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518화-거래(5)
다음날 아침이 밝았다. 햇살이 들어오자 레니아는 일어나 창문을 통해 라스펠을 내려다 보았다. 그들이 머무르고 있는 곳은 궁성중에서도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도시가 한눈에 들어왔다.
공중에 떠 있는 도시의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는 기분은 생각보다 좋은 것이었는데, 라스펠의 사람들의 하계에 대한 생각을 어느정도는 알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이래서 높은곳을 선호하는지도 모르겠군.'
자신도 그렇지만 보통 '신'들은 무엇인가 뜻이 있는 곳을 자신의 터로 삼곤 했다. 자신은 산을 다른 신들은 강이나 혹은 숲같은 어떤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곳이 곧 신의 터인것이 많았다. 신이 머무르고 있는 자리는 곧 신의 영역임과 동시에 신의 비호를 받는 자리가 되어 버리곤 했다.
레니아는 본의 아니게 버리기는 했지만, 자신이 머물렀던 노시엘트 산을 떠올렸다. 라스펠의 사람 그리고 여왕에게 있어서 라스펠이라는 곳은 그런 의미였을 것이다. 망하게 되면 함께 죽어버릴 정도의 각오가 그들에게는 있었다.
"나는 어떨까."
없었다고 딱 잡아 말할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산과 함께 사라질 각오를 했다고도 말할수 없었다. 실제 그녀는 그녀의 근원을 버리고 이곳에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 선택은 과연 옳았을까.'
스스로에게 물었다. '엔쿠라스'를 찾아 헤매는 여행에 혹해 그녀는 지금 여행을 하고 있었다. 위기와 즐거운일이 함께하는 이 여행은 정말로 즐거웠지만, 과연 이것은 정말로 괜찮은 것인지에는 의문이 들기 마련이었다.
'나는 신일까 인간일까?'
이미 그녀는 몇번이고 이전에는 신이라는 말을 들어왔다. 주먹을 꾹 쥐어 봐도 신의 힘은 느껴지지 않았다. 집중을 해봐도 신의 힘은 역시나 느껴지지 않았다. 과거 신이었다는 말은 역으로 생각해보면 '지금은' 신이 아니라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정말로 웃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신이 아닌 이상 그녀가 '엔쿠라스'에 찾아가야 할 명분이 사라지게 되어 버리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녀는 이제 개인적으로 자신이 신이 아니라고 해도 상관은 없었다. 신이라는 것에 구속당하지 않았다. 신이든 신이 아니든 자신은 자신이었고 이제와 스스로가 신이 아니게 되어 버렸다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거나 수치를 느끼지는 않았다.
되려 걱정하는 것은 이 여행의 명분에 대한 문제였다. 신의 성지에 가고자 하는 이유는 그녀가 '신'이었을때에 신들의 성지에 가보고 싶었던 것이었다. 지금 거진 신이 아니게 되어 버린 그녀의 입장에서 엔쿠라스를 찾고자 하는 행동은 사실은 의미 없는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녀는 그 의미 없을 지도 모르는 명분을 놓고 싶지는 않았다. 자신과 벤하르트를 이어 여행을 만들어 주는 계기이자 '목적'을 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엔쿠라스라..'
그녀는 엔쿠라스에 대해 생각했다. 지난 수백년 그녀는 무료했다. 홀로 지냈던 나날들 변함없는 하루들 무엇이든 손에 들어오지 않는게 없는 생활들.. 그랬기에 갈구했다. 신으로써 얻을수 있는 손에 들어오지 않는 보물을.. 그것은 신들 사이에서 전설로써 전해져 내려오는 신들의 성지인 엔쿠라스 였다.
갈구하고 또 갈구했다. 하지만 어떤 방법을 취해도 엔쿠라스에 갈수 있는 방법은 알아낼수 없었다. 사령을 모은다라는 것조차도 사실 엔쿠라스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 그녀는 아직도 알지 못했다.
'그토록이나 알아내고자 했는데도 이런 간단한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었는데, 이게 과연 정말 엔쿠라스에 갈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는 걸까.'
그 열망적인 나날을 생각하고 그녀는 살짝 웃었다. 비약 레나스트를 만들기 위해 하루하루를 전력으로 살아가던 그 때는 사실은 조금 재미가 있었을 지도 몰랐다. 그런 노력을 빼앗아간 것이 눈앞에서 곤히 자고 있는 벤하르트라는 사실이 또 웃긴 것이다.
하지만 진정 이상한 것은 그토록이나 수백년동안 정신 없이 생각하고 있었던 엔쿠라스를 요즘은 생각하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에 있었다.
"이녀석이 먹어버린 레나스트는 어떤 비약이었던 걸까.."
자신이 만들기는 했지만, 신들의 한계를 벗어나게 해주는 '약'을 만들고자 한 그 시도가 어떤 '것'인지는 만든 본인조차 모르고 있었다. 단순하게 인간을 젊어지게 만드는 약이었던 건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있는 것인지. 수백년동안 붙어서 만들었던 약초였기 때문에 궁금하지 않은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궁금함 보다도 그녀는 레나스트에게 감사하고 있었다. 레나스트가 아니었다면, 그녀가 벤하르트와 만날일은 없었다. 그저 단조롭게 하루 하루를 지내다가 인간의 시체를 보고 또 다시 무덤히 지나가는 하루를 반복했을 것이 틀림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레나스트는 외적인 의미에서 그녀에게 기적을 불러 일으켜 준 것이나 다름 없었다.
'이 여행이 얼마나 더 계속 될지는 몰라도, 길어 질수 있기를.'
합장하고 그녀는 누구에게 향하는지도 모르는 기도를 살짝 했다.
해가 중천에 뜨자 레니아는 벤하르트를 깨워서 여왕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어제 일도 있는데 조금 대하기 껄끄러울 것 같다."
"당당하게 행동해. 잘못한 건 저쪽인데 괜히 우리가 물러설 필요는 없잖아?"
"그거야 그렇지. 그러니까 서로간에 그 미묘한 분위기가 짜증날 것 같아서 말이지."
"뭐 그거야 그럴지도."
시종은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건가 해서 고개를 갸우뚱 거리면서 그들을 여왕에게 안내했다. 여왕은 어제의 그 자리에서 한치도 벗어남 없이 앉아 있는듯 했다.
"하루 종일 거기에 앉아 있는건 아니겠지?"
"이 몸은 나이기 이전에 샤모나의 몸 항상 이곳에 있을리는 없지. 농담에 너무 진지하게 대답했다면 미안하게 생각하겠지만,"
"내가 말하긴 했지만, 그런 쓸데 없는 이야기는 나중에나 하도록 하고, 오늘은 라스펠에 온 목적을 달성하고 싶은데 말이지."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라스펠에 용건이 있어서 왔다면 역시 '정보'겠지? 그래서 어제 밤새 준비를 해두었다."
여왕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을 안내했다.
"저기 말야. 우리가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조금 우습기는 하지만, 호위 안붙혀도 상관 없어?"
여왕은 그리츠나 마누어 심지어는 자고왕 마저도 동행하지 않고 홀로 그들을 안내했다. 왕좌의 뒷편 주문을 외자 비밀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아니 됐다. 그대들이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면, 이미 부질 없는 일이기도 하고, 어제의 대가라고 생각해도 좋다. 아 혹시나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의심은 하지 않아도 돼. 각자 이전 무너진 도시를 복구하고 있는 중이니,"
"별로 의심은 하고 있지 않아. 이쪽도 그정도 수는 사용하고 있고,"
레니아는 손가락 끝에 느껴지는 마력의 실로 마누어의 위치를 대략적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어디로 가는 길이지?"
"이 길은 라스펠의 중추 도서관과 연결 되어 있다. 그 도서관에는 세계에서 있었던 일들을 기록 하고 있지. 한동안은 정지되어 있었지만, 그간 있었던 자료들을 토대로 확실한 추정을 통해 공백의 기간을 메울 생각이다."
"도서관과 연결되어 있다고, 그럼 우리들의 정보도 도서관에서 찾아야 하는 건가?"
"아니 그렇지는 않다. 도서관과 연결이 되어 있기는 하지만 지금 가고자 하는 것은 정보를 통합 시키는 장소에 가는 것이다. 내 마법은 세계에 눈을 설치해 중요한 정보를 모으는 행동을 하는 것이지. 그 정보는 영상으로 기억으로 그리고 곧 경험으로 대체 되어 진다. 마치 그런 기억이 있었던 것처럼 이해할수 있게 되어 버리는 것인데, 그것을 토대로 라스펠은 세계의 정보를 기억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 지금 가는 곳은 그곳이라 이거지? 우리가 알고 싶은 것도 알수 있는건가?"
"그건 알수 없지."
여왕은 차분하게 말했다.
"저번에도 이야기 했듯이 라스펠의 정보는 결국은 하계의 사람들보다 월등하게 많을 뿐. 모든 것을 기록 하고 있는게 아니다. 물론 단순하게 하계의 사람들은 라스펠에 가면 모든 정보를 찾을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그 정보를 우리가 알수 있었는가?가 더욱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예를들어 나의 아내가 바람을 피우고 있는가? 우리들의 조직원은 배신하지 않고 있는가?에 대답은 정보를 조사해보면 얻어낼수 있지. 그건 '스스로가' 모르고 있었고, 알아낼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기에 생각해보면 마치 라스펠에 정보를 물어본다면 모르는 것은 없을 것이다. 라고 생각할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저 많은 정보를 바탕으로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 뿐이다. 너희들이 묻고자 하는게 터무니 없는 것이라면, 라스펠에서도 모를 가능성이 충분하지."
"그렇군요."
"그래. 그러니까 아마도 힘들 것이다."
"그렇군."
레니아의 표정은 살짝 변해 있었다.
"왜 그래?"
"벤 생각해봐. 사실 라스펠이 령을 빼앗겼을때 이들은 이 정보를 바탕으로 령을 찾아 내려 했을거야. 빼앗긴 '풍령' 대신에 '지령'이라도 찾아내고자 했겠지. 혹은 다른 령을 필요로 했을지도 몰라. 하지만 나라가 멸망할지도 모르는 상태가 되어서도 '찾을수 없었다.'는 것 아니겠어? 풍령은 위치를 알고 있었지만, 다시 되찾아 올수는 없었고, 라스펠이 되찾아 올수 없었다는 건 우리들로도 불가능할지 모른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니까,"
"아.."
"령이라는 것은 그만큼이나 얻기 어려운 것이라는 이야기지. 너희들이 원하는건 역시 령 이었군."
"이게 그저 여행을 하다가 훌렁 들어왔을 뿐이라면, 아마도 벤은 라스펠에 훌러덩 줘버렸을걸?"
여왕은 살짝 온화하게 웃어 보이며 발을 멈추었다. 눈앞에는 거대한 문이 있었다. 비밀통로의 길은 굉장히 구불구불 했지만 상당히 작았는데, 어느새 거대한 문이 나타난 것이다. 알아 볼수 없는 문자로 쓰여 있는 거대한 문은 알수 없는 위엄을 드러내고 있었다. 여왕이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자 문은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령을 알아낼수 없다는 것은 지금도 불가능 하다는 것 아닌가?"
벤하르트가 레니아에게 묻자 여왕이 대답했다.
"아니 그렇지는 않다. 그때 령이 필요 했을 그 시점에 분명 우리는 풍령을 제외한 다른 령을 찾아 내지 못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 이 시점의 경우 령이 있을지 없을지는 알수 없는 일인 것이지."
"그렇다네."
- 작가의말
연참대전 종료로군요. 참 이번 연참대전은 길고 힘들었습니다. (대학 생활도 자꾸 겹치는데다 자꾸 불러대서,, 저는 인기도 없는 편인데 이번에는 은근히 바빴네요.)
마지막에는 댓글이 잘 달리지 않아서 조금 슬프네요. 이 경우는 소설을 못쓴 제 탓을 해야 겠지만요.
슬픈 이유는 연참대전의 마지막을 조촐하게 장식하게 되서 입니다. ㅠㅠ;;
항상 댓글을 남겨주시는 심생종기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아래에서부터 쭈욱 올라오면서 댓글을 남겨주신 은하계님에게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번 연참대전을 하는데 힘을 팍팍 밀어 주신 분들....
그 외에도 사비님 batray님 사비님 알테마웨폰님 귀염고양님 닉네임을 바꾸신 꼬매네요님 ACHT.W님 강림악마님
그리고 좋은 조언을 많이 해주신 무식국어쌤님도 정말 감사합니다. 이로써 이번 3월 연참대전을 마칩니다.
그리고 정말 이유가 있어서 한동안은 못쓸것 같네요. 일단 다음주는 엠티 준비(제가 조장 ㅠㅠ;;;)와 그 다음주는 시험을 세번 나눠서 보는 과목이 있어서 시험 준비.. 그리고 그것을 넘으면 또 다른 시험 준비들이.. 슬슬 목을 들어 올테고, 등산대회다 뭐다.. 생각하기도 싫은 것들이 줄줄이.. 슬픕니다.
그래도 기회나거나 원하시는분들이 많으면 쓰도록 하겠습니다.어쨋든 연참대전 클리어입니다!
Comment '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