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323화-극도문(5)
라질을 따라 그들은 한 방으로 들어갔다. 라질이 손짓하자 한소녀가 차와 먹을거리를 가지고 들어왔다.
벤하르트가 주변을 둘러보자 라질은 의심을 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여 선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제 아까와 같은 일은 발생하지 않을겁니다. 늦기는 했지만, 이제부터는 손님의 예우를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벤하르트는 무상으로 상대를 믿어주기는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을 팔아 넘기는 관대함이었다. 자신이 손해를 감수하는 방식으로 의심과는 또 다른 내용이었다. 의심하는것은 많이 줄었다고 해도 조심하는것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그렇군요."
"그런데 어떤 일로 이곳에 오시게 되었는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제가 아직 듣지를 못해서.."
"그건 제가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오 카몬왕자님 계셨습니까. 오랜만이군요."
'계셨습니까.라니.'
새삼 처량함을 느끼면서 카몬왕자는 말을 시작했다. 르바가 틸타트의 검을 탓한것으로 부터 시작해서 그 대장장이에게 검을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한것과 벤하르트가 이곳에 온일까지 포함한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 저 검을 저 남자가 만들었을리가.."
"....."
르바는 놀라 입을 다물었다. 선량하다고 생각했던 라질의 얼굴이 악독하게 일그러진 까닭이었다.
"이거.. 참. 제 딸이 몹쓸 잘못을 저질렀군요. 마음같아서는 양팔을 바쳐버리고 싶을 정도입니다."
라질의 손가락근거에서 스릉 스릉 거리는 검을 보면서 벤하르트는 재빠르게 말했다.
"아니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완벽하게 잊었거든요."
"그렇다면 편한 마음으로 성함을 들을수 있겠습니까. '디레인'이라는것 까지는 들었지만, 이름을 듣지 못했군요. 세상과는 등지고 살아가는 지라."
"제 이름은 벤.. 입니다. 일단은 벤하르트로 할아버지의 이름을 쓰고는 있습니다. 그리고 이쪽은 레니아라고 합니다."
'이 설정 어디까지 계속되는 걸까.'
거짓말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고 하는것을 그는 기가막히게 느낄수 있었다.
"그럼 벤님."
"그렇게 높혀 부르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군요. 말하는것은 서투른지라. 벤씨로 부르도록 하지요. 그럼 벤씨. 자신이 만들었다고 하는 그 검을 한번 저에게 보여주실수 있겠습니까."
라질이 묻자 벤하르트는 살짝 그 압박에 멈칫거렸지만 이내 검을 뽑아 보여주었다. 그 검을 몇분인가 보고 라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과연. 제 딸이 그런 오해를 살만도 할정도의 명품이로군요. 신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의 기술입니다."
"감사합니다."
라질은 벤하르트의 검을 놓아두고 말했다.
"저희 문파는 기본적으로는 검술과 각종 체술의 무도를 가르치는 도장입니다만, 실제 양쪽으로 도공술에도 힘을 쓰고 있습니다. 이곳 별관의 반대쪽에 가면 공방이 있고 그곳에서 그에 관한 수련을 하곤 하지요. 나름대로는 도공술에 관해서도 수준이 높다고 자부하고 있었지만, 이거 이런 작품을 보니 공방을 폐쇄해 버려야 겠다는 생각을 금할수가 없군요."
싱긋 웃으면서 말하는 그의 어조에는 왠지 진심이 서려있는듯 해 벤하르트는 질린얼굴로 생각했다.
'왜 저렇게 극단적인걸까.'
"제 딸도 어려서부터 그 수련을 해왔으니, 검에 관한 안목은 조금 뛰어났을테지요. 다만 제 생각보다도 더 뛰어났을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지만,"
검이 단순히 좋고 나쁘고를 아는것만으로도 전문가의 안목이라 할수 있었지만, 르바는 그보다 한수를 더 띄워서 벤하르트가 전력을 다하여 만들지 않았다는 사실까지 간파할 정도였으니 대단하다 말하지 않을수 없었던 것이다. 라질이 살짝 딸을 쳐다 보자 르바는 고개를 숙이고는 대답을 받았다. 그 바라보는 시선이 지금 자신의 아버지가 줄수있는 최고의 찬사라는 것을 안 까닭이었다.
"그럼 이곳에 머물면서 제 딸에게 검을 만들어 주시려 오신것이군요."
"그렇습니다만,"
"벤씨!"
카몬이 놀라 벤하르트의 말을 가로 막았다.
"왕자님 분명히 저는 상대를 보고 만들어 드린다고 전해 드리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르바의 저런 행동은 저도 처음 보는것으로 저 일면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는것은."
일면으로 사람을 판단하는것은 벤하르트가 가장 싫어하는것중에 하나였다. 싫어한다기 보다는 거부감이 드는 것이라고 하는게 더 정확한 말이었다. 이전 그를 위협했던 디논의 일과 같이 한번만으로 사람을 이해하는것은 그에게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사람은 일면으로 판단하면 안되는것이라는 말에는 동의합니다. 그러니 그에 관해서 몇가지 물을것이 있습니다만,"
"못대답할 말을 빼고는 전부 대답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분명 르바는 저의 검술을 보고 적의를 드러내었습니다. 형식도 장소도 존재하지 않는 저희의 유파의 검술인데 어째서 그 검술이 그 적의를 드러내게 되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도장파괴범이라는 말도 들었고,"
"원래대로라면 그 건에 관해서는 외부인에게는 드러내서는 안될 말입니다만,"
"하지만 저는 저에 관해 공격당한 일을 제하더라도 꼭 들어야 겠습니다."
벤하르트는 평소답지 않게 물러섬 없이 말했다. 일섬류와 연철장. 지금은 뒤로 하고 있는 문제라고 할지라도 그에게는 중요한 사안인 것이다. 지금것 연철장의 사람을 만난것은 루크 하나뿐으로 다른 어떤 누구도 그는 만난적이 없었다. 그 작은 실마리조차도 얻을수 없었는데, 지금 여기서 잡게 된것이다. 루크의 일이라는것도 경우에서 제할수는 없지만, 그것이 아닐 확률도 빼놓을수 없었기에 그는 기대를 품고 있었다.
그리고 품은 기대 안에는 두려움이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그럼 이야기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말하지 않으면 제 딸의 팔이라도 잘라야 할테니, 두개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외문주의 팔을 자르는것보다야 이쪽이 싸게 먹히겠으니.."
"딱 11년전 이맘때 정도에 한 남자가 이 극도문에 찾아왔습니다. 남자가 아닌 다 죽어가는 늙은이가. 이 문파에 찾아왔습니다. 처음에는 거지나 비렁뱅이 정도로 생각했지만, 그는 당당하게 자신을 밝혔습니다. '도장파괴'를 하러 왔다고."
"도장파괴?"
레니아의 혼잣말에 라질은 엄숙한 분위기로 대답해주었다.
"자신의 실력으로 도장을 깨는 것을 말하는것입니다. 보통은 문주와의 대결을 청해 비무로 결정을 내곤 합니다. 도장을 발 아래에 둔다 정말 도장을 부수어 없애는건 아니지만, 어떤 의미로는 파괴에 걸맞는 행위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저도 외문주로 제대로된 무도를 한다고 할수 없었고 딸도 아직은 어린아이였던 시절이었지만, 그 검술만큼은 그 어린나이에 보아도 인상깊은 검술이었습니다. '일섬류'라고 벤씨가 말했던것처럼 그 노인은 그 검술을 구사했습니다. 다만 벤하르트씨와는 조금 다른 식으로. 미세하게 9할이 비슷해도 나머지 1할이 다른 검술. 이라고 말해두면 좋을지.. 확답은 서지 않습니다만,"
"일섬류가 확실한겁니까?"
"1할이 다르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두말할것도 없이 확실합니다. 왜냐하면 그 자신의 입으로 일섬류라고 말을 해두었으니까요. 라군델의 '세프로'에 거주하고 있는 일섬류의 검사라고,"
"세프로.."
세프로는 라군델의 남쪽 상대적으로 평화롭고 도시에서 동떨어져 라군델제국의 분위기와는 조금 먼곳이라고 평을 받는 시골마을이었지만, 지금의 벤하르트는 그곳을 알리 없었다. 다만, 그 말로 인해서 상대가 루크가 아니라는것은 확실하게 알아낼수 있었다.
'누굴까.'
"이야기의 계속을 말하자면, 그 도장파괴범은 이곳에 단신으로 들어와 비무라는 이름하에 당시 극도문의 내문주를 죽였습니다."
"....."
"10년의 이야기로 그 일 때문에 외문주였던 제가 극도문의 내문주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정도의 기간이었기에 딸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문원들도 그 검술에 대해 적의를 드러낸 것입니다."
"그때 죽은 내문주는 혹시."
라질은 덤덤히 타인을 대하는것처럼 입을 열었다.
"네. 제 아버지입니다."
벤하르트는 그때만큼은 일섬류의 다른 누군가에 대한 생각을 전혀 할수 없었다. 그 누군가가 이곳 극도문에 와서 도장파괴를 실행해 내문주를 죽였다. 그리고 그 검술과 한없이 흡사한 검술을 구사하는 남자가 나타났다. 사실 극도문중에서도 가장 이성을 잃어야 했던것은 라질이 아니었을까라는 의문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이성조차도 넘어서 너무도 덤덤하게 이야기하는 라질이 무섭게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대답은 되셨습니까?"
"혹시 그 도장파괴범은 이름을 말하지 않았는지.."
"저는 듣지 못했습니다."
그 말에 약간의 뼈가 있다는 것을 벤하르트는 눈치 채지 못했다.
"그럼 벤씨의 할아버지가 되시는 벤하르트님도 일섬류에 속하는 것이겠군요. 혹시 그분은 아닐까요."
날카로운 눈으로 라질이 사실을 확인하듯이 물었다.
"그럴리가 없습니다."
당연하지만 확신어린 목소리로 벤하르트가 말했다.
"에.. 그당시 할아버지는 저에게 검술이나 도공술을 가르치셨으니까요. 시기상으로 제가 이정도 수준에 오르려면 어쩔수 없는 일이지요."
이제는 시간 관계가 엉망이 되어 버려 맞는건지 안맞는건지 분간해 거짓말을 할 여력도 없어져 버렸다.
"농담입니다. 이거 타인과 말하는것이 너무 서투르다보니 농담처럼 들리게 말하는것도 힘들군요."
하하 거리면서 웃다가 그는 다시 표정을 바꾸었다. 정색이라고 말하는것이 무색할 정도의 변화에 벤하르트는 물론이고 몇번이고 보아온 카몬왕자나 하루도 빠짐 없이 보고 사는 르바마저도 움찔 거리면서 굳었다.
"그럼 궁금한것은 다 물으셨는지.?"
워낙 심란해 벤하르트는 혼란한 나머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끝을 지어야.. 르바."
"네 아버지."
"팔 자르고 싶지는 않겠지?"
르바는 떨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당차기만한 르바였지만 자신의 아버지 앞에서는 호랑이 앞의 쥐일 뿐이었다.
"'진심을 다해' 사과해라. 만약 못하겠다면 손수 잘라주지. 오해가 풀린 지금 못할 이유는 없을터다."
"네."
"혹시 오해해서 네 팔을 자를까 확실히 말해두겠다.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진심을 담아 사과하는 것이다."
스릉 거리는 검을 뽑는 소리가 들렸다.
"저기 저희는 괜찮습니다."
"아니 이대로는 곤란합니다. 아직 제대로 된 사과는 하지 않았으니까. 정식으로 받아 주시지요."
"그래. 벤. 받아보자."
"뭐?"
"괜찮을거야."
팔 하나를 건 사과. 르바는 자신의 아버지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에 떨림을 멈추고 심호흡을 했다. 엄숙한 표정으로 가라앉은 눈으로 그녀는 벤하르트와 레니아를 응시했다.
"죄송합니다. 섵부른 판단으로 두분의 생명을 위협한 행동을 저지른점 이자리를 빌어 사과하겠습니다. 부디 용서해주세요."
무릎 꿇어 고개를 숙이고 그녀가 말했다. 자세나 태도는 완벽이었지만 무엇보다도 그 분위기에 벤하르트는 놀랐다.
"....."
"용서해 주겠어요."
잠시 침묵의 시간이 지나고 레니아가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럼 이것으로 마무리를 지었다고 생각하겠습니다. 별채에 따로 방을 마련해 두었으니 그곳에서 쉬어주십시오. 따로 질문을 하거나 대면을 하고 싶으실때는 이녀석을 불러 말을 전해 두면 됩니다. 스스. 손님들을 모셔라."
"네."
처음에 차를 가지고 왔던 소녀가 벤하르트일행에게 인사하며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스스 라고 합니다. 방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따라와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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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째
앞으로는 댓글을 이용해서.. 사족을 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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