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oot : 대악마의 직계자

경솔함이 빚어낸 결실 (2)

명예와 부를 꿈꾸며 뮤티움과 기아니크로 부리나케 움직였던 수많은 용병단들이 도적단으로 돌변하는 건 정말로 한순간이었다.

”여차하면 싹 죽이고 후딱 지역경계 너머로 튀면 돼! 이 근방 지나는 용병단이 어디 우리 하나뿐이냐? 무조건 우기면 장땡이야! 실력 좋은 마법사가 나서서 입증해내면 모를까, 그러지 않고서야 누가 그랬는지 지들이 어찌 알아낼 껀데?”

“오! 과연!”

칼밥 먹는 거친 집단은 범죄의 유혹에 취약했고, 그렇게 손쉬운 약탈을 몇 번 맛들이다 중독단계로 넘어가는 거야 단순한 시간문제에 불과했다.

“이 나쁜 놈ㄷ... 커헉!”

“크하하하하! 어딜가도 순 쭉정이들 뿐이구만!”

경비가 취약한 개척마을이나 영지 변두리 지역의 경우엔, 풀 한 포기 안 남기고 초토화되기 일쑤였다. 또 약탈한 재물을 두고서 용병단끼리 칼부림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으흐흐흐! 겉보기와 다르게 속살은 아주 야들야들하구만!”

“꺄악, 누가 좀 도와주세요!”

”이 X년이 앙탈은! 뒤지기 싫으면 얌전히 굴어!”

무전취식과 난동은 무난한 장난질 수준. 어느 때부턴가는 마을 아가씨가 그들에게 추행과 강간을 당했더라도, 그저 살아서만 돌아와주면 가족들이 안도할 지경에 이르렀다. 성실하고 무고한 용병들까지 날강도 취급 받는 분위기는 덤이었다.

더욱이 일반 백성으로선 감당하기 힘든 무력을 조직적으로 운용하는 터라, 진압을 위해 당도한 경비대가 역으로 함정에 빠져 몰살 당하는 이변이 심심찮게 일어나기도 했다.

“크하하하, X밥 새끼들! 자! 다음 마을은 어디냐?”

“가장 가까운 마을은 4일 남짓인데 거긴 피해야 합니다.”

“?”

“타미아르 영역입니다, 두목.”

“......우회하자.”

서방대륙 기준으로 무장괴한들로부터 백성들이 비교적 자유로운 국가는 한 손에 꼽혔다. 애초부터 외부인을 철저히 통제하는 오드노아는 논외로 쳐야하니, 현재로선 타미아르가 거의 유일하다고 봐도 무방했다.

“사병 제한을 한시적으로 해제시킨 마지못한 차선책이... 신의 한수가 되다니...”

“폐하, 평가는 냉정히 하셔야지요. 사실 이게 다~ 발 빠르게 대응한 제 제자의 공로 덕입니다. 아니 그렇습니까?”

“쳇, 니가 자랑질하는 게 꼴보기 싫지만, 이번만큼은 나도 인정할 수밖에 없구나.”

“헛헛헛!”

타미아르 국내의 용병들은 거의 대부분 고용된 상태였다. 가르디엔이 용병단 중 상위 15% 이상을 선점해버린 사건에 위기를 느낀 귀족들이 앞뒤 안 가리고 사병확충에 전력투구한 결과라 하겠다.

어쨌든 그렇게 수직상승한 귀족들의 군세는 최근 격화된 도적떼란 맹수들로부터 영지를 지켜낼 최소한의 울타리로 거듭났다.

물론 어디까지나 최소한이었을 뿐, 변방지역의 경우엔 약탈자들의 노련함과 실력이 영주의 병력보다 우위를 점하는 상황이 이따금씩 발생되곤 했다.

허나 그 정도로 취약한 영지의 경우엔, 디마우스 저택 뒷마당과 연결된 이동마법진을 보유하고 있었으므로 완벽한 초기진화가 이뤄졌다.

“엉엉! 디마우스 횽님! 이상한 애들이 불쑥 나타나서 저 때릴라 그래요!”

“뭐이? 그 시골에서 뭘 털어먹겠다고! 일단 알았어, 바로 애들 보낼게! 쫌만 버텨봐!”

“형! 겁나 땡큐!”

타미아르 대마법사의 깃발 아래 꾸려진 용병군단의 전투력은 그레이엄 국왕조차 내심 탐낼 정도로 강력했다.

“인간이길 포기한 새끼들이다. 포로는 줘도 안 받을 꺼니까 싹 조져! 아, 그리고 전리품은 다 니들이 갖으면 돼.”

“”“우오오오오! 지금 밥값하러 갑니다~!”””

용병의 습성과 생리에 빠삭하다 못해 닳고 닳은 전문가들은 그야말로 용병단 잡는 용병단이었고, 해충을 깨끗하게 박멸시키는 살충제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다.

“헉, 저 표식은?! 타미아르 대마법사 소속 용병군단입니다!”

“야이 미친 놈아! 이딴 깡촌 영지까진 못 올 꺼라며?!”

“당연히 그럴 줄...”

“X발! 일단 도망치고나서 보자!”

오드노아제 무구까지 완비한 대마법사의 용병군단은 패배를 몰랐고, 쌓여가는 연전연승만큼이나 명성도 뜨거워졌다.

이 부분은 그들의 무패신화를 노래하며 짭짤한 수익을 올리는 음유시인들의 행태만 봐도 어림짐작이 가능할 것이다. 성실하고 무고한 용병들마저 사람들에게 강도떼 취급 받는 분위기가 만연한 타국과는 정말로 대조적이었다.

그래서일까? 날벼락처럼 명실공이 타미아르 비공식 2인자로 자리매김하게 된 디마우스의 입가에선 얼떨떨한 헛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허허허! 지들 영역에 괜한 참견말라며 게거품 물던 귀족들이, 이제는 하루가 멀다하고 돈을 싸들고 찾아오는구나! 잘하면 폐하의 뜻대로 올해 안에 국가비상대응망을 완성시킬 수 있을 것 같다.”

“다행입니다, 스승님. 천운이 따라주네요.”

”내가 네 덕을 톡톡히 봤다. 폐하께서도 이번 일로 왕실의 영향력이 더욱 굳건해졌다며 크게 흡족해 하셨단다. 정말 네가 자랑스럽구나.”

가르디엔은 그저 쑥쓰러울 따름이었다.

“아닙니다. 저도 계획이 앞당겨져서 기쁩니다. 그동안 스승님께 끼쳐드린 금전손실을 생각하면... 제가 이제와 말씀드립니다만, 그동안 너무 죄송스러워서 차마 얼굴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하하하! 그랬구나! 하긴 나도 용병들의 먹성이 그 정도일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었지!”

일반인 기준으로 3인분만 먹으면 ‘너 어디 아프냐’며 주위에서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내는 용병군단이었다.

실제로 그들의 식성을 감내하고 있는 조리실 사람들은, 매 식사시간마다 아귀떼와 싸우는 것 같다며 투덜거리는 게 일상일 지경이었다.

“연간 계약금 부분만 해결하면 나머지 부대비용은 대수롭지 않을 줄 알았는데... 아무튼 제 개인적으로도 무척 좋은 경험이었고, 이를 통해 인해 많이 배웠습니다.”

“크크크, 그건 나도 그렇단다. 하지만 이젠 다 메우고도 남았으니 염려 말거라. 또 앞으로 매달 뮤티움에서 따박따박 지급해올 대금을 알뜰히 활용하면, 이젠 3년이 아니라 7년도 능히 전력을 유지하며 버틸 수 있을게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버지께 요청드려서 자금을 조금 마련해 놨었습니다.”

“하하하, 그랬느냐? 이왕 모은 여유자금은 뮤티움 쪽 사업에 투자하자꾸나! 우리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겠다 하니 여러모로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예, 스승님.”

“푸하하하하!”

시원하게 웃어젖힌 디마우스가 조금은 진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근데... 가르야, 너 설마 여기까지 내다봤던 게야? 그래서 잘 나가는 용병단을 마구잡이로 계약했던 거고?”

“에이, 설마요. 제 노림수는 어디까지나 불순한 귀족견제까지였습니다. 그 외 나머진 순전히 운빨이었죠. 그리고 제게 그런 예언능력이 있었으면... 폐하의 눈에 들지 않게끔 적당히 설쳤을 겁니다.”

“푸흡!”

디마우스는 볼따귀가 눈에 띄게 수척해진 상태인 가르디엔에게 즉각 사과했다.

“아이고, 미안타! 나도 모르게 그만!”

“......”

”...요즘 그렇게 힘드냐?”

“예, 솔직히 장기출장이 너무 빈번해졌습니다.”

“확실히... 요 근래엔 네 얼굴을 한 달에 한두 번 마주하기도 어려웠었지.”

”골수 귀족파들은 스승님께 곧 죽어도 머리 숙이긴 싫은가 봅니다. 산맥을 온통 헤집으며 면밀히 조사해보면, 막상 트로돈 전사들이 아니었던 경우가 열에 아홉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동안 쉬쉬하며 유야무야 숨겨뒀던 괴수나 흑마법사 문제들을 이때다 하는 속셈으로 꺼낸 거였더군요.”

“허허, 그건 미처 몰랐구나. 본인의 명성과 평판에 흠집이 날까봐 백성들의 피해를 영주들이 수수방관한다는 소문을 종종 들어오긴 했었다만...”

“덕분에 이틀 이상 집에 머물러본 적이 없습니다. 어후~, 험준한 지형에 짱박혀 서식하는 괴수들이 그렇게나 많았을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지역 귀족들이 자신들은 끝까지 몰랐던 척 잡아떼는 꼴은 더더욱 역겨웠고요.”

가르디엔과 함께 움직이는 전력들이야 순번제로 돌아가며 휴식을 취하지만, 조사단을 이끄는 유일한 관리주체인 그는 그게 불가능했다.

게다가 남몰래 트로돈의 대규모 침공을 대비중인 그는 기존에 벌여놓았던 비공식 업무들도 꽤나 많았었기에, 하루 2시간 이상 자본 적이 언제였었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상태였다.

“그나저나 슬슬 인원을 충원해주실만도 하건만... 이건 내가 보기에도 폐하께서 너무하셨다. 아무리 철썩 같이 믿고 맡길 인재가 부족하다 쳐도 이건 좀 아니구나.”

”저어... 스승님, 제가 진짜 이런 말씀까진 안 드리고 싶었습니다만......”

“?”

”살려주세요!”

“크크크, 알았다. 내일 당장 입궁해서 적당히 좀 부리시라고 진언 올릴 테니 조금만 더 인내하거라.”

“감사합니다! 흐흑...”

“그래, 그래. 내가 좀 더 일찍 신경 써주지 못해서 미안하구나.”

이렇게 가슴 따뜻한 사제의 정이 오가던 그때였다.

- 똑. 똑. 똑.

“실례합니다, 디마우스 님.”

“그래, 들어오게.”

방안으로 들어선 저택 관리인은 가르디엔의 치명적인 천적이 출현했음을 알려왔다.

“현재 엘로디 양께서 방문하셨습니다. 접객실로 뫼실까요?”

“스, 스승님,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어? 어. 그, 그ㄹ...”

순간적으로 질색한 가르디엔은 디마우스의 답변이 완성되기도 전에 부랴부랴 탈주를 시도했다. 그러나 불꽃처럼 들이친 엘로디로 인해 깔끔히 무산됐다.

“야! 가르! 너, 이 자식 동작 그만!”

그녀는 정산 받으러온 사채업자에 비견될 정도로 기깔나게 가르디엔을 몰아붙였다.

“가르, 너어?! 너 딱 걸렸어! 방금 도망치려 했었지, 그치?!”

“아니! 왜 자꾸 괴롭히십니까, 엘로디 양!”

“이번에도 헛물 캤잖아! 이 거짓말쟁이야!”

잇따른 강행군 속에 행색이 꼬재재한 엘로디의 발언은 가르디엔조차 발끈하게 만들었다.

“그 무슨 망말입니까? 전 항상 제대로 알려드렸습니다! 언제나 한 발자국씩 늦으신 건 엘로디 양이었고요!”

“아, 몰라! 이번에도 루카스 님 못 만났어! 다시 알려줘! 그게 거래였잖아!”

그간 많이 참아온 가르디엔이었기에 그의 입에선 좋은 이야기가 당췌 나오질 않았다.

“싫습니다! 제가 몇 번이나 정보를 제공해드렸는지 기억이나 하십니까?”

“으음... 한 7번?”

”하! 12번입니다, 12번! 전 지금 할 일이 태산입니다! 밖으로 놀러다니는 누구랑 다르게 절대 한가하지가 않아요!”

“나도 싫어, 싫어! 알려줘! 알려줘어어! 한 번만 더 도와줘어~! 네 정보가 파마 길드 머저리들보다 훨씬 정확하단 말이야아~!”

“그러니까 저도 이제 공짜로는 못해드리겠다 이 말입니다!”

“흥, 쩨쩨하기는! 그래, 좋아! 얼마면 되는데?!”

“필요 없습니다! 더 이상 엘로디 양과는 엮이고 싶지 않군요!”

”야잇...”

엘로디는 ‘너랑 말도 섞기 싫다.’는 가르디엔의 표정을 읽고서 길길이 날뛰었다.

”으씨, 너어?! 내가 얼마나 찰거머리 같은지 알아, 몰라? 어?!”

“모릅니다. 알고 싶지도 않고요. 전 이미 할 만큼 해드렸습니다. 더는 귀찮게 하지 마십쇼!”

”야! 내가 너 따라다니면서 드러눕는 꼴 보고 싶어? 아님 혼삿길 콱 막아줄까? 수틀리면 우리 아빠랑 폐하 앞에서 너한테 사랑고백 해버린다?!”

가르디엔은 엘로디의 참신한 괴롭힘 방법을 듣자마자 말문이 턱 막혔다.

“...아니 그게 뭔...”

”너 나한테 루카스 님의 위치 알려줄래, 아님 나랑 약혼할래?! 아주 그냥 내가 평생 니 옆구리에 딱 붙어서 괴롭혀줘?! 허구헌날 나한테 바가지 박박 긁혀볼래?! 앙?!”

“에이씨, 진짜...”

가르디엔은 설득이 불가능한 수준으로 막무가내인 엘로디 앞에 다시 한 번 항복을 선언해야 했다.

”이번이 정말 마지막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앗! 감사합니다!”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엘로디의 태세전환이 돌변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가르디엔 고든 남작니임~! 전 남작님 밖에 없어요!”

”명심하십쇼, 엘로디 양! 한 번만 더 찾아와서 진상부리시면, 그땐 저도 진짜 참지 않을 겁니다!”

“어마맛~, 진상이라뇨~. 아무튼 이 하늘과 같은 은혜는 잊지 않겠사와요~. 오홍홍홍~.”

“아오오오...”

일전에 반말과 존대 중에 하나만 하라고 일렀더니, 들이댈 때는 반말을 쓰다가 지금처럼 목표를 달성한 직후에는 깍듯한 존대를 해오는 그녀였다.

이 뻔뻔한 행태에 혈압이 가파르게 상승한 가르디엔은 답답한 가슴을 탕탕치며 자책했다.

“......그때 제대로 문서화 했어야 했는데, 젠장할! 경솔하게 대충 거래했던 과거의 내가 너무나도 원망스럽기만 합니다.”

“에이~, 너무하신다~. 우리 사이에~.”

“...우리 사이는 남남보다 못한 사이 아니었습니까?”

“아이잉~.”

엘로디는 가르디엔의 어깨 위 먼지를 탁탁 털어주며, 좀 전의 한탄을 못들은 척 딴소리만 했다. 나름 미안함을 표현하는 그녀만의 사죄표현이었다.

“어머나~, 이제보니 우리 남작님 얼굴이 반쪽이시다~. 언릉 가서 집에 있는 영약 좀 꿍쳐다 드릴께요~. 오호호홍~. 그럼 잘 부탁드려요~.”

- 으득.

“......필요 없습니다, 그딴 거 필요 없고요. 어서 제 앞에서 꺼져나 주십... 후우욱... 후우우우...”

가르디엔은 목젖까지 차오른 나쁜 말들을 꿀꺽꿀꺽 삼킨 반면, 제3자인 디마우스는 바삭바삭한 과자를 와그작 씹으며 본인의 눈앞에서 실시간으로 재생되는 희극을 즐겼다.

‘허허허, 엘로디 양이 참 남다른 재주가 있어! 감정기복이 없다시피한 가르의 속내를 저리도 쉽게 뒤집어 놓다니 말이야~. 헛헛헛, 어찌 보면 둘이 서로 의외로 꽤 잘 어울리는 청춘... 앗? 쿠키가 벌써? 이런! 쿠키, 쿠키가 부족하구나!’

그가 하인에게 과자를 더 준비시키려던 찰나, 특정 마법통신구와 연결된 알람마법이 발동되면서 그의 방안에 낮고 일정한 경고음을 퍼트렸다.

- 띠디디딕-! 띠디디딕-! 띠디디딕-!

‘하하하, 이것 참... 절묘한 타이밍이로고~.’

그리 크지 않은 알람소리로 파악된 발신자는 다름 아닌 루카스였다.

“아, 이건 내 사적인 일이니 신경쓰지 말거라. 엘로디 양도 아무쪼록 편히 머물다 가시길. 그럼 이만 실례.”

그는 의아해하는 가르디엔을 향해 별 거 아니란 몸짓을 취하며 밀실로 조용히 사라졌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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