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테스트 종료 - 1부 완결 -
* * * * *
흐르는 세월은 같아도, 저마다 각자 체감은 달랐다. 특히 수명의 길이가 다른 종족들 사이에서는 그 간극이 더 심한 편이었다.
그러나 장장 7년이란 기간은, 그 어떤 필멸자라 할 지라도 다짜고짜 짧다고만 우기기 어려운 세월임에는 분명했다.
만약 이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존재할 경우, 타행성 침략 전쟁이 종식된 뒤로 말끔하게 재건축된 메디오스페라의 남부 지역을 한 바퀴 구경시켜주면 그 대다수는 자연히 수긍할 터였다.
비단 도시의 외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한 것은 아니었다. 오드노아 정부가 서방대륙은 물론 동방대륙과의 무역과 교류를 대대적으로 진행하면서, 인간을 비롯한 여타의 종족들이 수도 내에서 돌아다니는 광경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교류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마법. 또 그 핵심역할을 수행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국제 마법사 영재교육원’은, 각국의 엄격한 자격심사와 선별과정을 통과한 아이들로 인해 매일매일 다사다난했다.
“선생님~, 쟤 혼자 우유에 쬬꼬 타서 먹어요!”
“선생님, 저도 저거 갖고 와도 돼요?”
“선생님~! 반장이 누구만 주고 저는 안 줘요!”
“”“선생님! 선생님! 선생님선생님선생님선생님선생님...”””
“아휴! 시끄러워! 니들 그냥 흰 우유만 마셔! 누구도 예외 없어!!!”
위와 같이 ‘질서정연’이란 단어가 절대로 확립될 수 없는 초등부를 제외한 중등부 이상부터는, 대체로 신분상승에 대한 열망에서 비롯된 학구열이 활활 불타는 편이었다.
다국적 학생들은 마법학을 비롯한 모든 과정에서 우수한 성적을 두루 거두고자, 비율이 다소 낮은 세계사 과목까지 꼼꼼히 챙기곤 했다.
“......(중략)...... 그렇게 패배한 트로돈들은 오늘날 대표적인 노예계층으로 전락하게 됐죠. 지금에 와선 결정권자들의 조금 어리석은 판단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겠지만, 그때 그 당시에는 그게 최선의 대책이었어요. 본래는 그들의 행성으로 쫓아내려 했었는데, 그 행성의 정령왕이 라호나바스와의 전투 이후 완전 기진맥진해졌다는 이유로 완강히 거부 하셨거든요. 그래서 많은 궁리 끝에 그들을 소수 인원으로 잘게 쪼개서 세계 각국의 노예로 보냈던 거랍니다.”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침략전쟁에 대한 기나긴 설명을 이어가던 베라는, 어느덧 종료시간이 임박했음을 깨닫고서 서둘러 마무리했다.
"엇? 시간이 벌써? 자자, 오늘은 여기까지. 다음 시간엔 현재 모든 국가에서 시행 중인 '트로돈 종족의 5인 이상 모임금지' 등의 각종 제한법령에 대해서 다루도록 할게요. 반장."
"차렷! 인사!"
"""수고하셨습니다~."""
수업 마친 베라는 띵동땡똥 울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교실에서 나갈 채비를 했다. 그러나 그녀의 앞에서 우물쭈물 거리며 서 있는 갈색 곱슬머리의 남학생을 발견한 탓에 분주한 손을 잠시 멈춰야 했다.
"무슨 일이니, 모건?"
"어... 저어... 베라 선생님..."
그녀는 굉장히 소극적인 성격의 모건이 이만큼이나 용기를 내고 있다는 점이 좀처럼 믿기지 않았기에, 짐짓 호기심마저 크게 동하기도 했다.
"응? 뭐든 괜찮으니까 말해보렴."
"호, 혹시... 나, 나디아는... 조금 괜찮아졌는지... 아실까요? 며칠 째 계속 학교에 안 나오고 그러니까 많이 걱정되는데... 베, 베라 선생님은 나디아의 담임선생님이시고 해서..."
모건이 나디아를 짝사랑하고 있음을 반짝 떠올린 그녀는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후훗, 그렇게 걱정되면 네가 직접 찾아가보지 그러니?"
"가, 갑자기 찾아가는 건 예, 예의도 아닌 것 같고... 나, 나디아가 많이 힘들어 하는데... 제, 제가 괘, 괜히 별 이유도 없이 불편하게 하기도 그렇고..."
"에이~, 남자가 그렇게 용기가 없으면 못 써요~. 뭔가 쟁취하고 싶으면 팍팍 들이대야 해. 그건 선생님의 남편만 봐도 알 거 아니니?"
"저, 저도 그러고는 싶은데... 그게 잘... 아, 안 됩니다."
"으이그~, 좋아. 그럼 이 선생님이 특별히 우리 중등부 수석님에게 기회를 내려줄게."
"?"
베라는 서류가방 속에서 몇 장 묶음으로 이뤄진 가정통신문을 꺼내며 말했다.
"자, 이거 받아. 네가 나디아에게 가져다 주렴."
"제, 제가요?"
"응. 이것보다 좋은 핑계가 있니? 네가 이걸로도 부족하다 싶으면, 그동안 노트필기한 것도 미리 복사해서 챙겨주려무나."
"예? 제 노트도요?"
"그래, 조금 있으면 중간고사잖니~. 아무리 집에 우환이 있었다지만, 그건 그거잖아. 나디아가 낙제점은 면해야 하지 않겠어? 겸사겸사 공부를 도와준다고 찔러도 보고 말이지."
"아!"
"아참, 가는 길에 아이스크림도 사가. 우리 남편이 그러는데, 나디아는 딸기&바나나 아이스크림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 하더라고."
하늘 같은 스승님의 은혜에 왈칵 감동한 모건이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가, 감사합니다! 선생님!"
"훗, 힘내~. 그리고 만약 나디아의 반응이 시원찮아도 네가 그냥 그러려니 해. 그건 네가 싫은 게 아니라, 나디아가 아빠랑 헤어진 상심이 너무 커서 그러는 걸 테니까 말이야. 계속 우직하게 옆을 지켜주렴. 지금은 그게 최고의 위로야."
"네-!"
"그리고 이참에 엄청 노력해서 말 더듬는 습관도 고쳐 봐. 남자는 무조건 자신감이다?"
"해, 해볼게요!"
엉겁결에 기똥찬 연애상담을 마친 모건은, 방과 후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그리곤 포리스트 영약상점 맞은 편에 위치한 나디아의 집을 향해 힘차게 달렸다.
* * * * *
심각한 우울증에 빠진 판관들은, 그 임명자인 아리사엘에게도 적잖은 걱정거리였다.
"이긍... 또 밥을 깨작깨작 먹는 둥 마는 둥 하네."
"왕왕."
"그래, 브레드. 나도 알아, 벌써 나흘 내내 저러는 거."
루카스가 마계로 후르륵 돌아가고 나면 만사 후련해질 줄 알았는데, 그와 인연 맺은 필멸자들의 망연자실한 행동을 가만 지켜보고 있자니 마음이 영 불편했다.
"쯧, 어쩜 저리도 지지리 궁상인지... 대체 그 마귀 새끼의 어디가 그렇게 좋다고 말이야."
"아르르르릉..."
바싹 털까지 세운 강아지의 모습은 아리사엘을 몹시 섭섭하게 만들었다.
"야, 진짜 서운하다. 솔직히 너랑 나랑 보낸 시간이, 이제 니 주인이랑 네가 보낸 시간보다 훨씬 길거덩?"
"왕! 왕! 왕!"
"아씨! 알았어! 니 주인 욕 그만하면 될 거 아냐! 아우~~~, 서럽다~! 서러워! 내가 널 얼마나 예뻐하는데, 나한테 이럴 수 있니?"
"헥헥헥."
"칫! 귀여워서 봐준다!"
그렇게 재롱을 한껏 부려 아리사엘의 기분을 풀어주고 난 브레드가 그녀를 새삼 조르기 시작했다.
"끄으응, 끄으응~."
"뭐? 안 돼. 테스트 기간 끝났어. 그건 이제 내 권한 밖이야."
"끼잉~, 끼잉~."
"에잇, 안 된다니까? 가브리엘 님은 요즘 진짜 완전 저기압이셔. 그리고 내가 무슨 염치로 그런 부탁을 해?"
"...끼잉......."
"야잇, 브레드! 이게 삐칠 일이니?!"
아리사엘은 크게 실망하여 자신을 등지고 돌아앉은 브레드에게 알파테스트 내부평가서를 디밀었다.
"자, 너도 이거 봐봐! 차세대 시스템 중간 평가가 너무 부정적이라고!"
"......뀨으응..."
"관리 인원이 한참 부족하대잖아, 인원이! 그리고 여기 적힌 미카엘 님의 소견 보여? '관리자와 필멸자 사이의 상식과 이해 간극이 너무 커서 불화의 소지가 있음.' 봐봐, 진짜지? 어디 그 뿐인 줄 알아? 다른 대천사 님들의 나머지 의견도 읽어보면... (하략)..."
그녀가 브레드의 삐침모드를 해제하려 아무리 용을 써봐도, 주인의 양녀 나디아에게 고정된 브레드의 충성심은 요지부동이었다.
"멍멍. 왕왕. 웍, 웍."
"참나~, 그게 말처럼 쉬운 줄 아니? 네 말대로 하려면 차세대 시스템을 얼마나 손봐야 하는 줄... 어...? 음?!"
브레드가 툭 던진 말에서 모종의 가능성을 엿본 아리사엘이 본인의 무릎을 탁 쳤다.
"아! 새로운 관리자 등급을 추가편성해서 운용하면 되는 거잖아? 어차피 대천사 님들이 우려하시는 부분은 시스템의 기능성에 관한 게 아니니까, 운영지침과 제도를 유연하게... 아, 물론 시스템을 아예 안 고칠 수는 없겠지만... 오호~! 잘 가다듬으면 의외로 쉽게 해결할 수도 있겠는데?"
"?"
"브레드! 넌 천재야!"
"???"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내가 가서 가브리엘 님을 잘 설득해볼게!"
정작 브레드는 뭐가 뭔지 몰라서 고개를 갸웃 했으나, 곧장 가브리엘에게로 향하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자신의 바램이 곧 이루어질 것 같은 생각이 들기에 헤벌레 웃었다.
"왕! 왕! 헥헥헥..."
* * * * *
나디아와 야스민, 그리고 베스퍼와 에이샤. 이렇게 4인 가족이 함께 살아가는 집안의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침울하기 짝이 없었다.
그나마 루카스가 떠나기 전에 노예의 낙인을 찍어준 에이샤만이 제 정신을 유지하는 유일한 인물이라고 봐야 했다.
"이거 잡수세요, 작은 주인!"
"아니 됐어. 난 괜찮아."
"아까 아침도 거의 안 잡수셨잖아요! 짜짠! 이 에이샤가 만든 토스트라구요! 진짜 열심히 잔뜩 만들었어요!"
에이샤가 내민 걸 바라본 나디아가 울음을 툭 터트렸다. 에이샤의 서툰 솜씨가 여실히 드러난 음식이었으나, 루카스가 종종 해주던 간식 레시피를 그대로 흉내 냈다는 걸 한 눈에 알아봤기 때문이었다.
"히잉... 아빠가... 너무 보고 싶어..."
"쩝... 힘내요, 작은 주인. 그래도 이 에이샤가 있잖아요."
"...에이샤는 좋겠다. 그래도 너는 언젠가 아빠랑 다시 만날 수 있는 거잖아."
"......왠지 미안해요, 작은 주인."
"아니야. 내가 미안해. 괜히 질투해서... 어?"
에이샤가 내민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던 그녀가 갑자기 멈칫했다. 루카스가 떠난 이후로 잠잠하던 알림창이 그녀의 망막 위에 드리웠던 것이다.
<< 전체 공지 : 알파테스트 종료. >>
여기서 끝이었더라면, 나디아는 그냥 '뭐가 끝났구나.' 하며 더 이상의 의문을 품지 않았을 터였다.
<< 전체 공지 : 시스템 업데이트 시작. 진행률 0.1% >>
"이, 이게 뭐지?"
"엣? 천사님이 뭐라고 해요?"
"아니, 아니! 그거랑 달라!"
"그럼 뭔데요?"
"음...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어. 일단 기다려 봐야 할 거 같아."
"히히, 잘 됐네요. 그러면 토스트 먹으면서 기다려요."
"으, 으응..."
서서히 가파른 상승세를 타던 업데이트 진행률은, 나디아가 빵빵한 포만감한 느꼈을 때쯤 100%를 찍었다.
<< 전체 공지 : 시스템 업데이트 완료. 다시 시작하는 중... >>
그녀의 머릿속에 어떤 연결이 끊어졌다가, 뭔가가 새로 연결된 감각이 느껴지자 또 다른 알림창이 떴다.
<< 전체 공지 : 비공개 베타테스트 1차 - 시작. >>
그리고 그것이 사라진 지 1분도 안 되어, 아리사엘로부터 반가운 임무가 하달됐다.
<< 돌발임무 : 조력자를 모집하세요! [상세보기▼] >>
"핫?!"
곧장 '상세보기' 버튼을 눌러 세부내용을 확인한 나디아는, 그 즉시 자리를 털고 일어나 베스퍼의 침실로 뛰었다.
"엄마아-!!! 언니이이-!!!"
당연한 말이지만, 이런 메세지들은 나디아에게만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
<< '아리사엘' 님께서 비밀 채팅방을 생성했습니다. 선택하신 베타테스터들을 초대합니다. >>
- [오그나드] : 하하, 이런 역사적인 일에 동참할 수 있어서 무한한 영광입니다.
- [아리사엘] : 선뜻 수락해주셔서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양질의 피드백 부탁드려요.
- [마야키니] : 열심히 하겠습니다. 저희 시간 되게 많아요.
- [밀레나] : 어머, 이게 그 소문의 '아바타 육성 시스템'인가 뭔가 하는 거죠?
- [우그딧] : 와~, 완전 개꿀! 전 하루종일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 [호라돈] : 엇? 이거 튜토리얼은 강제인가 보네요? 아아, 최초 사용자에 한해서 그런 거구나.
어쨌거나 베타테스트 시작 직후 가장 큰 수혜자는, 나디아의 집을 방문한 모건이었다.
"어서와! 모건! 와줘서 너무 고마워!"
"벼, 별 거 아냐. 그나저나 다, 다행이다. 네가 밝아 보여서."
"응! 엄청 좋은 일이 있었거든! 핫?! 딸기&바나나 아이스크림?!!!"
모건은 본인의 예상과 전혀 다른 집안 분위기에 몹시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무척이나 해맑은 나디아의 함박웃음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아무래도 딱히 상관 없어졌다.
'에헤헤, 이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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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종료 - 완결.
###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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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말
이것으로 완결입니다.
(1) 남들과는 다른 이야기.
(2) 좀 잡을 수 없는 전개.
위 2가지. 한 마디로 독창성을 최우선 달성과제로 삼아
열심히 기획했고, 중도 포기 없이 부단히 달려왔습니다.
(아~, 결과는 모르겠고요~, 일련의 과정이 그랬다는 겁니다~. 하하하!)
이제 후기를 마지막으로
서재관리에서 [완결]로 설정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나서 이번 연재 진행중에 깨우친,
그 부족한 점들을 되짚으며 2부를 준비하겠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리며
하시는 모든 일이 잘 되시기를 빌겠습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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