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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대리 님의 서재입니다.

치트 상점으로 망겜에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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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대리
작품등록일 :
2022.05.11 10:55
최근연재일 :
2022.08.31 11:14
연재수 :
1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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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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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7
글자수 :
99,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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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20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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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숲을 벗어나 (5)

DUMMY

타일러는 정말 지리에 밝았다.


어찌 그렇게 주변의 마을과 도시들을 꿰고 있는지, 진짜 거상의 아들 아니랄까봐.


우리 관계가 좀 편안해졌는지, 아니면 숲을 벗어나 기분이 좋은지, 타일러는 재잘재잘 말이 많았다.

덩달아 내 기분도 가벼워졌다.


“션님.”

“왜.”

“전부터 궁금하던 건데.”

“말해봐.”

“애초에 션님은 왜 노예로 잡혀 있었던 거예요? 그 헛간에 있을 때?”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런 힘과 능력을 가지시고, 왜 그걸 다 숨기시고 그런 수모를 다 참고 계셨냐구요.”

“말했잖아. 그땐 이런 힘이 없었어.”

“에이, 그게 말이 돼요?”

“물론 말이 안 되지.”

“숲에 들어올 때만해도 다 죽어가셨는데, 그게 연기였던건가?”

“연기 아니었어. 진짜로 다 죽어갔대도.”

“그러면 마수의 숲에서 뭔가 힘을 얻으셨다는 말씀이죠?”

“그런... 셈이지.”

“그럼 저도 가능할까요? 그렇게 갑자기 힘을 얻는 거?”

“음, 안될 걸.”

“아, 왜요? 저는 왜 안돼요?”


그야, 넌 [인피니티 브릿지]의 치트 코드를 성공시키지 못했으니까.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참고 침묵을 선택했다.


타일러가 고개를 젖혀 푸르른 하늘을 쳐다보며 깊은 숨을 내쉬었다.


“치, 또 말 안 해주시려나 보다. 하아- 아무튼 부러워요... 나도 힘이 있었으면...”


힘이 있었으면 다음에 생략된 타일러의 말에서, 그간 녀석이 겪어온 시간들이 얼마나 험난했을 지가 짐작되어 짠한 마음이 들었다.


비포장 숲길, 그것도 마수의 숲을 걷다가 밝고 너른 가도를 따라 걸으니 얼마나 편한지,

편안하게 자연휴양림에서 산책을 하는 것만 같았다.


“아, 지나가는 상행이라도 마주치면 좋을 텐데요.”

“왜, 다리 아프냐?”

“그냥 뭔가 타고 가면 좋잖아요.”

“난 걸으니까 더 좋은데.”


빈말이 아니라, [인피니티 브릿지]의 세계를 걸으면서 나는 매순간 감탄하는 중이었다.

자연의 풍광이 얼마나 멋진지.


깎아지른듯한 바위산들과 푸르른 들판이 얼마나 잘 어울리고, 그 바위산에서 쏟아지는 폭포가 얼마나 장엄한지.


이걸 일일이 찍어 자랑해야하는데. 어디를 찍어도 화보 각.


폭포에서 이어진 물줄기는 푸른 들판을 가로지르고, 그곳을 가로지르는 강의 윤슬은 햇빛을 반사해 찬란하게 빛났다.


시선이 닿는 모든 곳이, 아직 한 번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 같은 태곳적 자연의 정취를 그대로 담아내고 있었다.


이전에 플레이하며 모니터 너머의 풍경을 볼 때도 감탄한 적이 많긴 했지만, 불어오는 바람을 마시며 실제 풍경을 시야에 한가득 담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특히나 게임 상에서는 주로 차원포탈로 원하는 지점 이동을 했기 때문에 이처럼 일상적인 풍광을 즐길 일이 전혀 없었다.


‘오, 그래 맞아. 차원포탈.’


차원포탈도 게임의 한 요소였던 만큼 구매 가능한 컨텐츠이지 않을까?


무료하게 걸으며 상점을 뒤지기 시작했다.

상점창은 헤드업 디스플레이처럼 반투명하게 눈앞에 떴기에 걸으면서 찾아보기에도 무리가 없었다.


‘여기 있군! 역시!’


[양방향 차원이동포탈(영구)을 2,000코인에 구매하시겠습니까?]

- A 포인트와 B 포인트에 모두 설치해야 양방향 개통 가능.


‘역시 있었군. 2천 코인. 좋네. 역시 걷는 게 몸에도 좋지.’


아무튼 날씨도 경치도 참 좋다.



* * *



“타일러, 저 앞에서 쉬자.”

“넵!”

“식사가 다른 메뉴도 있으면 좋을텐데. 좀 지겹지 않냐?”


실제로 슬슬 같은 메뉴가 질리기 시작했다.

끼니마다 다른 음식을 다양하게 먹었던 현대인의 입맛에, 동일한 메뉴를 매끼 먹는다는 건 고역이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저는 평생 이렇게 먹을 수 있어요. 이렇게만 계속 먹을 수 있다면 뭘 더 바라겠어요.”


하지만 타일러의 감상은 다른 듯 했다.


하긴 돌 같은 빵 하나나, 허여멀건 스프 한 그릇만 먹는 사람들이 흔해빠진 세상.

잘 차린 식탁이면 진수성찬이지.


타일러는 매 끼니마다 먹은 식사에 소용된 그릇을 부지런히도 닦고 챙겼다. 그 덕에 거의 비어있었던 우리들의 배낭이 냄비와 나무그릇으로 가득 찼다.


“너 진짜 알뜰하다. 그걸 어째 매끼 다 챙기냐.”

“음... 저희 부모님이 상인이었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알게 모르게 물건을 보는 안목은 좀 있는 편이에요.”

“호, 그런데?”

“그런데 이 그릇들은 예사롭지가 않아요. 웬만한 목공예장들도 이렇게 못 만들걸요.”

“그렇구나.”​


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상점표 물건은 상등품이었다.

최하급 물약도 효능이 뛰어났고, 그저 '쓸만한'이 붙은 도구들도 품질이 우수했다.


식사를 끝내고 두 시간쯤 더 걸었을 때, 멀리서만 뵈던 강에 도착했다.

늦은 오후여서 윤슬이 더 눈부셨다.


“와, 물 맑은 거 봐. 참 이럴게 아니지.”


난 물가로 다가가 가죽 방어구를 훌훌 벗어던졌다.


“우리 좀 씻자! 우리가 못 씻은 지가 며칠 째야 대체!?”


내 꼴은 정말이지 끔찍했다. 이 망할 세계로 끌려온 지가 이제 20여일이 되었는데 한 번도 씻지 못했으니.

게다가 미노타우르스의 마력석을 채취하고, 워울프들과 전투를 치르느라 마수의 피를 뒤집어 쓴 것도 몇 번인지 셀 수가 없었다.


마수의 피에 절여지지 않았던 타일러는 나보다야 나았지만 대동소이했다.


“너도 얼른 벗어! 빨리 씻자.”


그런데 이 녀석, 영 우물쭈물하고 있다.


“저, 저는 그냥 간단히 물가에서 씻을게요.”


이건 또 뭐하는 시츄에이션?

난 녀석을 머리위로 번쩍 들어올렸다.


“아아악! 뭐에요?! 내려줘요!”​

“뭔 소리야 지금 우리가 얼마나 더러운데. 뭘 깨작깨작 씻으려고 해. 내가 물에 풍덩 빠뜨려줄게!”

“싫어요! 싫다고! 나 수영 못한단 말이에요!”


타일러가 악을 쓰며 버둥댔다.


“에?”


타일러의 말에 즉시 사뿐히 내려줬다.

과거에 억지로 물에 빠뜨리는 놀이를 하다가 큰 사고를 치를 뻔한 일이 한 번, 또 관계가 완전히 틀어진 일이 한 번 있었는데, 갑자기 그 일들이 번뜩 떠올랐기 때문.


타일러는 잽싸게 도망가더니 나와 거리를 벌렸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아, 알았어. 미안해. 너도 좀 씻긴 해야 할 거 같아서 그랬어. 그래, 그럼 그냥 물가에서 씻어. 그래도 방어구랑은 다 벗고 씻어야지.”

“제, 제가 알아서 씻을 거예요.”

“뭐, 맘대로 해.”


흥이 식은 나는 모든 옷과 방어구를 벗고 투명한 물에 몸을 천천히 담갔다.

시원한 물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히야... 어떻게 하면 물이 이렇게 맑지? 이건 계곡의 1급수하고도 비교가 안 되는데.’


21세기의 지구에서 이런 곳을 찾을 수가 있을까.

잠수를 했다가 수영을 했다가 몸을 비벼 씻었다가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


‘짜식, 삐졌나? 같이 물놀이 하면 재밌을건데.’


타일러를 보니 방어구를 부분 부분만 벗어둔 채, 식사 때 썼던 냄비를 꺼내 바가지로 활용하며 씻고 있었다.


‘와 진짜 소심하게 씻네. 저 녀석 저럴 때는 꼭 계집애 같단 말야...’


응? 계집애?

갑자기 인지 부조화가 일어나는 것 같았다.


‘그러게. 나는 왜 저 녀석이 당연히 남자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지?’


머리가 짧아서? 하의가 바지라서? 본인이 이름을 타일러라고 소개했기 때문에?

목소리가 남자 같은 목소리이기 때문에?

사실 목소리는 애매했다. 억지로 만든 듯한 목소리.


뭐가됐든 타일러에 관해 확증 편향이 작용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말 못할 이유가 있겠지.

그런 부분에서 딱히 민감하지 못한 나는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갔다.


내가 초 1급수에서 목욕을 마치고 나오자, 타일러는 시선을 피하며 등을 돌렸다.

이미 모든 갑옷까지 다 착용한 채였다.


나도 갑옷을 착용하며 재차 물었다.


“그렇게만 씻어서 되겠어?”

“네, 충분해요.”

“그래그래. 나중에 마을에 가거든 여관에서 더 제대로 씻자.”

“네...”


우리는 조금 더 걷다가 해가지면 캠프를 설치하기로 하고 다시 출발했다.


가도를 따라 걸으면 상행 따위를 만날 거라 기대했던 것은 헛된 것이었다.


상행은 커녕, 토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우리 두 사람 외에는 모든 생명체가 삭제된 것처럼 한적한 길.


아름다운 풍경에 해가 뉘엿뉘엿 지려고 하는 노을에, 조용하기까지 하니, 사위는 더할 나위 없이 고즈넉했다.


조금 전까지는.


휘이익 휘이익-


어디선가 갑자기 들려오는 휘파람 소리.


‘휘파람? 새소리는 아냐. 인위적인 소리다.’


가까운 거리.


‘다가오는 기척을 못 느꼈는데...’


아, 그렇다면 매복해 있었다는 뜻이다.


매복을 깨닫고 급히 등에 메고 있던 활을 꺼내려는데,


“활잽이, 동작 그만.”


수풀 앞쪽과 뒤쪽에서 낯선 사내들이 우르르 나왔다.


‘제길...’


상행 따위를 만나 편안히 이동할 기대를 하며 가도를 걷다가, 우리 만큼이나 상행을 기다리는 도적떼를 만났다.

정말이지 바보 같은 기대였다.


마수가 없다고 너무 안이했다.

경계하며 왔으면 매복해있는 놈들 쯤 감지해낼 수 있었을 텐데.


숫자는 약 열다섯.


그 중에 여섯은 쇠뇌를 장전한 채 이쪽을 겨누고 있었다.

낭패다. 섣불리 움직일 수가 없다.


“뭐야 이것들. 행색이, 사냥꾼인가? 사냥꾼이 뭐 이리 딸랑 둘 뿐이야? 니들 정체가 뭐냐?”


단검을 든 두 놈이 내 배낭과 타일러의 배낭을 거칠게 낚아채 입구를 열었다.


“사냥꾼이 아니라 보부상 같은뎁쇼.”

“아 씨발. 오랜만에 만난 게 별 거지같은 새끼들이야- 퉷.”

“이 놈들이라도 내다 팔죠.”

“그거야 당연한 거고 이 새끼야. 하- 노예상 놈들 만나는 거 지랄 같은데.”


놈들은 우리를 앞에 두고 신랄한 품평을 쏟아놓았다.


게다가 보부상이라니,

타일러가 얼마나 그릇들을 열심히 챙겼으면 보부상같이 보였나. 이 심각한 와중에도 헛웃음이 났다.


하지만 타일러는 노예상이란 말에 PTSD가 오는 듯, 창백하게 질렸다.

불안한 시선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잔뜩 겁을 먹은 표정은 놈들의 작은 움직임에도 유난스럽게 놀랐다.


한 놈이 타일러의 배낭을 뒤집어 그릇을 바닥에 와르르 쏟았다.


“야, 너희들 정체가 뭐냐니까? 복장은 사냥꾼이고, 짐은 보부상이고. 그냥 좀도둑이냐?”


극히 불량해 보이는 산적들,

가도에서 이렇듯 죽치고 있다는 건 한 두번 해본 짓거리가 아니란 거겠지.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아직 같은 인간을 상대로는 싸워보지 않은 나.

지구에서도 초등학교 이후로 주먹다짐 한번 해보지 않은 나였다.


마수와는 다르다. 사람이다.

사람을 죽여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자, 당장 인도주의적인 윤리적 가치관이 내 몸을 얽어맸다.


‘어떡하지?’


고민하는 찰나, 내 배낭을 낚아챘던 놈이 배낭을 뒤집어 바닥에 쏟기 시작했다.


순간, 머릿속이 빠르게 돌았다. 그리고 이후에 벌어질 일들이 시뮬레이션처럼 그려졌다.


난 망설임 없이 상점을 열었다.


투툭-


“뭐야 이건?”


가방을 뒤집던 놈이, 더러운 천에 여러 겹 싸인 묵직한 무언가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천을 벗기는 순간, 모두가 얼어붙었다.


“마력석?”


한명이 얼빠진 목소리를 내자 다른 놈들이 곁에 모여들었다.


“와, 마력석?”

“나 처음 본다. 마력석. 이런 건 몇 등급이나 되는 거냐?”

“이런 거면 얼마야?”

“어떤 마수가 떨어뜨린건데? 나도 좀 보여줘봐.”

“야! 쓰읍- 이리 가져와.”


두목으로 보이는 놈이 미노타우르스 마력석을 가져가더니, 한참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뚫어져라 쳐다본다.

이윽고,


“크크크크크킄킄큭큭큭. 하, 미치겠네.”


두목이 나머지를 둘러보며 말했다.


“얘들아, 우리가 착하게 열심히 살았더니 하늘이 이런 복도 다 주시나보다.”

“그러게 말입니다요. 형님.”


뭐, 이 미친놈들이?


“이 때깔 봐라. 게다가 이 크기까지. 이제 우리 도적질도 끝이다. 끝.”

“형님, 이 놈들은 어찌할까요? 노예상에 팔 깝쇼?”


한 놈이 우리를 가리키며 묻는다.


“어엉? 아아 그놈들?”

“네, 잡아가서 팔 깝쇼?”

“흠... 그놈의 지랄 같은 노예상들 만나 팔아봤자 둘 다 비리비리한 게 얼마 받을 거 같지도 않다. 또 이런 보물을 갖고 있던 놈들인데, 살려둬 봐야 복잡해진다. 아닐 거 같지만 만에 하나라도 귀족이랑 엮여 있어 봐라 우린 다 뒤지는거야.”

“힉, 그럼 어쩔깝쇼?”

“뭘 어째, 얼른 죽여.”

“예이.”


쇠뇌를 든 놈들이 우리를 조준하고, 마력석을 구경하던 놈들이 사격권에서 벗어났다.


쇠뇌를 조준하고 있는 놈들이 여섯.


셋은 가까운데, 나머지는 약간 멀다.


천둥벼락으로 무력화시키기엔 애매한 거리.


그리고

쇠뇌의 볼트가 하늘을 날기 직전,

난 쇼핑을 끝냈다.



작가의말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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