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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님의 서재입니다.

게이트 일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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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작품등록일 :
2016.09.12 19:47
최근연재일 :
2016.09.12 19:5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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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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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9.12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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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1. 게이트, 세상에 태어나다

DUMMY

“합격 축하한다. 역시 우리 경석이야.”


경석은 올해 열여덟 살로,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연이어 치른 대입 수학능력 시험에서 대한민국 최고의 대학인 한국대학교에 합격하였다. 오늘은 대입합격자 발표가 있는 날이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합격자 조회를 하였는데 1차에 바로 합격을 한 것이다.


“고마워요.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저를 이렇게 잘 키워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게 무슨 말이니? 우리가 한 것이 뭐가 있다고. 다 네가 열심히 한 결과이지.”

“아니에요. 모든 게 어머니, 아버지 덕분이에요.”


경석은 4살 때 교통사고로 부모를 모두 여의고, 미혼인 이모에게서 길러지다가 그 이모마저 2년 만에 병으로 돌아가시는 바람에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었었다. 그러나 이모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천사보육원에 의탁하여 천사보육원에서 여태껏 지내왔다.

지금 아버지, 어머니라고 부른 분들은 보육원의 원장님과 사모님이셨다.

경석은 어릴 때부터 머리가 좋아서 공부를 잘했는데, 중학교 진학 후 같은 학년에서는 더 배울 것이 없게 되자 졸업 후에 고교진학을 포기하고 1년을 준비하여 대입 검정고시를 본 후에 바로 수능시험을 치르게 되었다.

그 결과를 지금 확인하고 합격의 기쁨을 누리는 중이었다.


“그런 말은 해서 뭐하니. 오늘같이 즐거운 날 즐거운 말만 해도 모자랄 텐데.”


기쁜 날인데 자칫 슬픈 분위기로 빠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어머니인 현정은 여사가 경석의 말을 끊으며 말하였다.


“그래, 오늘 같은 날은 즐거운 말만 해도 모자라지.”


아버지인 김재현 원장이 현정은 여사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말하자 현정은 여사가 기다렸다는 듯이 화제를 돌렸다.


“자, 오늘 같은 날은 뭔가 특별한 맛있는 걸 먹어야지. 경석아 뭘 먹고 싶니? 항상 빠듯한 살림이라 맛있는 것도 변변하게 먹은 적 없었는데 우리도 한번 멋진데 가서 먹어보자.”

“저는 괜찮아요, 어머니. 차라리 맛있는 것을 사서 집에서 동생들하고 함께 먹어요.”

“오늘은 동생들 생각하지 말고 우리끼리 한번 즐겨보자. 매일 동생들만 생각하느라고 항상 자신은 뒷전으로 여기잖아.”

“저는 정말 괜찮아요, 어머니.”

“아니다. 더구나 이제 얼마 안 있으면 헤어져서 살아야 할 텐데, 오늘은 우리끼리 오붓하게 먹어보자.”


대학에 진학하게 된 신경석은 더는 천사보육원에서 함께 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어쩌면 오늘이 함께 외식하는 것으로는 마지막 식사일지도 몰랐다. 천사보육원의 규칙상 대학생이 되거나 성인이 되면 독립을 하여야만 했다.


“정 그러시면 알았어요, 어머니.”


결국, 현정은 여사의 주장으로 근처 패밀리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하기로 하였다.


****************


어느덧 세월이 흘러서 스물일곱 살의 나이가 되었을 때, 경석은 한국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뛰어난 실력으로 인해 모교인 한국대학교에서 전임강사로 강단에 서게 되었다.

아무리 한국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지만 2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한국대학교의 전임강사가 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는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워낙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로 성실하기까지 한 그가 네이처 등 유명 외국잡지에 수십 편의 논문을 올리고, 각종 학술대회에서 논문상을 여러 차례 획득하게 되자 국내뿐 아니라 외국의 유명대학에서도 모셔가려고 경쟁을 하였기에 경석에게 있어서 한국대학교의 전임강사 자리가 그리 얻기 어려운 자리는 아니었다.

경석은 한편으로는 외국의 유명한 대학에서 연구하며 금전적으로도 더 나은 대우를 받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부모님이 묻혀 있는 대한민국을 떠나는 것이 싫었고, 자기가 태어나고 자라온 이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도 나름 괜찮겠다는 생각에 한국대학교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오늘은 그동안 준비하였던 학습 자료를 갖고 처음으로 대학 강단에서 가르치는 날이었다. 그동안 아르바이트로 아이들을 가르쳐 보기는 하였지만, 정식으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집을 나섰고, 2호선 전철을 타고 한국대입구역에서 내렸다. 말이 한국대입구역이지 한국대 정문까지는 무려 2km 정도 떨어져 있었기에 걸어서 30분 정도는 가야 했다. 셔틀버스가 있었지만 설레는 마음에 워낙 일찍 왔기에 상쾌한 아침 공기를 맞으며 그냥 걷기로 하였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한국대로 가는 고개를 넘어서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데 뒤쪽에서 자동차의 경적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와서 고개를 돌려보니 트럭 한 대가 자기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순간 경석은 큰일이다 싶어서 재빨리 옆쪽으로 피하려 했으나 달려드는 트럭을 피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경석은 차에 부딪히고 나서 20m 정도 날아간 후에 다시 전봇대에 부딪힌 다음 바닥에 떨어졌다.

누운 상태에서 사방을 둘러보니 사람들이 놀란 얼굴로 자기 쪽으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심하게 부닥쳤는데도 불구하고 아픈 곳은 하나도 없었다.

일어나서 주변을 둘러보니 이미 많은 사람이 다가와서 자신을 둘러싸고 바라보며 웅성웅성 대기 시작하였다.


“저런 젊은 사람인데 어떻게 하나?”

“즉사했나 보네...... 쯧쯧!”

“에구 부모님이 아시면 쓰러지시겠네.”


하나같이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소리이었기에 경석은 자기 말고 또 누가 함께 사고를 당하였나 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데, 바로 자기 옆에 누군가 엎어져서 머리에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었다. 옷을 보니 자기 옷이랑 똑같았다.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어떤 생각과 함께 두려운 마음으로 옆으로 돌아가서 얼굴을 보니......


“헉! 내 얼굴이다.”


경석은 순간 자기 죽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기가 죽었다는 것을 자각하는 그 순간 갑자기 주위가 환해지며 자신의 몸이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면서 머리가 어지러웠다.

어지러움이 끝나고 나서 보니 경석이 있는 곳은 생전 처음 보는 곳이었다.

상당히 밝은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눈이 부시지는 않았으며, 어디에도 태양이나 전구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세상에서 이렇게 맑고 깨끗한 광경은 처음 보았다. 한 점의 먼지나 안개 따위의 것이 없이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이곳이 어디지? 혹시 하늘나라인가?’


죽음을 받아들이고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누가 옆에서 말을 건네었다.


“어서 오세요. 경석님.”


방금까지만 해도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터라 깜짝 놀라 옆을 돌아보니 눈이 부시도록 흰옷을 입은 사람이 있었다.


“기분이 이상하겠지만 경석님은 지금 죽어서 염라국에 오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죽게 되어 있고, 안타깝게도 지금이 바로 경석님이 죽을 때였습니다.”


경석은 고아로 자랐지만, 너무도 잘 풀렸던 자신의 과거를 짧게 돌아보며,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말을 했다.


“죽음 뒤에는 이렇게 되는 거군요. 이제 이다음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자신이 죽은 것을 알고서도 덤덤하였다.

덤덤한 경석의 말을 듣고 흰옷의 사내가 약간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말하였다.


“경석님은 다른 분들하고는 죽음을 대하는 모습이 다르군요. 어떻든 경석님은 이제 지난 삶에 대해서 심판을 받게 되시고, 심판의 결과에 따라서 천국 아니면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천국과 지옥으로 가는 것은 단순하게 세상에 있을 때 죄를 지은 것만 가지고 나뉘지는 않습니다.”

“죽음 뒤에 심판이 있다면 죄를 지은 자가 당연히 벌을 받을 것으로 생각하였는데 꼭 그렇지는 않은가 보군요.”

“물론 그것이 완전히 무시 되지는 않습니다. 단지 그것만 가지고 심판을 받지 않을 뿐입니다. 삶 전체를 돌아보고 정하게 되는데, 가장 간단하게 생각하면 받은 재능에 맞춰서 잘 사셨다면 천국에 가는 것이고, 받은 재능을 살리지 못하고 낭비하였다면 지옥에 가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판단은 위대하신 신께서 직접 하십니다.”

“그럼 제가 천국으로 갈지 지옥으로 갈지는 아직은 모르는 거군요. 그런데 갑자기 궁금해지는데요, 하루에도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죽을 텐데 위대하신 신께서는 어떻게 그 많은 사람을 판단하시나요?”

“후후. 위대하신 신께서는 가능하시답니다. 여기 계시기도 하지만 다른 곳에 계시기도 하고, 이제 계시기도 하지만 과거에도 계시고 미래에도 계시 답니다. 그렇지만 그분은 한 분이시기 때문에 판단이 항상 공정하답니다.”


경석은 잘 이해가 가지는 않았지만 역시 위대하신 신이니까 가능한 얘기라고 단순하게 생각하였다.


“네 그렇군요. 그럼 얼마나 기다리나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위대하신 신께서는 언제나, 어느 곳에서나 계시기 때문에 기다리실 필요는 없습니다. 곧 심판이 내려질 겁니다.”

“아! 네.”


경석은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될까 생각해 보았다. 과연 천국일까, 지옥일까 이왕이면 천국에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 천사가 말하였다.


“이상하네? 왜 심판이 안 내려지지? 이렇게 오래 걸린 적이 없었는데?”


그러면서 위를 보며 무언가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얼굴이 붉어지며 큰소리로 외쳤다.


“앗! 이럴 수가!”


경석은 위대하신 신의 심판이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천사의 놀라는 소리가 들리자 천사를 바라보며 물었다.


“왜요? 뭐가 잘못되었나요?”

“아! 큰일 났습니다. 그만 제 실수로 경석님이 죽게 된 것 같습니다.”

“네? 무슨 말씀이시죠?”

“오늘 죽을 사람이 경석님이 아니라 다른 경석님이었습니다. 아, 이를 어쩌나...... 어째 결정이 다른 때보다 늦어진다고 생각했었는데......”

“네?”


경석은 이게 무슨 날벼락 같은 소리인가 하였다.


‘죽을 사람이 내가 아니었다니? 아니 염라국에서 하는 일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는 것인가?’

“아! 제가 이 일을 한 지도 1000년이 넘었는데, 이런 일은 처음입니다......”


마치 경석의 마음을 읽은 것처럼 대답해 주었다.


“그나저나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하나...... 이미 육신은 없어져 버려서 돌려보내 드릴 수도 없는데......”


당황하는 천사를 보고 경석은 실로 황당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늘 아침 대학교수로 첫 강의를 하기 위해 설레는 마음으로 출근하는 기쁜 날이었는데, 도대체 그럼 어떻게 된다는 말인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천사에게 물었다.


“그럼 저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아까 혼자 하시는 말씀을 보니 이미 내 육신이 없어져 버렸다고 하신 것 같은데요.”


생각 외로 담담하게 대하는 경석을 바라보며 천사가 말하였다.


“하아, 그래서 문제입니다. 아직 육신이 남아 있으면 그냥 돌려보내 드리면 되는데 육신이 모두 회손 된 상태라서 돌려보내 드린다고 해도 도저히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천사는 난감해하다가 뭔가 결심을 한 듯 말을 이었다.


“경석님 죄송하지만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네, 그러세요.”


경석의 대답과 함께 천사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홀로 남은 경석은 자신에게 도대체 어떤 일이 생긴 것인가 생각했다.

고민하고 있는 경석에게로 잠시 후에 천사가 굳은 얼굴로 돌아왔다.


“경석님 정말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시점에서 저희가 경석님께 해 드릴 수 있는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아, 그것들이 무엇인가요?”


어차피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고 한숨을 내뱉으며 경석이 물었다.


“한 가지는 원래 죽기로 되어 있었던 다른 경석님에게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경석님의 나이가 67세입니다.”


67세라는 말에 어이가 없어진 경석이 황당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그건 말이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다른 한 가지는요?”

“다른 한 가지는 새 생명, 즉 신생아로 다시 태어나서 삶을 새로 사는 것입니다.”

“차라리 그게 낫겠군요.”

“그런데 신생아로 태어날 경우에는 지구가 아니라 다른 차원의 세상에 있는 생명으로 태어나게 됩니다. 아쉽게도 지구에는 새 생명을 위한 폴이 전혀 없습니다. 다른 차원이라 해도 물론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은 맞습니다만.”

“다른 차원이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그런 게 실제 존재하는 것이었나요?”

“네, 실제 존재하고 있습니다. 일부 뛰어난 지각을 가진 자들이 상상 속에서 만든 것으로 알고들 있지만, 세상에는 여러 차원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소설 속에서나 존재하는 줄 알았던 다른 차원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말에 강한 호기심을 느끼는 경석이었다.


“그럼, 신생아로 태어나는 것으로 선택하겠습니다.”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면 굳이 지구가 아니어도 될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바로 되나요?”

“네, 경석님이 결정하신 이상 미룰 이유가 없습니다. 그럼 바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대답한 경석이 다급하게 다시 말하였다.


“아, 잠시만요.”


손을 들고 무언가를 행하려던 천사가 손을 내리고 대답하였다.


“왜 그러시나요?”

“노파심에서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무엇인가요?”

“혹시 신생아로 태어난다고 해서 설마 제 기억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겠지요?”

“아니요. 당연히 지금의 기억은 모두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완전히 새로운 생명으로 사시게 됩니다.”

“네? 그건 말도 안 됩니다.”

“무슨 말씀이신가요?”

“아니 만일 내 기억이 다 지워지고 나면 어떻게 그게 내가 되지요? 그건 내가 아니지 않나요? 내가 나일 수 있는 것은 나의 과거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요? 내가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이미 내가 아닌 거지요.”


경석의 말을 들은 천사가 부드러운 말로 경석을 설득하였다.


“새 생명으로 태어나게 되면 엄청난 고통이 있는 탄생의 문을 통과하게 됩니다. 그 고통을 견디기 위해 모든 기억은 자연적으로 다 지워지게 되며, 아무것도 인지할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탄생의 문을 통과하는 고통은 인간으로서는 견디기 어려운 고통입니다. 더군다나 지구라는 차원의 기억을 갖고 다른 차원에서 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천사의 설명을 들었지만, 경석은 인정할 수 없었다.


“음, 만일 그렇다면 전 그냥 여기서 이렇게 내 기억을 갖고 사는 게 낫겠네요. 그래야 저로 살 수 있는 것이니까요.”

“죄송하지만 여기서는 지낼 수가 없습니다. 보시다시피 이곳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죽은 자들이 심판을 받기 위해 잠시 머무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 공간은 아주 특별한 공간입니다. 지금도 경석님과 저 외에는 아무도 없지 않습니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저의 기억을 지워버리고는 다시 태어나지 않겠습니다. 천사님의 실수로 이렇게 되었으니까 저를 다시 원래 자리로 돌려놔 주세요.”


경석은 자신의 기억을 지워버리는 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물론 좋은 기억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신에게는 하나하나 모두 소중한 추억이었다. 무엇보다도 지금의 기억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자신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였다.

경석은 천사와 함께 계속 말싸움을 하였고 자신의 기억에 대해서 조금도 양보하고 싶은 마음이 정말로 털끝만큼도 없었다. 잘못 죽은 것도 억울한데 천국으로 가는 것도 아니고 내 기억이 하나도 없이 나인지 아닌지도 모르게 산다는 것은 정말 싫었다. 아니 그것은 이미 내가 아니었다.

한참을 실랑이해도 답이 나오지 않자 천사는 잠시 기다리라고 하곤 다시 사라졌다.

그리고 대략 5분 정도 지나자 천사는 다시 나타났다.

천사의 얼굴은 굳은 결심을 한 듯한 표정이었다.


“경석님. 그럼 경석님의 뜻대로 경석님의 기억을 갖고 태어날 수 있도록 해 드리겠습니다. 그렇지만 아까도 말씀드린 것과 같이 탄생의 문을 통과할 때 느끼는 고통은 저희도 어떻게 해 드릴 수가 없습니다. 단지 경석님이 견뎌 내셔야만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 고통이 얼마나 지속되나요?”

“태중에 있는 동안은 거의 계속 그런 고통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니까 고통이 지속되는 기간이 40주가 되는 거지요.”

“헉! 40주나. 그 엄청난 고통을 느껴야 한다고요? 어떻게 고통을 줄이거나 기간을 줄일 방법은 없나요?”

“산모가 좋은 음악을 듣거나 즐거운 생각을 하게 되면 그 영향이 태아에 미쳐서 약간은 줄일 수 있습니다. 기간을 줄이는 방법은 출생을 앞당겨서 30주 만에 태어난다거나 35주 만에 태어난다거나 할 수는 있지만 그 이상 당겨지면 육신이 온전치 못해서 허용이 안 됩니다. 그리고 산모의 뱃속에 있을 때는 그곳이 산모의 뱃속이라는 것도 느끼지 못하고 오직 고통만 느낄 겁니다. 만일 기억이 없어진다면 모든 고통도 느끼지 못하겠지만 말입니다.”

“음, 내가 느껴보지 못하였으니 잘 판단은 서지 않으나, 그래도 내가 사라지는 것은 싫으니 고통을 느끼고 새 생명을 얻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잠시만 기다리시면 탄생의 문을 열어서 새 생명을 얻도록 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말씀드리면, 이전 기억은 갖고 태어나시지만 여기서 나누었던 이야기나 이곳에서 보았던 것들은 기억에서 모두 사라지게 됩니다.”

“아 그렇군요. 이곳의 기억이 사라지면 제가 어떻게 그 고통을 받는지, 어떻게 어린 아기로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온전히 제가 풀어야 할 의문이 되겠군요.”

“네 그렇습니다.”

“알겠습니다. 그것은 제가 감당을 해야 하겠군요.”

“아, 이제 시간이 되었습니다. 다시 한 번 경석님의 인생이 달라진 것에 대하여 유감스럽다는 것을 말씀드리며, 새로운 삶에 잘 적응하며 잘 사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




“으아악~~~”


경석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고통을 느끼며 악을 쓰고 있었다.

방금 전 트럭이 자기를 받은 것은 알겠는데 그 고통이 이렇게 클 줄은 정말 몰랐다. 그 뿐만 아니라 세상이 온통 암흑이고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자신이 트럭에 받혀서 중상을 당해서 이러는 거라 믿었다.

그런데 그런 고통이 한참을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시력도 돌아오지를 않자 점차 절망하기에 이르렀다. 세상이 온통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몇 날 며칠이 지났는지도 알지 못했다. 경석은 고통이 너무 심해서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못하는 그가 스스로 죽을 수는 없었다.


‘아! 내 인생이 이렇게 끝나는구나. 고통이 너무 심한데도 아무도 말을 걸지 않고 만져주는 감각도 없구나. 혹시 내가 이미 죽은 것은 아닌가? 죽어서 지옥에 떨어져서 이렇게 고통을 느끼는게 아닐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생각이 이에 미치자 경석은 스스로 죽어서 지옥에 떨어졌다고 확신하기 시작했다.


‘인생을 살면서 그래도 지옥에 갈 만큼 나쁘게 살지는 않은 것 같았는데, 너무나 억울하구나. 고아로 자라서 열심히 살아서 이제 최고의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자리까지 왔는데 모든 게 끝이라니......’


한없는 절망 가운데 또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이제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고통과 싸우고 있던 경석은 갑자기 온몸에 감각이 돌아온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눈에 빛이 들어왔다. 경석은 거기 아무도 없냐고 소리쳤다.


“응애응애~”

‘헉! 이게 무슨 소리지? 내 입에서 나는 소리 같은데 나는 분명히 거기 아무도 없냐고 소리를 쳤는데 왜 아기 울음소리가 나오는 거지?’


주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

“*&&^^@!#$~&**”

“하하하하”

“호호호호”


남자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는데 생전 처음 들어보는 언어였다.

자신이 새 생명을 얻고 태어난 아기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꼬박 하루가 걸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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