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324화-계략(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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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청년을 놔둔 이유가 뭡니까. 내문주. 설사 죽이지 않더라도 그 근원은 알아 두어야 했을터. 그때 내문주가 살해 당하는것을 똑똑히 보았을 텐데요."
노인의 음성이 가만히 앉아있는 라질을 향해 들려왔다.
"아아.. 결코 잊을수 없는 광경이었지요."
라질은 더할나위 없이 덤덤하게 그 말을 받아낸다.
"그렇다면, 그 일섬류의 검사를 이대로 두는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저에게 원한이 있다면 일섬류 자체가 아닌 그 일섬류의 노인.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벤이란 자는 그와는 전혀 관계가 없었습니다. 아니라면 그 일에 대해 그정도까지 파고들려고 하지는 않았겠지요."
"관계가 없는지 있는지는 확인해 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겠지요."
"장로. 너무 그렇게 열내지 마시지요."
그는 음성을 바꾸고 감고 있던 눈을 떴다. 평소와 전혀 다름 없는 눈빛이었지만, 오랜 기간 라질을 보아왔던 장로는 그것이 위험신호라는것을 알수 있었다.
"제가 해야 할일은 우리 극도문을 이전과 같을 정도의 수준으로 올리는 일. 물론 원수가 온다면야 저도 인간인지라 싸우기는 하겠습니다만, 저자는 원수도 아닐뿐더러 괜히 건드렸다가는 이쪽이 피를 볼 정도의 인간입니다.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겠지요."
"내문주가 해야 할 일은 이 극도문의 상징이요. 그런 자가 방금의 발언이라니.."
라질은 상징적인 존재로써 누구에게도 져서는 안되는 사람이었다. 그런 내문주인 그에게 그런 말은 금기나 다름 없는 것이다.
"물론 싸운다고 하면 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지지 않는게 꼭 이긴다고 할수는 없듯이. 싸움에는 어느정도의 변수라는게 분명 들어가는 것. 반수정도는 제가 위라고 생각합니다만, 그정도로는 그 남자에게서 확답을 내릴수 없습니다. 애초에 '도장파괴'와는 관계도 없어 보이는 이 쓸데없는 일에 그정도의 도박을 걸고 싶다는것은 아니겠지요? 장로."
"반수라니, 그런 나약한."
"아니라면 손수 익혔던 그 도술로 한번 노려보시겠습니까 벤을. 성공하지 못하면 장로는 제손에 반드시 죽게 되겠지요. 뭐 그때에는 저도 더 물러설곳이 없으니 벤이라는 자와 싸워야 겠지만, 어떠십니까."
딸의 팔도 진심으로 베려 한 라질이었다. 자신의 목숨 따위는 이 상황에서 아무런 가치를 지니고 있지 않을것이라는것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기에 장로는 더 우기는것을 그만 두었다. 라질의 실력은 어느것으로 보나 역대 극도문중에서도 손을 꼽을 정도의 실력자. 자신과는 비할수 있는 사람이 아닌것이다. 애초에 도장파괴범이 왔을당시 라질이 내문주였다면 하는 바램을 가졌던적도 많았을만큼 그의 실력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렇다곤 해도 그를 이곳에 들여 어쩔 속셈입니까. 그가 관련이 없다는것이 위험성이 적은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아니 위험성은 없습니다. 그것은 제가 보장하도록 하지요."
"일섬류에 대해 어째서 그정도의 확답을 내릴수 있는겁니까 내문주."
"장로. 당신은 상대가 검을 들고 심장을 찌르려 달려 들면 어찌 하실겁니까. 그리고 그것이 치명상을 입힐정도였다면? 혹은 불구가 될수도 있을 정도라면, 아무런 이유가 없는데 상처를 입었다면?"
"그야.."
라질은 조용히 다시 눈을 감고 벤하르트의 움직임을 생각했다.
"그는 수십명에게서 분명 자신을 죽이려 하는 살기를 명확하게 느꼈을겁니다. 당시에는 이유도 모르고 실력이 없었다면 그것으로 정말 죽었을 공격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수 있는 실력이었습니다. 아니 도리어 그 싸움에서 몇명이 죽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것이 없을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는 거진 살기를 띄우지 않았습니다. 없다고 해도 무방할정도의 살기로 대응한것입니다. 힘이 없을때 대응하지 못하는것과는 다른 있는데도 보복하지 않는다는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그것이야 말로 맹점으로 우리들에게 무언가를 하기 위함이 아닌지."
"그랬다면 살기는 풍겼을터. 결정적으로 그에게서는 적의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속내를 감추는것은 할수 있지만, 그런 난전속에서는 불가능에 가까우니 걱정하지 마시지요."
"왜 그렇게 일섬류를 싸고 도는 겁니까?"
"싸고 돌다니, 전혀 그렇지는 않습니다. 말하지 않았습니까? 제가 할 일은 극도문을 다시 성장시키는것. 그것에 합당한 일을 하고 있을뿐입니다."
"그를 이렇게 머물게 하는것에 무슨 의미가 있다는 겁니까."
"장로. 적당히 하시지요."
라질은 시선을 뒤쪽으로 옮기며 말했다. 무시무시한 기백에 노인의 목소리는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죄 죄송합니다."
"의미라면, 하나 확실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그 도공술. 우리 극도문은 이전부터 두가지의 비전을 내세워 존속해오던 문파였는데, 하나는 도공술이고 하나는 검술이었지요. 하지만 현재에 와서는 도공술은 거진 문외가 되고 있는것이 현실입니다. 비전서도 없고 이미 평범한 공방정도의 의미밖에는 되지 않는 곳에 그자의 존재는 굉장한 도움이 될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자의 나이대로 보아 그런 실력을 가지고 있을것 같지는.."
"그 나이는 거짓입니다."
"그 그게 무슨."
"진짜 나이는 알수 없지만, 분명 그 나이는 거짓입니다. 몸이나 육체 보이는것으로는 분명 젊지만, 검술에서 세월이 느껴집니다. 기본적인 기술들은 근래에 배운 모양이지만, 그 일섬만은 수십년에 필적할만한 세월이 느껴졌습니다. 아마 나이는 중년 이상일겁니다."
장로는 오랫동안 라질이라는 남자를 보았지만 그때는 정말로 놀라고 있었다. 본래 극도문은 근래에 들어 별다른 대외활동이 없었기 때문에 라질도 별반 나서는 일이 없었고 특별한 일이 없었기에 내문주인 라질의 실력을 볼 기회는 좀체 드러나지 않았다. 라질의 말은 황당하게 들릴 정도였지만, 실제 저 말이 맞는다고 한다면 자신으로써는 생각하지도 못할 정도의 앞을 본것이나 다름 없었던 것이다.
"그자가 자신있게 자신이 만들었다고 보여준 검은 장인의 수준을 월등히 넘어선 작품이었습니다. 비유하자면 '신기'나 '전설'에 비할만큼의 기술. 벤이라는 자를 이곳에 묶어 두는것이 불가능하다고 해도 검하나라도 만들게 할수 있다면 성공입니다."
"방금 듣기에는 만들지 않겠다고 들었습니다만,"
장로는 마지막이 될 반론의 말을 조심스레 꺼내들었다. 라질이 말한 내용은 허무맹랑해서 별로 믿음이 가는 내용은 아니었지만, 어쩐지 그럴듯해 보였다. 어설픈 포장이 아닌, 라질의 분위기가 그렇게 몰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겉보기에 그럴싸 한게 아닌, 그럴싸 하지 않은데도 마치 그럴싸한것처럼 '느끼게' 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자각하고 있어 라질에게 두려움을 느끼는 장로가 그곳에 있었다.
"화해의 포석과 미끼, 거기에 '재료' 그는 만들수 밖에 없을겁니다."
그 말을 하면서 라질은 입가에 미소를 띄었다.
"아아 무슨짓을 저지른겁니까 벤씨."
잠자코 방에 들어와서 쉬려고 하는 찰나 어둠속에서 갑작스러운 말이 들려와 벤하르트는 깜짝 놀라며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굉장히 당황함과 화를 머금은 얼굴로 서있는 카몬왕자가 있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어째서 르바를 이겨 버린 겁니까. 제가 그토록이나 손으로 신호를 했는데도,,"
'아 그때의 신호는 싸울때부터 했던 건가.'
하지만 싸울 당시의 그는 전혀 눈치채지도 못하고 있었다. 보통사람이라면 눈치 챌법도 할만큼 분주한 움직임이었지만, 그 대상이 왕자여서야 못알아차리는것도 무리는 아니었던 것이다.
"르바씨는 일부러 져주면 왠지 더 화를 낼것 같아 이겼습니다만, 뭔가 잘못되기라도 했는지."
"아니 그 생각은 정답입니다. 하지만 결과는 최악이에요. 지금에 와서야 고백하는것이지만, 저는 르바를 좋아하고 있습니다."
"아니 뭘 새삼스럽게.."
정말 새삼스러운 말이어서 무심결에 그는 말을 내뱉었다.
"그나저나 결과가 최악이라니, 제 말이 맞다면 제대로 이겨낸것이 맞는것 일텐데,"
"최악입니다. 최악이라구요! 르바는 자신을 이긴 남자와 결혼할것이라고 했단 말입니다."
"....."
"그건 최악이라고 할수 있겠네. 여러모로."
레니아의 말까지 듣자 그의 심장이 덜컥 거렸다.
'충격을 받는것은 그만해주겠어? 잠을 잘수가 없잖아.'
덜컥 거림과 동시에 짜르르 하게 울려온다.
"에이 설마 그렇게 까지, 하지는 않겠지요. 농담이라거나."
"농담일리가 없습니다. 어릴적부터 그녀의 이상형은 자신을 이기는 남자였단 말입니다. 하지만 그런 남자가 쉽게 있을리가 없었어요. 저는 그것으로 위안을 삼고 있었는데,"
'하기사'
벤하르트가 보기에도 그녀의 실력은 수준급이었다. 특히나 죽기살기로 달려드는 그때의 기나 기술은 디레인에 필적할수 있을만큼 대단한 것이었으니, 여간 남자들이 접근하지 못하는것도 당연했다.
"당신이 망쳐 버린 것이란 말입니다. 혹을 떼려고 데리고 왔더니 오히려 혹을 달아 주기만 하다니!"
카몬왕자는 대체적으로 존재감이 흐리기는 하지만, 그 이상으로 지적이어서 냉철하게 움직이는 편이었다. 그런 그가 이정도로 자신을 잃는 모습을 보자 벤하르트도 절대 농담처럼 느낄수가 없었다.
"거 걱정 마세요. 저는 사정이 있어서 절대 결혼같은것은 하지 않으니까, 마음도 받지 않습니다. 사귀지도 않구요. 아니 애초에 마음도 없고 저를 죽이려 한 여자 같은것에 관심을 가지지도 않을겁니다."
"정말이십니까?"
"그럼요. 이게 정상인의 반응입니다. 저는 제 삼자로 검을 만들어 줄것인가 아닌것인가.를 판단해 결정을 내리고 어느것이든 끝내고 나서 극도문을 나설겁니다."
"이상이군. 벤의 이상은 굉장히 안맞아 떨어지는데 말이지."
"크윽."
"초 치는건 그만해주지 그래!"
절대 눈독 들이지 않겠다는 다짐을 다섯번이나 받아내고 나서야 카몬왕자는 마음을 풀어낼수 있었다.
벤하르트는 따로 스스에게 말해 다른 방을 얻어낼수 있었다. 실제로 제의하고 말한것은 레니아로 틸타트와 같이 있고 싶지 않다는 이유를 명분으로 삼아 떨어진 것이다. 남은 호위 둘은 레니아를 어떻게든 남기고 싶어하는 눈치였지만, 애초에 레니아는 그들에게서 멀어지기 위해 제안한것이었기 때문에 인사한번으로 떼우고 다른 방으로 이동한 것이다.
"오랜만이라고 해야 하나. 둘이 된것은."
"뭐 그렇네. 이런 곳에서 둘이여 봐야 썩 좋은 기분이라고는 할수 없지만, 썩 나쁘지는 않다고 말해둘수 있겠어."
틸타트가 싫다는 명분은 굉장히 잘 들어 맞는다고 할수 있었다. 나쁘다기 보다는 기쁘다고 말할수 있는 기분이었지만, 그런 와중에도 썩 기쁘지 않은것은 라질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남자 말이야. 조금 불쾌하지 않아?"
"그 남자? 틸타트를 말하는것은... 아니겠지."
레니아의 눈이 변하는것을 보고 벤하르트는 바로 말을 바꾸었다.
"라질씨를 말하는건가."
"씨자를 붙혀주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 그 남자."
"조금 중후한 느낌을 주고 있기는 했지만, 불쾌하냐고 물으면, 어딘가 불쾌했지. 내 경우에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말하고 있을때 정도?"
"내 경우는 전부. 완벽하게 능구렁이 같은 남자였어."
"전부라니 무슨 원수를 대하는것 같잖아."
"그정도 까지야 아니지만, 불쾌하다는 거야. 마음에 안든다고나 할까."
'어느 누구나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 않았었나.'
레니아가 첫 인상부터 마음에 들어한 사람이 있었나? 하는 의문을 품으면 역시 그는 잘 기억해낼수가 없었다.
"그 멍한 얼굴은!"
"핫."
곧장 지르는 레니아의 주먹을 막아내고 한숨을 돌리며 벤하르트가 말했다.
"무슨 짓이야!"
"분명 그 얼굴은 나에 대해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을 법한 얼굴이었어."
"그런 얼굴을 읽는 방법이 있을리가 없잖아."
'아니 있나?'
라는 의문을 품을 정도로 레니아의 독안술은 정확해서 그는 잠시나마 소름이 돛았다.
"부인하지 않는걸 보니 맞는 모양이네. 앞으로 그 얼굴은 나에 대한 이상한 생각을 한다는 것으로 결정났어."
"아니 그런 결정을 네 독단으로 내리지 마. 거기에 이상한 생각이라니 명칭이라도 조금 바꿔줘."
"왜? 불쾌한 생각?"
"그건 악화다. 안좋은 생각 정도로 타협을 하는게,,"
"그런 명칭 따윈 아무래도 좋으니까 이상한 생각으로 타협을 해."
"아무래도 좋지 않다고 나는."
"어쨋든 그 이야기는 나중으로 하기로 하고 라질의 이야기야. 그 중후한 분위기도 훈훈한 분위기도 전부 관계를 좋게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았지만 그건 본심은 아니라고 생각해."
"나도 그렇게 느꼈어."
"애초에 겉으로 드러나는 거짓말까지 해뒀잖아. 말하는것이 서투르다? 그정도면 충분히 달변이라고 할만 했어. 적어도 듣는때에는 압도당하고 있었으니까,"
"압도.."
확실히 그는 압도 당하고 있었다. 그의 온화한 모습에도 때때로 보여주는 섬뜩한 느낌에도 밀고 당겨지면서 어느샌가 그는 휘둘려 지고 있었다고 레니아의 말을 들으면서 자각했다. 레니아의 말을 듣지 않았다면 그저 조금 불편하고 불쾌한 사람 정도의 의미로 끝났겠지만, 지금에와서야 확실히 그녀가 말한 '능구렁이'라는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쨋든 그 속을 알수는 없지만, 악의를 가지고 있는것은 아니라고 생각되니까, 휘둘려서 낚이지만 않으면 별로 상관은 없겠지. 예를 들어 '결혼' 같은 것의 문제라던가."
"....."
순간의 침묵에 레니아는 흠 하고 목을 정리해 말했다.
"뭐 뭐 신경 쓰고 있는건 아니지만, 네가 이런곳에 묶이면 엔쿠라스를 찾는것은 어떻게 되냔 말이지."
"그런 문제도 있었지."
"그런 문제밖에 없는거야. 무슨 생각을 한거야?"
"아니 뭐. 나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
"하여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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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차.
하루의 시작으로 하루를 쓰기로 결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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