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441화-췌펜(8)
다음날 벤하르트는 지친몸을 이끌고 들어와 한숨을 자고 난후 다시 여행을 재개할 준비를 끝마쳤다.
벤하르트는 그다지 허물 없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까탈스럽지도 않아서 어느새 마을내의 많은 사람들과 알고 지냈다. 개중에 의기투합한 몇몇은 벤하르트일행을 배웅 하기 위해 나와 주었다.
"여어 그간 고생 많았네. 내 입장에서 보면 전연 쓸데 없는 일이었다고 생각하기에 이런 인사치레를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조금 했지만, 고생은 고생이지."
마을의 촌장은 껄껄 거리면서 벤하르트의 어깨를 연신 두드리며 말했다. 마을 전체를 자신의 소양에 따라 어떤 의미로는 필요 없는 위기에 몰아 넣은 촌장이건만, 그런 점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듯 했다.
"그나저나 퀘이소까지 찾아 주겠다고 한다니, 너무 오지랖이 넓은걸? 내가 참견할 일은 아니지만 서도 하하하."
그가 웃는 이유를 벤하르트는 물론이거니와 마을 사람들조차 이해하지 못했지만, 굳이 그점을 지적하고자 하는 사람은 없었다.
"꽤나 힘든 여행이 되겠군."
"이래저래 고마웠습니다."
"감사할 필요는 없어. 어디까지나 나는 땅을 무료료 빌려 줬을 뿐이니까, 수확을 맺고 결실을 맺은것은 자네의 힘으로 일궈낸 것이지. 아무 위기 없이 긴 시간을 버틴 그 노력의 결실일뿐이란 것이지."
"아니 그렇지도 않습니다. '애초에' 손해가 없을거라 생각하고 땅을 빌려준 그 배려에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것이었을뿐."
"그렇게 나올 필요는 없네. 나는 퀘이소를 아주 좋아하거든 이 꼬마도 말야. 포동포동하고 귀여운게 후에 미녀가 될것 같기도 하고"
어느샌가 촌장은 라프라를 끌어안고 볼을 부비거리고 있었다. 낑낑 거리면서 라프라는 그에게서 달아나려고 했지만, 이내 포기할수밖에 없었다.
"이녀석의 아버지도 알고 있는 마당에 고작해야 며칠 땅을 빌려준것 가지고 생색낸다는것은 너무 추잡한 일이지. 독단이기는 했네만 후회는 없다는 걸세. 정히 고맙게 생각한다면 나중에 그들을 만나게 되면 안부라도 전해줬으면 좋겠군."
"그렇게 하겠습니다."
촌장과의 대화가 끝나자 루루투 형제가 나서서 말했다.
"여럿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다음에는 천천히 이야기를 나눌수 있었으면 좋겠군."
"에린델은 룬델과는 다르니 매사에 조심해서 다니십시오."
"예 이런저런 감사했습니다."
벤하르트는 정중히 인사했다.
"어이. 괴물"
두두친은 퉁명스레 라프라의 등을 툭 하고 쳤다.
"응?"
"가족들을 찾으면 다시 이곳에 올거지?"
"그래."
"좋아. 그렇다면 내가 아끼는 부적을 주지."
두두친은 품안에서 반짝이는 돌 하나를 라프라에게 주었다. 오색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돌을 받아들고 라프라가 물었다.
"이게 뭐야?"
"유적지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발견한 내 부적이다. 나는 이 마을에서 어차피 편하게 지낼거니까, 그걸 빌려주마. 꼭 다시 와서 돌려주도록 해."
"헤헤 고마워."
"그럼 썩 꺼져 괴물아."
두두친은 고개를 돌리고 털털하게 앉았다. 사실 두두친은 대범한 성격의 남자아이였다. 조금 철이 들어갈 무렵부터 그는 퀘이소라는 마물을 상대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괴물이라는 강한 인식이 박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번에 이르러 처음으로 라프라를 만났다. 한눈에 그녀에게 의식을 빼앗긴 그는 그녀가 마물이라는것을 알자마자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고, 그 감정은 라프라에 대한 적의로 바뀌었었던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괴롭힘은 자신에게는 매우 편안한 감정으로 다가 왔고, 그것은 라프라를 골탕 먹이려는 작전을 벌인 전까지 행해 왔었던 것이다.
애초에 고지식한 그는 그 사건 이후로 자신이 생각하던 잘못을 고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무뚝뚝한 성격은 마지막에까지 고쳐지지 않았다.
라프라는 싱긋 웃고는 마을 사람들에게 전부 인사했다.
"어쨋든 잘가라."
토놈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퉁명스럽기 그지 없는 어투로 말했다.
"그래."
벤하르트는 더 길게 이 상황을 끌기 싫어 말했다.
"그럼 저희는 가보겠습니다."
레니아와 라프라도 꾸벅 마을사람들에게 인사하고 그들은 췌펜 마을을 나섰다.
아오이스의 조직 내부의 어느곳에서 두명의 남자가 서로를 마주하고 있었다.
"네가 일을 실패해? 캬 세상 살다보니 별일이 다 있구만, 내가 준 약과 네 그 일처리에도 일을 성공하지 못했다는거냐?"
"그렇습니다."
물씬 풍겨 오는 악취인지 향기인지 모를 기이한 냄새에 남자는 인상을 찡그리고 싶었지만, 그러한 내색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근처에 있는것 만으로도 괴롭기 그지 없고 눈이 따가워 버티지 못할것만같은 상황에서조차 그는 흔들림 없이 남자와 마주했다. 그 남자는 다름아닌 루켈이었다.
"그 일 어떤 일이었나?"
"최근 자료를 얻어 계획에 들어가기 시작한 그 벤하르트에 관한 일입니다. 레니아라는 반쪽짜리 신이 관련되어 있는 그 이야기 말입니다."
"그것이었나. 이래저래 소란을 피워 둔것 같던데, 헌데 그 레니아라는 여신은 엄청난 외모를 가지고 있다지?"
"경국지색이라는 말이 아까울 정도로.. 입니다."
"하하 네가 그렇게 말할 정도로 대단한 녀석이냐? 내 지금껏 살면서 여러 신을 봐 왔지만, 그런 말을 듣고서 안가볼수야 없겠지. 어차피 얼굴도 모르는 녀석에게 바치게 될거라면 먼저 건드려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군."
입맛을 다시면서 남자는 말했다. 그의 외모는 잘생긴 편이었지만, 관리가 전혀 안되어 있어서 마치 야수를 보는것마냥 헝크러져 있었다. 딱 보기에도 호감상은 아닌 그의 모습에도 루켈은 전혀 표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계획이 들어가기 직전입니다만,,"
루켈은 일부러 뒷말을 목구멍 너머로 삼켜냈다.
"내가 네 암묵적으로 네 뒤를 봐주는 이유가 뭐지 알고 있냐?"
재빠르게라고 해야 할까 확실하게 눈에 보이는 행동거지로 루켈은 말을 멈추었다.
"....."
"그래 그 점. 그 눈치 빠른점이 마음에 들어서 지금껏 조금씩 도와주곤 했었던 것이다. 영리한 너라면 지금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겠지?"
"여부가 있겠습니까."
루켈은 웃으면서 자리를 물렸다. 눈에 보이는 인간은 아오이스의 대행자중 하나이며 상대적으로 자유분방한 성격을 지닌 아오이스의 대행자 무리중에서도 더럽기로 소문난 성격의 소유자. 자신이 아니었다면 같은 대행자가 아닌한 그 누구도 이 사람을 상대하는것은 불가능 할것이라고 그는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대행자를 끌어들이는 덫을 살살 놓는것 조차도 실제 루켈이 아니었다면 누구도 행하지 못했을 것이다. 벤하르트와 레니아의 소문 그리고 이 적절한 말로 대행자를 끌어들였다는 것은 그 행동과 행태가 몽롱하기에 더더욱 루켈이 계획한 일이라고는 루켈 본인을 제하고는 아무도 알수 없을것이라 그는 생각했다.
"재미있겠군."
입을 날름 거리면서 그는 광기어린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그에 루켈은 속으로 생각했다.
'정말 재미있겠군. 아오이스의 대행자 그것도 '역병' 이라고 불리우는 저사람을 연철장의 문원인 당신은 어떻게 상대할텐가? 벤하르트 하르크.'
서로간에 다른 생각을 품안에 품은 둘의 만남은 거기서 끊어졌다.
"벤 다음으로 가야 할 곳은 어디야?"
"일단 북으로 갈거야. 이곳에서 북으로 가기 위한 길은 하나이기 때문에 단순해서 좋지. 저번에 마수에게 잡혀간 라프라를 데리러 갔었던 쪽으로 가면 돼."
"이 빨간 선은 뭐야?"
레니아는 드문드문 빨갛게 그어진 선을 가리키며 물었다.
"퀘이소들이 확실하게 지나가는 곳을 뜻한대. 사실 가장 가까운 곳은 이곳이겠지만, 이곳은 이미 지나갔을거야."
"어째서? 그곳에서 머무는게 아니고?"
"라프라 너는 알고 있겠지?"
"네. 저희 퀘이소들은 여러 마을을 이동해 다니고 있지만, 철새처럼 이동해 다니는것은 아니에요. 인간과의 문화와 교류를 알기 위해서 여러 군데를 해마다 한번씩 이동하게 되죠. 그곳은 지나가는 길이며 사실은 한번씩은 저희가 머무는 곳일거에요."
"그렇다면, 이 빨간 줄에는 멈추지 않는다는건가?"
"그렇다고 하나봐. 퀘이소의 최종 목적지는 루루투도 모른다고 하더라. 그렇기에 이 줄을 그어둔 곳들은 다 들러야만 할것 같아."
레니아는 못마땅한듯이 벤하르트를 바라보았다.
"줄이라고 해봐야 몇개 되는건 아니잖아? 거기에 몇개는 북쪽 지역과 엮어져 있으니까,"
"말이나 못하면,"
하지만 레니아가 보기에도 사실상 퀘이소의 확실한 이동 경로라고 보이는 길은 몇가지 없었다. 교류를 한다고 해도 퀘이소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특이한 입장상 인간을 완벽하게 신용할수는 없었다. 그것은 라프라에 이르러서도 몸으로 느낄수 있을만큼 팽배해져 올 정도로, 실상 퀘이소의 역사는 그들이 그토록이나 친화되고자 하는 인간에 의해서 피비린내가 나는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어떤 마을이라고 해도 알려줄수 있는 정보에는 서로간에 한계가 있을수밖에 없었다. 그 정보라는 것만으로도 퀘이소에게는 번거로운 일이나 사냥을 당하게 될수도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기에, 췌펜 마을에서도 제대로 알고 있을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방침 정도는 세워 두는게 좋을걸."
"방침?"
"그래 방침. 생각해봐. 이 넓은 에린델의 땅에서 이런 한정적인 조건만 가지고 한 종족을 찾는다는건 실제로 쉬운일이 아니란 말야. 너도 잘 알고 있겠지? 라프라가 정확하게 자신들이 가는 곳을 알고 있다면야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레니아는 찌릿 하는 눈초리로 라프라를 잡아먹을듯이 째려보았지만, 라프라는 몸을 와들와들 거리면서 고개를 저었다.
"이런 마당에 무작정적으로 이녀석의 가족을 찾아주기만 할수는 없는거야."
"그것도 그렇군."
"이 아이가 우리는 따라온것에는 불만 없어. 같이 데리고 다니는것도 손해를 보는것도 감수하겠다고 했으니까, '설사 죽거나 반신불수'가 되더라도 우리 책임은 없는 것이나 다름 없고 말이지."
"어이."
제지하는 벤하르트를 레니아는 제지했다.
"라프라 따라오는 것은 좋아. 하지만 이건 소풍이 아니니까, 언제라도 어디까지나 경각심을 가지는것은 잊지 말도록 해. 그건 알겠지?"
"네."
레니아가 말하는게 단순히 자신을 괴롭히는게 아니라는것은 진작에 눈치챈 라프라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사실상 우리가 여행을 하면서 겸사겸사 돌아가며 라프라의 가족을 찾아주는것은 할수 있어. 하지만 주객이 전도 될수는 없듯이 그것에 목매달수는 없는거야. 때문에 여행을 다니며 정보를 모으되, 그 외에 특이한 사항이 없으면 우리의 여행을 하는것으로 해야만 해. 그렇게 해도해도 못찾으면 그때에는 다시 췌펜마을에 돌아가는것도 한가지 방법이라고 할수 있는 것이지."
"정답정답! 이라고 공감하기는 좀 뭣한 사안인데 말이지."
"전 전 괜찮아요. 여러가지로 폐를 끼치고 있으니까 그것만으로도 좋아요. 레니아 언니는 틀린말은 하지 않을것 같으니까 그 말은 틀리지 않을거에요."
"어지간히 신뢰를 받는 모양인데? 레니아."
그는 그 신뢰가 썩히 좋은쪽만 있지는 않을것이라고 생각했다.
"잘될거라는 보장은 없지만, 성심성의것 퀘이소는 꼭 찾도록 할테니까,"
"네!"
"그렇게 결정 되었으면, 여행을 재개해볼까 이 길을 따라 가게 될 경우 나오게 되는 곳은 도시야. 에린델의 도시라고 하니 왠지 기대가 되는걸. 이름은 쉬이루. 거리는 조금 멀지만 그 마을까지 힘내서 여행하도록 하자."
셋은 힘차게 여행의 시작의 발걸음을 딛었다.
- 작가의말
부제를 떠올리기가 어려운 관계로 재탕으로 이번까지 끊겠습니다.
-2일차-
Comment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