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313화-청부(2)
검을 만들어 달라는것에 사실상 이유는 필요가 없다. 대장장이는 그 부탁이나 명령을 받들어 만들어 낼뿐. 그것이 그들의 존재의의이자 목적인 것이다. 하지만 벤하르트는 조금 달랐다. 아니 달라졌다고 하는게 옳은 표현이었을 것이다.
이전의 그가 생계유지를 위해 혹은 검을 팔기위해 검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그는 조금 자신의 위치를 알게 된 것이다. 그가 만드는검은 너무도 강하면서도 어떤 의미에서는 위험한 것이다.
물론 검이 위험하다고 해서 그가 검을 만들면 안되는 법은 어디에도 없었다. 틸타트에게 보여 주었던것과도 같이 적당한 검을 만들어 주면 그뿐인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역시 벤하르트 자신의 판단아래에서 결정할 문제였다.
"검이 필요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네이놈. 만들라면 만들지 뭔놈의 말이 그렇게 많은 것이냐."
'어쩔수 없군.'
"할아버지에게 도공의 기술을 전부 배운것은 사실이나. 저는 뼛속 깊숙히 대장장이가 아니라서 별로 부탁에 의해 검을 만들지 않아도 상관은 없습니다. 뭔가 특별한 이유라도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만, 그렇지 않음에야 만들어줄 필요는 어디에도 없겠지요."
사실은 반대로 할아버지라고 말한게 본인이며 뼛골 깊숙히 대장장이의 생각이 고루 박혀 있는 그였지만 거짓말은 언제나와 같이 능수능란하게 말할수 있었다.
"좋아 돈을 주겠다. 100마크닐이면 어떠냐?"
천문학적인 돈을 제시했지만, 분명 틸타트의 말은 벤하르트의 질문에는 맞지 않는 답이었을 것이다.
"돈은 필요 없다고는 하지 않겠지만, 돈에 의해 검을 팔지는 않습니다."
"그렇군요. 즉 이유를 말하라는 이야기겠지만, 사실 저도 일국의 왕자. 개인적인 사생활까지 간단하게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그 벤하르트공의 기술을 이어받았다는 도공술을 한번 보여 주시는게 어떻습니까?"
"확실히 그렇군요. 개인적으로 검을 만드는것은 싫어하지 않지만, 한번 만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단. 지금 만드는검의 주인은 따로 있으니 드릴수는 없습니다."
"어이 주인이 따로 있다니, 내게 새로운 검을 만들면 되는 일이 아니냐!"
틸타트가 성을 내면서 말하자 벤하르트도 약간 거북한 얼굴로 말했다.
"벤하르트 할아버지에게 준 돈이 얼마입니까?"
"분명 5마크닐이었을 것이다. 특별히 많은 돈을 얹어 주었었지. 아마 고마워 했을거다."
"그렇군요. 그럼.."
벤하르트는 검을 그대로 들어서 틸타트에게 건네주었다.
"이 검을 아무 공방에 들러서 5마크닐에 판다고 말해주시지요. 아마 어떤 곳에서라도 흔쾌히 받아 들여서 사줄겁니다. 그렇지 않다면 제가 친히 검을 만들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으윽."
아무리 틸타트가 억지를 부리려 해도 벤하르트가 '대충' 만든 검은 훌륭한 명검이었다. 바보가 아닌이상에야 아니 능력만으로 따지면 범재를 넘어서는 틸타트가 그런 사실을 모를리 없었다. 더 말로 대항하려 해봐야 이미 불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는 입을 다물었다.
"어이 벤. 빨리 끝내자."
레니아는 약간 짜증섞인 목소리로 재촉했다.
"알았어.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틴프린과 가온트에게 만들어주고 남은 재료를 보면 얼추 몇자루의 검을 만들수 있을것 같았지만 그중에서도 그는 최소한의 재료를 사용해 검을 만들었다.
망치 소리가 주변을 메우고 마치 열기를 띈 장막이 그들을 막아 내고 있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드는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갔다. 그리고 완성된것은 하나의 은단검이었다. 벤하르트의 검들은 어느것이나 은빛아닌게 없었지만, 옆에서 지켜보던 그검만큼 은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검은 없을것이라고 생각했다.
"실험해봐도 좋습니다."
틸타트에게 만들어 주었던 검과는 비교할수 없을만큼의 명검이었지만, 본다고 한들 그것을 카몬이나 틸타트가 분간할수 있을리 없었다. 하지만 한가지정도는 알수 있었는데, 분명히 틸타트의 검보다는 질이 좋다는 점이었다. 만든이가 벤하르트 장본인이었으니 어쩔수 없는 일이기는 했지만,
"대단하군요."
카몬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흥 그래봐야 잡기(雜技)일 뿐이지."
"저녀석은 한번 입을 뜯어 고쳐줘야 할 필요가 있겠는데?"
"부탁이니 그만둬."
"어쩔수 없군요. 제 사정을 표면적이나마 말씀 드려야 겠군요. 제가 벤하르트공의 검을 얻으려고 했었던것은 그것의 완전판을 원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모종의 이유로 완벽한 검을 그..에게 선물하려 하는 것이지요."
'방금. 뭔가 뜸을 들인것 같았는데,'
자세히 보니 왠지 투명할것 같은 카몬의 얼굴이 조금 벌겋게 달아 올라 있었다.
"흐음. 선물이라, 하지만 '완전' 이라는 말은 아무렇게나 붙힐수 있는것이 아닙니다만,,"
"그건 무슨 말인지.."
"완벽이라는 말이 나온것은 틸타트..."
벤하르트는 슬쩍 틸타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뒤에 붙을 명칭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데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불행이라고 해야 할지 틸타트 쪽에서 먼저 입을 열어 교정해주었다.
"님!"
"아.. 틸타트님의."
말을 잇기가 무섭게 등뒤에서 무언의 힘이 그를 밀쳐졌다. 다름아닌 레니아가 그를 발로 걷어찬 것이었다. 님 자를 붙히지 말라는 무언의 경고에 그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생각했다.
'전혀 이야기가 전개 되지 않잖아!'
"저기.."
카몬 왕자도 아리송한 얼굴로 벤하르트를 보았는데 그 눈에는 왠지모를 동정의 눈이 섞여 있었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요놈이고,'
"틸타트씨의 검을 보고 그렇게 판단한것이었겠지요? 하지만 제 실력의 '완벽'을 추구하려 한다면 저는 이곳에서는 만들수가 없습니다."
"그건 어째서입니까. 그렇다면 이 검도..?"
"아니 이 검은 완벽합니다. 적어도 제 기술과 재료와 어느정도의 의지가 담긴 조건적인 면을 충족시킨 점에서는 완벽에 가깝다고 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왕자님. 당신이 말하는 청부에 관한 그 '완벽함'은 지금 이자리에서 이 시기에는 이룰수 없는것입니다. 이유는 간단하게 그것이 '선물' 이기 때문입니다."
"이해할수가 없군요. 어째서 선물이면 안된다는 것이지요?"
그 말에 벤하르트는 별다른 변호를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지금에서야 루크의 말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것은 아니었지만, 어렴풋하게 느끼고 있었다. 루크의 검은 천도(天刀)라고 불리우는 검. 벤하르트의 검은 인도(人刀) 사람을 위한 검이었다. 위하다는 것이 꼭 '좋은의미'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가 검을 만들때에는 언제나 사용할 사람을 보고 만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졸작이라고 불리우는 틸타트의 검조차도 틸타트를 보고 만든 것이다.
철칙이라고 까지는 말하지 않아도 '선물'용 검을 만들어 만족스러운 성과를 낼수는 없는 것이다. 상대가 검에 관해서 어느정도로 알고 있는지는 알수 없었지만,
"어째서입니까?"
재촉하는 카몬에게 벤하르트는 한숨을 내쉬면서 간단하게 요약해서 말해주었다. 벤하르트 딴에는 허무맹랑하게 느끼던 진실로 느끼던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였지만, 그렇다고 해도 역시나 변명처럼 들릴게 뻔한 이야기는 그로써도 입에 담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거짓말입니다. 이녀석은 지금 검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그렇다면 만들 상대를 보여준다면 검을 만들어 줄수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상대에 따라 다르지만, 일단은 그렇습니다."
"흐음."
'어..?'
생각하는것처럼 턱에 손을 가져간 왕자의 모습이 역시나 흐릿하고 존재감이 없게 느껴졌다.
"그럼 부탁을 바꾸도록 하지요. 저와 함께 극도문에 가셔서 검을 만들어 주실수 없겠습니까. 그쪽이 더더욱 선물로써 가치가 있을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보수라면 얼마든지 드리겠습니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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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버벅이면서 썼네요. 극한 폭염때문인가..
극도는 -> 極刀로.. 검을 다하다. 뭐 연상지어봐도 검에 관련된 문파라는 감이 오지만,
설정상으로는 브렌모스에서 제일가는 문파로 잡아 놨습니다. '여러모로'요.
그나저나 요즘 더위때문에 컴퓨터 자체를 붙잡기가 힘드네요. 후우...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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