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452화-대형(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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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하르트와 함께 밖으로 나온 덴은 곧장 창백한 얼굴로 쓰러져 있는 레니아를 향해 다가갔다. 라프라는 그를 보고 잠시 멍한 얼굴로 멈추어 섰다.
"아."
"잠시만 비켜줄래?"
살짝 손을 흔들자 살랑 바람이 일어 라프라를 포근하게 밀어 제쳤다. 벤하르트는 라프라가 비켜주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라프라 본인은 귀신에라도 홀린듯 덴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는 레니아의 머리에 손을 가져갔다. 미묘하게 표정을 변화하는게 레니아와 확실히 무언가를 이야기하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모습을 보고 벤하르트는 걱정이 들었다.
'그러고보니 레니아의 해독약이 생각보다 구하기 어려운 것이면 어떻게 하지?'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레니아는 어떻게든 약재를 자신이 구해주면 될 일이지만, 마을사람들은 죽을텐데,, 로 점차 뜬금없는 걱정으로 퍼져 나갔다.
그 와중에 덴은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떻게 됐어요?"
덴의 표정은 밝은것도 아니었고 어두운것도 아니었기에 읽을수가 없어 벤하르트는 초조하게 물었다. 그에 그는 동문서답 하듯 말했다.
"생각보다 이 여자는 더 대단한 여자로군."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아니 약은 만들수 있는건지?"
"그점은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약은 만들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왜 그렇게 심각한 얼굴이었던 겁니까?"
영문을 모르겠다는듯 벤하르트는 뚱한 얼굴로 물었다.
"아 그건.."
그는 차마 벤하르트를 놀리려 했다고는 아무래도 그의 진중한 성격상 말하지 못했다.
"어쨋든 치료를 하는건 가능하니까 너무 걱정 하지마라."
"그런데 대단한 여자라는건 무슨 뜻입니까?"
"일단은 약을 만들면서 이야기를 하도록 할까? 너희들은 이곳에서 기다려라."
"예 스승님."
아이들은 까르르 웃고는 라프라를 데리고 달려가려 했다. 그때 라프라는 벤하르트가 레니아를 보는것을 놓치지 않았다. 아이들의 손을 거절하고 그녀는 레니아의 곁에 앉았다. 그 행동에 벤하르트는 꽤 놀랐다.
처음 만났을때만 해도 라프라는 눈치라고는 별로 없는 아이였다. 나이를 먹은것도 아니고, 선천적으로 깊은 생각을 하는 아이는 아니었는데, 어느샌가 굉장히 눈치 빠른 아이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는 라프라의 모습에 이전 그녀를 원망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얘 놀자."
"난 레니아 언니를 봐야해."
"그럼 우리가 이 근처에서 놀아야 겠군."
아이들도 꽤 성숙했는지 적당히 타협해서 근처에서 놀며 라프라를 끼워 주었다.
"저 아이들은 누굽니까?"
"우리처럼 버려진 아이들이지. 이름은 내가 지어 줬다."
"연철장의 특색인가보군요. 버려진 아이들을 모으는것은."
벤하르트는 닐스의 연철장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럴지도.."
덴은 구석을 돌아 여러가지 약재가 모여 있는곳에 이르렀다. 방안을 가득 메운 약재들의 모습을 보고 벤하르트는 감탄했다.
"대단하군요."
"젊었을때 모아두었던 것들이다. 부족한 부분은 이 산에서 재배를 해서 다시 메꾸고 있지. 하지만 카이후의 독의 경우 여러가지 약재가 필요한건 아니니까,"
"그나저나 아까도 물었지만 대단한 여자라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그 레니아라는 여자는 신이었지?"
"예."
벤하르트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약의 신이라고 했었지."
"그렇죠. 여러가지 대단한 약들을 만들었습니다. 저는.. 피치못할 사정으로 조수를 맡고 있었죠."
그저 레니아의 곁에서 그녀의 약을 실험한것 뿐이었지만, 확실히 레니아는 대단한 약들을 많이 만들었다. 그 무렵의 레니아는 비약 레나스트를 잃었지만, 무료한 생활을 의미있는 생활로 만들어준 벤하르트의 '그런 일들이 가능한 실험체'를 얻었기에 꽤나 즐거워 했었다. 벤하르트도 그때의 일을 떠올리자 조금은 그립게도 느껴졌다.
"그런데 말이다. 레니아의 약이 대단한 이유는 그 선 후가 극명하게 파악되었다."
"무슨 뜻인지.. 잘 알수가 없군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문제를 말이다."
옛부터 벤하르트는 하나를 말해주었을때 열을 아는 재주 따위는 없었다. 하나의 말을 풀어서 이야기 해주면 더 잘 이해하는 동생이라는것을 잘 알고 있었던 덴은 다시 입을 열었다.
"레니아가 뛰어난 약을 만드는것은 약신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그녀 스스로가 뛰어나서 였을까? 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이야기의 맥락상 덴이 레니아에 대해 말하는 내용이 전자일리는 없었다.
"그렇다면 뛰어나서 였다는 말이겠군요."
"그래. 예를 들자면 이렇다. 약의 신이라는 것은 형식적인 것이다. 신이라고 해도 모든 약을 만들어 낼수는 없지. 더 뛰어난 독의 신이 있다면 그보다 밀릴 뿐인 것이다. 상징적으로 누군가에 의해 필요하기에 약의 신이라는 직책을 맡고 있다는 것이지. 그렇기에 약과 관련한 일들에 정통하지만, 그것이 모든 약을 만들수 있다는것은 아닌 것이다. 설사 신이라고 해도 말이지."
"그렇군요."
"하지만 레니아의 경우는 다르다. 이미 신의 힘을 잃어버린 지금도 스스로의 힘으로 약을 만들어 내는 방법을 익힌 것이다. 쉽게 말하면 그녀는 '인간' 으로써 신의 비약을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가 되지."
벤하르트는 그녀가 신조차 뛰어넘는 비약인 레나스트를 만들었던 일을 기억해냈다. 신이 신을 뛰어넘을수 있게 만드는 비약이라니, 실상 말을 들으면 간단한듯 싶지만 그것이 얼마나 가능하기 어려운 일이었는지 그는 이제서야 감각적으로 느꼈다. 그 약을 얻기 위해서 두보엔이 직접 나설 정도로 그 약의 가치란 대단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런것을 내가 먹었다는거지.'
레니아의 이전 성격을 생각해볼때 자신이 죽지 않은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레니아는 천성이 모질거나 난폭하거나 악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자비로운면과도 거리는 멀었다. 500년동안이나 혼신의 힘을 다해서 만든 비약을 어디선가 죽으려고 했던 인간이 먹어 버렸으니 그 심정은 상상하지도 못할 것이었을 것이다.
무료함을 달래가면서 500년의 시간.. 벤하르트로는 상상도 할수 없었다. 당시의 레니아가 인간을 흡사 벌레를 보는것과 같은 시선으로 보고 있었던 점을 생각하면, 살아남은게 기적처럼 느껴질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내 그는 생각을 바꾸었다.
레니아는 매사에 난폭한것 같이 굴지만 내면은 한없이 다정한 여자였다. 실로 그에게 불만을 토로할때는 언제든 자신이 억지를 부렸을때였던 것이다.
실제 분노하기는 했을것이다. 분명 고의였다면 죽일수도 있었겠지만, 그것이 우연이라는것을 그녀라면 알았을것이 틀림 없었다. 유연하다고 생각해도 근본적으로는 고지식한 그녀의 입장에서 우연이라는것을 알면서 누군가를 죽이지는 않았을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미안한건 부인할수 없는 사실이군.'
"그녀는 지금 인간으로써 '마법'을 이용해 신의 힘을 구현해 내고 있다."
"예?"
"이전의 그녀였다면 '신의 힘'으로 별개의 재료를 이용해 약을 만들고 연구할수 있었겠지만, 지금의 경우는 달라. 모든 신과 관련된 힘을 잃어버린 지금 그녀가 약을 만들수 있는 수단은 한정 되어 있지."
"약은 재료로 만드는게 아니었습니까?"
"물론 기본은 재료로 만들지. 하지만 만능의 힘을 앞에 두고 그것을 사용하지 않을 자가 누가 있겠나. 레니아의 경우도 마찬가지. 근간이 되는 재료를 바탕으로 자신의 힘으로 재료를 변환 시켜서 약을 창조해 낸다. 실로 약의 신 다운 능력이지."
"하지만 신의 힘을 잃고 마법도 못쓰는 얼마간에도 그녀는 약을 만들수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벤. 그녀는 이미 자신이 만드는 모든 약의 제조법을 머리에 달고 다니는 신이다. 즉 재료만 있다면 무엇이든지 만들수 있는거지. 딱히 신의 힘을 쓸 필요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신의 힘을 쓰게 되면 최소한의 재료로도 최대의 아니 상상하는것 이상의 효과를 낼수 있게 되는것이지. 힘을 전부 잃었다고 해서 약을 만들지 못하는건 아니야."
그는 약재를 꺼내서 몇가지를 섞으면서 말했다.
"그렇습니까?"
"벤 너는 마법에 대한 공부를 굉장히 게을리 했구나. 아니 애초에 모든 공부를 게을리 했던가. 도공술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게 없었지."
"검술은 루크 형님에게 배워서 기초정도는 배웠지만, 다른것은 아예 생각도 안나지요."
"레니아가 사용하는 마법은 인간으로서는 본래 도달하지 못하는 마법이다. 그녀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마법은 신의힘을 마법으로 돌리는 역할을 하는 마법이다."
"형도 사용하지 못하는겁니까?"
"너란 녀석은 어리숙하구나. 루크에게 조금 말좀 들었겠는걸. 애초에 '신'이 되어 보지 못한 나는 그 마법이 어떤것인지 인식할수가 없다. 하지만 레니아는 전직이 신이었지. 지금 신의 힘을 잃어 대용으로 마법으로 신의 힘을 대처하는것. 나는 그 경험이 없기에 그 힘에 대한것을 이해할수 없는것이다. 지금 만들려고 하는것도 고작해야 레니아에게 술식을 겨우겨우 익혀 만드는것 뿐이니,,"
"레니아가 형보다 더 똑똑하다는 겁니까?"
"비교할것도 없지. 나는 무언가를 익힐수는 있지만, 만들어내는것에는 서툴다. 그래 벤 너나 루크보다도 서툴러. 스승님에게 모든 방면의 기술을 배우고 습득하고 마치 천재인것마냥 너희들에게 떠받들여 졌지만, 실상 그것들은 배운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 이상의 것을 갈구 하지는 못하는 것이지. 나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야."
그는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덴은 살짝 놀란 얼굴로 벤하르트에게 물었다.
"뭐가 말이냐?"
"형님은 대단하신 분입니다. 저는 고작해야 도공술 하나만을 익히는 데에도 바빠 다른것은 생각할 겨를 조차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덴 형의 경우는 그 전부를 익혔지 않습니까. 거기에 이 에린델의 마력석을 만든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형님이 대단하지 않으면, 존경해 마지 않았던 제 입장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네가 존경했던건 루크였잖냐."
"루크형님도 존경하고 있지만, 그만큼 덴형도 존경하고 있어요. 정말입니다."
덴은 약을 달이면서 시큰둥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냐. 그나저나 존경하는 사람 치고는 루크는 형님이고 나는 형이라 이거지."
"아니 이건.."
벤하르트는 당황해서 어찌할줄을 몰랐는데 그 모습을 보고 덴은 살짝 미소짓고는 말했다.
"농담이다. 이제와 형님이라니 닭살이 돛아서 들어주지 못하겠구나."
"예."
'역시 너무 달라지신것 같은데,'
여하튼 벤하르트가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을때 덴의 손에서 한차례 빛이 어렸다. 그 마법이 얼마나 어려운것인가는 덴의 표정에 잘 드러나 있었다. 평소 흐트러짐이 없던 덴의 얼굴에는 상당히 집중으로 뭉친 표정이 서려 있었다.
"역시 대단해. 이 마법을 술식으로 엮었다는건."
"그게 그렇게 대단한겁니까?"
"설사 내가 신의 힘을 경험했다고 해도 술식을 짜내지는 못했을 거다. 레니아도 전부를 할수 있는것은 아닌 모양이다만, 몇개는 할수 있는것으로 보여지던데,"
"하지만 레니아도 형의 마법을 알아내는데 꽤 긴 시간이 걸린데다가, 덴형을 엄청나게 칭찬하던데, 그녀석이 남을 칭찬하는것은 흔한 일이 아니거든요."
"그건 다르지. 나는 레니아에게 어떻게 이 마법이 이루어지는지 직접 술식을 들었다. 하지만 레니아는 매개체를 통해 내 마법을 훔쳐간 것이거든."
벤하르트도 레니아가 대단하다는건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몸으로 와닿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당연한듯이 대단하다고 생각만 했을뿐. 그것이 어느정도나 대단한지 감을 잡을수는 없었던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자신이 우러러 보기만 했었던 덴이 레니아에 대한 찬양에 가까운 칭찬을 하는것을 보고나서야 새삼 그녀가 신의 힘을 떠나서 대단하다는것을 깨달았다.
"어쨋든 완성이군. 이걸 레니아에게 먹이면 된다."
"그렇군요."
"그럼 잘 부탁한다. 벤."
그 말에 벤하르트가 물었다.
"뭘 부탁합니까?"
"이것 말이다. 먹여 주어야지."
"알아서 먹... 예? 잠깐 만요."
"레니아의 신체는 전부 굳어 있다. 그건 입도 예외는 아니지. 전신이 마비되어 있는것인데, 숨을 쉴수 있는것 외에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지? 마시는것 조차도 할수 있을리 없지. 누군가가 강제로 밀어 주는 수밖에 없는거다."
"뭘로요? 기구라도 주셔야.."
덴은 멀뚱히 벤하르트를 보면서 말했다.
"..... 연인 아니냐?"
"동료일 뿐이라구요!"
얼굴을 시뻘겋게 하고 벤하르트가 말했다.
"흐음 그렇다면 레니아는 어째서... 아... 뭐 어쨋든 방법은 네가 상상하는 그것뿐이니까 말이지. 알아서 하도록 해라. 정히 뭣하면 그 꼬마 퀘이소족에게 시키는것도 괜찮지 않겠나?"
"아 그 방법도 있었군요."
그제야 안심하면서 그는 약병을 가지고 레니아가 있는곳으로 향했다.
벤하르트가 돌아오자 라프라는 밝게 맞았다. 레니아가 굳어있는 모습때문인지 아이들과 그다지 많이 논 기색은 없었다. 라프라는 벤하르트를 보자 밝게 맞이하다가 미묘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라프라 약이 완성 되었다."
"네!"
라프라는 다행이라는듯 밝게 그를 맞았지만, 벤하르트는 살짝 진중한 얼굴로 라프라의 양 어깨를 잡고 말했다.
"그런데 말이지. 이 약을 레니아는 스스로 먹을수가 없어.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가 강제로 약을 그녀의 목에 넘겨 줘야 하는거야."
"그래요?"
"그래서 말인데, 네가 그 일을 해주지 않을래?"
"으음."
라프라는 망설이면서 벤하르트와 레니아를 쳐다보았다. 그 기색이 사뭇 이상해보이는 관계로 벤하르트가 물었다.
"왜 그래?"
"하지만 두분은 연인 사이시잖아요.. 이런 일을 제가 할수는 없어요."
"아니야!"
'아닌데다 오해를 하고 있어. 거기에 왠 쓸데 없는 오지랖이냐! 그런쪽으로 철이 드는건 또 뭐냔 말이다!'
라고 생각하면서 딴지와 함께 수많은 말을 일순간에 퍼부어 주고 싶었지만, 그렇게는 할수 없었다.
"그게 아니니까 걱정말고,,"
차분하게 라프라를 설득 하려고 하는데 라프라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 안다는듯한 모습으로 말했다.
"제 눈치는 신경쓰지 않으셔도 돼요."
'그러니까 쓸데없는 참견이라고,'
하지만 그 뒤로도 몇번을 부탁했음에도 라프라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왠 똥고집이냐. 그렇다면,"
슬쩍 슈우와 샤아 두 아이들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무리 꼬맹이라고 해도 남자에게는 맡길수 없었고, 남은것은 샤아뿐이었지만 어찌나 눈치가 빠른지 여우같은 눈을 하고 샤아는 재빨리 스승의 뒤로 숨어버렸다.
"전 그 일은 하지 않을거에요."
홀로 덩그러니 남겨진 벤하르트는 꼼짝없이 자신이 해야할 처지에 빠져 있었다.
'그래 처음도 아니고,'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지난날의 한없이 미화된 추억을 되새김질 해보았다. 무법마을에서 있었던 레니아와의 입맞춤을 떠올리자 그에게는 이상한 생각이 똬리를 틀고 일어났다.
'아니 그러고보니..'
사람들의 시선에 자신들은 영락없이 연인처럼 보이는것도 무리는 아닌듯 싶었다. 기억을 되새기자 그 뒤로 부터도 왠지 그런 비슷한 분위기가 있었던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역시 내 망상일 뿐이겠지. 그것도 연인이라기 보다 보복성 아니 입가심? 아니 뭐라고 해야 하나.. 그래 지금 나는 제정신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상태인것이 틀림 없다.'
실로 정확하게 집었지만, 자신에게 자신이 없었던 그는 당연히 그런 사실이 아닐거라고 편하게 생각하고는 레니아를 쳐다보았다. 자신은 레니아를 좋아하는것에는 별다른 이견은 없지만, 레니아가 자신을 좋아하는 일에는 한사코 신중하게 생각해야 하는 일이었다.
'이건 역시 괜한 망상인 것이겠지. 하여간에 저녀석들은 어째서,'
속으로 투덜 거리면서 그는 고개를 도리도리 돌렸다.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는 일행들은 재밌다는듯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가 혼자서 고뇌하는 모습은 굉장히 우스꽝스러운 것이었다. 벤하르트는 덴과 아이들에게 시선을 돌리고 말했다.
"신경 쓰이니까 일단은 들어가 주시죠. 어차피 도와 줄것도 아니잖습니까."
"그러는게 좋겠군."
특기인 싱긋웃음을 보여주며 덴은 아이들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죽겠군."
그때는 '당했기에' 알지 못했지만, 실제 스스로 하려고 드니 긴장감이 엄청났다. 반쯤 농담으로라도 카이후와 싸우는 쪽을 선택할수 있을정도로 피가 머리 끝까지 쏠려서 제정신으로 있을수가 없었다. 하지만 하지 않으면 레니아는 언제고 일어날수 없었다. 자기 자신에게 최면을 걸면서 그는 독한 마음을 먹고 레니아에게 서서히 얼굴을 가져갔다.
'그래 처음도 아니잖아? 레니아를 살리기 위해서!'
라고 하면서 그는 레니아와 입을 맞추었다. 찌르르하게 가슴이 일렁이는데, 그제야 그는 자신이 약병을 입에 넣지 않았다는것을 깨달았다.
"..... 미안해 레니아! 고의는 아니었어!"
분명 깨어있을게 뻔한 레니아에게 사과를 하고 그는 벌렁이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설마하니 그걸 까먹었을줄은..'
그리고 슬쩍 덴이 들어갔던 곳을 쳐다보니 어느틈엔가 낄낄 거리는 시선으로 그를 쳐다보는 한 무리를 발견할수 있었다.
"그래 이해한다 벤."
살짝 세상에 나가는 아들을 배웅하는 아버지 같은 표정이 느껴지는 얼굴을 보이면서 덴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더할나위 없는 창피함과 짜증을 느끼면서 벤하르트는 버럭 고함을 질렀다.
"뭘 이해한다는겁니까! 빨리 들어가시죠!"
이글거리는 눈으로 그는 검까지 뽑아 빛을 드리우면서 휙휙 저으며 그들을 물렸다.
'하지만, 이건 장난이 아니군.'
달달한 느낌이 온 입은 물론이고 가슴까지 가득 메운듯한 느낌에 그는 벌렁이는 심장을 추스렸다. 이번에는 잊지 않고 약병을 들어 한입에 털어넣었다.
'이제 뒤도 없잖아!'
단단히 마음먹고 그는 레니아의 입에 자신의 의지로 입을 맞추었다. 천둥번개가 치던 광란의 마음은 순간 시간이라도 멈춘것처럼 고요하게 가라앉아 마치 꿈이라도 꾸는듯했다. 약을 밀어넣는 행위 라기 보다 입맞춤에 한없이 가깝다는 생각에 벤하르트는 한동안 자아를 잃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조금 시간이 지나자 레니아는 몸에 있던 독은 해독이 되어 그녀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
아무 말 없이 그녀는 벤하르트를 살짝 보고 옷을 털털 털고 일어났다.
"레니아 미안해."
"됐어. 그 방법이 아니었으면 어차피 독을 몰아낼 수단은 없었잖아. 나라고 해도 그런것에 작정하고 화를 내거나 하지는 않아. 뭐 몹쓸짓 한것도 아니고,"
의외로 덤덤한 어투로 그녀가 답했다.
"아니 실수의 부분... 말야."
하지만 그 부분에서도 레니아는 덤덤하고 시원시원하게 넘어갔다.
"너다운 실수였지. 그것도.. 넘어가줄게."
그녀는 뒤를 돌아 얼굴을 보이지 않은채로 말했다.
"정말이냐?"
"그럼?"
"아니 너답지 않다고 할.."
벤하르트의 말을 확 자르면서 그녀가 말했다.
"내가 탓한다고 해도 말야. 뭘 어떻게 탓하라는거야?"
짜증섞인 목소리로 그렇게 몰아붙히자 벤하르트는 그것도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레니아가 화풀이로 자신을 손발로 친다고 해도 그건 벌이라고 하기에도 사실 어이가 없는 행동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벌이라고 내세울만한것도 없었고, 감정 외에는 딱히 무언가를 요구할 수단도 없는 것이었다.
"사죄는 받아두지만, 네가 미안하다고 해도 내가 어떻게 할 도리는 없는거잖아. 그러니까 넘어가 주겠다고,"
"그것도 그렇네. 어쨋든 미안해."
"됐어."
하지만 그 순간 벤하르트가 보지 못하는 시야에서 그녀가 웃고 있었다는것을 벤하르트는 알지 못했다.
사실 레니아의 약은 뿌리기만 해도 충분했다. 미처 그가 생각하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이미 벤하르트는 그렇게 뿌리는 것으로 두번이나 살아난 산 증인이었다. 하지만 레니아는 약을 만들어 줄때, 그런 방법으로 만들어 주는 것을 덴에게 일러주지 않았다.
만들어주는것은 어디까지나 스스로가 먹어야 하는 약 이었다. 그 긴 시간동안 자신의 마법에 대한 술식을 설명하고 결론을 지을때 그녀는 덴에게 마셔야 하는 약이라고 단단히 일러 두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한것이 덴에게 있어 어떤 작용을 할지 알고 있었지만, 그 이상으로 그 뒤에 자신의 예상대로 벌어질 일이 기대가 되었기에, 또 덴의 성격을 어느정도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일러두었다.
그 당시 덴은 그런 사실을 그냥 그러려니 하고 지나갔지만, 약을 만들고 벤하르트에게 건넬때가 되어서 그녀가 한 행동이 무엇을 뜻했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밑에서 일어났던, 카이후와 벤하르트일행의 전투를 전부 알고 있었다. 즉 그는 레니아의 약이 피부로도 적용시킬수 있다는 사실또한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니아가 그렇게 말한것에는 다 이유가 있는것이라고 눈치챘다. 그 뒷 레니아의 마음까지도 그는 분명히 읽을수 있었다. 그렇게 눈치를 챌것까지 상정해서 레니아는 그 행동을 결정한 것이었다.
참으로 당돌한 짓을 저지르는 신이라고 생각하고 웃으면서 그는 레니아의 장단에 맞춰 주기로 결심했다.
라프라의 핑계를 대며 벤하르트를 진정시킨 그는 밖으로 나오면서 마법을 통해서 간단하게 라프라에게 전달했고, 꽤나 눈치가 빨라진 라프라는 그 명을 전달받아 확고하게 벤하르트에게 거절의 뜻을 밝힌 것이다.
모든 일은 레니아의 손바닥 위에서 벌어진 일이었던 것이다.
'고의는.. 저녀석의 입장에서는 역시 아니었겠지.'
아쉽기는 했지만 그것은 그것 나름대로 즐거운 일이었다. 그만큼 긴장을 했다는 이야기였으니까, 그런 레니아의 속마음도 모른채 벤하르트는 모두가 자신을 놀려먹고 있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도 못한채 전전긍긍하면서 속을 졸이고 있어야만 했다.
- 작가의말
레니아의 심정:계획대로.
곰같은 여자보다는 여우같은 여자가 좋다고 하던가요. 전 아무래도 상관 없지만, 레니아는 여우같은 여자이면서 자존심만은 곰같은? 여자일수도..
그리고 제가 하나 실수를 했습니다. 마을의,, 복선을 깔려고 했는데 덴의 이름을 착각해버려서 우어어어 ㅠㅠ; 작가가 자신이 지은 케릭터 이름을 까먹는 어처구니 없는 일 발생.
저는 못난이 입니다. 미안해 덴..
그나저나 요즘 정말 행복하네요. 댓글이 아주 풍성해서 오늘은 12개를 받았는데 10개 이상라는게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풍족하게 만들어주는지... 도대체 80개 같이 받으시는 분들은 어떤 느낌으로 세상을 살아가려나요. ㅇㅅㅇ;
어쨋든 슬슬 다가오고 있죠?
연참대전의 끝을 알리는 종소리가 말이죠..(그럴 의도는 아닌데 뭔가 협박 같네요 말투가 --;)
이것을 제외하고 5화 남았네요. 끝까지 잘 달릴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모두 해피 일요일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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