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280화-신등장(神登將)의 제(祭)(17)
"늦어! 도대체 지금이 몇시야?"
레니아는 벤하르트가 돌아오자마자 그렇게 말하고는 설교를 시작했다.
"....."
"무슨일 있어? 표정이 안좋은데,"
"아니 아니 전혀 어떤 일도 없어. 걱정하지마."
확실히 세레니르의 행동은 그녀의 의도 대로 벤하르트가 루크의 생각을 하지 않도록 하는데에는 성공 했지만, 역으로 벤하르트가 그때의 생각을 떠올리는 빈도가 많아지는 계기가 되어 버렸다.
"그나저나 벤. 상처는 괜찮아?"
"아 봤어? 지금은 괜찮아."
"거기에 왜 이렇게 늦은 시간에 온거야? 벌써 밤인데,"
"이런 저런 고민을 했었지."
거짓말을 하기에 적당한 핑계거리가 있다는것을 다행이라고 여기면서 그가 말했다.
"루크 형님은 아무래도 진심인것 같아."
"그러게 말했잖아. 각오 하고 있으라고."
"그래. 하지만 말로 생각하는것과 실제로 당하는것은 다르니까 말야."
눈을 감고 깊은 고민을 털어놓은것 마냥 벤하르트는 연기를 해서 모면하고자 했지만 레니아는 목소리를 올리지도 않고 물었다.
"그래서? 사실은 무슨 일이야?"
"뭐..? 뭔 사실?"
"뭐긴. 지금 이 이야기 때문에 그런 반응을 보인게 아니잖아. 너는 거짓말 할때 특별하게 움직이는 곳이 있으니까,"
"그게 뭔데?"
"알려주면 다음에는 다른 방법으로 거짓말을 치려 하겠지? 여튼간에 그런것보다도 '무슨일이야?'"
레니아가 천천히 다가오는데 벤하르트는 점점 뒷걸음질을 칠수밖에 없었다. 왠지 알고 있으면서 그 결과를 사실대로 말하는지 안말하는지 확인해 보려 하는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레 레니아."
"왜?"
"무슨 일인지는 말 못해도 누구와 있었던 일인지는 말할수 있어. 이 이야기는 그걸로 끝내자."
"그렇게 말하는걸 보면 세레니르 겠지."
"아닐수도 있잖아. 끝까지 들어."
"흐음. 그래?"
레니아는 어눌한 표정으로 벤하르트의 대답을 기다렸다.
"세레니르 때문이야."
"그래? 뭐 그럴거라고 생각했어. 다른 일이라면 네가 그정도로 당황할리 없을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레니아. 뭔가 조금 어른 스러워진것 같은데,"
"나는 처음부터 어른이었어. 하지만, 이 경우는 어른스러워 졌다기 보다 참고 있는것 뿐이라는걸 알아둬."
레니아의 주위에 마력이 모여 들고 있었다. 기와 마력은 같은 에너지의 일종이었기 때문에 벤하르트도 곧 그 상황을 이해했다.
"그것은 둘째치고.."
여전히 레니아의 억양은 화가 나지 않은 평상시의 어조 그대로다.
"루크가 부르던데? 한번 가보는게 어때?"
"형님 부르셨습니까?"
"저조한 시합이었다. 라고 말해두고 싶은 경기였지만, 일단은 승리를 축하해 주마."
벤하르트는 루크에게 이야기를 꺼낼수 없었다. 진심으로 싸울 생각인지 그것이 아닌지. 물을수도 없었고 묻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세레니르의 일도 있었지만 그렇게 된 결정적인 요인은 그 자신의 심정이었다.
"그래 몸의 상태는 어떠냐?"
"반.. 아니 조금만 더 움직이면 그 이상도 가능할것 같아 보입니다만,"
"결승에 오를때까지 잘 훈련해놓도록 하는게 좋을거다."
"굳이 그렇게 언질을 주지 않으셔도 이제는 피하지 않을겁니다."
그것은 벤하르트가 루크에게 보이는 처음의 도전하는 자세의 말투였다.
"그래 그렇다면 이쪽도 사양않고 가도록 하마. 기대하지."
'내가 미쳤지.'
중요한 부분에서 옳은 선택을 할수 있다면 그 선택에 후회를 하는게 벤하르트라는 인간이었다. 문을 나서자 마자 그는 머리를 쥐어 싸매고 자신을 매도했다.
"뭐하십니까?"
"로오나?"
"하여간 얼간이같은 일은 골라서 하시는 군요. 식사 하시고 오셨습니까?"
"아 필요 없어. 괜찮아."
"혹시라도.."
음식을 치우려고 할때 로오나는 벤하르트와 마주섰다. 어두운 저택에 둘의 인영만이 마주하고 있었다.
"루크님은 벤하르트님을 소중히 여기십니다. 어떠한 일이 벌어지더라도 그 사실만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게 짜증나는 일이지만, 그것 하나만은 오해하지 말아 주십시오."
"알고도 남아. 형님은 그런 사람이니까,"
하지만 그 의도가 자신을 위한것일지라도 꼭 자신에게 좋은것으로만 돌아오는게 아니라는것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고마워 로오나."
"실례."
그날 밤 벤하르트는 생각했다. 사이에 대한 갈림길. 헤이로카에 와서 왔던 모든 일들을 정리하듯이 그는 명상에 잠겼다. 이런 저런 일들을 생각하면서 필요하다고 생각한 마음의 정리. 당연히 벤하르트의 성격상 그런 일이 쉬운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은 꼭 필요한 일이었다. 촉매제가 된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날 '당했던' 일 때문이었지만, 그는 최대한 그 일을 생각하지 않고자 애쓰며 눈을 지긋이 감고 생각했다.
어떤 일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지금같아서는 안된다는것을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깨달은 것이다. 성격상 완벽하게 바꾸지는 못하고 효과도 미미할지 모르지만, 레니아와 만나서 바뀌었을 때처럼.. 바뀌고자 노력했다. 그것은 누가 보기에도 꼭 필요한 일이었기에,,
천천히 그는 그렇게 혼란하고 혼잡한 자신의 머리를 정리해 나갔다.
모두가 환호하는 축제의 장. 이긴다면 좋지만 진다고 해도 손해볼것이 없는것이 신등장의 제라는 것이었기에, 참가자의 대부분은 기쁨을 안고 있었지만, 어떤 곳에서 예외라는 곳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는 것이다.
34명이란 많은 사람들이 참가를 해도 실제로 벤하르트가 싸워야 할것은 단 5번이라는 것은 토너먼트의 장점이라 할수 있었다. 실제로 대다수의 사람들과는 싸우지 않는다는 것은 심리적으로 편안함을 느낄수 있게 해주는 요인인 것이다. 2일째 되는 날. 세레니르는 벤하르트를 만나러 오지 않았다.
결국 1팀에서 아무리 강하고 쟁쟁한 사람들이 있다고 해도 결국 벤하르트가 싸워야 할것은 한명 이라는 것이 토너먼트라는 규칙의 좋은점인 것이다. 1팀에 있는사람들중에 벤하르트가 인지하고 있는것은 루에인과 루크 세레니르와 펠리온이었지만, 실제로 올라올 가능성이 가장 큰것은 루에인과 루크였다. 루에인이나 루크의 실력을 정확하게 알지 못했기 때문에 판단할수는 없었지만, 벤하르트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루에인보다는 루크가 남을것만 같았다.
루에인은 자신의 미숙한 실력으로도 몇번은 이길수 있었지만 루크의 경우는 지는것을 상상하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보다도 일단은 발등의 불이지.'
그가 오늘 싸워야 할 상대는 디레인 사우스. 이번 신등장의 제에 나온 사람들중에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의 실력자. 루크라는 그늘이 있다고 해도 그의 실력이 퇴보하는일은 없었다. 뭐라 해도 슬리드를 쫓을정도로 실력이 대단하다하면 무시할수 없는것이다.
서로가 부딪혀서 무너져 준다.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만큼이나 마음이 후련한 경우는 없을것이다.
순조롭게 세레니르가 이기는 것을 보니 벤하르트는 조금 기분이 좋아졌다.
'아니 안되지 안돼. 마음이 흐트러졌다.'
그는 다시 조용히 명상을 하면서 다음의 시합을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헤이로카의 모든 사람들이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일어났다. 이변이라고 불리울만한 상황. 보통은 디레인이 세명이나 나오지만, 이 디레인은 결국 지금 하고 있는 신등장의 제를 거쳐서 통과한 최후의 한명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무도가 들에게 질 일은 거의 없었다. 헤이로카의 사람들이 약간은 무료하게 여기는 부분이 이부분이었는데, 언제나 세명의 디레인이 남고 남은 사람들이 결정전을 하는것이 어찌 보면 식상한 것이다. 한번도 아니고 일년 열두번을 그렇게 본다고 하면 왠만한 사람들은 질리기 마련이었다.
그날도 사람들은 당연히 디레인인 펠리온이 이길것이라고 생각했다. 거진 반년정도에 나올까 말까한 일이 그토록이나 조용하게 일어날줄 상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아아 대단합니다. 동쪽숲의 신인인 루에인 파르츠가 펠리온을 무너뜨리는 순간을 우리는 지금 목격하고 있습니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할 정도로 그들은 경기에 몰입되어 있었다. 이따금씩 들려오는 사회자의 목소리만이 경기장 내를 울리고 있을 뿐이었다. 사람들이 놀라는것은 디레인이 지기 때문이 아니었다. 아무리 디레인이라고 해도 사람. 거기에 세상은 넓어서 한두번씩은 지기도 마련이었다. 자신을 무적이라고 칭하는 사람이 사실은 무적이 아닐수도 있는것처럼 절대 지지 않을것 같은 디레인이라 할지라도 경우에 따라서는 질수도 있는것이다. 거기에 디레인간의 실력차이라는것도 존재해서 어중간하게 운으로 들어온 디레인은 결국 몇번의 패배의 쓴맛을 보는 일도 전혀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펠리온의 경우는 달랐다. 참가자들중 벤하르트같은 처음 오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주변에도 이름이 널리 퍼져 있는 유명한 디레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지금껏 위용을 보여준것만 해도 수차례 절대 이런 무명의 검사에게 밀리거나 할 사람은 아니었다. 단 거기에 예외나 이변이 없다면,
'이녀석 정말 강하다. 어떻게 이런 녀석이..'
검을 휘둘러 그는 루에인의 손목을 노렸다. 손목을 빼는 순간 궤도를 바꾸어 루에인의 머리를 노리는 살수였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루에인의 실력을 인정했기에 나올수 있는 행동이었다. 자신보다 못해도 한수는 더 높은 실력을 가지고 있는 루에인이 이런 공격에 당할리는 없겠지만, 작은 상처라도 만들어서 변수를 만들어 두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회심의 일격은 미끄러져 빨려 들어가듯이 루에인의 겨드랑이로 향했고 루에인의 검 손잡이는 그대로 펠리온의 머리를 가격했다.
'대행자에 비하면 이녀석은 몇수나 아래로군.'
디레인의 수준을 평가하면서 그는 고개를 저으며 경기장을 내려왔다. 그의 모습이 사라지기 직전까지 숨막힐 정도로 달아오른 열기는 가시지 않고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그 뒤를 이어 몇사람의 경기가 끝나고 루크가 마무리를 지으면서 1팀은 끝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2팀. 한명 한명 지나가듯히 벤하르트는 승자를 기억해 두었다. 앞서 나온 쟁쟁한 선수들의 경기는 그저 지켜 보는것만으로도 주옥과도 같다고 할수 있는 것들이었다. 마음이 뒤숭숭했던 것도 세레니르만 생각하지 않는다면 어느정도 정리가 되어서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내심 속이지 않는 마음으로는 세레니르에게 고맙다는 마음까지 들 정도였다.
조용히 앉아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것으로는 한명더 있었다. 말을 걸지 않아도 서로를 인지할수 있을정도로 세어나오는 투기. 사우스도 이미 만전의 체제로 돌입해 있었다.
신경이 쓰였던 복면의 괴인도 승리를 차지하고 벤하르트가 사우스와 싸우기까지 앞으로 몇사람.
경기를 끝낸 사람들도 서서히 벤하르트와 사우스의 모습에 신경쓰기 시작했다. 전날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되는 실력을 선보인 벤하르트와 디레인중에서도 굉장한 실력을 가지고 있어 그 실력이 펠리온보다도 위라고 전해지는 사우스. 평상시 대로라면 사우스가 이기는것에 몰표가 되었겠지만, 그들이 관심을 가질만큼 그날의 분위기는 이상했다.
그리고 드디어 그들의 차례가 되었다.
"드디어 시작하는건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온다. 그리고 벤하르트는 경기장에 섰다. 정신없이 환호성을 지르던 전날과는 달리 굉장히 조용한 경기장. 조용하다고 하다기 보다 그것은 술렁거리는 느낌이 강했다. 조용하게 한사람 두사람 열사람 백사람 천사람 만명이 수근거리는 목소리는 압도를 넘어 멀미가 나올것만 같은 중압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벤하르트. 이 분위기가 너에게 독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말야."
창을 휘두르자 천이 벗겨지고 백옥색의 창이 나타났다. 사우스의 문파에서는 '자유의 창'이라고 불리우는 신물로 벤하르트의 검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만큼 대단한 물건이었다. 그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벤하르트는 전날의 그 일을 떠올려 버려 고개를 흔들어 잡념을 비웠다.
'그러니까 완벽하게 주객전도라고,'
"그런 걱정은 없어."
"상처는 그에 따른 봐주는 것이 필요하냐?"
"필요 없다."
은근히 벤하르트도 이 상황이 기쁜것은 현재 자신이 어느정도로 강함을 다룰수 있는가 하는것에 대한 정확한 잣대를 세울수 있다는것. 거기에 거짓은 필요 없었다. 누가 상대라고 정정당당히 이기거나 혹은 지는것뿐. 당연히 그가 노리는것은 전자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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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쓰지 않고 싶은데 은근히 신경쓰이는것.
그런게 있기에 세상일이라는게,, 있는것 같습니다.
이것과는 굉장히 다르지만, 저같은 경우는 자고 싶은데 딴생각이 자꾸 들어서 자지 못하는 경우가 있지요.
아무래도 상관 없는 이야기지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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