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316화-호감(1)
일찍 잠에 빠져 든 레니아와는 달리 벤하르트는 공방에서 자신이 만든 검들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생각이 날때면 살짝 손가락을 검으로 흠집 내어 보았다. 검을 하나하나 만들때마다 손가락에 상처를 입힘으로써 자신의 검을 각인시켰던 추억을 되새김질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모습이 되어 올 당시와는 다르게 약간은 서운한 마음마저 들 정도로 공방을 떠나는 것이 아쉽게 느껴졌다.
'이건 조금 가져가둘까?'
자신이 애용하던 망치와 기타 검을 만드는데 사용하는 도구들중 간단한것을 챙겨 보았다. 수십년간이나 사용해 벤하르트의 손에 맞게 개조되어 있는 도구를 보자 약간은 기분이 좋아졌는데, 가슴이 울렁거려왔다.
[어이]
"무슨 일이야?"
[후우.. 뭐 그냥.]
바람 한점 없는데도 금색의 머리칼을 휘날리며 원의 흡혈귀 리스가 나타났다. 그녀와 손과 발이 닳도록 싸웠던적도 있었건만 그것은 이제 아주 먼 옛날의 이야기처럼 느껴질 정도로 지금은 친숙한 얼굴.
"어쨋든 무슨일이야."
"그냥 이라고 하지 않았나? 심심해서 대화나 해볼까 하고 나선건데, 이거 느닷없는 불청객 취급인건가?"
"아니 그정도까지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경우가 경우니까, 레니아도 윗층에 있고,, 속으로라도 이야기를 한다면 할수 있잖아?"
"그래서야 운치가 살지 않지. 그리고 오늘은 모습을 한번정도 드러내고 싶었고.."
리스는 잔혹할 만큼이나 아름다운 눈으로 공방의 밖으로 나섰다. 이미 상당히 깊은 밤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없다는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레니아나 리스나 주목을 받기에는 충분하다 할수 있었지만, 레니아의 옷이 단순한 여행복장이라고 한다면 리스의 옷은 드레스나 다름없는 하늘거리는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눈에 띄는것만 따지면 레니아보다 더할 터이기 때문이었다. 밖으로 나선 리스는 한껏 숨을 들이키면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벤. 나는 흡혈귀야."
"그래."
벤하르트도 그제서야 눈치챌수 있었다. 그녀가 오늘 밖으로 나오고 싶어했던 이유를.. 그날은 보름달이 뜬 밤이었다.
흡혈귀는 태양을 싫어한다. 아니 보통은 태양과 마주하면 사라진다. 그것이 보통의 흡혈귀 전설이자 진실. 하지만 가끔은 논외가 되는 예외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 예외중에서도 가장 이질적인 예외가 바로 원류의 흡혈귀 리스였다. 그렇게 해를 마주할수 있다고 해서 그녀가 해를 좋아하는것은 아니다. 해를 본다고 상처입지 않는다고 해도 본성이 흡혈귀인 그녀는 낮과 해를 싫어하고 밤과 달을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보름달은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것들중 하나.
"인형으로 지내는 것도 썩 나쁘지는 않다만, 이런 날에는 인형으로 있을수 없지. 그렇지?"
"네가 그렇다면 그런것이겠지. 그런데 썩 나쁘지는 않다고?"
"그럭 저럭이야. 적어도 재밌는 구경거리는 있고, 심심하면 네 기억이나 뒤지고 놀수도 있고 여러가지 할것들은 많으니까."
"뭐! 내 기억을 뒤진다고?"
"뭘 새삼스럽게 타인의 기억을 만지는것은 이 나에게는 쉬운일이라고 전부터 밝혀두지 않았었던가?"
벤하르트는 불만 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아니 그걸 밝히는것은 아무런 상관 없는 일이잖아. 문제는 그것을 나에게 사용했느냐 하는 것이지."
"조금은 말이지. 나도 인형으로 지내는것이 심심하고 지루하다는 거야. 그정도는 괜찮잖아."
약간 침울해지는 리스의 얼굴을 보고 마음이 약해지려고 했던 벤하르트는 곧장 바로 마음을 다잡았다.
"너 말야. 그럭저럭이라면서 재밌는 구경거리라고 할때는 언제고,"
"하아 속아넘어가지 않는거냐."
"속을 읽는것은 그만두라고,"
"그정도는 괜찮잖아! 네가 누군가를 좋아했던 좋아하던 좋아하게 되던 나는 타인의 비밀정도는 밝히거나 하지 않아. 내가 즐길 뿐이지."
"어째서 네가 호통을 치고 내가 받아 들이는 상황이 되어야 하는거냐! 오늘에야 말로 단호히 따지고 넘어가야 겠다."
그 답지 않게 흡사 으르렁 거리는 고양이처럼 벤하르트는 자세를 잡고 따질 태세를 갖추었지만, 리스는 별반 반응하지 않았다.
"별로 기억을 많이 뒤지거나 한건 아니야. 심심할때 가끔 정도, 그리고 네 기억은 낡은데다가 찾기 어렵고 잘못건들면 부서질것 같아서 제대로 된 기억을 건지지도 못했다고,"
"그럼 하지 마! 남의 기억을 가지고 무슨 짓을 하는거냐."
"기억이라고 해봐야 어디에서도 볼수 없었던 노인의 기구하고도 씁쓸한 인생뿐이었는데, 생색은. 내 부하가 될 몸이라면 어느정도 주인의 행동을 헤아리는 사고도 길러보는게 좋아."
'아직도 부하로 삼으려 하는건가.'
말은 퉁명스럽게 했지만, 실제 최근들어 리스는 그의 기억이나 생각에 별로 간섭하지 않는다는것을 벤하르트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 그정도로 화가 난것은 아니었다. 레니아와 대화 하듯이 리스와도 대화를 해보고 싶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 뿐.
불행히도 리스가 벤하르트의 기억을 읽은것은 사실이었지만, 애초에 얼마나 살았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 리스가 벤하르트의 기억 같은것을 떠벌리고 다닐 일도 없었고 또 도움 받은 일도 적지 않아서 벤하르트도 그녀를 꽤나 신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속으로 말을 걸어오는게 줄어든것 같은데,"
"구경하는것도 너와 대화하는것도 나쁘지 않지만, 그렇다고 네 삶을 방해할수는 없는 일이지. 설사 네가 죽을때 까지라 해도 내가 살아온 시간의 얼마정도나 되겠어? 방관자처럼 누군가의 이야기를 보는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는 중이야. 그리고 아무리 나라고 해도 네 몸에 찰싹 붙어만 다니는건 아닌데?"
"엉? 그건 무슨 말이야?"
"원의 흡혈귀인 이몸이 인형안에만 갇혀 있을거라고 생각했다면 부하로 삼을지 안삼을지 고민하게 될정도로 한심하다고 생각하게 될것 같아."
"정답.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음 부하와의 신뢰관계는 중요한 법이지. 조금의 단계를 쌓아냈다고 생각하면 그정도의 어리석음 쯤이야."
'어찌 대답하던 상관 없었던 거겠지.'
이제야 생각하면 벤하르트는 리스가 붙어있는것을 나쁘게 생각하고 있지 않지만, 그렇게 보이게 하는것은 그 나름대로의 성격을 반영한 말투였다.
벤하르트는 자신을 그녀가 한심하다고 생각하기 위해 리스는 그 한심할정도로 자신을 믿고 있었다는것에 대해 말하고 있는것이었다. 둘다 진심보다는 장난에 한없이 가까운 말들이었지만,
"그래 소위 말하는 먹거리 같은것은 괜찮았다고 생각해."
입맛을 다시면서 리스가 말하자 벤하르트는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흡혈귀라면 흡혈. 피를 마시는게 음식 아닌가?"
"물론 피가 주식이고, 피만한게 없다고 생각하는것도 사실이지만, 너희들 인간도 그렇잖아? 쌀을 먹고 그것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해서 다른 요리를 먹지 않는것은 아니지? 뭐 그런 부류라고 생각하면 되겠지."
"으음."
벤하르트는 리스가 목을 물어 피를 빠는 장면을 상상했다. 놀랄만큼 아름다운 그녀였지만, 그 장면은 역시 어울릴것이라고 생각했다. '역시나 흡혈귀'의 분위기라고 말할만 한것이다.
"그런데 피를 먹지 않아도 괜찮아? 아니면 내가 모르는 사이에 먹고 있는건가?"
리스는 웃으면서 자신있는 태도를 보이면서 말했다.
"나정도 되는 흡혈귀라면 음식을 먹으나 피를 빠나 마찬가지라고, 물론 피를 빠는쪽이 훨씬 힘을 모으기 용이하지만, 그런의미에서 한잔 어때?"
"적당히 사양하도록 할게."
"하긴 네 피는 맛있겠지만, 그건 그것 나름대로 너에게는 좋은일이라고 할수 없을지도 모르겠네."
"그건 무슨 말이야?"
=======================================================이게 (1)
그리고 내일 (2)를 올리겠습니다. 연참대전이 아닐때는 이런게 좋지요. 적당히 끊어낼수 있다는 점.
뒷 이야기도 그렇게 특이한건 없겠지만 서도,, 전체적인 분위기와 내용만큼은 담아 둬야 할것 같아서..
그리고 추천이 옆에 뜨게 되었는데,
이거 너무 적나라해요. 조회수가 적은것보다 더 무시무시한게.. 그렇다고 해도 댓글이 없는것보다는 덜 무시무시하지만요. (여담 길군요.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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