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314화-청부(3)
극도문. 벤하르트도 수십년동안이나 브렌모스에 살았었던 인간으로써 그 이름을 한번이나마 안들어봤을리 만무했다. 샤이 한에 지금은 몰락했다고는 하지만 천도문이 있다고 한다면 브렌모스에는 극도문이 있다고 할 정도로 유명한 문파였다.
다만 그 문파가 벤하르트의 눈길을 끌었던 것은 다른곳과 달리 검을 중시하는 문파였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자신이 익히고 있는 도공술과 관련한. 검술이 아닌 검 그자체를 중요시 하고 있는 문파. 세상에 무관심했었던 벤하르트에게도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할수 있을 정도의 문파였던 것이다.
한번 가보고 싶다 라고 생각한적이 없었던것도 아니었지만, 지금은 그렇게까지 가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조금의 흥미를 느낄수 있을 정도 였을까.
"그건.."
잠시 고개를 숙이면서 생각하고 있는것 같은 벤하르트의 입에서 말이 튀어 나오자 카몬은 살짝 움찔거렸다.
"부탁입니까. 명령입니까?"
"당연히 명령이지. 왕자의 명령을 무시할 참이냐."
"나서지 마세요. 틸타트. 당연하지요."
모습은 흔들리게 보였지만, 눈은 전혀 흔들림없이 카몬은 웃으면서 말했다.
"부탁입니다."
"..... 조금 생각할 시간을 주시겠습니까."
카몬에게 거절할 명분은 없었다. 그 말대로 명령이 아닌 '부탁'이라면 생각할 시간을 주는것이야 당연한 사실이며 그 결정권조차도 벤하르트에게 넘겨주는것이나 다름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물론입니다. 그럼 언제 다시 볼수 있을까요."
"많게는 필요 없습니다. 2일정도."
"그럼 그때 뵙도록 하겠습니다."
"왕자!"
"가도록 하지요. 틸타트."
"하지만.."
틸타트는 아쉬운듯이 주위의 검들을 살폈다. 하나하나가 값어치로 따지면 검호 들에게는 보물급. 그것들을 가진 무장병이나 특무대를 만든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그는 검을 얻어낼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왕자의 갑작스러운 결정에는 당황해 할수 밖에 없었다.
"틸타트."
"쳇."
누가 봐도 틸타트의 행동은 오만불손했다.
말이 끝나고 모습이 흐릿해지더니 어느샌가 호위와 틸타트의 사이로 녹아 들듯이 사라졌다.
"딱 부러지게 거절하지 않은 이유라도 있어?"
레니아는 불쾌함을 숨기지도 않고 벤하르트에게 물었다. 틸타트의 태도를 보고 참은것만으로도 그녀는 굉장한 인내심을 보여준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뭐. 개인적인 이유였다고 할까. 하지만 결정하기에 망설임은 없었지."
"벤 너의 말이었으니까, 부탁이냐 명령이냐 두가지에 따라 답이 다르다거나 그런 유치한 이야기겠지?"
"유치한거냐."
"아주. 라고"
'역시 세상의 물을 너무 많이 먹었어.'
처음 노시엘트를 벗어날 때가 좋았다고 생각하면서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저나 대단한데, 그정도로 정확하게 심정을 깨뚫고 있을줄은 몰랐어. 확실히 네 말대로 명령이라면 거절할 생각이었지."
"일국의 왕자의 명령인데도?"
"내가 같이 다니는건 신이라고, 권력에 불복하는거야 이미 적응완료 상태라는 거지."
"역시 변한거 아니야? 이전같았으면, '와 왕자의 명령에는 당연히 듣지 않으면 안돼.' 라면서,,,,"
말 자체는 별로 이상할것이 없었지만, 그것을 묘사하는 레니아의 어조는 겁쟁이가 느껴지는 완연한 놀림조였다.
"나라고 그정도로는 말하지.."
"신중을 기했을것 아냐?"
다시 진지한 태도로 레니아는 그의 말을 가로 막았다.
"뭐 그랬을수도 있지. 다만 나는 왕자의 태도에서 악의가 없음을 느꼈던 거야. 그리고 개인적인 이유도 있지."
"그러고 보니 처음에도 말했었던가. 뭐야 그 개인적인 이유라는 것은."
"지금에야 완벽하게 잊고 있었지만, 사실 이곳에서 살고 있을때 극도문은 몇번인가 들어본적이 있었어. 한번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던 옛날의 기억이 살짝 떠오른것 뿐이야. 가지 않아도 좋고 가도 상관 없는 분위기에 휘말려 버린거지."
"분위기에 약하니까."
나약해 하고 레니아는 중얼거렸다.
"그래서?"
레니아는 벤하르트의 결정을 물었다. 가고싶은 것인지 가고싶지 않은 것인지..
"네 결정에 따를게."
"벤. 이제야 생각나 따지는건데, 그것은 '회피'라고 하는거야. 여기까지 몰고 온것이 너라면 확실하게 결정지어야 하는것이 '네'가 할 일이라는 거지."
"정론이군."
그는 당해낼수 없다고 생각했다.
"벤 네 눈은 별로 틀리지 않지만, 그들은 아마 벤하르트를 엄청 기다렸던게 아닐까 싶어. 우리가 온것과 맞추어서 '함정'이 있을 이곳에 문을 두드리다니, 이정도로 딱 맞추어서 라는 일은 좀처럼 없으니까, 이미 주변에도 많이 알려졌으니 누군가가 귓뜸을 해줬다고 해도 이상할게 없는거야."
무언가의 목적으로 그들은 벤하르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왕족이 일개 대장장이를 기다릴 정도의 일이라는 것.
"위험성은 있는건가?"
"뭐 설사 그렇다고 해도 답을 거들어둔다면 역시 가는게 낫지 않을까?"
벤하르트와 마주하지 않고 그녀는 무언가를 보면서 말했다. 그에 벤하르트가 물었다.
"어째서?"
"벤 우리가 가야 할곳은 어차피 북쪽이지? '어차피'라고 한다면 그 길목을 통하고 있는 극도문에 가는것도 나쁘지 않는가 하는거야. 보수도 받을수 있고 네 망설임도 없앨수 있지. 위험이라는것도 막연한 생각이니까,"
그녀는 지도를 팔랑거리면서 웃었다.
다음날 아침 벤하르트는 옵니트의 집에 방문했다. 전날 시범차로 그가 만들었던 검은 당연히 옵니트를 위해 만든것이었다. 그리고 가기전에는 인사를 해달라는 '약속'도 지켜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미 여행을 하는것으로 결정되었기 때문에 레니아는 준비를 하기 위해 도시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쫓기고 있는 몸이었기 때문에 따로 다니는것은 그만큼 위험한 일이었지만, 레니아의 실력향상이나 한동안 잠잠한 일 때문에 장담을 하면서 나가는 레니아를 그는 차마 뜯어 말리지 못했던 것이다.
"계십니까."
"아 벤씨."
틴프린이 벤하르트를 반갑게 맞이했다. 벤하르트의 부름에 따라 옵니트는 조용히 그를 따라 전의 공원으로 향했다.
"다시 여행을 할 날짜가 잡혔습니다."
"그건 낭보 라고 해도 좋겠지요. 개인적으로는 아니지만서도,"
"....."
"그래도 약속은 지켜주셨군요. '벤하르트'."
"그리고 이것은 이별이라기 보다는 선물입니다. 저는 대장장이니까 이정도 밖에는 드릴수 있는게 없군요."
"하하. 그래도 수십년을 이웃으로 살았어요. 이것이 얼마나 값어치 있는것인지 정도는 이런 늙은이라도 알수 있다구요?"
벤하르트는 소리내어 웃는 옵니트의 모습을 보는건 처음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틴프린 녀석이 조금 슬퍼하겠군요. 벤하르트에게는 호감을 가지고 있었으니 그 손자에게도 마찬가지였겠지요. 자칫하면 불륜이 일어날뻔 했을정도로.."
"네!?"
"농담이에요. 왠지 벤하르트는 귀가 얇을것 같으니 제대로 확실하게 말해두자면 그아이의 눈에는 가온트밖에 보이지 않는다구요. 하지만 아쉬워 할것은 사실이겠지요. 벤하르트가 사라졌을때 가장 서운해한것은 그아이였으니까요, 가장 가까웠던 것도 그아이였고,"
"지금에서야 하는 말이지만, 틴프린에게는 감사하고 있습니다."
"정말 솔직해지셨네요. 그 여인분 때문일까요?"
'이 사람은 가끔 너무 귀신 같아.'
대답하지 않아도 대답이 된것이나 다름없는 태도에 옵니트는 싱긋 웃었다.
"벤하르트씨가 어떻게 그런 모습이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언젠가.. 한번이라도 기억이 난다면 볼수 있을까요?"
"글세요."
"틴프린은.."
"....?"
"그 나이에도 벤하르트의 고독을 쓸쓸하다라고 느꼈을 정도로 그 어린나이에도 동정을 할만큼 착한 아이였어요. 확실히 감사하다고 말하지 않으면 안돼요. 제가 죽더라도 언젠가.."
동정이나 고독 쓸쓸함. 다소 잔혹하다 해도 벤하르트에게 그것은 전혀 잔혹하게 들리지 않았다. 다만 한가지. 옵니트가 자신이 죽더라도 라고 말한것만큼은 조금 가슴이 시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 아이에게도 확실하게 말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한가지. 5년만 살아계시지요. 저는 별로 약속을 하는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5년 안에는 한번 꼭 들러 드릴테니까,"
"후후. '죽는다'에 반응한 억지스런 상냥함에 기대고 싶지는 않지만, 늙은이는 늙은이 답게 젊은이의 선의를 받도록 할까요. 뭐 저는 10년안에 죽을 생각은 없었지만요."
'아니 저도 늙은이 인데,,'
마지막 말을 듣고 떠올린것은 여우같다는 생각 이었다. 속이고 냉혹한 여우가 아닌 꾀를 지닌 따뜻한 현명한 여우랄까..
틴프린과 가온트에게도 제대로 인사를 한 벤하르트는 다시금 여관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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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을 앞두고 왠지 쓰고 싶은 기운에,,, '3시'에 글을 올리는 색향..
가뜩이나 공익근무 하는 분위기가 뒤숭숭해서 기분이 안좋은 하루를 지냈는데, 내일 잘 버틸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결국 어중간한곳에서 끊을수 밖에 없었지요.
내일은 '아마도' 청부의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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