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껏해야 100년, 영원같은 100년 (3)
* * * * *
아지-다하나(Azhi-Dahana).
스스로 '불타는 뱀'이라 소개하며 이름을 밝힌 괴수. 이 엄청난 골치덩어리가 자히드 남작령 '에베슘(ebesum)' 개척마을에 나타난 것은 불과 6년 전의 일이었다.
느닷없이 해당 마을의 주수입원이라 할 수 있는 철광산 근처에 둥지를 튼 그 괴수가 처음부터 사람을 공물로 강요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채광을 계속하고 싶다면, 매달 1일. 겨릿소 5쌍을 내게 바쳐라!}
일방적인 협박과 통보. 초기에 마을 사람들은 몸길이만 170미터가 넘는 뱀 형상의 괴물이 진정 두려워 어떻게든 해보려 노력했었다.
그러나 괴물의 요구사항은 매해 겨우살이도 빠듯한 이들이 덮어놓고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영주님! 살려주십시오! 도움!"
"뭣이? 괴수가 나타나? 여봐라!"
마을촌장의 간청을 접한 영주 '파르하드 자히드(Farhad Zahir)'는, 당연하게도 물적지원 대신 15명의 기사와 40명의 병사로 구성된 토벌대 파병이란 선택지를 골랐었다.
"""끄아아아아-!"""
허나 영주에게 되돌아온 것은 전멸이란 소식 뿐이었다. 그가 보낸 토벌대는 작전 개시와 동시에 괴수의 뱃속에서 영양분으로 분해됐고, 이에 화가난 아지-다하나는 기존 공물내역에 가혹한 조건이 하나 덧붙였다.
{매해 젊은 처녀를 공물로 바쳐라!}
영주가 괴수를 얕잡아봤다가 맞이한 결말라 논하기엔 심히 억울했다. 그가 토벌대로써 선뜻 내놓은 병력은 무려 영지 총전력의 1/3에 해당됐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뼈아픈 손실과 패배를 겪은 파르하드 영주는 거기서 포기하지 않았다.
'더 많은 병력! 더욱 더 강력한 마법!'
그는 자신이 충성을 맹세한 주군이자 매형인 '아델(Adel)' 백작에게 쪼르르 달려가 지원을 요청했으며, 이후 백작이 친히 이끄는 대규모 병력과 함께 돌아와 의기양양한 복수전을 속행했다.
"돌격 앞으로!!!"
"""""와아아아-!!!"""""
이 당시 최대로 동원된 기사와 전투마법사만도 각기 100명과 30명. 거기에 박박 긁어모은 보병과 용병단까지 도합 2,500명에 달했던 2차 토벌대는 가히 영지전도 불사할 수 있을 만큼의 전력이었다.
{이 벌레 같은 놈들이! 감히!}
그러나 괴수가 끊임없이 토해내는 불길 속에 군대가 잿더미로 변하는데엔 고작 반나절도 채 걸리지 않았다. 더욱이 피해는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게 진짜 재앙이었다.
{크크크크! 내가 니놈들에게 어지간히도 우습게 보였구나!}
연이은 토벌대에 분개한 아지-다하나의 꼬장과 분풀이는 절대 가볍지가 않았다.
"꺄아아악!"
"여, 여보!!!"
자신의 둥지에서부터 자히드 영주성까지 쳐들어오면서 눈에 보이는 모든 건축물을 파괴한 괴수는, 기어이 백작의 여동생이기도 한 영주부인을 꿀꺽 집어삼키며 호된 본보기로 삼았다.
{또 다시 병사들이 내 앞에서 기웃댄다면, 이번엔 네 놈의 영지로 찾아가겠다! 가장 먼저 네 놈의 핏줄들을 남김없이 먹어치운 다음, 그곳을 나의 새로운 둥지로 삼고야 말리라!}
잔뜩 겁에 질린 아델 백작이 그 날로 남작령에 대한 모든 관심을 끊은 것은 당연지사. 하물며 사랑하는 아내까지 잃고서 모든 전의를 상실한 남작은 말할 것도 없었다.
몇몇 충직한 가신들은 알푸샤리카 제후에게 상고하여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도리어 무능한 치세를 지적받아 아델 백작까지 줄줄이 실권 당하게 될 지 모른다란 반대여론을 끝내 뒤집진 못했다.
결국 이 괴수 사건 이후 매달 공물을 상납하는 일과 처녀를 매해 바치는 일은 영지민들에게 정기행사쯤으로 여겨지게 됐으며, 알푸샤리카 제후의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영지의 공공연한 비밀로써 자리를 잡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천애고아였던 제가 올해 초부터 영주님의 양녀로 들어오게 된 겁니다. 단 몇 달의 삶이라도 호사를 누려보란 영주님의 배려이셨습니다."
"흠, 그럼 아까 그 아이들은..."
"네에... 고아원에서 저와 함께 자란 동생들입니다.”
본래 16살에 자립하는 고아원의 규칙상 그녀도 이미 5년 전에 나가야 했었다. 그러나 산제물로 낙점되었던 만큼 예외를 인정받아 본인 순서가 될 때까지 고아원에서 살아왔다는 부가설명도 귀동냥할 수 있었다.
”아마도 동생들이 절 대신할 희생양을 구하겠다며 그런 몹쓸 짓을 벌인 것 같습니다."
"......"
"그러니 바리온 님! 거듭 간청드리옵건대, 모든 벌은 제가 달게 받겠습니다! 부디 불쌍한 아이들에겐 자비를 베풀어주세요!"
“크흠...”
루카스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나디아와 야스민 또한 눈치를 보며 꾸준한 침묵을 유지했기 때문에, 이 불편한 공기는 어느 시녀가 영주의 저녁식사 초대소식을 전하러 오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 * * * *
파르하드 영주는 본인 재량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것은 엄청난 무력을 지녔다고 보고 받은 루카스에게 안면을 트는 것 이상으로 욕심을 부리지 않는 그의 처세술만 봐도 충분히 가늠할 수 있었다.
때문에 루카스 일행이 귀빈으로 참석한 소규모 저녁만찬 분위기는 대단히 무난하게 끝맺는 것처럼 보였다.
"아하~, 그렇군요. 먼 바다를 건너와 성지순례중이셨군요! 어쩐지 바리온 님과 같은 굉장한 실력자께오서 별 볼 일 없는 저희 영지를 방문하셨나 싶었습니다! 하하하!"
"그래서 나는 이곳에서 며칠 더 머무를까 합니다. 허락과 양해를 구해도 되겠습니까?"
"아휴, 저야 무조건 환영입니다! 숨은 성소를 찾아다니는 순례여정은 확실히 쉽지 않겠지요! 아, 이왕이면 차라리 제 성에서 묵으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당장 별실 한 곳을 내드리겠습니다. 그리 대단친 않으나 여관보다야 훨씬 편안하실 거라 자부합니다. 더욱이 24시간 내내 경비중인 병사들도 있어서 좀도둑에 대한 걱정도 안 하셔도 될 테고요."
"흠... 그렇다면 염치불구하고 사양 않겠습니다. 저는 당신을 믿고 아내와 딸을 잠시 맡기겠습니다. 물론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
이 말로 인해 '그러면 너는?'이란 의문이 만찬 참석자들 머리위로 생겨났지만, 그 다음 이어진 루카스의 선언으로써 명쾌하게 풀렸다.
"참고로 방문할 순례지는 에베슘 마을입니다."
"푸흡!"
"콜록, 콜록!"
영주의 외아들 '라시디(Rashidi)'는 포도주를 뿜었고, 로비샤는 음식이 사레 걸려 괴로운 기침을 한사발 토했으며, 파르하드 영주는 고기를 썰던 쇠칼을 떨어뜨리며 멍한 표정이 됐다.
- 틱, 티디딩~.
"지금... 뭐라고......"
"나는 날이 밝자마자 순례길에 오를 예정입니다. 그 뿐입니다."
"커흠흠!"
영주는 과연 영민한 사람이었다. 만약을 위해 영지와의 연결점을 두고 싶지 않다는 루카스의 속내를 눈치챈 그는, 아무 것도 모르는 척 본인의 식사에만 집중했다.
"어흠! 오늘따라 고기가 참 질기군! 이래서야 소화가 잘 될런지 원~. 어헛헛헛!"
이런 영주의 무덤덤한 반응은 내심 쌍욕을 각오했던 루카스에게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다.
'응? 이상한데? 응당 '니가 얼마나 잘났기에 벌집을 들쑤시려 하느냐!'고 노발대발할 줄 알았는데... 역시 영주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
루카스는 벌컥 성내지 않고 상황을 무난하게 넘긴 영주의 냉철함과 인내심을 높이 평가했다.
* * * * *
그렇게 모처럼의 저녁만찬이 얼렁뚱땅 마무리되고 밤이 깊어진 시각. 루카스가 홀로 머무는 침실 방문을 두드리는 여인이 있었다.
- 똑, 똑.
"열려 있습니다."
- 끼이익...
루카스는 웬 보따리를 한 아름 안고 있는 로비샤를 반가이 맞이했다.
"좋은 밤입니다, 로비샤."
"늦은 시간에 실례하겠습니다, 바리온 님."
"나는 괜찮습니다. 그런데 당신의 용건은 무엇입니까?"
이에 로비샤는 보자기를 풀어 그 안에 고이 챙겨온 종이뭉치들을 가지런히 꺼내 놓으며 말했다.
"이건 과거 아지-다하나와의 전투보고서입니다. 이 자료가 조금이나마 바리온 님께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가져와봤습니다."
"흠, 미안합니다. 나는 헤트만 고유문자를 전혀 모릅니다. 혹시 당신이 내게 공용어로 읽어줄 수 있습니까?"
"앗, 죄송합니다. 저도 깊게 배우진 못 했던 터라... 고아원에서 배운 수준에선 전문용어까진 잘..."
"괜찮습니다. 개의치 마십시오. 이것은 부족한 내 문제입니다."
루카스는 뭐라도 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최선을 다해 서류뭉치를 뒤적였다. 로비샤의 싱그러운 목소리를 장시간 감상할 기회를 잃은 애석함과는 별개로, 괜스레 자책하는 그녀를 어떻게든 위로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윽고 그는 어느 별첨문서 1장을 두고 과하게 칭찬했다.
"아! 이 삽화는 훌륭합니다! 내게 큰 도움이 됩니다! 몽타주와도 같은 이런 것은 기대 못 했었습니다!"
"다, 다행이네요!"
이 말에 의기소침해져 있던 그녀의 표정도 한결 밝아졌다.
"휴우~, 자료를 전부 챙겨오길 정말 잘 했네요."
"이 보고서는 많이 상세합니다. 내가 헤트만 언어를 몰라 매우 아쉬울 따름입니다."
"아, 이 보고서는 과거에 알푸샤리카 제후께 보낼 목적에서 상세히 기록됐던 문건이라고 합니다. 제가 읽을 수 있었다면 분명 도움이 됐을 텐데..."
"아하, 그랬군요. 어쩐지..."
"원래는 괴수사건을 묵인하기로 한 당시에 이것들도 함께 파기하기로 예정됐었는데, 저희 영주님께서 훗날을 대비해 따로 보관해오셨다고 합니다."
문득 루카스는 의문이 들었다.
"음? 나는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중요한 문서를, 당신은 이것을 어떻게 구했습니까?"
"저어... 그게 말이죠... 영주님께서 그만... 실수로 금고 열쇠를 잃어버리셨거든요."
"실수로 금고 열쇠를?"
"...네에. 깜박 떨어트리신 그 열쇠를 제가 그만 멋대로 사용해버렸습니다. 순전히 제 독단으로요."
"풉, 하핫."
이번엔 루카스가 헛웃음을 짧게 터트렸다. 보나마나 '나는 모르쇠'로 일관하기 위한 영주의 발칙한 행동임이 뻔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다른 한편으론 이 시간에 영주가 로비샤를 보내온 다른 목적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그 의심은 곧 이어진 그녀의 물음을 통해 확신으로 굳어졌다.
"저기... 바리온 님. 실례가 안 된다면 제가 한 가지 여쭤봐도 될까요?"
"당연히 괜찮습니다. 나에게 물어보십시오."
"만약에요... 그러니까 아주 만약의 경우에 말입니다만... 바리온 님께서 순례 중에 우연히 마주치실 에베슘 마을의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하게 되신다면..."
루카스는 긴장하여 자꾸 말꼬리 흐리는 로비샤를 따뜻하게 다독여줬다. 누군가가 레이첼에게 말해줘도 절대로 믿지 않을 그런 친절함이었다.
"로비샤. 거듭 말하지만 나는 괜찮습니다. 당신은 주저없이 말해도 됩니다. 나는 어떤 경우에도 당신에게 화내지 않을 것입니다."
"호, 혹시라도 괴수 퇴치에 성공하신다면 저희 영지에선 바리온 님께 어떤 보상을 내어드려야 하는지... 그게 약간 걱정이.. 되네요. 에헤헤..."
그녀의 부자연스러운 말투를 통해 루카스는 자신의 뒷조사가 이미 어느 정도 이뤄졌음을 알아챘다. 그렇지 않고서야 영주가 괴수사냥의 성공 가능성을 점칠 리가 만무했기 때문이었다.
"훗, 이곳의 영주님은 보기보다 능력 좋은 인물 같습니다."
"네? 그게 무슨..."
"그는 나에 대해 어디까지 알아냈습니까?"
"아앗..."
로비샤의 얼굴에 당혹감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녀의 순백한 영혼이 보증하듯, 그녀에게 남을 속이는 재주는 없어보였다.
"누, 눈치채셨군요. 불쾌하셨다면 깊이 사과드리겠습니다."
"아닙니다. 나는 전혀 화나지 않았습니다. 처음 보는 외부인을 상대할 때는 누구나 그럴 겁니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 나는 단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정보의 출처가 어디인지도 솔직히 말해줬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그 이후에 답변하겠습니다."
루카스의 정중한 요청에 못 이긴 자백이 그녀의 붉은 입술로부터 술술 흘러나왔다.
"출처까진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파마 길드는 아닐 거에요. 거긴 정보료가 워낙 비싸기 때문에...”
“그렇군요.”
”아무튼 영주님께선 일단 바리온 님이 전투사가 아니라 마법사이심을 알고 계십니다. 또 알푸샤리카 제후령 내에선 바리온 님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시다는 이야기와, 타미아르 헬퍼드 가의 최종병기란 소문이 파다할 만큼 엄청난 분이니 언행에 항시 조심하란 당부도 있으셨고..."
"하하하... 이런..."
루카스는 쓴웃음을 지었다. 귀찮은 요정족 셋을 떨구기 위해 신분을 감춰온 그동안의 노력이 허사가 될 것 같은 형국이기에 충분히 그럴만도 했다.
'큼, 난 그저 타샤의 싸움법을 흉내내고, 그것에 익숙해지려 했을 뿐인데... 알푸샤리카의 기사들과 너무 어울린 게 잘못이었나?'
자기 딴에는 빙결 마법사로서의 신분위장을 공고히 해보겠단 마음가짐이 출발점이었지만, 대련 신청을 족족 받아들인 그 결과는 기사의 열광과 명성, 그리고 근거없는 헛소문으로 귀결되고야 말았다.
'곧 들통날지도 모르겠군. 쯧, 일단 그건 그때가서 생각하는 걸로.'
고민으로 해결될 문제만 고민한다는 루카스의 지론은, 그가 다시 로비샤와의 대화에 온 정신을 집중케 했다.
"잘 알았습니다. 나는 당신의 진실한 대답이 너무 고맙습니다."
"저어... 제가 용기내어 조금 더 솔직하게 말씀드리오면...”
“망설이지 말고 이야기 계속 하십시오.”
”...영주님께선 기대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바리온 님께서 실패하셨을 경우의 후폭풍에 비하면 별 거 아니겠지만, 행여라도 승리하고 돌아오시면 무엇을 내어드려야 할 지를 감조차 못 잡고 계십니다."
"아, 그렇습니까?"
"저희 영지는 그렇게 부유한 편이 아니니까요. 6년 전 괴수로부터 입은 피해를 다 복구 못한 구역이 아직도 곳곳에 남아있을 정도로요."
"흠..."
그는 말끝마다 조심하는 노력이 역력한 로비샤를 보며 마음을 굳혔다.
"당신이 솔직했으니, 이번엔 나 또한 솔직하겠습니다."
"네."
"내가 원하는 보상은...”
그의 커다란 손이 그녀의 손 위로 살포시 내려앉았다.
”로비샤, 바로 당신입니다."
"...네?!"
"이번 순례가 성공적으로 끝나면, 당신이 내 것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 그런..."
얼굴색이 붉어진 그녀가 황급히 말을 이었다.
"마,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영주님의 친딸이 아니에요. 바리온 님께서 성공하시면 전 다시 본래의 신분으로 돌아가게 될 겁니다. 가난한 하층민에 지나지 않아요."
로비샤가 추가적인 사실을 고백하려 했으나, 루카스가 그녀의 말을 뚝 끊고 자신의 진심을 완고히 전했다.
"아무 상관 안 합니다. 나는 그저 당신을 원합니다."
"저에 대해 아직 잘 모르셔서 그러세요. 저는 백작령의 신관님조차 포기하신..."
"그런 건 내겐 의미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입니다. 나는 당신을 본 순간 첫눈에 반했습니다. 그 뿐입니다."
"하지만..."
“좋습니다. 그러면 나는 우선 당신에게 몇 가지를 묻겠습니다.”
나아갈 길을 정한 루카스는 로비샤의 말을 싹뚝 끊어내고서 내심 우려되는 몇 가지 문제를 하나씩 짚었다.
"혹시 당신에겐 정혼자가 있습니까?"
"아니요, 이런 제게 있을 리가..."
"따로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아뇨, 딱히 마음에 둔 사람은 어, 없어요."
"그렇다면 제가 싫습니까? 혹은 무섭습니까?"
"그, 그건 아니고요."
"그럼 됐습니다. 그 외 나머지는 내게 장애가 안 됩니다. 나는 당신이 보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그렇게 정했습니다. 반드시 그렇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로비샤는 튕겨나갈 줄 모르는 루카스의 저돌적인 구애를 완만히 거절하기 위해, 지금쯤 옆방에서 곤히 잠들어 있을 나디아와 야스민을 언급했다.
"하, 하지만 바리온 님에겐... 이, 이미 저보다 훨씬 어리고 예쁜 아내분과 따님이 계시온데..."
"?!"
순간 당황한 루카스의 목구멍 너머로 설명 욕구가 훅 치고 올라왔다. 본처와 딸을 두고 파렴치하게 계집질하려는 방탕아로 인식되는 것만큼은 전력으로 저지해야 한다는 조급함마저 생겨났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당신만 알아야 합니다."
"네?"
"가장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겁니다."
"...?"
"나는 그렇게까지 쓰레기가 아닙니다."
"...아... 네에... 그러셨군요."
"아니아니, 오해입니다! 당신이 시간을 허락한다면 나는 더 자세히 해명할 수 있습니다!"
루카스는 김빠진 표정의 로비샤를 향해 알쿤다 자매의 사연과 신분위장에 대한 내용을 최대한 간추려 설명해나갔다.
"...(중략)... 마지막으로 내 진짜 이름은 루카스입니다."
- 작가의말
에고, 이거 또 자르기가 애매했네요. 하여 이번 화도 조금 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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