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442화-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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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하르트 일행은 끝도 없이 펼쳐진 황폐해 보이는 땅을 추적추적 걸어가고 있었다. 곱게 포장된 마력석 안쪽의 길과는 달리 투박하게 여기저기에 바위가 널려 있는 마력석 밖의 길은 기운을 더 빠지게 하는 요소라고 할수 있었다. 거기에 언제 덮쳐 올지 모르는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 마수의 무리와 대하면서도 벤하르트의 걸음은 거침이 없었다. 되려 마수인 라프라쪽이 그들의 빠른 걸음을 따라가지 못해 힘겨워 할 정도였다.
"하아 하아."
라프라가 조금 우는 소리라도 할것 같으면 기다렸다는듯이 레니아는 비아냥 거리는 소리를 한 탓에 라프라는 더 불평이나 우는 소리를 하지 않고 필사적으로 벤하르트를 따라 왔다.
"으음?"
사실상 그들이 걷고 있는 곳은 전부 다른 사람들이 걷기에는 사지라고 불려도 무색할 정도로 위험한 곳이었다. 때문에 벤하르트는 이전부터 기를 이용해 항상 주변을 감시했다. 췌펜 마을부터 시작한 그 행동은 지금에 까지 이르러 최근에는 눈밑에 자연스레 검은 자국이 보일 정도였다. 레니아도 그런 상황을 잘 알고 있었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모른척했다.
벤하르트가 본것은 멀리서 걷는 무언가의 모습 때문이었다.
마치 인간같은 생김새를 하고 있었지만, 그 모습은 거대한 산과 비슷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거대한 육체에 그는 멈추어 섰다.
"아 저건 괜찮아요."
라프라는 그 거인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게 무슨 뜻이지?"
"저건 마수를 잡아 먹는 마수에요."
"마수를 잡아 먹는 마수?"
"유래는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들어본적이 있어요. 마수인데도 저희 처럼 인간이 되고자 했지만, 완벽하게 실패해서 지금껏 저렇게 살아온 마수들.. 인간들 사이에서는 거인족으로 불리우는 마수가 있었는데 저게 그것이라나봐요. 그렇게 전해져 내려와 지금에는 인간처럼 마수들만을 잡아먹는 행동을 한다고 해요."
라프라의 스스로를 마수로 생각하지 않는것 같은 말투에 벤하르트는 피식 하고 웃으며 말했다.
"그럼 너는 안괜찮은 거잖냐."
"그렇죠. 하지만 일단 오빠나 언니에게는 위험하지 않을거에요."
그렇게 다시 길을 재촉하려는데 벤하르트는 다시 걸음을 멈추었다.
"왜그래 벤?"
"아니."
그의 눈은 먼곳 거인쪽을 향하고 있었다. 너무너무 멀어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자신을 보고 있는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잠시의 시간,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고 있었다.
"우리를 향하고 있어."
파악한것은 벤하르트 혼자였다. 먼곳에서도 마치 사람처럼 서있었던 거인은 분명 벤하르트를 향하고 있었다. 그게 확실하게 눈에 들어왔을때는 이미 거인의 발로 10보 안쪽이었다. 그토록이나 큰 몸집에도 마치 인간처럼 잽싸게 움직여 놀랄새도 없이 벤하르트는 레니아를 밀어 결계의 안으로 들여보내고 라프라를 밀어 쓰러트리고는 검을 뽑아들었다.
마치 파리채처럼 거인의 거대한 손은 벤하르트에게 쇄도했고 그는 검을 들어 그 공격을 막았다. 하지만 그 막았음에도 수십 기아를 올라 충격이 등골을 타고 의식을 잃을 정도였다.
"쿠억."
왈칵 입에서 피를 내뿜으면서 그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거인의 손가락을 백색의 빛으로 둘러 줄로 묶어 거인에게 달려들었다. 마치 강철보다 더 단단할것 같은 거인의 육체였지만 벤하르트의 검은 힘을 주지 않았음에도 손쉽게 그 안으로 검을 찔러 넣을수 있었다. 벤하르트의 생각치도 못했던 반격에 거인은 놀라 손가락을 빙빙 돌려 벤하르트를 떨어 트리려 하다가 시큰 거리는 아픔에 비명을 내질렀다.
어느샌가 거인의 뒤에서 레니아가 그의 눈에 마법을 쏘아 날린 것이다.
"몸집이 크다는건 그만큼 약점의 노출도 심한 법이지."
그렇게 말하고 레니아는 뱅그르 돌며 내려오다가 거인의 콧구멍에 그녀가 사용하는 마법중 강한 파괴력을 지닌 마법 하나를 쏘아냈다. 머릿속부터 타버리는듯한 굉열음과 거인은 보이지 않는 눈과 고통에 괴로워 하다가 무심코 마력석의 결계를 밟아 버렸다.
"그르그로로로!"
숯검댕이처럼 타오르는 잔열기운에 거인은 데굴데굴 굴러 그 길에서 멀어졌다. 거인이 구를때 벤하르트는 거인에게서 떨어져 레니아와 라프라에게 도달했다.
"레니아."
"뭐야 라프라 이녀석 명백하게 지금 우리를 노리고 있잖아."
"아니 원래 이분은 마수들만 공격하는데, 설마.."
라프라가 울상지으려 하자 레니아는 재빠르게 말했다.
"너때문은 아닐걸, 너같은 작은 녀석때문에 이렇게 큰 녀석이 손을 쓸거라고는 생각하지 않거든. 하지만, 그렇다고 하면 너무 이상한데,"
"그으으.."
거인은 비틀 거리면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자그마치 30기아는 될 법한 거대한 모습은 놀람을 넘어서 공포를 느끼게 할 정도였다. 단순히 거대할 뿐인데도 그 모습은 어떠한 마수보다도 더 무섭게 느껴졌다.
거인은 무어라 알아들을수 없는 목소리로 허공에 고래고래 소리를 내질렀다.
"아!"
"음? 무슨 말인지 알아 들어?"
"저는 마수니까요. 마수 언어 정도는, 알아요."
미묘한 표정으로 라프라가 말했다.
"그래 뭐라고 말하고 있는거지? 동료를 부르는건 아니겠지?"
"맞아요."
벤하르트라고 해도 저런 마수를 몇마리나 상대할 자신은 전혀 없어서 안색을 새파랗게 질렸다.
"하지만 그 동료는 아니에요. 저자가 부르려 하는건 저를 납치했던 그 7형제의 마수에요."
"뭐?"
곧 까랑까랑한 소리와 함께 공중에는 일곱마리의 마수가 천천히 벤하르트를 향해 조여들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곳은 그녀석들의 영역이었지."
"하지만 어째서 거인이 저들을 돕는거야?"
곧 라프라는 거인에게 뭐라 물었지만 거인은 대답을 듣기도 전에 성을 내며 라프라에게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저기.."
라프라는 난처해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자 눈치 빠른 레니아가 말했다.
"말을 안해도 대화가 성립 안되었다는건 알것 같은데? 어때 벤?"
"뭐가 말야."
"이 일의 시발점이 어디라고 생각해?"
레니아의 여유로운 질책에 벤하르트는 슬쩍 모른척 했다. 하지만 레니아는 그 부분을 놓치지 않고 말했다.
"네 그 무른 성격은 어디에서든지 발목을 잡힐수 있단 말이란 거야. 저런 구제 불능의 마수들을 죽이지 않은것은 말이지. 언제라도 이런 일이 재발할수 있을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라구. 보이는 데로 말이지."
"그래. 잘못했어."
"당연하지. 그러니까 이 마무리는 벤 네가 해야만 하는거야."
레니아의 말에 벤하르트는 눈을 뻐끔거리다가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렇게 이야기 하고 그는 검을 잡아 들어 거인과 대치하려 했다.
"틀렸어. 네가 맡아야 할 쪽은 저쪽."
레니아는 벤하르트의 몸을 돌려 일곱마리의 마수를 향하게 했다.
"무슨 소리야? 거인쪽은 어쩌고?"
"내가 상대할거야."
"바보같은 소리 하지 마. 네가 분명히 잘 상대하긴 했지만,"
"바보같은 소리를 하는건 너야 벤. 네가 힘들었다고 해서 나도 힘들것이라고는 너무 확정짓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나라면 덩치만 큰 저 마수 정도는 손쉽게 상대할수 있어. 상대가 많던 적던간에, 싸움의 기술이나 형평상 너는 무리겠지만 나는 아무래도 좋은거야."
"무슨.."
"그렇게 됐으니까, 이쪽은 내게 맡겨둬. 내가 이정도까지 말할 정도라면 전혀 문제가 될것 없잖아? 하지만 거인을 상대하는것보다 그쪽을 확실히 죽이는게 너에게 있어서는 더 까다로운것 아냐?
레니아가 그렇게 까지 말하자 벤하르트는 아무말 없이 그녀에게 거인을 맡기기로 했다. 레니아의 경우 지게 될 상대앞에서 저런 허언을 하지 않는다는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차할때는 도우러 갈 생각을 하면서도 걱정할필요가 없다고 깊은곳에서는 확신하고 있었다.
문제가 되는것은 남은 일곱. 굳이 따지자면 레니아의 말은 틀린게 하나도 없었다. 이런 상황은 되려 레니아가 바라마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후우."
벤하르트는 일곱마리의 마수를 바라보았다. 높은 곳에서 날고 있지만 언제든 거인의 힘을 빌어 공격할 태세를 취하는 형제들의 모습에 그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곧바로 마수들은 빈틈을 노려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 필살의 공격이라고 생각했던 공격은 여지 없이 받아 넘겨짐과 동시에 마수는 참살당했다. 그렇게 베여져 죽은 마수는 셋. 남은 넨중 둘은 분노에 못이겨 벤하르트에게 돌격 했고 그와 동시에 확실하게 이승에서의 이별을 고했다.
남은 둘은 도저히 공격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눈치를 봐 달아나려고 했지만, 그렇게 생각한 그 틈새에 날개를 짓이기는 무언가가 있었다. 벤하르트의 빛이 그들을 옭아맨 것이다.
"꾸에에에에에!"
처절한 비명을 뒤로 한채 벤하르트는 남은 두마리도 죽였다.
사실 벤하르트라고 해도 먹기위해 살기 위해 마수를 죽이는 일은 다반사적으로 있었다. 하지만 그는 불필요한 살생은 별로 원하지 않는 주의였다. 그렇기에 그는 필요하지 않는다면 살려주었다.
그러나 이번일은 그 경우가 달랐다. '필요한 살생이었음에도 필요하지 않기에 그만두었다.' 라는 스스로의 명분과 명분의 대립에서 그는 살려두는 쪽을 선택했고, 이런 결과에 이르게 된 것이다. 분명 그것은 벤하르트 자신의 책임이었다.
"기회는 한번이었으면 족했겠지. 저승에서 탓하려면 나를 탓해라."
"웃기고 앉았군. 뭐야 그 독백은."
"읏."
"기회는 한번이었으면 족했겠지."
라고 분명히 비슷하지 않게 따라하는 레니아의 모습에 벤하르트는 고개를 푹 숙였다.
"요새 비아냥 거리는 솜씨가 는것 같다?"
"칭찬 고마워. 연습하고 있었거든."
"아니 그보다 거인은?"
"이렇게 잡아 냈지."
"우우우 어어어."
"용케 죽이지 않았구나."
"뭐야 내가 살생마도 아니고, 나도 벤 답게 '기회를 한번정도는 주어야겠지.'"
진중한 얼굴을 흉내내며 레니아는 그렇게 벤하르트를 놀리며 웃었다. 그 옆에 서 있는 라프라는 그녀의 그런 말을 듣고 까르르 웃었다. 벤하르트는 자신이 크나큰 실수를 했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거인은 연신 벤하르트와 레니아에게 달려 들고 싶었지만, 손과 발을 마법으로 구속당한 채였기 때문에 움직일수가 없었다."
벤하르트와 레니아도 그렇게 거인을 두고 가기가 뭣해서 라프라를 통해 거인에게 여러가지를 물어 보았다.
처음에는 입을 열지 않았던 거인도 라프라의 설득과 설득 그리고 벤하르트와 레니아의 찬양때문에 세뇌라도 당한듯 못마땅한듯한 얼굴로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거인도 마수를 잡아먹는 마수라는 이름에 걸맞게 사실상 그렇게 일족과 함께 살아왔다. 이런 종족이 많으면 마수에게도 사실상 '인간에게도' 득볼것은 없어서인지 거인족은 실상 많은 수로 존재하지는 않았다. 에린델에서나 운이 너무 좋거나 운이 너무 나빠야 볼수 있다고 말해질만큼 거인은 보기 힘든 종족이었다.
하지만 그 거인들은 인간은 잡아먹지 않았다. 마수 살상꾼으로 불리는 거인은 인간에게는 대대로 해를 끼치지 않고 살아왔다. 그런 거인을 배신한것은 다름아닌 인간이었다.
거인에게 있어서 인간은 인간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인간에게 있어서 거인은 마수이면서 자신들에게 필요한 재료 였던 것이다. 인간은 필요에 의해서는 언제든지 움직일수 있었다. 달콤하게 꾀고 음흉하게 작전을 짜고 습격하고 온갖 수단과 방법은 가리지 않는다. 그렇게 거인들은 마수들이 아닌 인간의 손에 하나 둘씩 줄어져 갔다.
그런 행동 와중에 살아남은 것이 바로 이 거인이었다.
친절하게 라프라는 거인의 이름을 말해주었지만 벤하르트와 레니아는 당연한듯이 이름을 기억할수 없었다. 거인은 그리하여 인간을 증오 하게 되었고, 그 와중에 형제 마수와 연을 맺게 되었다. 그 매개체는 다름아닌 인간이라는 먹이였다.
거인은 형제마수를 썩히 좋아하는것은 아니었다. 그 음흉한 생각들은 인간과 별반 다를게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서로 다른 두 마수라고 해도 공통된 점이 있었기에 그들은 때때로 힘을 합쳤고, 조금씩이나마 친해졌다. 형제들은 벤하르트에게 당하고 난 후 그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형제가 내키고 내키지 않고를 떠나 인간에 대한 혐오가 극에 달해 있던 거인은 흔쾌히 허락하고 공격한 것이다.
"으부으으으"
거인은 같은 말을 계속해서 내뱉었다.
"뭐라고 하는거지?"
벤하르트가 그 말을 묻자 라프라는 머뭇거리면서 말했다.
"자신을 죽이라고 하는데요. 그리고 가끔 먹어라고도,"
벤하르트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선악을 따진다면 분명히 인간쪽이 나쁜것이지만, 실로 인간인 그는 그렇게만은 볼수 없었다.
'이럴때 레니아는 명쾌하게 생각하겠지. 인간이 악이라고,'
"레니아 풀어줘."
"괜찮아?"
"한번은 용서해 주라고 했잖아?"
생긋 웃으면서 지나가려는 벤하르트에게 레니아는 숨을 크게 들이켜 기겁해 놀라는 척을 하며 말했다.
"우와 그 말을 그렇게 내뱉는거야?"
벤하르트는 얼굴을 붉히고 말했다.
"어 어쨋든."
"뭐 좋아. 그렇게 하자. 이번건은 잘잘못을 따지고 들면 이녀석탓은 아닌것 같으니까 말야."
그녀 스스로의 몸보다 훨씬 큰 어깨를 툭툭 치면서 레니아는 웃으며 손바닥을 쳤다. 그러자 거인은 잽싸게 일어나 벤하르트와 레니아에게 공격을 하려 하다가 손을 멈추었다. 딱히 누군가의 제지 때문이 아닌 벤하르트의 행동 때문이었다.
벤하르트는 거인에게 넙죽 엎드려 있었다. 주먹으로 내리찍으면 그대로 압사를 당할수 있을만큼 무저항으로 그는 거인에게 인간을 대신해 사과 하고 있었다.
"....."
레니아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법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거인은 구슬프게 울음소리를 내고 그장소를 떠났다.
- 작가의말
아니 오늘이 시작이었다니, 이럴수가 이럴수가!! 그럼 앞서 쓴 2화는 뭐였단 말이오.. OTL.....
비축분이 절실하게 필요 했었는데 말입니다. 오늘도 하루 죙일 사촌들 뒷바라지 하고 돌아와서 10시 30분부터 쓴글이라,,(하루 죙일 어떻게 쓸까 이미지 트레이닝 하고 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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