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375화-찬티아(6)
"으으으 삭신이야."
레니아는 침대에서 일어나려다 몸이 굳었다는것을 확인했다.
"으음."
"레니아 일어났어? 너답지 않은걸. 이렇게 오랫동안 자고 말야. 걱정했다고,"
"지금은."
창을 보니 이미 어둑해진 밤이었다.
"얼마나 잔거야?"
"만 하루 정도? 곤히도 자더라고,"
레니아가 일찍일어나는것은 본래 그녀의 성향이나 습관과도 관계가 있는 행동이었지만, 그 이전에 개인적으로 그녀 스스로가 벤하르트에게 자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빤히 벤하르트를 보는 레니아의 마음은 전혀 알지 못한채 벤하르트가 물었다.
"그래서 몸은 괜찮아? 마법을 써서 그랬다면서?"
"딱 보면 알수 있잖아? 괜찮지는 않아. 죽을상을 할정도는 또 아니지만, 그래도 고작해야 그정도 거리를 오가는데 이정도의 체력이 소모될줄은.. 역시 좌표설정이나 위치에 대한 연구와 연습이 부족했던 걸까. 아니면,,"
"마법에 대해서는 전문적으로 파고들어갔을때 난 알수 없는데,,"
"혼잣말이야. 그나저나 벤 네쪽은 어떤데? 제대로 성공한거야? 그놈의 교섭."
"성공했다고 말할수 있겠지. 공주는 알아봐주기로 했어. 아닐경우에는.. 뭐라더라? 능지처참?을 당한다고 하던데,"
"능지처참!?"
레니아의 놀람섞인 목소리에 벤하르트는 궁금했던 질문을 건넸다.
"오 레니아 알고 있는거야? 뭔데?"
"진짜 알고 싶어? 때로는 모르는게 약일때도 있는거야. 뭐 인간의 여러가지 벌중에서는 그래 그렇게 심하지 않은것일수도 있어. 개중에는 정말 잔혹한것도 존재하니까,"
"그렇다면야.."
벤하르트로써는 알던 모르던 별로 관계가 없는 일이었기에 심각하게 신경을 쓰지는 않았지만, 그에 레니아가 말했다.
"아니 그래도 알아두는게 좋지 않을까?"
"도대체 어느쪽이냐."
"능지처참은 말이지.."
"듣지도 않고 있어.."
"사지를 잘라 죽이는 형벌이지만, 사지를 자를때까지 죽이지 않는것이 요점이라 할수 있지. 마지막에 심장을 찌른다고 하는데, 그 잔혹함은 형벌중에서도 상당히 심한 부류에 속해."
"그 그래?"
레니아는 그 삐걱이는 움직임으로 세세하게 묘사를 하다가 나중에는 종이로 그림까지 그려가면서 설명을 해주었다. 그림이 너무도 사실적이어서 벤하르트는 기분이 썩 좋다고는 할수 없었다.
"이정도로 할 필요는 없지 않아? 날 골리려면 말야."
"흥 누가 골리려고 이런짓까지 하겠어."
'아니 아무리 봐도 골리기 위함이잖아.'
"그럼 어째선데."
"분명 벤 너는 설득을 잘 했을거야. 너는 스스로는 모르지만, 어딘가 꼼꼼하려 애를 쓰는게 있고 그 사실이 상대에게 전해지니까, 왠만해서는 믿게 되거든. 하지만 그게 정말 설득에 통한건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있는건지는 의문이라는 이야기지."
"음. 찬티아 공주가 다른 흉계를 꾸밀수도 있다는 거야?"
"그렇게까지 말할수는 없지만, 애당초에 능지처참이라는 형벌을 꺼낸것은 좀 과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네 말로 설득을 하고 있을때 보통 그렇게 할까?"
"그거야.. 법에 그렇게 되어 있어서 겸사겸사로 농담을 한게 아닐까?"
벤하르트의 상식적인 답변에 레니아는 일순간 말을 다물었다가 찜찜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이런 작은 것마저도 의심하고 들면 이세상에 믿을만한건 없을지도 모르겠네."
"그렇지? 하지만 형벌에 관한 사실이 능지처참이 아니라고 해도 좋은게 아닌것만은 확실하니까, 야반도주를 할 준비라도 해두는게 좋을지 몰라."
"도주야 우리의 특기중의 특기잖아. 고작해야 공주나 그 수하나 어딘가의 덩치큰 수비대장이나 그 졸병들까지 온다 한들 막을수 있겠어?"
"레니아 네 생각은 엄청나게 편리하구나."
"뭐가 말이야?"
"그러니까, 보통 작은것도 상당히 예리하게 파고들정도의 '인간적인' 의심을 하면서도 언제나 상황을 '단순화'시켜서 가볍게 생각하는것 말야. 가벼우면서도 세밀한부분부터 웅장한 부분까지도 생각한다는 점은 정말 대단한거거든."
"그거야 벤도 그렇잖아?"
"나는 달라. 작은것을 보고 작은것과 그 주변의 것들만을 생각하지."
여하튼 칭찬의 말에 레니아는 기분이 좋아져 침대위에 벌렁 누웠다.
"또 피곤하네."
그녀는 하품을 하며 말했다.
"한숨 자지 그래?"
벤하르트가 권하자 그녀는 슬쩍 그를 보며 물었다.
"벤. 내가 자는 모습을 본거야?"
"어쩔수 없잖아?"
"으윽."
"아 저기 예전부터 궁금했는데, 자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 이유가 뭐야? 내가 보기에는 그저..."
"그저?"
"그저.. 예쁘다고 할까 귀엽기만 하던데 말야."
레니아는 홍당무처럼 빨갛게 얼굴을 물들이고 벤하르트를 보았다. 벤하르트 본인도 자신이 말한것에 대해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으나 바로 변명했다.
"아니 그냥 순수한 의미로 말야. 굳이 그렇게 숨길 필요가 있는건가 하고,, 잠깐 손과 발을 멈추고."
벤하르트는 잽싸게 방어 태세를 갖추었다. 레니아의 실력이 늘면 늘수록 점차 공수공방도 썩 가볍지가 않았다. 이전처럼 여유롭게는 당해낼수 없는 것이다.
"화 화난건 아니야."
'어? 발길질이 안오는건가?'
방어를 풀려던 벤하르트는 곧장 방어를 해 레니아의 가벼운 수도를 반사적으로 막았다.
"뭐야 그 과잉반응은.. 내가 그정도로 난폭하기라도 한거야? 정말 화나지 않았어."
'아니라곤 말 못하지 않나?'
"그럼 이유를 말해주려나?"
"나는 말야. 내 무방비 스러운 모습을 아무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을뿐이야. 잠을 자는것은 내가 약하고 강하고를 떠나서 내가 나로써 대처하지 못한다는것이니까, 그런 모습을 누군가가 본다는것은 기분이 나빠서 말야."
"음 그렇군."
벤하르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수긍했다. 레니아의 자존심을 감안해서 생각하면 별로 이상해할것도 없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말야. 내가 화나지 않은건 그 말에서 모순을 느꼈기 때문이야."
"어? 뭐가?"
"누군가가 보는게 기분이 나쁜건 사실이야. 그렇게만 생각해 왔기에 그렇다고만 생각해왔는데, 벤 너는 별개라고 생각해."
변화의 계기는 벤하르트가 한 말이었다고 레니아는 다시 생각했다.
"....."
"거기서 왜 침묵하는건데?"
"아니 너무 의외여서 말이지. 그 그럼.. 자는 모습을 이제 봐도 상관 없나?"
"그건 별로 내키지 않는데,"
레니아는 툴툴거리면서 말했다.
"도대체 어느쪽이야."
그것이 약간 불평어린 목소리라는것은 어느 누구도 알지 못했다.
3일정도가 지나자 레니아의 몸은 언제 그랬냐는듯 돌아와 있었다. 아무리 공주가 자신의 말을 들어 주었다고는 해도 분명 그들은 좋은 상황으로만 공주를 대한다는 보장은 없었다.
가령 벨드의 일이 공주에게 발각되지 않을경우와 같은 경우 벨드의 대처가 확실했다고 한다면, 공주에게 의혹심만 심어 주었을뿐으로 벤하르트와 레니아는 결론적으로는 쫓겨야 하는 신세에 처하게 될것이 틀림 없었다. 물론 그게 능지처참의 형벌일지는 벤하르트로써도 알수 없었지만, 그만큼이나 공주를 확실하게 믿고 대할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반대로 공주쪽에서도 벤하르트의 말을 믿는다 했지만, 역으로 벤하르트가 가지고 있는 어느정도의 의혹을 가지지 않을리 없었다.
그랬기에 서로는 서로를 견제하지 않을수 없었다. 벤하르트는 자신과 레니아를 감시하고 있는 무리가 있다는것을 진즉에 알아차렸다. 그렇기에 그것에 대한 대처는 충분히 하고 밖으로 나가곤 했다.
"후우. 왠지 도둑이 된것 같아. 이런 꼴을 해야 하다니,"
"내가 레니아다! 하고 주장할 필요는 없잖아. 조심해서 나쁠건 없다고,"
"사실상 벨드의 일을 공주가 알지 못하면 얼굴은 벨드가 알고 있게 되니까, 별수 없는 노릇 아닌가?"
"라군델은 제국이라고, 앞으로 얼마나 여행해야 할지는 알수 없지. 지명수배라도 붙어봐. 지금은 '여기서만' 이런 노력을 하면되지만, 지명수배라도 걸리게 된다면, 라군델 안에서는 평생을 이러고 다녀야 할걸. 나는 몰라도 너는 너무 눈에 잘 띄니까 말야."
"알고 있어. 방법이 없으니까 불평이라도 하는거지."
"기운은 있어서 좋네."
벤하르트와 레니아는 여관방에 들어가 몸을 풀고 휴식을 취했다. 그들은 쓸데없는 이야기로 시시덕 거리다가 동시에 말을 멈추었다. 여관방을 향해 누군가가 올라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인인가?"
"아니 걸음걸이가 달라."
벤하르트의 제지와 동시에 방문이 두드려졌다.
"누구십니까?"
"찬티아 공주님이 보내서 왔소. 얼굴을 보이기 싫다면 이 전갈을 받으시오."
벤하르트는 준비를 하고 살짝 문을 열었다.
"전갈이라면,"
"이것이오."
한장의 편지를 전하고 그는 곧장 고개를 돌려 그곳을 빠져나갔다.
'저정도면 비밀유지는 신경쓰지 않아도 되려나.'
"편지잖아? 빨리 열어봐."
"알았어."
벤하르트는 편지를 뜯어냈다.
===============================================
최근에 슬램덩크라는 만화책을 다시 읽었습니다.
어렸을때는 몰랐던 전율이 목을 타고 올라오더군요. 턱턱 막혀서 눈물이 나올것만 같은 감동?
그런분들을 볼때마다 항상 생각합니다. 저도 언젠가는 글로 이런것을 표현할수 있을지를요. 그러기를 바라고요. 하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산같은 느낌이 듭니다. (웃음/울음)
다시 보니 안선생님의
'마지막까지 희망을 버려선 안돼. 단념하면 바로 그때 시합은 끝나는거야.'
하는 말이 너무 절실히 와닿았습니다. 단념하면,,, 엔쿠라스도 그걸로 끝이 나겠죠. 슬램덩크에는 왜이리 명언이 많은지;;
Comment '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