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399화-사연(死緣)(2)
아라나는 벤하르트와 레니아를 도장의 안으로 들였다. 그 내부는 이전 그 자신이 머물렀던 연철장과 너무도 닮았다. 물론 세세한것을 걸고 넘어가자면 분명 같지 않은 부분이 있었지만, 벤하르트의 얇게 남은 기억과 맞는 부분이 적지 않게 있었다. 나머지 같지 않은 부분은 환경이나 닐스의 기억에서 유실된 부분임을 생각하면 그만큼 동질감이 느껴졌다.
"사숙님. 아무쪼록 편하게 사용해 주세요. 곧 식사를 대접하겠습니다."
"저기 사숙이라는 말은 그만둬 줬으면 좋겠는데, 격식을 따지고 싶지는 않거든."
벤하르트의 말을 듣고 있던 리핀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즐거워 했지만, 아라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렇다면 그러도록 하죠. 하지만 저희들보다 분명히 윗줄에 계신 분이니 벤하르트님이라 부르겠습니다."
"음.."
님이라는 말도 벤하르트로는 별로 듣고 싶은 말은 아니어서 한번 거절의 뜻을 내비쳤지만, 아라나는 그 뒤로는 전혀 물러섬이 없었기에 그는 곧 포기 했다.
아라나는 곧 식사를 만들어 벤하르트와 레니아를 불렀다. 꽤 호화스러운 음식들에 벤하르트를 놀라며 물었다.
"이런 음식들은 마을에서 사오는건가?"
"그럴리가요. 대다수가 산에서 얻는 것으로 만든겁니다. 사냥은 리핀이 해주고 있어요."
"이 근처는 야생동물들이 많아서 사냥을 하기에는 적격이거든."
"리핀."
아라나는 리핀을 살짝 째려보면서 주의를 주었다.
"알았다고,"
리핀은 퉁명스럽게 대답하고는 불평어린 눈초리로 벤하르트를 노려보았다.
"아니 그럴 필요 없어. 그렇게 격식을 차리고 싶은 마음은 없다고 아까 말했었잖아. 나는 단지 닐스를 만나러 온것 뿐이다., 너희들에게 사숙이란 생색을 내러 온게 아니니 마음 쓰지 마라."
"봐라. 그렇게 말하잖아?"
"그래도 될수 있으면 예의를 지키도록 해."
"음 음 맛있는걸? 연철장을 내려간다면 요리사를 해도 먹고 사는데에는 지장이 없겠어."
레니아는 아라나의 음식이 마음에 들어 칭찬하며 말했다.
"감사합니다만, 그럴 일은 없을겁니다."
"그런데 닐스는 어떻게 죽게 된거지?"
"그에 대해 답하자면, 노환이라고 대답할수 있겠군요. 사부님은 늙어 자연사 하셨습니다."
"그래? 씁쓸하구나."
혹여 다른 일로 죽은게 아닐까 하는 의문도 해보았지만, 그 이야기를 들으니 벤하르트는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난건지 자각할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루크형님도 걸걸하시긴 했지만, 엄청 늙었었지.'
자신도 나이가 들어있는 채였다면, 죽어도 그렇게 놀라지 않았을지도 모를일이라고 생각하니, 그 생소한 느낌을 감출수 없었다.
"그나저나 이런곳에서 용케도 둘이서 살고 있구나? 마을간의 교류도 거의 없을테지?"
레니아의 말에 아라나가 답했다.
"산에서 나는것만 가지고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교류가 없지는 않습니다."
"5년전의 일도 있을테니 가급적이면 교류하지 않으려 애를 쓸거라 생각했는데,"
"그 일은 어떻게 아셨죠?"
약간 의아함에 독기가 품어진것 같은 눈으로 아라나가 묻자 벤하르트가 대답했다.
"아 산 아래 나와 연이 닿은 아이가 있어서, 그녀석을 통해서 조금 듣고 올라왔거든."
"그렇습니까."
벤하르트의 답을 들으면서 왠지 날이 풀린 느낌이 되는 차이를 보면서 레니아는 생각했다.
'뭐야 이녀석?'
"5년전이라면 닐스가 죽었을때의 일이겠군. 어떻게 된 일인지 말해줄수 없을까?"
"본래라면 이 일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지 않지만, 그 경우가 사숙이나 사백의 경우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요. 하지만 저 분은 연철장의 문인이 아닌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이야기해주지 않을래? 저녀석은 연철장은 아니지만, 믿을수 있는 여자야. 솔직히 말하자면, 여기서 저녀석을 돌려 보내고 나에게 말한다고 해도 나는 레니아에게 비밀을 지킬 자신이 없어서 말이지."
아라나는 묵묵히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5년전의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라나 괜찮은거냐? 그 일은.."
"괜찮아. 그게 어떤 치부가 된다고 해도, 이미 우리끼리 비밀을 가지고 있는다고 해도 나아질것도 더 잃을것도 없으니까,"
"5년전까지만 해도 이곳 연철장은 수많은 문원들이 있었습니다. 라군델에서도 손을 꼽을수 있는 명문의 문파였지요. 최고라 할순 없었지만, 찾아오는 사람들로 따지면 최고라 할수 있었을겁니다. 저희 연철장에서는 검을 만드는 일도 하고 있었으니까요. 때문에 연철장은 문파이면서 최고의 무기를 다루는 대장간으로 취급받고 있었습니다. 평화로웠다고 해도 좋았었지요. 사사로운 갈등은 있었지만요. 아니 사사로운 갈등이라고 '생각했었던' 갈등이 있었다는게 올바른 표현이겠네요."
"그게 무슨 말이지?"
벤하르트의 물음에 곧장 그녀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연철장에서 익힌 무예를 밖에서 사용하고 싶다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사부님은 그 행동을 절대 용납하지 않았고, 자연히 사부님을 옹호하는 자와 자신의 무위를 뽐내고 싶어하는자 그렇게 두 파로 나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사부님이 죽자 그날이 일어났습니다."
아라나는 눈을 감고 그날의 일을 떠올렸다. 그것은 눈으로 볼수 없을정도의 학살이었다. 그 행동에 대해 간파하지 못한것에, 누구를 탓해야 할까, 어느 누구도 탓할수 없음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사부님이 죽은 바로 그 당일. 저와 리핀을 뺀 대다수의 문원들은 죽었습니다."
"뭐?"
"죽었다고 하면 조금 이해하기 어려울지 모르겠군요. 살해당했습니다."
"어째서지?"
"살해를 저지른 사람은 세상밖으로 나가고자 했던 강경파의 무리들이었습니다. 그때까지 저희는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었지요. 그들이 이런짓은 저지르지 않을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들은 이런 우리들의 생각이나 사정따위는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그들은 어느순간인지는 몰라도 이런 행동을 할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들이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면 그대로 나갔으면 되었을 일일텐데, 어째서 그런 짓을 저지른거지?"
"사부님이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사부님은 도공술은 조금 멀리하셨지만, 좋은 검이 벼려지면 언제나 보물을 대하듯 모셔두고는 했습니다. 겉으로는 도공외의 다른것을 위하는것 같아 보여도 다들 은연중에 알수 있었죠. 연철장의 이름 답게 사부님은 도공술쪽을 신경쓰고 있었다는 것을요. 그렇게 모아둔 검이 여섯자루. 육색도(六色刀)라고 불리는 검이 있었습니다. 사부님이 만든검도 있었고, 다른 제자의 손에서 벼려진 검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라나는 그중에서 네개의 검을 만들었지."
리핀이 나서서 말했다.
"그게 어쨋다는거지?"
"그들은 세상이 넓다는것을 그때당시에는 모르고 있었어요. 저희들의 기술이야 말로 최고라고 생각하고 있었지요. 모두는 도공술을 배운 장인이지만, 그들은 검술에 매진한 나머지 그렇지 못했으니까요. 그들 스스로가 가질수 있는 명검은 남기되, 그 뒤로 나올지 모르는 가능성을 없애기 위해 모두를 죽여 없앴습니다. 저와 리핀을 제외하고는요."
"그럴수가.."
그녀는 그날의 일을 떠올렸다.
"아라나 너만큼은 남아 줘야겠어. 혹 검이 상하기라도 하면 다시 만들어줄 장인이 필요하니까 말야. 너라면 육색도 못지 않은 검을 만들수 있겠지."
"너 이자식!!"
"쳇. 리핀 아직도 살아 있었나!"
"왜 죽인거냐!"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리핀은 검을 휘둘러 사내에게 돌격했다.
"어이 누가 루켈을 불러와. 나는 이녀석을 당해낼수가 없다고!"
"루켈은 안보여."
"그럼 나를 도와 멍청아!"
문파를 점령했던 사람들중 남은 일곱중에 여섯이나 동시에 리핀에게 달려들었다. 리핀의 실력은 그들중 누구보다도 월등했지만, 여섯이나 되는 실력자 앞에서는 무력하기만 할 뿐이었다. 곧 힘없이 사로잡힌 리핀은 피가 섞인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괴기스러운 눈으로 모두를 보았다.
"잘가라 리핀. 참고로 말해두지만 너만은 확실하게 제거해두려 했었어. 나보다 강한 녀석을 두고가는것은 위험한 일이거든."
"잠깐. 리핀을 죽인다면 나는 자살하겠어."
"뭐? 무슨 말을 하는거냐? 자살?"
"연철장은 나에게는 전부였어. 너희같은 쓰레기들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전부였던 것을 잘도 부수어 줬지. 리핀을 죽인다고? 죽여도 좋아. 단 그때에는 나도 죽고 너희들이 얻고자 했던 그 검들도 여기서 끝이겠지."
그녀는 뒷켠에서 하나씩 검을 박아넣었다. 여섯가지의 찬란한 색을 뿌리는 검 육색도 하지만 그 빛은 육안으로 확인할수 있을정도로 죽어있었다.
"뭘 한거냐?"
"내 모든것을 앗아간 너희들에게 검까지 넘겨줄거라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라는거다. 구더기 같은 녀석아."
"그래. 어쨋든 네가 그 짓을 했다는것은 잘 알았어. 더 살고 싶지 않다는 말도 제대로 알아 들었다. 그럼 이녀석은 어때?"
아라나의 몸이 섬칫 떨렸다. 리핀의 목에 들어선 시퍼런 칼날앞에서 그녀는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썼다.
"좋아. 네 원대로 모두를 죽인다라는 선택지도 있을수 있겠지만, 리핀의 목숨과 그 검 여섯자루를 바꾼다는건 어떨까? 그 경우 연철장은 멸문을 당하지도 않고, 리핀도 살아나게 되고 우리는 검을 얻게 되겠지."
"....."
"빨리 대답해. 검이 없어도 싸우는데에는 지장은 없다. 우리에게 있어서 우리가 가지지 못한만큼 타인도 가지지 않으면 그뿐인 문제야."
"아라나 그만둬! 이런 녀석들에게 연철장의 혼을 넘겨줄생각이냐!"
"죽어도 좋지만, 연철장의 동료인 너를 죽게 둘수야 없지."
"아라나.."
아라나는 서 있는 여섯을 노려보며 외쳤다.
"잘 들어둬라 이 칼날은 바래지 않겠지만, 만약 바래게 된다면 그때 내가 만든 네개의 검을 고칠수 있는건 나뿐이라는 사실을.. 검은 주도록 하지. 그 검으로 리핀을 벨것인지는 너희들이 생각하도록 해라."
그녀는 여섯개의 검을 하나씩 뽑아 투박하게 던졌다. 어느샌가 검의 색은 은은하게 돌아와 있었다.
"머리를 쓸줄 아는구만, 뭐 좋지. 둘뿐인 연철장에서 오손도손 잘들 살아보라고 하하하핫."
"그렇게 살아남은건 저희 둘뿐이게 된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있는건가.."
"그런 뼛속까지 더러운 녀석들도 세상에는 얼마든지 있더군요. 강경파중에서도 그일에 찬동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전부 죽었습니다. 주동자가 나쁜것인지 찬동자가 나쁜것인지, 양쪽다가 나쁜것인지, 증명하고 싶지는 않고 이해해주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만,,"
"고생이.. 많았겠구나."
아라나와 리핀의 나이는 이십 초반 5년전이었다고 한다면, 딱 벤하르트가 연철장을 나서서 도망칠 무렵의 나이였다. 어느쪽이 고생이 덜 했을까 하는 얼토당토한 의문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벤하르트는 아라나와 리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라나는 눈을 감아 그것을 받았고 리핀은 퉁명스러운 얼굴로 한번 빗기다 그 손을 받았다.
"후우. 벤 녀석 제법 노릇을 하고 있구만,"
눈앞에 놓인 고기 한점을 입으로 집어넣으며 레니아는 중얼거리며 그 상봉을 지켜보았다.
- 작가의말
저번의 숨겨둔 부분은(숨겨둔 부분이라고 했지만 별로 숨긴것도 아니므로 신경은 안쓰셔도 되지만;;) 다음화에 나온다고 했는데 다다음(다다다음?)화에나 나오게 생겼네요.
어쨋든 즐거운 일요일 잘 지내세요~
원래 더 쓰려고 했는데 시간이 허용을 안해서 끊을수 있을때 끊어 버리겠습니다.
아 그리고 연호량님 알테마웨폰님의 댓글에서 사제 이야기 하신거죠? 제 글에 쓰인거면 제 실수라 고쳐야 되는데 잘 안보여서요.
사질이 맞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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