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319화-극도문(1)
"여행이라고 하면 꽤 오랜만의 일이로군요."
"그러십니까."
"일주일 정도 되었던가?"
'이사람 왕자가 아니었나?'
왕자가 일주에 한번 여행을 하는게 오랜만이라고 생각하는것은 왕자의 생활을 모르는 벤하르트에게 있어서도 충분히 이상하다고 생각할수 있었다.
말을 걸지 않으면 좀체 위치파악이 되지 않아서 벤하르트는 이따금씩 깜짝깜짝 놀라기 일수였다. 이미 수준급에 올라와 있는 실력을 가졌기 때문에 평상시에는 좀처럼 맛보기 힘든 감각인 것이다.
카몬왕자의 제안에 따라 벤하르트와 카몬은 조금 앞에서서 걷고 있었고 그 뒤를 틸타트와 레니아가 나머지 호위 둘이 후위를 맡고 있었다.
"그나저나 벤.. 이라고 불러야 하는 것입니까?"
"네. 그렇게 불러주세요. 벤하르트라는건 할아버지의 이름이니까요."
자신이 만들어낸 설정에 최대한 어울려 임하면서 벤하르트는 살짝 쓴웃음 지었다.
"그 나이에 디레인이라니 놀랍군요. 소문으로 듣자 하니 루안을 쓰러뜨렸을 정도로 대단한 실력자라고 하던데,,"
그 눈빛에는 어느정도의 부러움이 서려 있었다.
'하지만 나이라니,'
카몬왕자를 몇명이나 더해야 자신의 나이가 되려나. 하는 생각을 하다가 왕자가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한 그는 입을 열었다.
"그 사람앞에서는 가히 비교할 실력이 아닌지라.. 그사람이 태양이라면 저같은건 단순한 빛정도겠죠."
"이겨서 디레인이 된것이 아닙니까?"
"이겼지만, 다시 붙는다고 하면 절대적으로 질겁니다. 아마."
'그것만은 확실하겠지.'
"왕자님은 그 극도문에 무슨 볼일이라도 있는겁니까? 단순히 검을 만드는것이라고 한다면 저만 가도 충분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만,"
대화속에서 카몬왕자가 자신과 함께 갈것이라는것은 충분히 예측할수 있었지만, 그것이 벤하르트나 레니아에게 그다지 기분 좋은일이 아니라는것은 명백했다. 틸타트라는 짐이 있는것도 있는것이지만, 왕자라는 자리는 강하던 약하던 대하기 부담스러운 존재임에 분명한 것이었다.
조금 예외적으로 카몬이라는 왕자는 그 거북함이라고 부를수 있는 부담감을 더디게 느끼게 해주었지만, 그것을 감안해도 썩 기분좋은 여행은 아니라고 말할수 있었다.
"그 질문은 이상하군요. 물론 대답만 하자면 저는 확실히 볼일이 있었다 라고 말할수도 있겠지만, 집고는 넘어가도록 하지요. 선물을 주는것은 벤씨가 아닌 바로 저 자신. 당사자가 선물을 만들어줄 사람을 데리고 목적지에 가는것이 그다지 이상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혹시 저와의 동행이 마음에 안드셨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는 즉각 잘라 대답했다.
'예리하잖아. 멍하니 흐릿하면서..'
"극도문인가. 넉넉 잡아도 10일이면 되겠군요."
".....?"
왕자는 살짝 고개를 갸웃 거리고 고민스러운 얼굴을 해보였지만, 벤하르트는 그런 그를 알아채지 못했다. 한참 뒤 왕자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기.."
"읏. 네. 무슨 일이라도,,?"
"아까 10일이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습니다만,"
"이 저도 극도문까지 몇번인가 가본적이 있지만, 10일정도로는 도저히 갈수 없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잘못 알고 계신것이 아닙니까?"
벤하르트는 살짝 생각하고는 곧 그 차이를 깨달았다. 보폭이야 그다지 차이가 없다고 할수 있어도 벤하르트와 레니아정도의 거리를 왕자나 다른 사람들은 소화해 내지 못하는 것이다. 이제는 일상처럼 장거리를 이동할수 있는것은 이중에서는 벤하르트나 레니아 뿐으로. 다른 사람들은 하루 수시간을 쉬면서 천천히 나아가야 했던 것이다.
'그나저나. 저도 라니.'
정말 일국의 왕자 답지 않은 카몬의 자세는 벤하르트에게는 왠지 거북스러웠다.
"크어어.."
"조금만 더 달라 붙었다가는.. 팔을 아작내주지."
뒷쪽의 소란에 벤하르트는 입을 벌리며 다가갔다.
"무 무슨일이야?"
"별일 아니야. 지극히 개인적으로 끝낼수 있는 일이지."
"크윽.. 이 평민이."
"흥. 고작해야 인간주제에.. 그정도로 끝내준것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게 좋아. 그리고 더는 나를 건드리지 말도록, 금방이라도 폭발할것 같으니까."
"저기 레니아 그냥 넘어가고 싶지만, 그정도의 반응이라니 일단은 물어두도록 할게. 뭔일이 있었던거야?"
"치근덕."
"음?"
"이녀석이 말야. 옆에서 자기자랑을 늘여 놓으면서 접근해 치근덕 거렸다고, 징그럽기 그지 없었지. 형편없는 자랑이었어."
바로 코앞에서 틸타트가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레니아는 적나라하게 말을 해댔다. 울그락 불그락한 얼굴로 틸타트는 분을 삭히고 있었지만, 실력으로 보나 명분으로 보나 상황으로 보나 자신에게 득될것은 전혀 없었기에 나설수는 없었다.
"치근덕이라.."
벤하르트도 썩 기분좋은게 아니어서 틸타트에게 찌푸린 얼굴로 다가갔다.
"그러면 안되잖습니까.."
성격상 따지듯 말할수는 없었기에 건넨 한마디는 벤하르트 답지 않은 말이었다. 답지 않다는것은 건네지 않는다와 동의는 아니기에,, 그는 그렇게 귀족에게 '따진것이다'
사실 치근덕 거렸다고 해도 그저 여행이 무료한 틸타트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것 뿐인것으로, 틸타트의 입장에서는 미인에게 자신을 띄워 놓을 생각이 만만한 것이었지만, 그 내용이 괜찮지 않았던 것이다. 별로 불순한 생각은 없었음에도 그 점잖은 벤하르트에게 까지 한마디를 듣고 나자 틸타트의 기분은 그야말로 엉망이 되어 버렸다.
여행을 시작한지 3일째. 벤하르트의 일행들은 중간의 마을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왕자의 하루 쉬는 시간을 계산해서 보름정도는 잡는 긴 여정이될것이기 때문에 음식이 충분하다고 해도 마을에서 쉬고가는 것은 기정사실이 되어 있었다.
'음?'
그때 벤하르트는 한 기척을 감지해내었다. 오랜만이라고 불러도 좋을 뚜렷한 기척을 향해 그의 신경은 곤두섰다.
"왕자님."
호위중 하나가 눈치챈듯 왕자에게 말을 건네었다. 평범하게 생긴 호위병이었지만, 그래뵈도 디레인과 몇수정도는 응수할수 있을정도의 실력자로 브렌모스에서도 꽤 알아주는 대장중 하나였다.
"폐를 끼치지 않도록 하거라."
'호위에게는 명령을 하긴 하는군.'
그런 모습을 거의 보여주지 않는 왕자여서 그런지 왠지 그런 모습에 더 호감이 갈 정도였다. 본래라면 자신에게 보여주는 왕자의 모습이야 말로 평민에게 있어서는 꽤나 훈훈한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었지만, 이 카몬왕자만큼은 되려 명령하는 왕자의 모습을 보일때가 나아 보이는 것이다.
"벤."
"그래. 뭐 다들 알고 있는 모양이니까 괜찮지 않겠어?"
실제로 이렇게 살기를 늘어 뜨려 놓은 자들이 별볼일 없는것은 당연지사였다. 잠시 길을 멈춘 상태가 되자 상대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달려들었다.
'어?'
그 표적은 왕자나 호위나 틸타트 같은게 아닌, 벤하르트였다.
"으아아!"
'이놈이나 저놈이나.'
앳된 실력에 당할 벤하르트가 아니었기 때문에 로엔의 수법(手法)으로 충분히 대응해낼수 있었다.
"크윽 분하다."
'아니 분한것 이전에 실력이나 좀 키우고 오도록 하지.'
벤하르트를 노린 사내는 정말이지 어이가 없을정도로 약해서 헤이로카의 말단정도에서나 구를수 있을만큼 약한 것이었다. 그럴진대 그 정점에 선 디레인인 벤하르트를 노리고 들어온다는것 자체가 기가찬 노릇인 것이다.
"그럼."
자연스레 이제는 형식조차 차리지 않고 레니아는 분한얼굴을 한 사내를 잡아 꿇어앉혔다. 한손에는 엷게 마력을 띈 가위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무 무슨짓을."
'머리는 또 날테니까.'하는 눈으로 벤하르트는 동정어린 시선을 남자에게 보내었다.
그 순간이었다. 벤하르트는 즉각 검을 뽑아 들어 자세를 취했다. 혼란과 정리 속에서 잠시 느긋해져 있었던 마음을 파고 든 한 기척을 느낀 까닭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호위들은 아직 눈치를 채지 못한 상태여서 벤하르트는 검을 들어 기척을 향해 백광을 쏘아내었다.
그제서야 호위들은 검을 들어 기척쪽으로 다가갔다.
"크윽. 왕자는 어디냐!"
두리번 거리면서 검은 복장을 한 사내가 연신 카몬왕자를 찾아 헤맸다. 하지만 벌써 자신의 모습이 다 드러난 다음에 조차도 그는 왕자의 움직임을 다 잡아낼수 없었다.
'.....'
"젠장 방해를 하고 앉았어."
'도대체 저 왕자는 어느정도로 존재감이 없는거지!? 암살자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존재감이라니..'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벤하르트는 곧장 뽑아든 검으로 암살자의 검격을 막아내다가 빈틈을 노려 걷어차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그틈을 타 호위둘이 그의 앞을 가로 막았다.
미처 반응하지 못했을뿐 호위들의 실력은 개개인으로도 검은 복장의 남자보다 위였기 때문에 쉽사리 그를 제압할수 있었다.
"왕자님 이왕자의 심복인것 같습니다."
"그런가. 니하크 형님이.. 이자는 놓아주도록 하거라."
"예."
매번 있었다는 듯이 반쯤 곤죽을 만들어 놓고 그들은 암살자를 놓아주었다.
"이거 실례를 끼치게 되었습니다."
"아니 그정도는 아닙니다만, 되려 제쪽에서 왕자님께 폐가 된것 같습니다."
"그건 무슨..?"
왕자는 어느정도 무술에 소양이 있었지만, 깊게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벤하르트의 말을 알아들을수 없었다.
"아까 머리가 망가진 한 남자가 없었다면 호위들은 충분히 막아낼수 있었을테지만, 그 남자 때문에 조금 긴장이 풀어진 채였으니까요."
왕자의 신들린듯한 존재감이 아니었고 벤하르트가 아니었다면 정말 위험했을수도 있을 일이었다. 애초에 벤하르트가 없었다면 처음의 습격자도 없었을터였지만,,
"그런데, 분명 이왕자라고,"
"아 네. 흔하디 흔한 형제 싸움이지요. 별것 아닙니다."
왕자의 표정은 더할나위 없이 평온했지만, 벤하르트는 그것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자객의 움직임은 분명 살기가 어려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섵부른 판단을 하는것은 그만큼의 자신감이나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지만,
왕자는 정말로 그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이렇게 습격당하고 싸우는것은 흔한 형제싸움이라고, 그렇게 배우고 그렇게 알아 살았던 것이다.
"보시다시피 몸도 괜찮고 한가지 염려 되는일이 있다면 벤씨의 기분문제 일것 같은데, 이런 습격을 받는다고 한다면 역시 껄끄러울텐데,"
"....."
너무나도 태연자약한 얼굴을 보고 벤하르트는 더 따질수 없어 적당히 수긍하고 지나갔다.
"저도 괜찮습니다. 불쌍한 거야 머리를 깍인 사람뿐이죠."
"그건 무슨 소리야!"
"예술이 되기에 네 실력은 아직도 바닥이라고 레니아."
"크크큭."
그 말에 비웃듯이 틸타트가 동조했고 그 즉시 레니아의 사나운 눈매에 틸타트는 숨을 막는듯 말을 멈추었다.
'그 기분은 잘 알것 같군요. 별로 동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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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가 없으면
깔끔한 맛이 나질 않는데,
요즘은 부제 없는게 많아서 구멍이 숭숭숭숭..
그나저나 연참대전이 분명 5일 후일텐데, 달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제가 있네요. 저번의 충격이 조금 큰게 아니었나 싶네요.
다 써놓고 탈락은 역시 ㅠㅠ.... 생각하지 말아야 할 일(1) 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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