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292화-나가샤(2)
"정말 오래간만이네 레니아. 이게 얼마만에 만난거지?"
벤하르트를 보내고 난뒤 나가샤는 레니아를 불러내었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고 있군."
'그편이 교섭을 하기에는 더 편할지도 모르지만,'
적개심을 드러내는 것보다야 거짓으로 치장된 친절함을 받는쪽이 더 낫다고 레니아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 친절에 퉁명스레 대답하는것이야말로 그녀가 의도한 대로의 이야기인 것이다. 동조하듯이 말하는것은 자신이 상대의 아래에 놓이는것을 인정하는 꼴로 교섭을 하는것에도 방해가 되는 것이다. 차라리 어중간하게 자존심을 내세우는쪽이 더 편하다 할수 있었다.
"그럼. 본론으로 이야기해볼까? 네 수하. 벤하르트 하르크가 이곳으로 온것은 우연이 아니겠지? 뭐니뭐니해도 내가 이곳에 머문다는것을 레니아 너는 알고 있었을 테니까, 이곳에 굳이 들르지 않고, 아니 신등장의 제에 참가하지 않을수도 있었을거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것은 무언가 바라는게 있다는 말이겠지. 그것이 벤하르트가 바라는것이든 레니아 네가 바라는 것이든 말야. 그가 말하지 않았으니 너에게 들을까 하는데,"
속시원할 정도로 확실하게 자신의 의도를 파악하자 레니아는 조금 안좋은 얼굴로 말했다.
"확실히. 네 말대로야. 나는 네게 무언가를 요구하고자 이곳으로 왔어."
"내가 들어줄것 같아?"
레니아와 나가샤는 앙숙의 사이다. 서로가 그것을 인정하고 서로가 그것을 실행해왔다. 마치 물과 기름처럼 그냥 그런것이다. 분명한것은 서로가 서로를 싫어하는데에는 이유가 있으면서도 그 이유는 별다른 의미를 갖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것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그들의 사이는 이런 관계가 되어 있을 터였다.
"네가 원하는 약을 만들어 주겠어. 분명 원하는 약은 있었지? 그것으로.. 네가 가진 영석과 바꾸었으면 해."
"뭐?"
나가샤는 레니아의 말을 듣고 정신없이 웃기 시작했다.
"레니아. 어떻게 된거 아니야? 신기가 빠지더니 머리도 안돌아가게 되어 버린거야? 네가 만들어 주는 약? 그런것 따위는 나에게 필요 없어. 정히 영석과 바꾸고 싶다면 적어도 '레나스트' 정도는 되었어야 겠지. 고작해야 너의 기술하나를 팔아서 얻을만큼 영석이 간단하게 얻을수 있을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겠지?"
"....."
물론 그것이 가능하다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않았지만, 교섭이라는것은 어디까지나 일방적인 관계에서는 성립되지 않는것이다. 레니아의 제안을 나가샤가 거절하는것은 굳이 레니아와 나가샤와의 관계가 아니라고 해도 정해진 사실인 것이다.
그것을 모를 레니아가 아니었다.
"하나 더. 내 '신력'을 건네주겠어."
"뭐..?"
레니아가 한 말은 신으로써는 절대 해서는 안되는 말이나 다름 없는것이었다. 결코 레니아를 위한 발언을 하지 않을 나가샤가 깜짝 놀라 반문할 정도의 여파를 주는 말.
"제정신이야? 아무리 네가 신에서 많이 벗어난 존재가 되었다고 해도 아직은 분명한 신일진데, 그것을 포기하겠다고?"
나가샤는 레니아를 좋아하지 않고 굳이 따지고 들자면 싫다고 하는 쪽에 매우 가까웠지만, 이때만큼은 이런 말을 할수밖에 없었다. 신인 자신들이 신력을 주는 행위는 인간이 인간이기를 거부하는것과 다름 없는일. 어찌보면 인간이 짐승처럼 살아가야 한다고 비유될정도의 일인 것이다.
거기에 나가샤도 레니아가 신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것도 자존심이 강한것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말을 도저히 믿을수가 없었던 것이다.
"거짓말로 이야기하는게 아니야. 물론 전부 주겠다는것도 아니지만, 분명히 네가 생각하는것만큼은 줄 요량이 있어."
그만큼의 각오를 머금고 레니아는 이야기하고 있었다.
분명 나가샤에게 있어서는 기회라고 생각해도 무방할정도의 제의였다. 레니아는 물론이거니와 신인 자들은 자신의 신력을 절대로 다른 신에게는 넘겨주지 않는다. 레니아의 말에도 놀라 물었던 나가샤처럼 보통은 금기이전의 문제. 본능적으로 그런것은 꺼리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갈수 없다고 듣는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처럼. 아니 그보다 더 심한 기분을 느껴도 이상할것이 없는 것이다. 때문에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신력을 넘기고 받는 신들은 아주 보기 드문 일중에 하나였다. 분명 그정도라면 기분 좋게 영석을 넘겨줄수 있을정도의 가치가 있는것이다.
나가샤가 말했던 영석과 바꾸기 위해서라면 레나스트 정도는 되어야 된다는 말. 그 '레나스트'의 기본적인 목적은 신의 능력을 향상 시키는 것이다. 몸부터 정신까지 이르는 모든 능력을 향상시키는 비약. 그와 레니아가 신력을 주는 행위와는 별반 다를것이 없었다. 오히려 확실하게 보장되어 있는 신력쪽이 나가샤에게 있어서는 더 좋은 일인 것이다.
'흐음.'
하지만 그것은 나가샤가 원하는 일이 아니었다. 금방이라도 레니아의 말에 넘어갈정도로 망설이고 있기는 했지만, 지금 그녀가 레니아를 부른이유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어때. 그정도라면 네가 손해보는 일은 없을거야. 되려 이쪽에서 뭔가를 더 요구해도 될 정도의 값은 된다고 생각하는데,"
"아 확실히 그렇겠군."
'그래서 더 찝찝하지.'
그녀는 레니아를 좋아하지 않았다. 싫어하냐고 물으면 분명 싫어한다고 대답하겠으나. 잘 생각해보면 그렇게 싫어하는것도 아니다. 티격태격 거리기는 하고 그런관계를 선호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원수라거나 하는것은 아니다. 표현하자면 경쟁자 정도에 가깝다고 할수 있었다.
처음 만남은 레니아가 처음 신으로 오를때 였다. 그때는 그저 한낱 변방의 작은 신 정도로 치부해왔다. 신경 쓰이는게 있다면 자신과 비견될정도의 '외모'정도. 그리고 수천년간 레니아라는 존재를 모르고 살아왔다. 그리고 500년전에 그녀는 레니아를 경쟁자로 인지하게 되었다. 그저 작은신. 자신의 앞에서는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어딘가의 잡신정도에 불과한 그녀는 건방지게도 자신을 대하면서도 한발자국도 물러서지 않고 되려 부러움을 사게 한 것이다. 부러움을 산 사실보다 더한것은 레니아의 태도였다. 가진것이 없어도 그만큼 도도하고 그만큼이나 그 사실이 어울리는 신을 그녀는 별로 본적이 없었던 것이다. 자신보다 어떤것도 풍족하지 않음에도 자신보다도 더 그 자태가 어울리는 신이라는 것을 그녀는 인정할수가 없었다.
반쯤은 홧김에 영석을 자랑한것도 그때의 일. 그리고 그때의 만남 이후로 이런 식의 관계를 가지게 된 것이다.
저 영리한 신은 분명 아무런 이득을 취하지 않고 자신의 모든것을 내다 걸 녀석이 아니다 라고 생각했기에 그녀는 주저했다. 단순히 레니아 개인의 입장으로 보면 간단한 문제임에도 그녀를 알고 있는 나가샤에게는 숨겨진 무언가가 있을지 모른다고 의심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애초의 목적을 달성하는게 마음도 편하겠지.'
"네가 더한 것을 나에게 제공하려고 꼭 노력할 필요는 없어. 물론 나는 그것을 받는쪽이 더 낫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선택이 그것 하나만 있는것은 아니지."
"무슨 소리지?"
나가샤 못지않게 레니아도 나가샤라는 신을 알고 있었다. 자신을 위하는 행동을 하는것이 얼마만큼이나 부자연 스러운가 하는 점도..
"아. 꼭 네가 신력을 주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있어. 네가 충분히 줄수 있고 나는 충분히 만족할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잖아? 처음부터 너를 부른것은 그것을 위함이었어."
'내 신력보다 더 한게 있다고 생각하는건가?'
"네 수하인 벤하르트 하르크. 그를 나에게 준다면 나는 네게 '영석'을 주지. 고작해야 인간 한명의 가치로 영석을 얻을수 있는 기회. 너라면 어느쪽이 우위인지는 알고 있겠지?"
신의 생각, 아니 이전의 레니아였다면 6할정도는 후자를 선택했을 터였지만, 지금은 달랐다. 벤하르트를 넘기고 얻을수 있는것은 어떤 것도 필요치 않는것이다.
"사실은 그냥 벤하르트라는 녀석을 나의 '신'으로 만들어 버리고 싶었지만, 그래서야 네 체면이 살지 않지. 네가 원하는것을 주고 나는 그를 갖는다 라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싶었는데, 네가 바라는게 설마하니 영석이었을 줄이야. 내쪽이 손해를 보는것 같기는 하지만 베푸는셈치고 이정도는 내어 줄수 있지."
나가샤는 찝찝한 일도 존재하지 않고 자신을 더 높게 인식시킬수도 있다고 생각하자 그 희대의 보물이라고 전해지는 영석을 주는것도 별로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웃고 있는데 레니아는 비웃듯이 입꼬리를 치켜들며 말했다.
"가치라고,, 하하하. 아무렇게나 말하기는."
나가샤는 미소를 거두었다. 그 말을 꺼낸 레니아의 얼굴이 무서울정도로 차갑게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석은 팔지 않아."
"정이라도 들어버린거냐? 아니면 이제는 '신'으로써 생각하는것도 잊어버린건가?"
"어떻게 생각해도 상관 없어. 첫번째의 제의 나의 요구를 네가 받아들이는가 받아들이지 않는가? 내가 듣고 싶은건 그것 뿐이야."
"그래?"
나가샤는 미소지었다. '신력'은 상관 없어도 '벤하르트'는 잃을수 없다고 레니아가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를 싫어하는것은 아니어도 분명 경쟁자로써의 한없이 가까운 감정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욕심이 생겨 버린 것이다. 그녀가 그렇게도 주고 싶지 않아하는 벤하르트라는 인물을 빼앗고 싶다는 욕심이..
"이 이야기는 천천히 하도록 하자고, 어떤것을 수락하든 상관 없는 일이잖아?"
"벤하르트가 마음에 들었나보지? 어떤 것을 보기라도 했을테지. 아니면 '내쪽'이 문제라거나 혹은 둘다일지도.."
"흥."
레니아가 자신의 속마음을 짚어내자 그녀는 살짝 불쾌한 얼굴을 했다.
'옛날부터 저런 점이 마음에 안들었지.'
가진것도 하나 없는 레니아에게서 느끼는 것은 미묘한 열등감 이었다. 레니아는 레니아 나름대로의 나가샤는 나가샤 나름대로의 열등감을 서로에게 느끼고 있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강한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그다음에 취할 행동도 알고 있겠지? 어떤 대응이라도 취해도 좋아."
명백한 도발에도 레니아의 태도는 태연자약했다.
"취하지 않아. 너는 내 제안을 받을건지 받지 않을건지만 선택하면 돼. 혹은 네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라도 좋아."
다 알고 있다는듯이 그리고 그것이 통하지 않을것이라는듯이 여유롭게 답하는 레니아를 보자 그녀는 속이 뜨끔 거렸다.
"그럼 네 말대로 천천히 답은 기다리겠어."
"레니아 교섭은 잘 됐어?"
"잘 됐겠어? 나를 눈엣가시처럼 생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하지만 운은 띄워 놓았지."
벤하르트를 보고 그녀는 퉁명스레 말하면서 방안에 들어왔다. 루크와 세레니르는 다른 방에 있어서 방안에는 벤하르트와 레니아 둘 뿐이었다.
"그런데 우리쪽에서는 영석을 대가로 내어줄게 없는데 교섭이 되는거야?"
"있어. 내어줄것."
"뭔데 그게."
보통이라면 말하지 않을 이야기. 하지만 그녀는 너무도 간단하게 그 이야기를 꺼냈다. 조금은 나가샤에게 벤하르트의 이야기를 들어 심통이 난것도 까닭이라면 까닭.
"내 남아있는 '신력'"
"뭐? 무슨 소릴 하는거야 레니아. 그건."
"레니아 님."
".....?"
"이곳은 나가샤가 있는 곳이라구. 지금의 너와 난 주종관계야. 친구관계가 아니라 말이지."
"아 그렇군요. 네. 레니아님. 이라고 하긴 하겠습니다만! 신력이라니!"
"신력을 버리는것이 좋다는 의미는 아니야. 다만 그정도의 가치가 없으면 영석을 얻을수 없을 뿐이라고 생각했을뿐이지."
덤덤하게 그녀는 말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그건 아니잖아.. 아니잖아요."
"됐어. 그냥 아무렇게나 말해. 나가샤 앞에서만 조심하고,"
"아니 그래도 괜찮은거야?"
"괜찮아. 물론 기분이 좋은것은 아니고 신이 아니게 되는것도 내게는 참을수 없을 정도의 고통이기도 한건 사실이지만, 나도 이 여행의 일축은 담당하고 있는거잖아? 벤 네가 엔쿠라스에 이르는 것에 도움이 되기 위해 그렇게 노력한것처럼 그만한 각오를 나도 다지지 않으면 안되니까, 신등장의 제 아니 지금까지의 모든일에 대해서도 너는 정말 잘 해주었어. 지금은 내가 나서야 되었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평상시처럼 분개하고 그러지는 않는거냐. 폭발한다거나."
레니아는 손을 놀려 벤하르트의 머리를 때렸다.
"바보 취급 하고 앉았어."
그러고서는 벤하르트를 불쾌한 눈으로 빤히 쳐다보았다.
"뭐 뭐야?"
"아니 별로, 벤 내가 신력을 잃어버려서 지금보다 약해져도 나를 지켜줄수 있어?"
"더 약해지는거야?"
"끊지 말고 대답이나 해."
농담이나 장난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는것은 분위기로 알수 있었다. 벤하르트는 주먹을 꾹 쥐면서 말한다.
"지켜줄수 있어."
"조금 안심했다. 뭐 신력이 없어졌다고 해도 내가 신이 아닌건 아니니까, 조금 후련하게 줘버릴수도 있을것 같아."
본심과는 다른 말을 그녀가 입밖으로 꺼낸다. 안심한것은 분명한 사실이었지만, 그녀가 안심한것은 다른 의미로써의 안심인 것.
"무슨 소리야 그건. 신력이 없으면 너는 그냥 인간인게 아닌거야?"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야. 내가 '신'으로써 존재할만큼의 최소치는 남겨두는게 당연하잖아. 내가 주는건 힘 뿐이지 신을 주는게 아니라고,"
하지만 가볍게 대꾸한다고 해도 그것이 그녀에게 있어서 가벼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벤하르트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래. 설사 인간이 된다고 해도 말야. 그때가 되더라도 내가 꼭 지켜주도록 할게. 걱정하지 마."
"답지 않은 소리를 하고 앉았군."
"큭."
그렇게 그들은 히다브로에서의 첫날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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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화는 너무 많이 고쳤다 말았다 했네요. 대충 세어 봤을때도 5번 정도, 썼다가 지운건 3번 중간에 수정한건 몇번정도 대충 두번 잡고 말이죠....
혹시나 해서 살짝 말해두는 것으로,, 나가샤의 말투는 레니아를 대할때와 다른 이들을 대할때가 다릅니다. 종종 보이는 미스도 그때문에 일어나는 것으로 자신이 수정하는것 외에도 어투가 나올때도 있는 설정이 있지요.
늦어도 3일에 한번은 올릴수 있게 힘을... 내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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