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땅 사이 (4)
* * * * *
성공적으로 항사룡을 제압했으되, 그에 대한 처리과정은 녹록치 않았다. 그 원인은 어처구니 없게도 로비샤의 완강한 반대로 인한 것이었다.
“안 돼요!”
그녀는 공개처형장에서 아드퍼드로스의 지시에 따라 어떤 의식을 준비하는 주소걸의 바지춤을 붙잡고 늘어졌다.
“잠시만요!”
“어엇! 이, 이러시면 곤란하옵니다!”
주소걸이 주위를 훑으며 도움을 갈구했으나, 분위기상 누구 한 명 쉽사리 나서지 못했다. 알랭을 포함한 요정족 일원들은 물론 루카스조차 당황한 기색으로 쳐다만 볼 뿐이었다.
“주소걸 님, 한 번만 더 저 분께 기회를 주실 순 없을까요?”
“아 그게 이 처분은 제 결정이 아니오라...”
“이렇게 부탁 드립니다!”
”아니, 시키는 대로 행하는 일꾼인 제게 매달리셔봤자...”
몹시 간절해진 그녀는 그동안 단단히 삐쳐서 말도 안 섞었던 루카스를 향해 애원했다.
“서방님! 서방님께서 말려주세요!”
“싫습니다. 이것은 천신들의 판결이기도 하지만, 나는 당신을 괴롭히고자 무엇이든 실행하는 놈을 옹호하지 않을 겁니다.”
“저 분이 어떤 악행을 저질렀는진 저도 익히 들었어요. 하지만... 하지만...”
“절대 불가입니다. 여기서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이 당신의 정신건강에도 유익합니다. 당신은 저 놈과 눈조차 제대로 못 마주치면서 왜 고집입니까?”
실제로 그녀에게 고정된 항사룡의 눈빛엔 살기와 독기가 서려 있었고, 그것이 너무나 무서운 그녀는 단단히 결박된 항사룡과의 거리를 5m 이상 유지하는 중이었다.
“저도 왜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진짜 모르겠어요. 그런데...”
로비샤는 본인 자신도 납득이 전혀 안 된다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분을 꼭 살려야 한다며 제 안의 무언가가 계속 꿈틀거려요! 저 분이 저지른 모든 잘못이 저 때문인 것만 같아요! 마치 어떤 마법에 홀리기라도한 것처럼요!”
“......”
비단 루카스 뿐만 아니라, 여기 모여 있는 관계자들 모두가 그녀의 내면 속에 잠든 이프리티아의 죄의식이 표층의식 바깥으로 떠오른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만큼 그녀의 죄책감이 심하다는 반증이겠지.’
이렇듯 모두가 곤혹스러운 가운데 입장이 가장 난감해진 이는, 중간에 끼어 이도 저도 못하던 주소걸이었다.
“이만 좀 놔주시지요. 바지 벗겨지겠습니다.”
“주소걸 님, 어떻게든 설득해주시면 안 될까요? 부디 살려만 주세요, 네?”
“허허이~, 이것 참...”
“저 분의 악행을 씻어낼 길은 없지만, 그래도 소멸만은 제발 면했으면 합니다.”
“영멸은 아니니 너무 심려하지 마십시오. 그저 영혼이 천 갈래 만 갈래로 찢겨져 미물이 될 뿐입니다.”
“그게 그거잖아요! 다시는 본래대로 돌아올 수 없게끔 되는 거라면서요!”
“그야... 뭐... 그게 저 자에게 내려진 처분인지라...”
주소걸이 로비샤를 주섬주섬 떨쳐내려 해도, 그녀는 천신들과 직접 대화 나눌 수 있는 그에게서 절대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부디 도와주세요!”
“허허~, 제가 뭐라고 천신들께 재고를 청할 수 있겠습니까?”
”저 분이 일곱 천신들께서 공들이셨던 귀한 전력이라고 말씀하셨던 걸 똑똑히 기억합니다. 그 부분을 어떻게 잘 피력해볼 순 없을까요?”
워낙 상대가 상대인지라 주소걸은 결국 한 걸음 양보할 수 밖에 없었다.
”쩝... 여신님의 체면을 생각하여 제가 천신들께 운 정도는 한 번 띄워보겠나이다. 허나 큰 기대는 마십시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크흠...”
이를 물끄러미 계속 관망하던 루카스는 이 형국이 다소 염려스러웠다. 일곱 천신들이 덕망 높은 상급 여신의 애원을 외면하진 않으리란 느낌이 엄습해온 까닭이었다.
그래서 그는 이마의 영인고를 톡톡 만지작거리며 혼잣말을 웅얼거리기 시작한 주소걸을 뒤로한 채, 알랭을 조용히 찾아 불렀다.
“저기 알랭 단장.”
“예, 루카스 님.”
루카스는 새로운 경지에 발을 디딘 후로 더욱 깍듯해진 알랭의 태도에 큰 부담을 느끼며 물음을 던졌다.
“그... 저 놈을 억류시킬 수단이 있나?”
알랭 역시 루카스와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탓인지, 그의 뜬금없는 질문에도 본인의 의견을 술술 풀어냈다.
“철저하게 반신불수로 만든 뒤 적당한 부지를 골라 이중삼중으로 봉인시키는 편이 가장 이상적입니다. 그러나 이곳 영주부터 크게 반발할 가능성이 크겠지요.”
설사 영주가 뜻을 굽혀 허락할 지라도, 과거 이무기에게 시달린 경험이 있는 영지민들이 어디로 어떻게 튈지 몰랐다.
“게다가 그 방법은 사모님께서 전혀 달가워하지 않으실 겁니다. 저 자가 훗날 큰 공을 세워 극형만을 면하게 되길 바라시는 거니까요.”
“그렇군. 그러면 차선책은?”
“저희 본토 근방에 세워진 특수시설이라면, 본격적인 침략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구금이 가능하리라 봅니다만...”
“음? 봅니다만?”
”거기까지로의 이송이 큰 문제입니다. 루카스 님이나 주소걸 님께서 반드시 동행해주셔야 돌발상황에 대처할 수 있을 겁니다.”
지금이야 항사룡이 제대로 회복하지 못하게끔 주소걸이 꼼꼼히 신경 써줬기에 그의 억류가 가능했던 것일 뿐, 알랭과 그의 대원들만으로는 답이 없는 실정이었다.
“어처구니 없게도 저희가 부여한 저주에 내성이라도 생긴 건지, 그 효력의 주기가 조금씩 빨라지고 있습니다. 정말로 저희로선 감당키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최선은 봉인수정인 건가?”
“예, 현재 상황에선 그렇습니다.”
”흠, 그게 정신생명체 외에도 유효할진 모르겠다.”
“본토에 계신 신탁자님과의 통신으로 확인해보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아하, 그게 좋겠군. 네 말이 옳다.”
알랭은 루카스에게 간절한 눈빛을 보내며 말을 덧붙였다.
“개인적으론 잘 적용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만약 일곱 천신들께오서 저 자의 처분만 보류하시고, 특별한 제제수단을 내려주시지 않으면, 저희로선 이렇다 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흠, 알겠다. 차후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내가 오지랖 부리겠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여자가 원인이니까, 내가 책임지고 동행하겠다.”
“감사합니다, 루카스 님. 덕분에 한시름 놨습니다.”
다행히 루카스와 알랭의 막연한 우려는 현실로 거듭나지 않았다. 마야키니를 포함한 일곱 천신들이 이프리티아의 뜻을 존중하기로 합의는 했으되, 그동안 속 썩은 값으로 항사룡에게 묵직한 개목걸이를 채워주자는 오그나드의 의견 또한 만장일치를 이룬 까닭이었다.
- 우우우웅...
근신이라 눈에 띄는 현세간섭이 어려웠던 일곱 천신들은, 아드퍼드로스에게 부탁하여 신물 한 가지를 주소걸에게로 내려 보냈다.
- 번쩍!
얼핏보면 통신수단이자 최후의 징계장치인 주소걸의 영인고와 색깔만 다르지 똑같아 보였다. 그러나 일곱 천신의 악의로 점철된 그 물건은 그 착용감부터 주소걸의 것과 궤를 달리했다.
청동색 머리띠가 무릎 꿇려진 항사룡의 이마 부근에 닿은 순간, 수천 가닥의 얇은 실타래들이 세찬 분수처럼 터져 나왔다.
- 투화아악-!
“!”
그것들은 항사룡 본인을 비롯한 구경꾼들이 ‘어?’하며 의문을 표하기도 전에 그의 모공을 거칠게 파고 들었다.
- 꽈득, 꽈드드득...
머리띠에서 비롯된 촉수들은 그렇게 항사룡의 이마부터 차근차근 퍼져 내려오며 주요 혈관과 힘줄을 마구잡이로 잠식했다.
“끄으으으윽!”
당연히 이 동화과정에서 발발한 고통은 게걸스러운 효과음에 걸맞게 지독하기 짝이 없었다.
”이, 이 미친 작자들이! 끄아악... 내게 무슨 짓ㅇ... 으아아아아아악!”
항사룡이 신음을 옴팡 토해냈다. 결박에 저항하다가 주소걸의 폭력에 갈비뼈 몇 개가 가루가 됐을 적에도 이죽대기만 했던 그의 의연함은 온데간데 없었다.
제3자의 입장에서도 천신들의 족쇄가 채워지는 광경을 지켜보기란 일이란 녹록찮았다. 마치 짙은 구릿빛 넝쿨이 그의 전신으로 뿌리 내리 듯한 현상이었기에, 그것을 태연히 구경할 수 있는 사람은 루카스를 포함하여 겨우 몇 명에 불과했다.
“어후...”
“으으, 맙소사...”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흘러 일련의 과정이 완료된 직후, 항사룡의 외견은 매우 독특해졌다. 기괴할 대로 기괴해진 피부조직부터 그의 매력에 지대한 악영향을 끼쳤다.
현재의 그와 비슷하게나마 꾸며내려면, 나무뿌리처럼 불규칙한데다 불그스름하기까지 한 문신을, 신체의 85%이상 무작위로 촘촘히 새겨놓아야 가능할 터였다.
“으아닛!”
이윽고 자신의 상태를 파악한 항사룡이, 마치 발작하듯 하늘을 향해 쌍욕을 퍼부었다.
“으아아아아! 이이이이 조오오오옥 가아트으으은 천신들아아아아아아!”
그러나 그것은 현명하지 못한 행동이었다. 어서 빨리 새 제품의 기능을 활성화 해보라며 독촉한 셈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뭐? ㅈ같은?>
<이 놈이 신성모독을 방귀 뀌듯이 하네?>
<오냐, 언제까지 그렇게 지껄이나 보자!>
<그 다음은 나!>
<아, 젠장 늦었네. 그럼 난 너 다음!>
천신들이 순차적으로 각별한 애정을 쏟아내자 머리띠의 색채가 급변했다. 그리고 그 색감변화에 따라 효능 또한 가지각색으로 달라졌다.
빨강엔 전신 화상, 파랑엔 질식 등이 일어나는 식이었는데, 그 다채로웠던 일곱 빛깔 중 으뜸은 단연 녹색이었다.
“우욱... 우우욱!”
살모사에게 물린 개구리처럼 뻣뻣하게 굳어버리나 싶더니만, 어느새 코와 입 등등, 신체의 구멍이란 구멍에서 검은 피가 조르륵 새어 나왔다.
피고문자의 경험이 풍부한 루카스는 그것이 썩어 곤죽이 된 오장육부가 피에 섞여 중력의 흐름대로 배출되는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고, 실제로 일어난 현상 또한 그러했다.
<푸하하핫! 이거 성능 확실하구만!>
“으으으으으윽...”
항사룡의 신체가 만독불침이 어쩌고 나발이고 아무짝에도 소용 없었다. 육체와 영혼의 통제권을 천신들에게 빼앗긴 이상, 그는 이제 자의식이 탑재된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하물며 천신들은 그의 평온한 죽음조차 용납치 않았으니, 항사룡의 입장에선 미치고 팔딱 뛸 일이었다.
“그, 그마아안!!! 우웨에에엑...”
그의 고통과 비명이 커질수록, 지극정성을 다해 그를 괴롭히는 중인 천신들의 만족도는 급격히 높아지기만 했다.
<흥, 누구 맘대로! 이제 시작이거덩?!>
<이야~,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반말 나불대네! 독한 녀석!>
<...조금 불쌍한 것 같기도?>
<무슨 소리! 저 놈 때문에 내가 얼마나 깨졌는데! 하마터면 마계로 추방될 뻔 했다고!>
<각오해라! 오늘부터 교대로 굴려 줄라니깐!>
<크하하하하, 우리가 네 덕에 자숙 중이라 시간이 차고 넘쳐요!>
아무리 개똥밭에서 굴러도 이승이 좋다지만, 이렇게 될 바에야 차라리 예정대로 벌레로 전락하는 편이 나았을지도 몰랐다.
“그어어어어어어어!!!”
천신들의 화풀이는 봇물 터진 둑처럼 그칠 줄 몰랐고, 오늘 내일 중으로 끝날 기세가 아니었던 지라 공개처형장의 자리를 지키던 관계자들은 눈치껏 자리를 떴다.
이번 일은 천신에게 미운털 박히면 어떤 결말을 맞이하는가에 대한 좋은 예시로서, 헤트만과 오드노아의 역사에 기록으로 남겨질 가능성이 컸다.
주소걸은 충격 받은 로비샤를 추슬려 데려나가는 루카스의 등짝을 끝으로 알랭에게 말했다.
“알랭 단장도 수하들 데리고 그만 가보시구려. 내가 남아 지키오리다.”
“아닙니다, 주소걸 님. 저도 자리를 지키겠습니다.”
“허허허, 됐소. 저 꼬라지에서 얻을 게 무에 있다고. 나도 천신님의 명이 아니었으면 일찌감치 자리 털었을 거외다.”
그는 최소 사흘은 저럴 거 같다는 아드퍼드로스의 예측까지 귀띔해준 후에 사족을 덧붙였다.
“좌우지간 호송과 감금문제는 한결 수월해질 게요. 천신들께오서 저 인간에게 실로 엄청난 족쇄를 달으셨으니 말이외다. 허허허!”
“송구하지만 그게 어느 정도인지 감이 오질 않습니다.”
”천신들께오선 저 자를 입만 산 반신불수로 만들어 방치하실 것 같소이다. 라호나바스가 이 땅에 발을 들이는 그 날까지 말이오.”
“아, 말씀대로라면 확실히 걱정 덜었습니다. 굳이 위험하게 육로를 고집할 필요도 없겠군요. 탈 것에 태워 본토로 날려보내도 되겠습니다. 그저 깊이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껄껄껄, 정히 고마우면 밥 때마다 넉넉히 챙겨 보내주시구려~. 기름진 고기나 고기. 아니면 고기가 좋을 거 같소이다~. 거기에 반주도 곁들여주면 금상첨화겠고~. 아참, 새참도 꼬박꼬박 잊지 말고 말이오~. 으허허허헛~.”
“...예, 그 부분은 제가 직접 신경쓰겠습니다.”
그렇게 마지못해 복귀한 알랭은 부하들에게 휴식명령을 내리곤 샌더스 수장에게 통신을 연결했다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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