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326화-계략(3)
"시작하기 전에 한가지 제안하고 싶은것이 있습니다만,"
"제안?"
"이기는 쪽의 부탁을 한가지 들어주는것은 어떻습니까."
"그것은 거절하겠습니다."
그는 딱 잘라 거절했다.
"그렇습니까."
"그렇습니다. 분명 라질씨는 내문주 이시지요? 르바씨에게서 들었습니다. 극도문을 아낀다는 말을. 극도문을 되살리려 하는 사람이 설사 비무라고 해도 내문주의 신분으로 저와 겨뤄 질 생각은 하고 있지 않겠지요. 그렇다면 그런 제안을 한것 자체가 무언가를 원한다는 뜻. 거기에 저는 극도문에 바라는것 같은것은 없습니다."
"과연. 굉장한 통찰력입니다. 확실히 그 말대로 저는 설사 비무라고 해도 벤씨에게 질 생각은 눈곱만큼도 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정말로 극도문에 바라는것이 없는 것입니까?"
"무슨."
극도문에 바라는것 같은게 있을리 없었다. 적어도 현재의 시점에서 벤하르트가 극도문에 요구하고자 하는것은 없었다.
"가령."
라질은 미소를 띄우고는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도장파괴범의 이름을 알고 싶다거나."
"!! 도장파괴범의 이름은 알지 못한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아 그때 저는 분명 '저는 듣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만, 당시의 저는 그자에게서 이름을 듣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문원들에게서는 들어 알고는 있었지요."
"그런."
단순한 말장난에 불과한 것이지만, 이제와서 알려달라고 말하는것은 불가능했다. 라질은 그 사실을 미끼로 벤하르트를 낚아 올리려 하고 있었기에, 순순히 알려달라 해서 알려줄리 만무한것이다.
원하는것이 있다면 그 실력으로.. 스스로가 비무와 내기에 응해서 빼앗아 보라고 그는 전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나 다른 내용이었다면 깨끗하게 포기했을수 있었을것이다. 하지만 다름아닌 연철장의 누군가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그에게 망설임을 낳고 있었다.
'찾아 헤맨것도 아닌데, 눈에 나타나자마자 이꼴이라니.'
"어떻습니까. 참고로 이 제안을 받아 들이지 않는다면 저는 절대로 그 이름에 대해서는 입을 열지 않겠습니다."
"과연 레니아의 말대로다."
벤하르트는 체념한듯 웃으면서 말했다.
"!?"
벤하르트의 혼잣말을 이해하지 못한 라질은 살짝 의문스런 얼굴을 했다.
"일단 뭘 원하는지 들어 보고 결정하겠습니다."
"그건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니, 비무후에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비무는 받아 들이시는 것이겠지요?"
의심. 레니아를 만난 이후로 어이가 없을만큼 줄어들어 잠자고 있었던 의심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약함으로 무장해 착함으로 위장한 그의 특기는 거짓말. 그 부조리함에 걸맞게 타인을 터무니 없게 믿어주는 지금의 그라고 해도 여전히 특기는 의심인것이다.
저 라질이 부탁할것을 결정해놓지 않을리가 없을것이라고 생각을 하지 않을수 없었다.
'뭔가 걸리는 부탁을 요구할 생각인가?'
"좋습니다. 하지만, 알려주지 않은만큼 그만한 위험을 저는 부담하는 것이 되겠지요. 그러니 '무조건'은 붙히지 않겠습니다. 제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면 거절을 해도 무방하겠지요."
'겉보기와는 다르게 굉장히 용의주도하군.'
"하지만 서로 일단 내거는 것은 확실하니 벤씨가 이길경우에는 저에게 원하는 답을 듣는게 아니겠습니까? 그런 거절할수 있는 것까지 내놓는다면 이쪽에게 맞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만, '협상'정도까지는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라고 해도 완벽하게 거절하는것과는 다르게 서로의 의견을 절충하여 '협상'하는것은 어떻습니까?"
라질의 말에 벤하르트는 그정도라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좋습니다."
라질과 벤하르트는 대치해 섰다. 양쪽다 아무말없이 검을 뽑아들었다. 생사를 건 비무라고 해도 좋을정도로 주변은 투기가 넘쳐 흘렀다. 하지만 투기의 대부분은 벤하르트에게서 나오는것이 아니었고 라질에게서 나오는 것이었다. 벤하르트는 그의 투기를 받아 넘길수 있었지만 근처에 있는 르바는 그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신음성을 내었다.
"으으.."
"르바 네가 감당할수 있는 비무가 아니다. 들어가거라."
"아닙니다. 아버지 저는 보고 싶어요. 아니 보아야만 해요."
라질은 눈을 감고 말했다.
"마음대로 하거라."
라질의 몸은 꽤 다부져서 벤하르트와 비하면 몸집의 차이가 꽤 큰 차이를 보였는데, 그 투기까지 두르자 그 격차는 더욱 나 마치 거인과 난쟁이가 싸우는것 같은 환각마저 보일 정도 였다.
"이거 시간을 너무 끌었군요.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예."
벤하르트도 각오를 하지 않을수 없었다. 눈앞에 있는 극도문의 내문주는 적게 보아도 자신보다는 한수는 위. 그런 실력차라고 해도 그는 물러설수는 없었다. 실력면에서는 분명 한수가량은 차이가 나겠지만, 승산이 없는것도 아니었다. 일단 첫째로 비무라는 점이 생사를 확실하게 구분지어 주고 있었다. 위험한것은 사실이지만, 벤하르트에게 요구할것이 있는 이상 라질의 그에 대한 공격은 상대적으로 조절이 가미될수 밖에 없는 것이다. 둘째로 라질이 들고 있는검은 르바가 사용하는 일반 검으로 벤하르트의 검과 비교하면 꽤 손색이 있는 검이라 그것에서도 유리함을 가지고 들어갈수 있는것이다.
라질의 발이 반보가량 움직였다.
"두룡보(頭龍步)."
"큭."
그 거구로 삽시간에 거리를 코앞까지 좁히는것을 보고 벤하르트는 기겁하며 뒤로 돌아 거리를 벌렸다. 거리를 벌리는것은 그의 기술중에서도 가장 숙련된 움직임중 하나였지만 라질의 좁히는 움직임은 그의 움직임과는 천지 차이여서 도저히 거리를 벌려낼수 없었다.
벤하르트는 한바퀴를 돌면서 발로 걷어 차려다 발을 집어 넣었다. 어느샌가 라질은 다리를 노릴 자세를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거리를 벌릴수는 없구나.'
도망이라도 치지 않는한 두룡보에서 도저히 달아날수 없다는것을 깨달은 그는 검을 바로 잡고 일섬의 자세를 취했다.
"백뢰!"
백색의 빛과 라질의 검이 맞부딪힘과 동시에 라질의 검이 벤하르트의 어깨를 향해 쇄도했다. 그 일격을 검으로 막으면서 벤하르트는 라질을 상대했다.
'강하다.'
하지만 그 강함에서 그는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뭐라 말로 표현할수 없는 위화감에 그는 당황하면서도 검을 휘둘렀다.
극도문의 역대 문주들중에서도 최강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다 불리는 라질의 실력은 벤하르트가 생각한것보다 훨씬 뛰어났다. 방어에만 급급하는것은 아니었지만, 죽일 각오를 품지 않는한 그를 이길수가 없을것 같을 정도로..
그런 승리에 대한 확률은 벤하르트의 머릿속에 없었다. 있는것은 극도문의 검술의 정수를 모아놓은 라질에게서 느껴지는 위화감이었다.
'틀림없어.'
라질의 검술은 르바에게서 보아왔던 검술의 연장선. 그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다만 빈틈이 더 없어지고 더 완벽에 가까운 운영과 형식을 가지고 있을뿐. 그리고 그 형들중 몇가지는 일섬류에 가까웠다. 가까우면서도 한없이 멀어 그것을 알아차릴수 있는 사람이라고 해봐야 일섬류에 통달한 자들 현재 극도문의 안에서는 벤하르트 정도뿐이었다.
그 가까운 거리에서 둘의 비무를 관찰하는 르바마저도 눈치채지 못한 검술.
혹 일섬류가 맞냐고 확실한 대답을 요구하면 벤하르트는 절대 대답할수 없을것이다. 그것은 일섬류에 가까우나 확실히 일섬류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그 검술은 의심할것 없이 일섬류와 가까웠다.
"하아.. 하아."
마치 자신과 르바가 싸우고 있을때가 뒤바뀐것처럼 지친 그는 라질을 올려다 보고 있었다. 애석하게도 벤하르트가 이길수 있을 첫번째 이유는 같은 이유로 벤하르트에게도 명확한 공격권을 가져다 줄수 없었다. 어디까지나 비무이기 때문에 전력을 다할수 없는건 라질 뿐이 아니라는것이다.
"더 하시겠습니까!?"
"하아아!"
"과연 대답으로는 족하군요. 그럼."
"아버지!?"
라질은 더 망설일것 없이 극도문의 극의를 선보일 자세를 취했다. 칠천장화(七天藏花)라고 불리우는 역대 극도문의 문주들중에서도 단 두명만이 익힌 전설의 검술은 벤하르트에게 쇄도해 막을 겨를도 없이 벤하르트를 통과해 지나간 것이다.
핏줄기가 튀는 것 그 확신에 가득찬 승리의 순간에도 라질은 전혀 미동도 않고 벤하르트를 쳐다보았다. 쓰러지려는것처럼 보이는 벤하르트의 몸은 균형을 잡고 바로 라질을 향해 검을 날렸다.
'실전경험이 대단하군.'
그 검격조차도 라질에게는 닿지 않아 미끄러져 지나갔다. 그 점이야 말로 라질이 정말로 두려운 이유중 하나였다. 실전 경험이 상당히 적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결정난 결과를 눈으로 보면서도 한치의 방심도 하지 않는 정신. 역대 최고 라는 말을 듣기에 전혀 손색이 없는 실력인 것이다.
"이 승부는 제 승리로 가져가겠습니다."
라질은 쓰러지려 하는 벤하르트를 부축하며 말했다.
"그..럴수는 없습니다."
사각에서 백색의 빛이 시계로 들어왔다.
"!!"
백색의 빛이 들끓어 라질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사납게 일렁이는 백색의 빛을 띄우는 검을 들고 벤하르트는 자세를 취했다. 이미 비무정도의 의미가 아니게 되어 버린 까닭에 순수하게 실력과 실력으로 바뀐 탓에 되려 벤하르트는 라질을 상대할수 있었던 것이다.
"그 몸으로 그정도의 움직임이라, 과연 디레인이로군요."
'정말 강하다. 어떻게 하면 이길수 있지?'
피투성이로 물든 그의 얼굴에 살짝 이채가 서렸다.
'보였다.'
이길확률을 올려주는 빛을 보기라도 한듯 그는 검을 다시 궃게 쥐었다.
'이 상황에서 저런 투기를 띄는건가.'
'기회는 한번뿐.'
벤하르트는 눈을 감았다. 전신의 기를 끌어 모으로 동시에 자기 최면으로 지금껏 내보이지 않은 신체능력으로 무장해 한 합을 준비했다.
'수(守)'
수라는 말에 어울리지는 않았지만, 그 자세로 벤하르트는 튕기듯 움직였다. 그 움직임은 원체 빨랐던 벤하르트 보다도 훨씬 빠른지라 라질조차도 순간적으로는 당황을 해버릴 정도였다. 라질은 벤하르트의 팔의 움직임을 보고 검을 들어 그곳을 방어했다.
'무슨 두룡보!? 아니 그 이상이다.'
거리를 좁혀 들어오는 벤하르트의 눈에는 검의 틈이 새겨져 있었다.
"일섬! 참도(斬刀)."
검의 궤적은 미묘하게 달라져 벤하르트는 그가 노리던 곳을 꿰질렀다.
'성공이... 아니야?'
검과 검이 맞붙는 순간 그 궤적을 라질은 자신의 검으로 수정했다.
"말도 안돼."
라질의 검은 산산조각이 나기 일보직전의 상황이었다. 금 이가 금방이라도 산산조각이 날것같은 검을 라질은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미소를 지으면서 휘둘렀다. 아무리 금이간 검이라고 해도 검은 검 벤하르트는 피하지 않을수 없었지만, 이미 전력을 집중했기 때문에 더 대항할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의 목끝에는 라질의 검이 찌를듯 걸려 있었다.
"져 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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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두편 같은 분위기지만
날짜로는 하루하루 올린셈이 됩니다.
몸은 아작나지만! 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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