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308화-라프티(1)
"우와."
레니아는 감탄사를 내뱉으며 언덕밑의 도시를 바라보았다. 브렌모스의 4대도시라고 불리우는 라프티를 라프티는 대도시라는 명성이 전혀 이상하지 않을정도로 멋진 정경을 보이고 있었다. 라프티는 원형으로 이루어진 도시였다. 중앙에는 거대한 시계탑이 놓여 있었고 원형의 서쪽에는 바다를 접하고 있는 길고 흰 구조물이 있었다.
"벤. 이곳이 라프티지?"
"그래. 이곳이 바로 나의 두번째 고향이라고 부를수 있을만한 라프티."
지그시 그는 라프티를 내려다 보았다. 1여년을 넘는동안 비워뒀음에도 별다른 느낌은 와닿지 않았다.
"꽤 멋진곳에 살고 있었는데?"
"멋지다는건 동감하지만, 여기서 보낸 시간은 거진 다 죽어있는 시간이었으니까, 반가운 마음은 들지만 그 이상으로 씁쓸한 마음도 들거든."
바닷냄새가 살짝 감도는 시원한 바람이 그들을 스치고 지나갔다. 씁쓸한 표정의 벤하르트를 눈치채지 못한채 레니아는 라프티를 가리키며 밝게 말했다.
"가자."
"그래."
대도시 답게 이전에 지나쳐온 여타 도시나 마을에 비해서 많은 사람들을 볼수 있었다.
'어?'
평소와는 다른 시선에 벤하르트는 주위를 살짝 두르며 시선을 살폈다. 큰 도시나 마을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시선이 집중 되는것은 레니아였는데, 지금은 달랐다. 레니아도 물론 시선을 받는건 마찬가지였지만, 벤하르트 본인에게도 느껴지는 시선이 있었던 것이다.
그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이미 그는 브렌모스에서는 꽤나 유명인이 되어 버려서 사람들 사이에서도 얼굴이 알려지게 된 것이다.
"으음."
"그러니까 나한테 머리를 맡기라고 했잖아."
"백번을 생각해도 이쪽이 백배는 낫다고 생각한다."
다른 도시와는 다르게 라프티에서는 굳이 여관을 찾을 필요는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이곳은 1년전까지만 해도 벤하르트가 머무르고 있었던 곳이었기 때문에 벤하르트의 집으로 가면 된다는 생각에서 였다. 골목을 돌고 큰길을 나가 얼마간정도 걸었을까.
한 남자의 습격을 막아내고 한명의 대머리를 추가하며 그들은 곧 먼지 쌓인 문앞에 도착했다.
"여기는..?"
레니아가 살짝 묻자 벤하르트는 덤덤하게 먼지를 닦아내고는 문의 옆 작은 상자안으로 손을 돌렸다. 철사로 이루어진 기묘하게 생긴 네가닥의 줄이 있었는데, 그는 그것을 이래 저래 조작하고 그 옆에 동그랗게 튀어나온 부분을 잡아당겼다.
난폭한 소리가 나면서 서서히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문을 열자 지금껏 무의식중에 잊고 있었던 일들이 마치 봉인된 기억의 상자를 꺼내듯 상기되기 시작했다. 과거의 자신을 생각하면서 그는 방금의 장치에 대해 설명했다.
"이렇게 안하면 안에서 위협 공격이 나오게 되어 있어. 처음은 위협공격이지만 조금만 더 들어와도 목숨을 위협하는 장치로 이루어져 있지."
바닥에 불그스름한 얼룩을 보면서 씁쓸한 얼굴로 그는 조용히 안으로 들어갔다. 퀘퀘한 냄새와 마치 피비린내같은 쇠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이곳이 나의 공방."
익숙하게 그는 위치를 찾아 램프에 불을 붙혔다. 곧 환하게 밝혀진 그의 공방에서 레니아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곳에는 수많은 검이 놓여있었다. 검의 모양은 대부분은 비슷했지만, 몇몇의 검은 이색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게 다 네가 만든거야?"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은. 특별한 사람을 빼고 팔 생각은 없었지만, 내 입으로 말하기는 뭐하지만, 내 검은 위험하거든. 이 많은 것들이 무기가 되어서 병사들의 손에 쥐어지게 만들수는 없는 일이기에, 이렇게 떠나기 전에 이곳으로 옮겨 두었어."
"그런데 벤."
"....."
벤하르트는 자신의 검을 보면서 손으로 쌓인 먼지를 살짝 제거했다. 누가 사용해도 최고의 명검이라는 찬사를 들을수 있을 정도의 물건들을 앞에두고도 그것을 만들어낸 당사자는 전혀 미동조차 없었다. 자신의 과거에 대한 시간은 이곳에 담아두고 떠난것처럼 이제는 다른 사람의 일처럼 느껴진 것이다. 마치 자신이 아닌것마냥..
[빠각]
"무 무슨짓이야 레니아."
"빈틈 투성이구만, 벤. 네 고향에 왔는데 어째서 그렇게 무게를 잡고 있는거야! 내가 와줬으니 조금더 기뻐하는게 어때?"
"네가 이곳에 온것을 내가 어째서 좋아해야 하는거야. 그리고 아무리 나라고 해도 조용히 생각하고 싶은 때라는건 있는법이라고."
"그럴까? 내가 보기에는 한심한 모습을 보이는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는데, 겉멋을 부린다거나 도취에 빠졌다거나 회의감을 느낀다거나."
레니아의 말을 반박하기에는 틀렸다고 보기도 미묘한 일이었기에 무시하고 그는 성큼성큼 위로 올라갔다. 그 건물의 1층은 공방이었고 2층은 벤하르트의 집이었는데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긴 것이다. 방문을 열자 퀘퀘한 나무냄새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냄새."
"어쩔수 없지. 1년도 넘는 시간을 비워뒀으니까."
"아니 노인냄새."
"....."
"벤. 뭐야 그 반응은. 농담이라구."
레니아의 말에 아랑곳않고 갑자기 벤하르트는 방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내리 앉았다.
"아하하하."
"왜 웃어?"
조금 미쳤다고 생각이 들정도로 웃더니 그는 더는 없을정도로 정색한 얼굴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바보같다고 말해도 좋아. 하지만 정말로 이 상황은 어이가 없는 일이거든. 이곳에 있을적의 내 모습이 지금도 떠올라. 누구하고도 타협하지 않고 누구와도 상대하지 않는 내 모습이.. 그리고 죽을 장소를 찾아 해메던 그 노인의 손도 노인의 감각도 노인의 생각도 지금은 먼세계의 일처럼 느껴진다는게 너무.. 웃겨."
잊고 있었지만 자신은 100을 바라보고 있는 노인이다. 몸이 젊어진것이 마치 마음마저도 젊어진것처럼 과거를 지운것처럼 타인처럼 잊혀졌던 그 자신의 모습이 라프티에 도착하자 떠올랐던 것이다. 그저 떠오르기만 했다면 좋았을것을 이곳에서 살았던 거진 반세기를 넘는 세월이 느껴지고 기억나며 존재한다는것을 느꼈다.
'지금의 내가 거짓 같이.'
그런 생각으로 그는 라프티에서 과거의 자신을 보았다.
[퍽]
[찌질하네.]
레니아의 발길질과 리스의 말이 호흡을 이루어 벤하르트에게 들려왔다.
"뭐라는거야 벤. 그거야 말로 너답지 않잖아!"
[음침해.]
"바보같다는건 알아. 이곳에 들른다고 했을때도, 나쁘지는 않았어. 되려 좋았지. 하지만 이래서야 안오는게 나았다고, 레니아 네게 라프티가 어떤 곳인지정도는 보여주고 싶었는데, 되려 나의 파편에 씌여 버린 꼴이야."
레니아가 말할 틈새도 없이 벤하르트는 아랫층으로 내려갔다. 그를 따라 레니아가 내려오자 벤하르트가 말을 열었다.
"잘 봐둬."
벤하르트는 검을 움직였다. 무언가를 자극하자 화살과 장식되어 있는 검들이 발동을 한 것이다. 살벌하게 움직이는 검들이 멈추고 그는 말을 꺼냈다.
"나는 지금까지 단 한사람도 죽이지 않았어. 하지만 죽이지 않았던 것이지. 죽이려는 시도를 안했던것은 아니야. 그랬던 나와 지금은 죽이는것조차 두려워하는 나. 어느쪽이 진짜라고 생각해!?"
"너는 내가 어떤 대답을 할거라고 생각해?"
"....."
"이 악물어."
레니아는 눈에 훤히 보이는 작은 손을 쥐고 빙빙 돌렸다.
"피할거야."
레니아는 벤하르트를 향해 성큼 성큼 걸어왔다. 그녀는 손을 들어 벤하르트의 배를 지르려 했는데 벤하르트는 그녀의 주먹을 피하려다 벤하르트는 움직임을 멈추었다. 방금 사용했던 함정때문에 뒤에는 도검이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벤하르트가 강하다 해도 무방비 상태에서 레니아의 주먹이 아프지 않을리 없었다. 무릎을 꿇고 엎어진 벤하르트를 보면서 레니아는 입을 열었다.
"어느쪽이냐고. 지금 여기서 네가 어떤 감정을 느끼던간에 생각을 하던간에 네가 지금 행동한 것은 진짜야. 과거가 어땟든 그 과거에 씌였든 내 손을 지키려고 배를 움켜쥐고 있는 네 모습이 진짜 네 모습이라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아무도 만나지 않고 상대하지 않았던 것은 그것을 바랬기 때문은 아니잖아! 지금이잖아. 지금 네가 생각하고 있는것이 느끼는것이 진짜인 것이잖아! 나와 여행 했던 시간은 너에게는 다 가짜라고 생각했던 거야!?"
[찌질, 음침, 그 다음은 뭘 보여줄거야? 벤. 나는 네 그런 모습에 반했던것이 아니야.]
마치 이이상 실망하게 한다면 죽이기라도 할것같은 서늘한 기운이 속안에서 멤돌았다.
"크윽. 심하다. 이쪽이고 저쪽이고 그쪽이고 심하다고."
"그래서?"
"[대답은?]"
"미안."
'미안'
"됐어. 네가 한심하다는것은 이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으니까, 그나저나 아까의 검은 함정이었던 것이잖아. 내 검은 위험하거든.. 이라더니."
"아니 그건 아니야. 여기 있는 검들은 다 일반적인 검들. 이곳을 떠날수가 없어서. 이름 높은 사람들이 나에게 검을 부탁하러 왔을때 청해서 얻었던 것들이야. 내 검을 함정에 쓸수는 없지."
"뭐야 그 어이없는 장인정신은?"
"그래도 기억하기 싫었던 과거와 마주하는것은 역시 괴로워. 가슴이 뜨끔거리고 후회도 하고, 혼란하기도 해. 아직까지도. 하지만, 그 한방에 정신을 차렸어. 지금은 정말로 후련해."
레니아는 낡은 의자에 앉아 말했다.
"네가 뭐라고 하든 나는 좋은데 말이지. 가령 저기에 있는 저 책상의 연필이라던가 종이 그밖에도 여러가지는 네 과거를 연상하게 해주니까, 그나저나 침울해졌다가 밝아졌다가 너도 참 피곤한 인간이야. 그나저나 벤. 이 함정을 보여주기는 했는데, 나는 아무리 해도 납득이 안가거든. 혹시 말야 이 이전에도 함정이 있는것 아냐? 아까도 위협용이 있다고 했고,"
벤하르트가 이정도로 섬뜩할 정도의 함정을 설치했다는게 그녀로써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무리 일반용 검과 화살이라지만 제대로 걸리면 생명이 날아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함정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실은.."
과거 벤하르트가 설치해놓은 함정의 갯수는 12개. 그중에서 8개는 위협용이었고 나머지 4개가 실전용이었다. 그 12개중에 실제로 발동한적이 있었던것은 3개뿐으로 벤하르트는 추적자들을 피하기 위해 만들었던 것이었는데 실제로 추적자들은 라프티에까지는 오지 않았고, 이미 만들어 두었던 함정을 취소하기도 아까워 그는 그대로 놔두었던 것이었다. 설사 침입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네댓개를 보기만하면 왠만한 사람들은 전부 달아날것임에 뻔한 보험용 함정이 대다수였는데, 한창 자신의 안좋은 과거를 떠올리고 있다가 격앙된 나머지 가장 마지막의 함정을 레니아에게 보여주게 된 것이었다.
그에 그치지 않고 그 함정을 보고 나니 나머지 11개의 함정은 이미 기억속에서 잊혀지게 되었고 그는 자신이 정말 극악한 인간이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때부터 무르긴 물렀던 모양이야. 물론 그때는 확실할때는 확실했지만,"
"네가 그러면 그렇지. 뭐가 어느쪽이 진짜라고 생각해? 냐."
"그런 표정을 짓지는 않았다고,"
"뭐 좋아. 그럼 이 레니아님이 오랜만에 신으로써 계시를 내려주도록 하지."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과거는 과거 현재는 현재. 과거보다도 중요한것은 현재! 현재를 성실하게 살아서 꼭 엔쿠라스를 찾을수 있도록 노력하자는 거야."
그녀는 자신있게 말하면서 반응을 살폈지만 벤하르트는 별다른 호응을 해주지 않았다.
"..... 저기 혹시 레니아. 신탁같은것을 내릴때 그런식으로 내리지는 않았지?"
"어? 뭐가 어때서?"
잠시 벤하르트는 멈칫했다. 그 자신감 넘치는 레니아의 왠지 계시답지 않은 계시를 생각하니 조금이나마 우울했던 기분이 풀린 것이다.
"아니 멋졌어. 고마워 레니아."
'그리고 리스도.'
[흥]
[똑똑.]
강철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벤하르트와 레니아는 곧장 반응해 문을 바라보았다.
"저기..."
==========================================
아 이번화는 조금 어려웠네요.
사실 표현하고 싶었던것은 가벼운 마음으로 라프티에 도착한 벤하르트가 지금과는 전혀 달랐던 한심했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고 번뇌했다가 레니아가(리스도) 풀어주는 스토리로 그리는 것을 갑작스럽지 않게 중화하고 싶었는데 조금 미숙했으려나요.
Comment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