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423화-혈문(血聞)(7)
벤하르트와 레니아는 붉은 줄에 이끌려 흑백 공간에서 탈출할수 있었다. 나오자 마자 둘은 엉망 진창으로 내던져졌지만, 벤하르트는 공중에서 자세를 바로잡고 레니아를 받들어 내려왔다. 주변은 전날 한바탕 했던 까닭인지 짙은 피냄새가 코끝을 자극하고 있었다. 피냄새는 철과 비슷했지만, 벤하르트에게는 그 미묘함이 전혀 다르게 다가왔기 때문에 짙은 혈향에 안색을 달리 할수밖에 없었다.
공중에서 벤하르트는 한 남자를 발견했다. 그남자는 검을 들고 있었다. 방금전까지만 해도 마수들을 베어 붉게 물들어 있는 검에서는 두개의 붉은 선이 이어져 있었다.
"평범한 여행객은 아니었던 모양인가."
검은 머리 사이사이로 희끗 희끗한 머리를 한 남자의 첫인상은 굉장히 좋지 않았다. 광대뼈가 튀어 나올만큼 얼굴은 헬쑥했고, 안색은 아예 색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생각될 정도로 창백했으며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팔은 삐쩍 마른 해골과 같았다.
"으음?"
"엇.?"
벤하르트를 보고 남자는 놀란듯한 얼굴을 해 보였다. 그리고 그것은 비단 남자만의 일은 아니었다. 벤하르트도 남자를 보고 상당히 놀라고 있었다. 과거 벤하르트는 여러가지 검을 만들었다. 아무리 벤하르트라고 해도 매번 성공만을 걸어온것은 아니었고, 그의 검을 만드는 역사에서 몇번은 실패작이라고 해도 될만한 작품을 만들기도 했었다.
그 검이 바로 남자가 들고 있었던 검이었던 것이다.
'내가 이검을 만들어준 사람은 분명,,,'
"퀴튼.."
무심결에 벤하르트는 그 이름을 내뱉었다. 시간상으로도 그렇게 오래된 시간은 아니었다. 그가 죽고자 마음먹었을때로부터 불과 몇여년 전의 일. 퀴튼이라는 사람은 이런 몰골을 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어느 귀한 집안의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정도로 반듯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런 퀴튼은 외모만으로는 도저히 알수 있을 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그런 그를 벤하르트가 알수 있었던 것은 퀴튼이 들고 있었던 검 때문이었다. 스스로가 만든 검을 못알아볼 벤하르트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문득 그는 눈앞의 남자가 자신을 보고 놀랐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설마 나를 알지는 못하겠지.'
"그 눈."
남자는 벤하르트에게 섬뜩한 눈으로 다가와 살짝 검을 휘둘렀다. 충분할정도로 주의를 하고 있었음에도 벤하르트는 기이한 각도에서 날아오는 공격을 피하지 못하고 결국 조금 베여 버리고 말했다.
"벤!"
"괜찮아."
남자는 검에 묻은 피를 보고 나서야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역시 벤하르트 하르크인가?"
"그쪽은 퀴튼 포룸 이었던가요."
점잖게 이야기를 할 시간은 없었는지 곧 주변에서 마수들이 몰려 오고 있었다. 퀴튼은 기다렸다는듯이 검을 들어 한번 휘둘렀다. 붉은 궤적이 일어나는가 싶더니 수십개의 피로 이루어진 무기가 되어 검은 마수를 갈랐다.
"피먹이라고 불리우던 마수가.."
"피먹이? 아.. 탄티노에서는 그렇게 불리고 있었나. 그것도 마수라니 우습기 그지 없군."
또 한바탕의 피를 보고 나서야 마수들은 더 달려들지 못하고 길을 열었다.
"북쪽 경계로 가는 도중이라면 조금 도와주도록 하지. 뭐라해도 당신은 내 검을 만들어준 남자니까,"
"....."
벤하르트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를 따라 이동했다.
"벤. 괜찮은거야? 저녀석을 믿어도?"
"글세. 하지만 내 몸도 그렇게 성한건 아니고 말이지. 악의는 느껴지지 않으니까,"
그가 기억하는 퀴튼은 절대 악한이 아니었기에 그것을 믿고 그는 퀴튼을 따라 걸었다.
퀴튼을 따라 산을 올라 도착한곳은 작은 오두막이었다. 작았지만 나름대로 아늑하게 살수 있을 것만 같이 정돈 되어 있었다.
"이 산에 대해서는 별로 정보를 듣지 못했었던가? 이 계절에 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단 한사람도 없을텐데,"
"그런 말은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길이 급해 오를수밖에 없었지요."
"그 모습이라니 이전과는 너무 달라 괴리감이 느껴질 정도로군."
퀴튼이 벤하르트를 본건 쭈글쭈글 하기 그지 없는 영감의 모습이었지만, 그것은 벤하르트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퀴튼의 준수한 얼굴도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듯 마치 마귀마냥 생겼기 때문이었다.
"그쪽도 겉모습으로 따지면 괴리감이 느껴지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피차일반인가. 하지만 이 계절 마수가 많다고 해도 이곳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사실 그정도 실력이라면 위험을 초래할리 없었을텐데,"
"지도 때문인것 같습니다만,"
벤하르트는 퀴튼에게 지도를 보여주었다. 퀴튼은 지도를 보고는 영문을 모르겠다는듯 물었다.
"이 지도는.. 뭔가 원한이라도 산건가?"
"글세요."
벤하르트는 레니아를 슬쩍 보았지만, 생각해보면 딱히 레니아를 탓할 일도 아니었다. 되려 자신을 쳐다보는 벤하르트에게 레니아는 따지는듯한 시선을 보이며 금방이라도 따질듯한 눈초리를 해보였다.
"그런데 이런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겁니까?"
"마수사냥. 겸사겸사로 마수에게 당하는 사람들을 구해주곤 했지만, 이쪽을 마수로 생각하고 있었을줄은, 도시녀석들이란 자기보신밖에 할줄 모르는 놈들이지. 정말 매몰차기 그지 없는 일이야."
"정말 사람을 구해주신겁니까?"
피먹이가 살육을 하는 장면을 몸소 지켜봤던 벤하르트는 그 처참한 광경을 생각하며 물었다.
"아까의 너희들의 경우도 그렇지 않았나? 나는 이미 너희들이 있다는것도 다 알고 있었지만, 한번도 너희에게 공격을 가한적은 없었다. 마수들은 그렇게 까지 죽여 가면서도,, 조금만 생각하면 알것을.."
실제 벤하르트와 레니아도 그 점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럼 방금전은 어떻게 저희를."
"그 결계에 들어갔다는걸 알았으니까, 힘이 닿을수 있다면 구해주려고 했었다. 그 안에 있는 녀석은 정말로 괴물이거든. 녀석덕에 나는 3년동안이나 이곳에 묶여 있게 된것이다."
"그건 무슨뜻입니까?"
"참고로 그녀석이 나쁜건 아냐. 되려 잘못이 있다면 이쪽에 있다고 해도 좋지, 너희들도 만약 당했다면, 십중 팔구는 너희가 뭔가를 잘못한 경우일거다. 아니라면 억울하겠지만, 그녀석은 융통성이 있는건지 없는건지 알수 없을때가 있어서, 그나저나 내가 마수사냥을 하는 이유가 뭔지 벤하르트 너라면 알수 있겠지."
"뭐 벤. 알고 있는거야?"
퀴튼의 의외의 말에 레니아는 놀라며 물었다.
벤하르트는 자신이 만든 검은 무엇이든지 한번씩 자신의 손가락으로 시험을 해본다. 그것은 퀴튼이 들고 있는 검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퀴튼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그는 잘 알수 있었다. 그가 만든검은 대부분이 정도의 길을 걷는 물건들이지만, 그가 퀴튼에게 만들어준 검은 요도라고 부를수 밖에 없는 마검이었다. 죽인 상대의 피와 그 생명을 검에 담아내는 무섭기 짝이 없는 요검에 벤하르트는 퀴튼에게 그 검을 주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했었다. 정작 당사자는 그 검을 굉장히 마음에 들어했고, 벤하르트가 몇번이고 만류 하고 다른 검을 만들어 주겠다고 했음에도 그 검만을 고집했다.
"이래뵈도 나는 당신을 존경하고 감사하고 있다. 내게 복수를 할수 있는 수단을 마련해준 사람이니까, 그래서 그 눈도 아직것 잊지 않고 있었지. 어떻게 젊어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때의 고독은 느껴지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 검 얼마나 죽인겁니까?"
"목표치는 마수 천.."
"아직도 모으지 못했습니까?"
"한번은 성공 했었다. 웨이즈에게 완벽하게 당해서 잃어버렸었지만, 그건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덕분에 나는 목표치를 수정할수 있었지. 내가 상대하려는 녀석은 웨이즈보다 강하다 해도 과언은 아니니까,"
"그건 사람의 몸을 버리는 행동입니다. 지금도.. 거울을 보시면 아실텐데요. 자신이 얼마만큼 독에 당해 있는지."
벤하르트는 마치 산 송장같은 그의 얼굴을 보며 말했지만 그는 조소할 뿐이었다.
"그렇다 해도 상관 없다. 다른 사람에게 복수를 해야 한다면 이런 노력을 할 필요는 없었을거다. 생명을 팔지 않아도, 할수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내가 상대하려는 녀석은 그런게 만에 하나라도 통하지 않는 자. 생명을 깍고 영혼을 팔아서도 성공할수 있을지 없을지를 장담할수 없는 괴물이다. 이런 노력이야 하찮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하지만 천이라고 한다면 이미 이전에 완성시켰어야 하는것 아닙니까?"
얼마되지 않은 아까, 베어낸 마수들만 해도 벤하르트가 확인한 수가 백은 넘을 정도였다. 벤하르트가 흑백공간에 들어간 시간 까지 합치면 얼마가 되었을지 상상도 가지 않지만, 적어도 천이라는 숫자는 금새 채울수 있음이 틀림 없었다.
"그렇지 않아. 상징적인 숫자는 그에 상응하는 힘을 주게 된다. 기합과도 비슷한 부류지. 천이라는것은 오직 수를 맞추어둔것. 내가 바라는것은 '강한 마수'의 목숨 천마리다."
"그런.."
강한 마수가 천이라는 말.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벤하르트는 알수 있었다. 요컨데 강한 마수만을 담아. 그는 지난 몇년간 수천도 넘는 마수를 베어 넘긴 것이다. 베어낸 영혼을 취해 먹어 강해지는 검. 외적으로는 마수들과 싸우고 내적으로는 마수들의 혼과 싸우기를 벌써 수년 마귀와 같이 바뀐 형상은 그 고통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할수 있었다.
벤하르트가 무어라 말하려 하자 퀴튼은 손을 들어 그의 말을 가로 막았다.
"잔혹한 짓이던 뭐던 속죄 받을 생각도 없고 그만둘 생각은 더더욱 없다. 이 행동에 대해서 타인인 네가 나에게 뭐라 말할것은 아무것도 없다. 벤하르트 나는 당신을 존경한다. 이 검이 없었다면 나는 설사 천년의 시간을 준다고 해도 경지에 다다를수는 없었을테니까,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복수를 이룰수 있게 해준 네게의 찬사일뿐. 결국 내가 인정하는 당신의 실력의 근간은 복수라는 이야기다. 그것에 반한다면 나에게 너는 적이라고 밖에는 말할수 없어."
"마수로 끝입니까?"
벤하르트의 질문에 퀴튼은 잔혹스런 미소를 띄워 보였다.
"아니. 말했지? 무엇이든 한다고, 인간도 마족도 넣을수 있는 힘이라면 내가 갖출수 있는 힘이라면 전부 모을것이다. 내가 마련할수 있는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너는 지금의 내 심정이 어떨지 잘 모르는 모양이지만,"
순간 벤하르트는 오싹한 기분과 함께 눈앞에 깜깜해졌다. 그리고 검은 곳에서 그의 시야에 들어온것은 레니아의 처참하게 으깨진 시체였다. 사체가 잘리고 목이 떨어져서 벤하르트와 눈이 마주친 머리. 그 광경만으로도 인성이 부서질것만 같을때 퀴튼은 그 시체를 밟아 짓이기며 벤하르트를 노려보며 말했다.
"내가 한것이다."
"어 어어.. 우와아아아아아!!!"
벤하르트는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는채 검을 휘둘렀다. 나온것은 백색의 빛이 아닌 검은 번개. 명백하게 위협이 아닌 죽이겠다고 하는 목적을 담은 공격은 무언가가 산산히 부서지는 소리가 나면서 끝이 나버렸다.
"벤! 뭐야 어떻게 된거야!?"
다급한 레니아의 목소리가 그의 귓전을 몽롱하게 건드렸다. 허리춤에서는 검은 기운이 물씬 거리면서 올라오고 있었고 깨어나자마자 벤하르트는 입가의 거품을 눈치채지도 못하고 레니아의 어깨를 잡고 소리쳤다.
"푸읍 레니아!"
너무도 공포가 서린 얼굴로 묻는지라 레니아는 놀라며 물었다.
"왜 왜..?"
"다행이다.. 다행이야."
그는 살짝이지만 레니아를 안았다. 레니아는 당황해하며 얼굴을 발갛게 물들이고는 말했다.
"뭐 뭐하는거야."
그것도 잠시 메마른 퀴튼의 목소리가 벤하르트를 깨웠다.
"꿈만 같았지만, 그정도가 되면 최면도 진실처럼 느껴지는 법이지. 벤하르트. 나는 필요하다면 누구도 죽이고 싶지 않아. 누구라고 해도,, 딱히 그저 강해지기 위해 누군가를 죽이겠다고 말하고 있는건 아니지. 내가 원하는건 오로지 복수. 방금 네가 느낀 그 감정이다. 설사 어떤 비인도적인 일일지라도 가능하다고 한다면 나는 무슨짓이든지 하게 되겠지. 나를 이해해달라고는 말하지 않겠지만, 나를 막으려고는 생각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
"나는 네가 검을 만들었을때 이야기를 하면서 네가 어떤 사람인지 알수 있었다. 너는 고독하고 누구도 원치 않았지만, 근본은 바른 사람이었다. 내가 사람을 죽인다고 하는 행위가 못마땅하게 느껴지겠지만, 약속하마. 인간을 잡는건 악인들뿐. 복수를 달성하면 나는 반드시 죽을것이다. 별로 자살한다는 이야기가 아니야. 죽을 각오가 아니라면 그녀석을 죽이는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것에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의미라.. 의미? 정말 우스운 말이다. 기억해둬. 세상에 의미있는 행동이라는건 거의 존재하지 않다는것을."
퀴튼은 자조적인 웃음을 띄우며 말햇다.
"피먹이라는 마수를 눈앞에 두고도 당당한 모습 노인이건 청년이건 역시 벤하르트는 벤하르트라는 건가. 아마 여기서 헤어지게 되면 만날일은 없겠지."
"피먹이는 아니잖습니까. 그저 공포심에 질린 사람들의 소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당신은 사람이니까,"
"이미 사람이라고 말할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그렇게 생각해 주는건가..? 어쨋든 이 말은 하게 해줘. 그때도 전해두지 못했던 말이다."
퀴튼은 벤하르트에게 고개를 숙이고는 말했다.
"그때, 나에게 검을 만들어 준것. 정말로 감사합니다."
"얼마만큼 변하려 해도 퀴튼 당신도 퀴튼으로 있어 주십시오."
퀴튼은 정중하고도 진지한 벤하르트의 말에 웃으면서 검을 만졌다. 그러자 검에서 붉은 손톱을 이룬 핏덩이가 나와 벤하르트의 지도를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그리고는 그는 어느새 원래의 말투로 돌아가있었다.
"저런 지도 따위는 있어봐야 도움이 안돼. 북쪽 경계로 가고 있다고 했으니, 내가 안내해주도록 하지. 내 집은 마수의 중심 소굴이기에 나가려면 고생을 꽤나 하게 될테니까,,"
- 작가의말
전편을 다시 읽어보니,, 마치 레니아가 빙령석을 웨이즈에게 넘겨준것마냥, 써있기는 했더라구요. 나중에 꼭 수정을 해야 할텐데,,
어쨋든 안넘겨 줬습니다. 넘겨주기 전에 퀴튼이 벤하르트와 레니아를 구한것이고, 웨이즈는 '그렇게 된이상' 이라고 생각하고 그놈의 적당주의로 넘어갔다. 대충 이런식의 이야기로,,,,
네.. 내일은 하루 쉬게 되겠네요. 기분이 좋으면 12시 넘기고 월요일 치를 올리겠고, 안되면 글세요.. 월요일 11시에나 볼수 있으련지.... ㅇㅅ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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