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526화-응보(2)
"그나저나 아쉬운데, 벤 네가 준 검은 여러모로 편리하게 사용하고 있었거든."
"뭐 그랬어?"
"물론이지. 사람들에게 쫓길때는 지진을 일으켜서 쉽게 도망치거나 아니면 맨손으로는 자르기 힘든 물건을 자를때라거나 잠잘곳이 없었을때는 구덩이를 파놓고 자기도 했었지. 얼마전에는 수백마크닐을 줄테니 그 검을 달라고 했었던 사람도 있었으니까,"
"그때 팔아 버렸으면 좋았을 것을."
제네스는 짜증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조금 미안한데,"
"미안할 것 없어. 벤 저번에도 말했듯이 나는 너를 닮고 싶거든. 이런 일이야 넋살 좋게 받아 들일수 있는 사람이 되버리고 싶어."
"하아아.."
트레이야의 뒤에서 제네스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으음."
벤하르트는 자리를 옮겨 여왕에게 물었다.
"근처에 검을 만드는 공방이 있습니까?"
"이래뵈도 도시이니 있기는 하지."
"그러면 조금만 빌려 썼으면 하는데요."
"굳이 나에게 허락을 맡을 만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되는데, 벤하르트 그대는 이미 라스펠의 영웅이나 다름 없다. 무엇을 요구한다고 해도 라스펠에서 할수 있는 일이라면 전부 들어줄 것이다. 공방을 사용하는 것 정도라면 굳이 내게 허락을 맡을 필요도 없겠지. 헌데 공방은 어째서?"
"대장장이가 공방을 찾는 이유라면 무엇이겠습니까."
"그도 그렇군."
그들은 신전을 나왔다. 여왕은 그리츠에게 벤하르트를 공방으로 인도해 주라는 지시를 내리고 궁으로 돌아갔다.
"벤. 그러면 이따 봐."
"그래."
레니아는 라스펠의 정보를 기록해 놓은 고서들을 모아놓은 도서관에 가고자 했고, 트레이야와 제네스도 라스펠을 돌아 보고자 해서 잠시 일행은 흩어졌다.
"설마 정말 검으로 라스펠을 유지할수 있을줄은 몰랐다."
"저도 반신 반의 했습니다."
"원래 대장장이 라고 하던데, 지금은 검을 만들러 가는 건가?"
"네 만들어 줘야 할 사람이 생겨 버렸으니까요. 그러고 보면 오랜만이군요."
검을 만드는 행위는 별로 즐거운 일이 아니었으나 벤하르트의 손은 간만에 흥분으로 떨리고 있었다.
'좋은 작품이 만들어 질 것 같은 기분인걸.'
벤하르트를 보면서 그리츠는 자신에게도 만들어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심을 품었다.
"이곳이 공방이네. 다저난 영감 있는가?"
"그리츠님 아니십니까. 그 일이 끝난 이후로 처음 뵙는군요. 헌데.. 엇 거기 계신 그 분은 혹시."
"그 사건을 해결해준 벤하르트 라고 하는 사람이네."
"역시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조금 살집이 있는 노인은 벤하르트에게 연신 감사하다는 표현을 하며 악수를 청했다. 손을 잡자 다저난과 벤하르트는 서로간의 실력을 습관적으로 가늠해버렸다. 다저난 노인은 표정을 달리 바꾸며 물었다.
"혹시나 해서 묻습니다만, 대장장이십니까?"
"그래. 이곳에 찾아온 이유도 검을 만들기 위함일세. 만들어 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하더군."
"그렇습니까."
벤하르트는 다저난의 손을 잡자 느낀 굳은 살과 근육으로 그가 아직도 철을 만지는 것에 익숙하고 그 실력이 상당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실례가 되지 않으신다면 만들어 주고 싶다는 검을 저와 동시에 만들어 보는건 어떻겠습니까?"
"다저난! 그게 무슨 말인가?"
"그리츠씨 저는 괜찮습니다. 오히려 바라던 바라고 할까요."
손가락을 꺽어 풀면서 벤하르트는 의욕을 불살랐다. 다른건 몰라도 벤하르트는 도공술 하나 만큼은 누구에게도 지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다저난의 심정도 이해할수 있었다.
"만들 검은 두개입니다."
"알겠습니다. 오랜만에 실력을 발휘해야겠군요."
속은 흥분으로 들끓으면서도 벤하르트의 심정은 고요했다. 마치 일상생활을 하는 것처럼 그는 검을 만들어 냈다. 힘이 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은채 정신없이 그는 강철을 두드렸다. 다저난은 벤하르트가 검을 만드는 것을 보면서 놀라움을 감출수 없었다.
일반인이 보기에는 그저 투박하게 검을 만들고 있는 모습이었지만, 긴 세월동안 철을 두드려 오던 다저난의 눈에 벤하르트의 실력은 하나의 극치를 이루고 있었다. 벤하르트가 검을 잘 만드는것 이전에 그것을 '알아차린' 다저난의 실력도 사실은 엄청나다 할수 있었지만, 그리츠의 눈에는 지루한 검 만들기일 뿐이었다.
"후우.. 다 됐군요. 승부는 어떻게.."
"됐습니다. 깨끗하게 져버렸군요. 이거 참 라스펠을 대표하는 대장장이라는 딱지도 이제는 집어 치워 버려야 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다저난님의 실력은 굉장합니다. 아마 제 나이가 되면 제 수준에 이르는 것도 가능할 겁니다."
다저난은 겉으로는 젊어 보이는 벤하르트의 그 말이 허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가 만져본 벤하르트의 손은 수십년간 쇠를 만지고 검을 제련해온 손이었다. 처음에는 저토록 젊은 사람이 어떻게 이런 손을 가지게 되었을까 하고 생각했지만, 지금의 말을 듣고 보면 어찌된 일인지는 금방 감을 잡을 수 있었다.
"고맙습니다."
"저야 말로 소중한 공방을 빌려주어 고맙습니다."
오는 길. 그리츠는 넌지시 물었다.
"자네가 만든 그 검 한번 만져 봐도 되겠나?"
벤하르트의 성격상 당연히 승낙할거라고 생각했지만, 그의 예상과는 달리 벤하르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거절의 의사였다.
"안됩니다."
"어째서..?"
"이 검은 주인이 따로 있는 검입니다. 따라서 제일 먼저 검을 만져야 할 사람은 이 검의 소유자가 될 사람 뿐입니다."
"하지만,,"
"정 만져 보고 싶다면 제 검을 빌려 드리지요."
벤하르트는 염령검을 뽑아 그리츠에게 빌려 주었다. 그리츠는 염령검을 받아 들고 한번 뽑아 보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별 이상 없어 보이는 흔한 검이었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정기는 열화처럼 타오르는 힘이 잠들어 있었다.
마법을 다루는 그리츠는 얼마나 대단한 검인지 단번에 파악했다.
'이정도의 힘이 있기에 그 지령검이 라스펠을 지탱할수 있었던 것인가."
그는 검을 바닥에 대어 살짝 움직였다. 무른 돌 정도는 힘을 들일것도 없이 두부처럼 잘라버리는 날카로움에 또 한번 놀랐다.
"지금 만든 검도 이정도 수준은 된다는 건가?"
"아마 그것보다는 더 괜찮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건 어떻게 알지?"
"저는 검을 만들고 나면 한번 제 손끝에 상처를 내어 봅니다. 그것을 가지고 얼마나 검이 잘 만들어 졌는가를 가늠하지요. 이번에 만든 검은 정신없이 집중해서 만들수 있었기 때문인지, 정말 좋은 검이 만들어 진 것 같습니다."
"대단하군. 혹시 조금의 수고를 들여서 내 검도 만들어 주지 않겠나?"
벤하르트에게 염령검을 건네주며 묻는 그리츠의 질문에 벤하르트는 고개를 저었다.
"죄송하지만, 만들어 줄수가 없군요."
"어째서.. 노력에 대한 값이 없어서 그런가? 그렇다면 하계에서 사용하는 마크닐로,,"
"돈의 문제는 아닙니다. 물론 있으면 좋긴 합니다만은, 제 사형이 그러더군요. 저 같은 사람은 검을 만들어 줄때 사람을 가려서 만들어 주라고 했습니다. 하나의 검으로도 수백 수천명을 앗아갈수 있는 검이 될수도 있기에, 절제하라는 의미 였지요."
"가리라니 그렇다면 나는 만들어 주면 안되는 사람이라는 것인가?"
"극단적으로는 그렇게 말하지는 않겠지만, 굳이 따지자면 그렇습니다."
"어째서지? 나는 허투로 인명을 해치기 위해서 검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 아니다."
벤하르트의 검을 한번 보고 난 그리츠는 그 욕망을 감출수 없었다. 설득할수 있다면 설득하고 싶었고, 얻을수 있다면 얻고 싶었다.
"그럴지도 모릅니다만, 저는 라스펠의 사람들에게는 검을 만들어 주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뭐? 그럼 그 두개의 검은 누구 것이지? 하나는 일행의 검이라고 해도 하나는.."
두개중 하나는 여왕의 검일 거라고 생각했던 그리츠의 생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제네스의 것입니다."
"그녀석은 항상 뒤에서 불만을 토로하던,"
"하지만 끝까지 도와 주었죠. 저는 일전에 그 남자의 팔을 앗아갔습니다. 그때의 그였다면 검을 만들어 주는 일은 없었겠지만, 지금의 그라면 트레이야를 믿고 검을 만들어 줘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어째서 만들어 주지 않는 건지 이야기 해 줄수 있을까? 하루에 두개 밖에 만들지 못하는 건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라스펠의 사람들이 악하다고 까지는 이야기 하지 않겠지만,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생각해보면, 목적을 위해서라면 설사 조금의 '악' 정도는 쉽게 이용할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무슨 소리를..."
"여왕은 우리들을 은인이라고 생각했고, 아마 그것은 사실이었겠지요. 마누어는 단순해서 우리들을 노렸지만, 그리츠씨 만약에 확실하게 우리를 제압할수 있었다면, 당신도 그런 생각을 하지 말란 법은 없었습니다."
"나는.."
그리츠는 말을 삼켰다. 아니라고 확답은 할수 없었다. 사실인 즉슨 그는 마누어의 생각을 탓한게 아니고 마누어의 '실패'를 탓한 것이었다. 하려고 한다면 '왜 좀더 확실하게 하지 못한 것인가' 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니 안되는 겁니다. 이 검을 만들어 주게 되면, 이후 있을지 모르는 불합리를 부추기는 물건이 되어 버릴 테니까요. 라스펠을 위해서 검을 만들어 주지 않았다. 이런 말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그냥 개인적으로 마음이 내키지 않는 군요."
"어떻게 해도 안되겠나?"
"네. 안됩니다."
아쉬움을 삼키고 그리츠는 그 뒤로 아무 말도 없이 벤하르트를 숙소로 데려다 주었다.
- 작가의말
축제 기간동안 별로 놀지도 못하고 술도 못마시고 그냥 에헤라 디야 소설만 쓰고 지냈네요. 이래 뵈도 소설 쓰는게 한시간 반~두시간 정도는 걸리는 지라.. 나름대로 시간을 꽤나 잡아 먹는것 같습니다. ^^;; 그나저나 내일도 학교를 가야하는 슬픈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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