, 독자들을 언짢게 하지 않는다면, 저는 작가로서 도의적인 책임은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

  그리고 작품의 방향은... 정복과 지배, 이쪽과 거리가 멉니다. 

  정복... 매우 쉽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밸런스 바로 무너집니다. 작품의 상황을 본따서, 머리 좋은 현대인 2명이 170만 년 전으로 날아가 식량 자원이 풍부한 숲을 확보하고 40명 정도 되는 원시인 집단의 지배자가 됐다고 가정해 볼게요. 주변에는 대부분 10명 단위의 작은 씨족 집단, 많으면 한 50~100명 가까운 씨족 연합이 존재하고요.

  최우선으로 공포정치를 실시합니다. 되도 않은 이유를 갖다 붙여서라도 몇 명을 본보기로 엄벌을 가하고 공포를 각인해 지배력을 강화합니다.

  그리고 노예제를 도입합니다. 중간 관리자(노예 감독관 등)를 만들어 특혜를 주는 것도 좋은 발상입니다. 

  다음으로는 활을 개발합니다. 투창도 좋습니다. 장거리 무기면 됩니다. 주변에 널린 것이 나무입니다. 동물을 사냥해 뼈를 많이 확보하는 것도 좋습니다. 뼈로 만든 화살과 창도 대단히 위협적이죠. 아무튼, 기술적인 부분은 뒤에서 지원하더라도 결국은 노예들을 쥐어짜서 무기들을 만듭니다.

  그리고는 궁병이나 투창병을 양성하면 됩니다. 단, 일반 노동하는 노예들과 구분해 많은 혜택을 제공해야 합니다. 더 많은 식량을 분배해도 좋고, 자유민과 노예라는 신분제를 만들어도 좋습니다. 반란의 빌미를 주지만 않으면 됩니다.

  그리고 그들이 어느 정도 장거리 무기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게 되면, 주변 원시인 씨족들을 정복하고 다니면서 노예들을 늘려가면 끝입니다. 줄루 왕국은 아무것도 아니죠. 마음만 먹으면 아프리카 전역을 지배할 수도 있습니다. 인구 밀도가 워낙 낮아 광활한 영토의 의미가 별로 없을 뿐이죠. 

  물론 인위적으로 인구를 늘릴 수도 있습니다. 고상하게 표현하면 노예들의 출산 장려 정책 정도가 되겠죠.


  그러나 이런 식의 단순한 정복과 지배는 이 작품이 지향하는 바가 아닙니다. ‘오킹’의 지향점은 다방면으로 뻗어가는 진보입니다. 삼손이와 은아는 군사, 정치,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인류 역사상 존재하지 않았던 조화로운 공동체를 만들어내고 유지하려고 협력합니다.

  그것이 가능할까요? 애당초 작가의 역량이 따라갑니까? 확답은 어렵습니다. 써 봐야 알겠죠. 공부도 더 많이 해야 하고요. 구상 단계에서는 가능해 보입니다.

  그리고 물론 전쟁도 일어납니다. 전쟁은 필연적이죠. 주인공들이 먼저 전쟁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하지만 탐욕이나 광기를 위한 전쟁은 아닐 겁니다. 더 말하면 스포일러라 자제하겠습니다.


  ***

  따라서 앞서 말한 작품의 취지와 방향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저로서는 안타깝지만, 그분은 여기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킹을 접는 편이 현명합니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소중하니까요. 게다가 독자들이 오킹을 보고 유익한 즐거움보다 주로 불쾌감을 얻는다면... 저는 글을 더는 쓰고 싶지 않습니다.

  주저리주저리 떠들었는데... 엄청 길군요. 그럼 좋은 밤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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