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398화-사연(死緣)(1)
연철장이라고 쓰여져 있는 문으로 다가가자 작은 돌멩이 하나가 벤하르트의 발치에 떨어졌다.
"뭐하는 녀석들이냐?"
나이는 이십여세 정도 되었을까, 훤칠한 키에 균형잡혀있는 몸을 가지고 있는 남자가 벤하르트와 레니아를 보면서 산문의 턱에 앉아 있었다.
"실례합니다. 이곳에 닐스 프레이머가 있었다는 소문을 듣고 왔습니다만,"
청년은 발로 땅을 박차고는 공중에서 두어바퀴를 돌아 벤하르트에게 접근했다. 검도 들지 않은 형태였지만, 벤하르트는 즉각 검을 뽑아서 그의 공격을 막아야만 했다. 청년의 허릿춤에는 보란듯이 검이 매달려 있었지만, 그는 그 검을 뽑지 않고 품안의 단검을 이용해 벤하르트를 공격한 것이다.
만약 벤하르트가 그의 허리에 있는 검을 겨냥했다면 그대로 머리통이 두조각 났을 노릇이었다.
"이번 녀석은 실력이 꽤 있는 녀석인가!"
청년은 재빠르게 낮은 자세로 벤하르트의 다리와 목을 동시에 노렸다. 시퍼렇게 서린 기운에 벤하르트는 두어걸음 물러서면서 그의 공격에 맞섰다. 몇합을 겨뤘을까 도중 한번의 일격에 서로는 약속이나 한듯 거리를 벌렸다.
"무슨 짓이냐..?"
생각해보니 벤하르트에게 있어 어떤 사람이건간에 자신보다 나이가 낮을것은 명백했고 공격까지 당해서 자연스레 하대를 한 것이다.
"무슨 짓이냐니, 대대로 우리 연철장에 찾아온 외지인중은 백이면 백 원수를 갚으러 온 사람들이었다. 사부님을 만나러 왔다고? 그야 그렇겠지!"
벤하르트는 섬칫 놀랐다. 청년이 자세를 잡은것은 연철장의 검술 일섬의 자세였기 때문이었다. 강맹한 일격에 그도 같은 자세를 취해들었다.
"수(守)"
서로의 기술은 누가 낮다 우열을 가릴수 없었지만, 무기는 그렇지 않아서, 청년의 검은 거짓말처럼 반으로 나뉘었다. 그에 청년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당신 뭐하는 사람이지!? 어째서 우리 연철장의 검술을 사용하는거냐!"
"다짜고짜 검을 휘둘러 놓고는 이제와서는.."
"쳇. 강제로라도 말하게 해주겠다."
청년은 허릿춤에 있는 검을 뽑아들고 벤하르트에게 달려들었다.
"그만둬 리핀"
한걸음만 더 접근한다면 벤하르트에게 닿을 거리에서 청년은 검을 멈추었다.
"아라나.."
"저희 사부님을 만나러 오셨다고 하셨습니까? 무슨 일로 찾아 오신건가요?"
상아색의 부드러운 머리를 하고 있는 아라나라고 불린 여자는 조곤조곤 벤하르트에게 말했다.
"혹 사부님에게 도장파괴를 당하셔서 왔다고 한다면, 지금 돌아가 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아니 나는, 도장파괴때문에 이곳에 온게 아니야.. 닐스를 만나기 위해 온것이지."
"사부님을 만나러 왔다고? 그럼 당신 이름이.. 덴 부르크?"
벤하르트는 고개를 저었다.
"루크 샐던인가?"
다시 그는 고개를 저었다.
"지러스 스칸..?"
"아니.."
"그렇다면 세크닐 바텀...?"
다시 벤하르트는 고개를 저었다. 그에 리핀은 실망한듯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 그렇다면 당신이 벤하르트 하르크로군."
"그래. 나는 벤하르트 하르크다."
"하하. 늦었다 늦었다. 늦어서 왔다는게, 벤하르트 하르크라니 사부님도 정말로 운이 나쁜 사람이로군. 그래 이렇겠지."
"다시 한번 말하지. 닐스를 만나고 싶다."
벤하르트는 킥킥 거리는 리핀의 목소리에 거슬림을 느꼈다.
"저를 따라오세요."
아라나의 뒤를 따라 도착한곳은 도장의 안이 아닌 도장의 뒷켠 정리된 공간이었다. 하나의 묘비만이 남겨진채..
"....."
벤하르트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이렇게 되었듯, 루크가 젊어졌든 혹 젊어지지 않았다고 해도 죽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자신은 너무도 젊어져서 늙음을 생각할수 없게 되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상대도 늙었을수도 있다고는 생각해도 수명이 다해 죽었다고 한 그 상황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인간의 수명이란.. 허망해."
레니아는 무미건조하게 중얼거리면서 잘 정돈되어 있는 묘비를 쳐다보았다.
"닐스.."
"당신 같은 사람이라고 해도 사부님은 보고 싶어 했을것이다. 5년만 더 일찍 왔다고 한다면,,"
"묘하게 거슬리는 소리를 하는구나 꼬마야."
리핀은 자신에게 건방진 말을 하는 레니아를 쳐다보았다. 척 보면 레니아와 그는 나이차가 그다지 나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인상을 쓰며 말했다.
"뭐라고? 누구보고 꼬맹이라는거냐? 제 얼굴이나 보고 말하시지. 아니면 그 얼굴에 실제로는 저 벤하르트처럼 할머니라도 되는거냐?"
"큭."
리핀은 엇 하는 사이에 몸이 휭 하니 한바퀴 돌아 내던져 졌다. 다행히 균형을 잡고 잘 착지했지만, 순간 벙한 느낌에 균형감각이 둔해졌다.
"무슨 짓이냐!"
"실례가 되는 말을 한건 그쪽이잖아."
"헹. 정말 찔리는게 있는 모양이지?"
"후우.. 그만둬 리핀. 지금은 그럴때가 아니잖아. 두분. 보시다시피 사부님은 5년전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이곳 연철장에 있는건 이제 리핀과 저 뿐입니다."
벤하르트는 닐스와 가장 친했었다. 그와 함께 지냈던 예전 일을 떠올리면서 벤하르트는 슬퍼했다.
"조금 신경쓰이는게 있어서 물어보고 싶은게 있는데 괜찮을까?"
침묵한채 묘 앞에서 묵념하고 있는 벤하르트를 뒤로하고 레니아는 아라나에게 물었다.
"대답할수 있는것이라면 대답해드리겠습니다."
"아까 요녀석이 한 말. 벤하르트에게 당신같은사람이라고 했었어. 명백히 하대 아랫사람을 대하는것만 같은 말투였지. 벤하르트가 아닌 다른 사람이 오기를 기다렸다는 뜻일텐데, 그게 어째선지 알려줄수 있을까?"
"말 그대로입니다. 저희의 사부님은 벤하르트 하르크 보다도 다른 분들이 오시는것을 기대했다는 말이에요. 단 그 이유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지 않겠습니다."
"그래?"
"정말 저분이 벤하르트 하르크라고 한다면, 같은 동문으로써 벤하르트씨는 저희의 사숙이 되겠군요. 실력을 확인해 봐도 될까요?"
벤하르트는 묵념을 끝내고 나와 그녀에게 물었다.
"실력..? 무슨 실력을 말하는거지?"
"연철장에서 배운것의 연장. 저희들의 사숙으로써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고 싶습니다. 과연 사부님이 기다리고 있었던 자들이 의미가 있었는지를.. 알고 싶습니다."
"말한번 잘했다. 아라나."
아라나는 뒷춤에 들고 있던 검을 리핀에게 주었다. 영롱한 빛을 씌우고 있는 검은 보통 예사로운것이 아니었다. 그 검을 받아들은 리핀은 곧장 벤하르트에게로 달려들었다.
둔탁한 음과 함께 리핀은 균형을 잃고 있었다. 어느샌가 벤하르트가 검을 들어 그를 내려다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좋다. 상대해주지. 하지만 이곳은 너희들에게 있어도 나에게 있어도 훼손 시켜서는 안될 곳일터.. 장소를 옮기자."
"그 그래.."
그들은 연철장의 연무장으로 향했다. 넓직한 곳은 흡사 이전 벤하르트가 머무르고 있었던 그 연철장을 떠오르게 했다. 이곳을 만들면서 닐스가 어떤 생각을 했을지 일편이나마 맛본 느낌이 들었지만, 그것을 토로해 말하며 곱씹을수 있는 동료는 이제 어디에도 없었다.
"좋아. 와라."
일섬의 자세에서 시작하는 파죽지세같은 공격에 벤하르트는 검을 제대로 잡아 그 공격을 받아내었다. 그와 동시에 수로 리핀의 검을 공격했다. 검과 검이 맞붙은 후의 움직임에 리핀은 재빠르게 파악해 공격해나갔다. 실로 대단한 검술이어서 벤하르트도 적지 않게 감탄하고 있었지만, 그는 이번만큼은 순수하게 감탄을 하고 지나가기만 할 생각은 없었다.
그들이 사숙임을 시험한다면 그에 응해 어디까지나 확실히 자신은 닐스와 함께 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그는 검을 잡아 일섬의 자세를 취했다.
"그 동작은 이미 알고 있다!"
"그래? 그럼 와봐라."
벤하르트가 노리는건 리핀이 들고 있는 검. 죽을때 까지도, 닐스는 결코 익히지 못했던 검기.
아라나가 특별히 전해준 검은 이곳 연철장에서도 손을 꼽는 명검이었지만, 어떤 명검도 리핀정도의 손에 들려 있다면 벤하르트에게는 무엇이던지간에 베어서 부술수 있었다. 검의 호흡을 읽어 검을 부수는 검기.
"일섬. 참도!"
리핀이 들고 있던 그 명검은 마치 유리처럼 반짝거리며 흩어 깨어졌다.
"마 말도안돼."
"이정도면 증명이 되었을까?"
"그렇군요.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검술. 저희 연철장이 무엇을 기리는지 설마 모르시지는 않으시겠죠?"
아라나는 아까의 여유로움과는 다르게 어딘지 모르게 흥분한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그녀를 따라가자 나온곳은 공방이었다.
"공방."
"연철장의 사람이라면 어디까지나 무기를 만드는 도공이 근간. 벤하르트씨 당신은 그중에서도 으뜸이라고 들었었습니다."
"좋아. 두번째 대결은 검을 만드는 대결이로군."
그야말로 벤하르트가 가장 자신있어 하는 분야였다. 따지고 들자면, 검술보다도 몇배는 더,, 연습하지 않아도 수개월을 만지지 않아도 그 자신감이 사라지지 않을정도였다.
"그럼 제한 시간을 두도록 하죠."
아라나는 그 말을 하면서 벤하르트의 얼굴을 살폈지만, 변동하는 기색이 없었다.
'제한시간이 있어도 상관 없다는건가?'
그녀는 자신이 최고의 작품을 만들수 있는 최저의 시간을 제시했고 벤하르트는 그에 간단히 응했다. 그런 규칙을 정할때 까지만 해도 아라나는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이 대결이야 말로 정말 의미가 없는 대전이라는 것을..
"헤헤.. 벤하르트라는 녀석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몰라도, 아라나를 당해낼수 있을까?"
"하하하하하하하.. 아하하. 너 정말 웃기는구나?"
레니아는 박장대소를 하면서 보란듯이 리핀을 비웃었다.
"무슨 소리야? 아라나는 말년에 들어서는 우리 사부님보다도 검을 더 잘 만들었단 말이다."
"당해낼수 있을까? 라니 하하 웃기는것도 정도가 있어야지. 너희들은 혹시라도 진심으로 벤에게 이길생각이었다면 아까 그 검술에서 끝냈어야 했어. 공방에서의 대전? 검을 만드는 승부? 그런 승부에서 벤하르트를 이길수 있는 인간이 있을것 같아?"
"뭐..?"
승부는 종반을 치닫고 있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어림도 없을 시간 화력을 극대화시켜서 검을 제련하는 시간도 극소화 시켜서 만들어진 검. 하지만 검을 다 만들기도 전에 아라나는 의지를 잃었다.
"....."
질렸다 라고 해도 좋을 얼굴로 그녀의 손에는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벤하르트의 검은 그 시점에서 절대로 따라가지 못할정도로 격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만들어."
멎은 소리에 벤하르트는 조용히 그녀에게 말했다.
"네?"
"만들라고, 그 검은 네 검이다. 검을 만드는것은 어느것 하나 중도에서 그만두어선 안돼. 그 작품이 설사 못난 녀석이라고 해도 도공이라면 만들어야 해."
아라나는 어느샌가 손에 힘을 주고 있었다. 정적인 외모로도 그녀는 동적이게 움직이는것을 결코 그만두지 않았다.
'후..'
완성된 검은 당연하다 할수 있을정도로 벤하르트의 완승이었지만, 아라나는 전혀 불만스러운 기색이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그녀가 만든 검은 지금까지 그녀가 만들었던 검들중에서도 으뜸일정도로 잘 제련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끝나자 마자 아라나는 손으로 리핀을 쳤고, 리핀은 불만 어린 표정으로 서서히 고개를 숙여 절을 했다.
"사숙 인사드립니다. 아라나 민느 입니다."
"마찬가지로 인사드리죠. 리핀 테리어 입니다."
갑작스러운 둘의 절에 벤하르트는 벙찐 얼굴로 당황해 했다.
- 작가의말
위에 부제 사연은 일반적인 그 사연이 아닙니다. 잘 보시면 한자 죽을 사가 들어가 있지요. 부제 자체에 의미는 그렇게 중요할정도는 아닙니다만,, 뭐...
조금 숨겨둔 부분이 있는데 그건 다음화에 나올 예정. 의아한점이 있더라도 넘어가주세요 ^^
주말이 코앞입니다. ^^; 모두 즐거운 주말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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