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274화-신등장(神登將)의 제(祭)(11)
여인은 세리니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아 저기.. 이제 충분히 몸은 돌아 왔으니까요. 내리겠습니다."
"니르라고 불러주세요."
"....."
그녀가 조종하는 천조각은 엄청 부드러웠는데 그런 와중에서도 경도가 천과 같지 않아 벤하르트의 몸무게를 유지하는데에도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그정도로 정교한 조종을 할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지만 그런 상황을 그다지 즐기지 못하는 성격이었던 벤하르트는 다리가 어느정도 돌아오자 바로 자리에서 내려왔다.
"더 계셔도 되는데,"
"이걸로 충분합니다. 어쨋든 그럼 서로의 이해관계는 끝났으니 저는 이만 가보도록 하지요. 여러모로 감사했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벤하르트는 자리를 떠나려는데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세리니르의 천이 그의 어깨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봐요."
"저기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지 않으시겠어요?"
눈으로 봐도 놀랄 만큼 강할정도의 실력자인 그녀가 도베느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것을 못 들었을리 없었지만, 혹여라도 싸우고 있는 도중이었기 때문에 라는 이유를 델수도 있다고 생각한 벤하르트는 묵묵히 자신의 이름을 그녀에게 말해주었다.
"그런데, 그 상처와 몸으로 어딜 가시려고 하시는거에요?"
"그야, 당연히 통과점까지 가려고 합니다만,"
"괜찮으시겠어요? 그 '몸'으로."
그녀는 굉장히 날카로운 질문을 그에게 건네 왔다. 그야말로 몸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할수 있는 사람 다운 말이어서 벤하르트는 뭐라 답을 하지는 못했다. 뛰고 걷고 싸우고, 기본적으로는 할수 있었지만, 도베느의 일격에 이미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는 앞으로 남아 있는 어느 누구도 상대할수 있을 정도가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벤하르트가 지금 가야할 곳은 아무리 못해도 한명 두명 혹은 더한 습격을 받을수 있을 정도로 준비되어 있는 '함정'이나 다름 없었다. 세리니르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정면 돌파를 할수도 있었지만, 벤하르트의 경우는 그것이 불가능했다. 씨앗을 모았어도 그것이 가장큰 난제라면 난제.
'애초에 '기'만 사용할수 있었어도 이런식의 어려움은 없었을텐데,'
하지만 그런 생각이야 말로 지금에 이르러서는 쓸데 없는 고민일 뿐이었다.
'어..?'
만난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세리니르는 벤하르트에게 이따금씩 계속해서 말을 걸어왔는데 정체모를 정적에 그는 고개를 들었다.
"으앗. 뭐하는 겁니까."
"그냥 얼굴을 보고 있었을 뿐인데요. 꽤 멋졌습니다."
'모르겠어. 이 여자 도대체 뭐하는 거야?'
어떤 방향으로 생각하든 좋은 결말로 가기에는 길이 너무 험난했기 때문에 벤하르트는 가급적 그녀와는 접점을 없애려 노력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 다음 세레니르가 말한 말은 그런 생각을 싹 접어버리게 만들정도로 매력적인 말이었다.
"도와 드릴까요?"
매력적인 것에는 언제나 위험함이 감도는 법이었지만, 이미 지금의 상황이 있기에 어떤 일이 있던 현실적으로 이보다 나빠질 일은 전무했다.
'도와 준다고 하는것은 아마도 순수한 의미일테지만,'
애초에 씨앗을 자신에게서 부터 빼앗는것도 혹은 빼앗지 않더라도 슬랫트에게서 빼앗은 씨앗을 주지 않는 선택지도 있었기 때문에, 굳이 주고 나서 제거 한다거나 도와준다고 하고 배반하는 수고를 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지만, 일전의 도베느의 일도 있고 했기 때문에 그는 약간 몸을 사릴수 밖에 없었다.
"어째서 입니까?"
"도와 주셨잖아요. 그 보답을 하고 싶을 뿐인데요."
"그 도와준것은 씨앗으로 이미 받았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럼 제 도움은 필요 없다는 말인가요?"
세레니르가 듣기에는 확실히 벤하르트가 거절하고자 하는것처럼 들렸을수도 있었지만, 당연히 벤하르트도 가능한한 예선전을 무리 없이 통과 하고 싶었다. 안전을 보장받고 받을수 있다면야 당연히 받을터. 고민하는 벤하르트를 보고 그녀는 뭐가 그리도 좋은지 싱글벙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도와 주실건데요?"
"뭐 이런건 어때요? 벤하르트씨가 앞으로 나가면 그것으로 낚인 사람들을 제가 처리한다는 것으로. 낚시에 낚시를 거듭했다고 생각하는거죠. 어차피 그들이 매복하고 있는 곳은 통과점에서 그리 멀지 않을테니. 어느정도 막아 주기만 한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확실히.'
신등장의 제의 예선전이라고 해도 분명 수준 높은 사람은 여럿 출전 했을터였지만, 통과점에 모여 있는 사람들에 한에서는 그정도로 강한 사람들이 있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그런 실력 있는 사람들은 굳이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씨앗을 모을수 있을 터였기 때문이었다. 세레니르 같은 경우의 예외가 있을 경우도 없지는 않았지만, 그럴수도 있기에 더 그녀의 도움이 빛을 바라게 될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도와 주는 대신에.. 제 부탁을 하나 들어준다는 약속을 해줘요."
"부탁이라니?"
"그건 예선전을 무사히 통과하고 나면 말씀 드리도록 할게요."
"아니 들어줄수 없는 부탁도 있으니까, 지금 말해두는게 좋을겁니다."
"충분히 들어줄수 있어요. 뭐 그정도라면.. 어때요? 어차피 벤하르트씨도 '이런 조건'이 있는 쪽이 더 편할거라고 생각하는데,"
아무 보수 없는 도움보다 보수를 줘야 하는 도움이 때로는 더 믿음이 가는 일도 있었다.
"좋습니다. 대신 제가 들어 줄수 있는 부탁이어야 합니다. 불가능한것은 들어줄수 없어요."
"좋아요. 그런 그렇게 하도록 해요."
준비가 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굉장히 큰 것이다. 작은 일부터 큰일에 이르러 준비를 해놓은 사람은 그만큼의 이득을 취하게 되고 준비를 하지 않은 사람은 그만큼의 손해를 보게 된다.
개개인마다 차이는 있지만, 분명 이치에는 맞아 떨어지는 말인 것이다.
'준비라고 하기에는 조금 개념이 틀리지만,'
후들 거렸던 다리도 어느정도 원상태로 돌아왔고 앞으로 '일순간' 정도의 수준이라면 조금 강한 사람과 싸워도 최면을 이용해서 버틸수 있을 것이었다. 그의 뒤에는 하늘거리는 옷을 날리면서 따라오는 세레니르가 있었다. 통과점에 이르기도 전에 두어명의 사람들이 습격을 했지만 세레니르는 가볍게 그들을 제압했다. 슬랫트나 도베느 같은 실력자들과 싸웠을때는 어느정도 그 강함이 와닿지 않았지만, 실제로 그들 이하의 수준과 싸우는것을 보면 그녀도 충분히 괴물의 부류에 속할 정도였다.
'내가 기를 찾는다면 어떨까.'
그로서도 확답을 내리기는 어려웠지만, 지금처럼 막연한 느낌이 들지는 않을것이라고 생각했다. 되어 보지 않으면 그 답은 내려 볼수 없는것이다. 헤이로카에서도 그 무섭다는 동쪽의 숲을 마치 산보라도 하는듯 즐겁게 걷고 있는 그녀를 보고 벤하르트는 순간 생각난 질문을 떠올렸다.
"그런데,"
"네?"
"뭐 이런 질문은 의미가 없긴 합니다만, 아까 이야기하는걸 들어보니 슬랫트라는 사람과 싸우기 전에는 씨앗을 모으지 않았던것 같았는데, 왜 그런겁니까? 당신 실력이라면 충분히 열개를 모으는것은 일도 아니었을텐데요."
"글세요. '일도 아니니까' 모으지 않았던 것이라고 생각하면 되는것 아닌가요?"
굉장히 광오한 태도였지만 그렇게 말할만한 실력이 안되는것도 아니었기에 벤하르트는 수긍 하고 지나갔다.
"애초에 제가 신등장의 제에 참가한것은 디레인 같은것을 노리는것도 아니었고,"
"그럼 뭣때문에,"
"그건 조금 말하기 어려운데요."
그녀는 얼굴을 붉히면서 그렇게 대답했다.
"그나저나 이제 통과점에 거의 도착한것 같은데요."
통과점까지는 뛰어서 500보 먼거리는 아니었지만 짧다고 하기에도 무리가 있는 거리였다.
"그럼 일단 다른 사람의 이목은 피해야 하니, 저는 뒤를 보도록 할게요."
천 스치는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그녀는 순식간에 벤하르트의 뒤에서 사라져 있었다.
'어디에 참가자가 있는지 정도는 말해주고 가면,,'
그들이 세운 전략은 실로 간단해서 전략이라고 말하기에도 우습게 느껴질 정도였다. 벤하르트가 출발을 끊고 그를 노리고 나온 적을 세레니르가 잡는다. 간단하지만, 계획대로만 이루어진다면 충분히 승산이 전해질수 있는 계획이었다.
"어쩔수 없지. 그럼 나도 가볼까."
그는 사고를 전부 달린다는것에 집중해 발을 띄웠다. 숲과 숲 사이를 지나면서 통과점까지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져 갔다. 그리고 그 변화를 감지하고 낚아 채기 위한 사냥꾼들이 한명 등장했다. 나타나는 움직임만 보아도 벤하르트는 그가 자신보다 한수 위라는것을 느낄수 있었다. 고로 혼자서는 절대 통과하지 못했을 길이라는 것의 반증. 하지만 그의 뒤에는 세레니르가 있었다. 준비된 사람과 준비되지 않은사람의 차이. 분명 이곳에 함정을 파고 있었던 남자는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벤하르트는 그가 준비한 함정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었고 그는 그런 준비를 하고 있지 않았다.
실력은 세레니르가 위였지만, 정면 승부라고 하면 일방적으로 그를 잡는것은 불가능할 정도로 상대의 실력은 출중했다. 다만, 예외라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뿐.
'세레니르가 없었다면 누워있는것은 내가 아니었을까.'
고지 까지 100보도 안되는 거리.
[스슥]
벤하르트의 앞길을 막는 세명의 사람들. 벤하르트와 세레니르가 팀을 짠것과 같은 부류의 참가자들이었다.
세레니르는 벤하르트의 뒤를 따르면서 그들에게 양팔을 저어 천으로 공격했지만, 그렇게는 둘만을 상대할수 있었다. 마지막 남은 한명과 벤하르트는 정면 승부를 할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것이었다. 몸상태로보나 실력으로 보나 실력은 상대가 곱절은 위라 할수 있었다. 벤하르트는 그를 향해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미쳤군.'
흑의를 입은 사내는 단도를 한손에 들고 벤하르트의 검을 바라 보았다. 그의 검을 막아내고 손목을 베어낼 생각을 하고 대치한 순간. 그는 움직임이 멈출수밖에 없었다.
"뭐.."
단도를 향해 벤하르트가 들이 민것은 하나의 씨앗. 남자는 어쩔수 없이 단검을 뺄수밖에 없었다. 그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벤하르트는 통과점을 지날수 있었다.
"저런 미친녀석이."
"뭐. 당신도 꽤 잘 해주었지만,"
세레니르는 그렇게 말하면서 흑의인을 지나갔다.
세레니르가 있었다고 해도 벤하르트의 실력 자체가 부실한것은 어쩔수가 없는 일이었다. 만약에 그녀가 막을수 없는 사태가 온다면? 꼼짝없이 당할수밖에 없는 상황으로는 이야기가 성립조차 되지 않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는 또하나의 '준비'를 한 것이다.
"나에게는 그정도로 간이 크지는 않지만,"
쥐어 들고 있는 씨앗은 상대에게로 부터 빼앗았던 '다른씨앗' 이었다. 흑의인이 망설이지 않고 베어 냈다면 당한것은 벤하르트 였지만, 그는 무사히 예선전을 통과할수 있었다.
'루크형님이 나에게 바란것은 이런 생각들이었겠지.'
루크는 굳이 약자이면서 강자를 '이기라는' 뜻으로 벤하르트를 내몬것이 아니었다. 약자이면서 강자를 상대할수 있는 생각과 사고 그리고 추가할수 있다면 기술을 기르기 위해 일부러 '기'에 대한 것을 제한한것이다.
"역시나 벤하르트는 통과 한건가. 가르친 자로써 느낀건 어떤 기분이지?"
"글세. 네가 느끼는 기분과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지."
"음?"
"다음에는 이렇게 무르지 않을거다. '괴도'"
스릉 하고 검집의 마찰 소리를 내며 루크는 자리를 뒤로했다.
"그때를 기대하도록 하지."
'그나저나 부탁이라는게 뭘까.'
예선전에 합격했다는 확인을 한후 벤하르트는 빨리 그녀의 '부탁'을 들어 주기 위해 세레니르를 찾아다녔다. 혹여라도 레니아가 있을때 그녀가 찾아오는것은 별로 원하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눈에 띄는 옷을 입었음에도 그녀는 종체 벤하르트의 눈에 띄지 않았다.
'어디로 간거지?'
만 하루의 시간을 준 예선전이었고 벤하르트는 여섯시간만에 예선전을 통과 했지만, 규정상 12시간이 지나지 않으면 내보내 주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는 대기실에서 대기 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그는 세레니르가 아직 동쪽 숲에서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덧붙혀서 대기실에 있는 사람은 모두 6명. 그중에는 아직 루에인도 속해 있지 않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이곳에는 디레인이 되기 위해서 온게 아니라고 했었던가. 그런 뭘하러 온거지?'
주위를 찬찬히 둘러 보는데 한 벤하르트의 시선이 한곳에 머물렀다.
'저사람은.'
온몸을 망토로 뒤덮고 있는 사람. 자신을 구해주었던 사람이 있었던 것이었다. 벤하르트는 반갑기도 하고 고마운 마음에 그에게 다가가 인사하며 말했다.
"저기. 아까는 감사했습니다."
망토의괴인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답해주었지만, 그 이후로는 말을 하지도 않을뿐더러 서늘한 한기가 느껴져 벤하르트는 그에게서 물러나야만 했다. 괴인만 그런것이 아니었고 그자리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피기에 바빴는데, 다들 본선에서 만나야 할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런 반응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주변을 확인하면서도 유난히 자신에게 시선이 붙으면 약간 안심한듯이 웃는것을 보고 벤하르트는 은근히 기분이 나빴지만, 애써 모른척 나머지 여섯시간을 기다렸다.
12시간째가 되자 합격한 사람들도 10명이 넘게 되었지만 세레니르와 루에인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세레니르는 둘째로 치더라도 루에인을 보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벤하르트는 사회자에게 세레니르와 이후에 만날곳에 대한 약속의 쪽지를 남겨두고 어쩔수 없이 다른 사람들을 따라 대기실을 나왔다.
"레니아!"
"벤. 어떻게 됐어?"
벤하르트는 엄지를 내밀면서 웃었다.
"멋진데 그래?"
"됐어 그런 말은. 뭐 그곳에서의 노력을 너는 알지 못하겠지만,"
"그럼 피곤할테니까, 들어가서 쉬도록 하자."
"어? 합격했으니까 무언가를 먹는게 아니고?"
"아니 그래도 네 몰골을 보면 그런 생각은 들지 않거든. 그런건 내일 해도 괜찮으니까 일단은 쉬도록 해."
레니아는 그와 함께 루크의 저택으로 들어왔다. 저택에 도착하자 마자 벤하르트는 깊은 잠에 빠졌는데 일어났을때는 이미 늦은 밤이 되어 있었다.
"일어났냐?"
"루크형님."
"너 치고는 잘했다고 해주마. 예선이라 해도 그렇게 쉬운것은 아니었을테니."
곱에 칭찬하지는 못했지만, 그것은 루크 나름대로의 인정이었다.
"감사합니다."
"음?"
"왜 그러세요?"
"밖에 누군가가 온것 같은데?"
루크가 그렇게 말하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누구지?"
"제가 열어보겠습니다."
"으핫?"
저택의 문이 열리고 들어온것은 나풀거리는 옷을 입고 들어온 세레니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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