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물단지 (3)
“...잠깐, 어딘가 기묘하다.”
“?”
”으으음... 뭐지? 비슷하지만 많이 다르다.”
본인의 머릿속을 뒤지던 그는, 여자에게서 감지된 낯설지 않은 기운의 정체를 곧 깨달았다. 하지만 그는 엄한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해 나디아에게 물었다.
“흐음... 나디아.”
“녜?”
“저 사람을 내게 알려준 이유가 혹시?”
“녜! 마쟈요! 수짜가 며깨 업써효! 그리구 다 희미해요!”
나디아의 능력에도 예외는 있었다. 루카스와 같은 초월적 존재는 확률 자체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초월자와 깊이 관계된 경우에도, 숫자가 흐릿한데다 내용을 읽어낼 수 없었다. 마치 야스민과 최근의 폴라처럼 말이다.
“역시로군. 잘 알았다.”
루카스는 저 멀리서 폴짝폴짝 제자리 뛰기를 반복하는 젋은 여자를 유심히 살폈다. 그리곤 재차 확신했다.
“장본인일 리는 없고... 그렇다면 새끼인 건가?”
“네? 무슨 말씀이시죠?”
인상을 와락 구긴 루카스는 폴라의 의문에 답하지 않고서 마차의 속도를 확연히 줄였다. 그리곤 마차의 겉면을 손바닥으로 가볍게 때리며 뒤쪽 편으로 크게 외쳤다.
- 텅. 텅.
“야스민! 타라!”
“헉, 헉, 네!”
지금까지 열심히 뜀박질하던 야스민이 서둘러 마차에 오르는 것을 확인한 그는, 나디아마저 짐칸쪽 페이에게로 넘긴 뒤 폴라에게 신신당부했다.
“지금부터 속도를 최대로 높여라. 그리고 마을까지 계속 그 속도를 유지해라.”
“?”
엉겁결에 고삐를 넘겨받은 폴라의 눈이 영문을 몰라 땡그래졌다.
“저 여자분이 저렇게 길목 한복판을 가로막고 서 계신데, 그건 너무 위험...”
“괜찮다. 내가 치울 거다, 끝까지 안 비킨다면.”
“그 말씀인즉...”
루카스는 다짜고짜 생사람을 잡으려는 이유를 알려달라란 그녀의 눈빛을 읽고서 이번만큼은 제대로 설명해줬다.
“나는 저것이 이무기의 자식이라 거의 확신한다.”
“이무기요? 그으... 에베슘 마을에서 잡으셨다던 괴수 말씀이신거죠?”
“그렇다. 직접 영멸시킨지 얼마 안 되서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
“아무튼 그 기운과 매우 흡사하다. 그러나 닮았을 뿐 똑같지도 않고, 또한 허약하다.”
“...그래서 그 자식마저 손수 없애시겠단 말씀인 건가요?”
“그렇진 않다. 불쌍하니까 지금은 겁만 줄 거다. 하지만 복수가 목적이라면 깨끗하게 치워버릴 작정이다. 화근은 언젠가 후회로 변하기 때문이다.”
“...네.”
선뜻 반박하기가 어려웠던 그녀는 고삐를 꽉 쥐었다.
“그럼 갈께요, 이럇!”
- 들컹, 들컹. 타다다다다다...
부쩍 심해진 마차의 흔들림에 비례하여 폴라의 신경도 온통 곤두섰다. 비교적 잘 정비된 길이긴 하나, 전복의 위험성이 아예 전무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 덜그덕, 트더더다다다...
40m, 30m, 20m... 그리고 드디어 특이점과의 거리가 10m 가량 남은 순간, 극도로 고조된 얼굴색의 여자가 뭐라고 외치면서 번쩍 뛰어올랐다.
“아아! 드디어! 드디어! 나의 ㅈ...”
하지만 불필요한 위험을 감수할 생각이 눈꼽만큼도 없는 루카스 또한 자리를 박찼다.
- 탓.
마차에 충격이 전달되지 않도록 마력을 써서 허공을 밟은 그는, 단숨에 특이점의 코앞에 이르렀다. 그리곤 자신을 향해 양팔을 뻗친 수상한 자의 얼굴을 가차없이 후려쳤다.
- 뻐걱-!
“웁!”
루카스는 여자의 돌진방향을 왼쪽으로 전향시킨 것만으론 만족하지 않았다. 그녀를 마차 경로상에서 완전히 치워버리기 위해 그녀의 복부에 오른발을 가져다 대고서 그대로 밀어찼다.
- 퍽!
“으꺅-!”
그렇게 특이점이 도로 밖으로 밀려나 땅에 처박혔다. 반면에 루카스는 그 도움닫기의 반동을 멋드러지게 잘 활용하여 다시금 마부석으로 안착해냈다.
- 척!
“됐다. 이대로 계속 달려라.”
“거, 겁만 주신다면서요?!”
“안 죽였다. 저런 건 원래 쉽게 안 죽는다.”
“......”
루카스가 이런 일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쯤이야 익히 알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전혀 당황스럽지 않은 건 또 아니었다.
“이제 저 놈도 충분히 겁 먹었을 거다. 그러니 다신 안 찾아오겠지.”
“......”
“음, 그래도 만약을 대비해야겠다. 다음 마을에서 식재료만 빠르게 구매한 후 바로 이동하겠다.”
“후... 알겠습니다.”
폴라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고나서 짐마차 운전에 집중했다. 본인 기준으로 나사가 서너 개쯤 결여된 그의 정신세계를 이해하려 해봤자, 결국엔 자신만 손해일 거란 기분이 억세게 들어서였다.
‘으휴~, 어쩌다 내가 이런 남자를... 앗?!’
그녀는 무심결에 툭 튀어나온 본심을 부정하고 또 부정했다.
‘아냐! 아니라고!’
* * * * *
사람은 살다보면 별의별 경험을 하게 되는데, 개중엔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 없는 일도 생기는 법이었다.
- 빠각!
“아악!”
- 퍼걱!
“으꺽!”
- 뿌득!
“우웳!”
특히 우연으로 치부할 일이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다’란 식으로 악착같이 반복되다보면, 필연이나 운명쯤으로 느껴지게 된다.
‘...참으로 ㅈ랄 같군.’
어느덧 4차례. 아니 처음 만남까지 횟수에 포함시켜야 마땅한고로, 이로써 5차례라고 할 수 있었다.
“또오?! 저기 또 왔어요!!!”
질겁한 폴라의 외침처럼, 앳된 소녀는 간신히 잊을만하면 귀신같이 등장하곤 했다.
루카스가 아무리 매몰차게 떨쳐내고선 작정하고 숨었을지라도, 평균 8시간만에 어김없이 그의 눈앞에 나타나 하얀 치아를 다 드러내며 해맑게 웃어댔다.
“으히히히히!”
뿌리쪽으로 갈수록 조금 밝은 색을 띄는 잿빛 단발 머리, 고양이와 같은 수직형의 붉은색 동공. 그리고 뱀의 비늘이 달마시안의 얼룩처럼 마구잡이로 혼재된 상태의 진한 회갈색 피부.
이런 독특한 외견 외에도 그녀를 단순히 불우한 광녀로 취급하기엔 범상찮은 징후가 다분했는데, 그 중에서 루카스와 그 일행들이 가장 꺼려하는 요소는 이 천진난만한 여성이 고통과 쾌락을 동일시 여긴다는 점이었다.
“오늘도 예뻐해주실거죠? 그쵸? 그렇죠?!”
“......”
온몸의 뼈와 살을 곤죽으로 만들다시피 두들겨줬음에도 겨우 몇 시간만에 찾아온 행색으로 봐선, 설령 육체를 잘게 토막내도 하등 소용 없으리라 짐작됐다.
루카스의 생각엔 영멸이란 극단적인 수단을 제외하면, 잔인함을 무릎쓰고 통째로 분쇄하는 선택지만이 이 지긋지긋한 술래잡기를 끝낼 유일한 해법 같았다.
그러나 상황이 이쯤되고나니, 아무리 루카스라고 할지라도 다른 감정보다 호기심이 슬슬 앞설 수밖에 없었다.
“...누구냐, 넌?”
“드, 드디어 제 이름을 물어봐주셨네요! 이 ‘에이샤(Asha)’는 무척 기쁘답니다! 끼야하하하하!”
“에이샤?”
“네! 주인님! 제 이름은 에.이.샤.입니다!”
상당히 잘못 꿰였단 기분이 엄습한 루카스는 단호히 부정했다.
“난 네 주인 아니다.”
“아니에요! 에이샤의 주인님이세요! 두 번째 주인님이요!”
“이만 꺼져라, 첫번째한테로.”
“그건 불가능해요!”
“왜지?”
“죽었거든요!”
그 한 마디에 합리적 의심이 절로 따라 붙었으나, 예의상 확인은 해봤다.
“...그냥 궁금해서 묻는건데, 니가 죽였나?”
“네! 근데 일부러 죽이진 않았어요!”
“......”
여러 사람의 말문이 막힌 가운데, 흥분으로 점철된 그녀의 자백이 누가 묻지도 않았음에도 줄줄 이어졌다.
“어느 날부턴가 첫번째 주인님은 절 예뻐해주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번엔 제가 사랑해드렸는데! 이 에이샤가 정말 열심히 애쓰고 애써서 보살폈는데! 며칠 못가서 죽어버리셨어요!”
뜨거운 고문과 따뜻한 손길을 분간 못하는 광인의 애정표현이야 구태여 확인 안해도 뻔할 터. 고로 제 손으로 자신의 주인을 살해했다는 고백은 허것이나 망상이 아닐 것이 분명했다.
‘뭐 이딴... 어? 가만... 혹시?’
옷에 똥물 튀긴 사람처럼 미간을 좁히던 루카스가 생각을 달리했다. 어쩌면 이는 루치펠의 안배나 도움일 수도 있었으므로, 한 번쯤은 제대로 확인해볼 필요성을 느낀 것이라 하겠다.
“...잠깐 따라와라. 몇 가지 묻고 싶다.”
“네에-!”
일행에게서 몇 미터쯤 떨어져 나온 그는, 방음효과까지 지녔던 베스퍼의 술식을 흉내낸 결계막을 펼치고서 의문점을 차근차근 짚어나갔다.
“내 이름을 아나?”
“몰라요!”
“음... 그러면 내 진실된 정체를 알고 있나?”
“아니요, 관심 없어요!”
“...뭐?”
그는 큰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가 조금 에둘러 표현했다지만, 루치펠이나 혹은 그 휘하의 명령을 받드는 자라면 이런 식의 반응을 보이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군.”
“뭐가요?”
“신경쓸 거 없다. 그보다 내가 네 주인이라고? 너는 내 이름도, 정체도 모른다.”
“상관 없어요! 주인님은 주인님이시니까요!”
“그걸론 이유가 부족하다. 내가 왜 네 주인이어야 하지?”
“저를 평생 예뻐해줄 수 있는 분이랬어요! 그리고 그 말이 거짓이 아니어서 이 에이샤는 너무너무 행복하답니다!”
“...쯧.”
루카스는 좀 전의 대답에서 원인제공자가 따로 존재함을 알아챘다.
“누가 네게 나에 대해서 알려줬지?”
“처음 보는 사람이요!”
“남성인가, 여성인가?”
“몰라요. 하지만 목소리는 분명 여자였어요!”
“...여자? 이름은?”
“안 알려줬어요.”
“...끄응... 그럼 다음 질문. 날 어떻게 찾았지?”
에이샤는 손바닥보다 작은 크기의 놋쇠 나침반을 꺼내보이며 자랑했다.
“이걸로요! 친절하신 그 분께서 선물로 제게 주셨답니닷!”
나침반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남북을 표시하는 바늘 외에도 화살표 모양의 바늘침이 하나 더 있었다.
그리고 그 잉여스러운 화살표 끝은 루카스에게 딱 고정되어 실시간으로 그를 따라 움직였다.
“......”
반사적으로 아리사엘을 얼마간 의심했던 루카스는, 이내 용의선상에서 그녀를 지워버렸다.
‘나디아란 훌륭한 신탁자도 있는 마당에 이딴 간접적인 수단은 불필요하지. 흠...’
고심의 고심을 거듭해봐도 끝내 범인을 특정 못한 그의 속마음이 ‘어떤 망할 ㄴ이 나한테 폭탄을 짬시킨 거지?’으로 귀결됐을 때쯤, 나디아가 쫑쫑쫑 다가와 작은 주먹으로 결계막을 두들겼다.
- 통. 통. 통.
당연히 소리는 전달되지 않고 벙긋거리는 입만 보였으나 해석 자체엔 무리가 없었다.
[아삐! 이거요!]
이어서 나디아는 루카스가 양피지의 내용을 읽을 수 있도록 빳빳하게 펼쳐 보였다.
“음?”
놀랍게도 나디아가 가져온 그 아리사엘의 전언 속엔 명쾌한 정답이 새겨겨 있었다.
『 행여라도 날 의심마라. 그 합성괴물을 네게 보낸 건 선계의 ‘마야키니’다. 』
아리사엘의 뛰어난 수사력으로 말미암아 수수께끼가 깨끗이 풀렸다. 그러나 덜컥 생겨난 또다른 의문점은 이전의 공백을 메우며 그의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합성괴물? 그럼 이 아이가... 키메라?’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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