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261화-지도(5)
루크가 생각하는것보다 슬리드는 그의 움직임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슬리드도 기를 다루는것에 한해서는 루크 못지 않은 실력자였기 때문이었다.
'사우스 녀석도 합류 한건가? 이래저래 맞물리는데,'
그리고 그는 무언가를 남기고 루크를 피해 다른 곳으로 도망쳤다.
'일단 나오기는 했지만, 어디서 레니아를 찾아야 하는 거지? 그녀석 요즘 어디를 그렇게 나돌아 다니고 있는건지 원. 시간이 이렇게 됬는데도 돌아오지 않는다는건 무슨 일이 있다는 건가?'
언제나와 같은 광경이었지만 벤하르트는 꽤나 오랜만에 그런 풍경을 보고 있었다. 루크의 혹독한 수련 때문에 밖으로 나올 기회도 얼마 잡지 못해서 최근들어 이렇게 나오니 반가운 기분마저 들 정도였다.
그것이 레니아를 찾으러 나왔다는 사실만 제외한다면,
벤하르트는 일단 루크와 만나기 전 레니아와 자주 갔던 곳을 중심으로 돌아다녀 보기로 결정하고 몸을 움직였다. 왠지 조급하게 쿵쿵 거리는 심정을 대변이라도 해주듯이 그의 발걸음은 작고 빠르게 움직였다.
"언제 까지 따라올 생각이냐?"
"어차피 서로 찾는것도 같으니 같이 돌아다니는게 낫지 않겠어?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라고 하잖아."
루크는 사우스의 실실 웃는 얼굴이 굉장히 마음에 안들었지만, 지금 여기서 싸우기에 상대의 실력이 그렇게 녹록하지 않는다는것을 알고 있었고 여차하면 도움이 될것 같기도 했기 때문에 더 이상 건드리지 않고 슬리드의 자취를 따라 갔다.
얼마간 가던 도중 루크의 발이 멈추었다.
"어이."
루크가 멈춘것은 루크가 기로 남겨 놓은 표식 때문이었다.
[둘중 하나만 와라 어긴다면 한명을 죽이겠다.]
"사실이냐?"
"슬리드의 성격으로 보면 아마도 사실이겠군."
이쯤 되면 사우스라고 해도 남의 일이라고 웃고 있을 여유를 보일수는 없었다.
"슬리드는 내손으로 잡아야 하는데, 나에게 맡겨주면 안될까?"
"너 정도의 실력으로는 믿고 맡길수 없지. 특히나 저런 녀석을 상대할때는 더더욱. 포기해라 인질은 나와 관계 있는 사람들이다. 제 삼자에게 맡겨두지는 않는다."
"하아."
사우스는 루크와 대치하고 있었지만, 싸우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죽기 살기로 싸우지 않는한 루크를 이길 확률은 거의 희박하다고 생각할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본적인 능력부터가 어느정도 차이가 날 정도여서 죽거나 죽이거나의 생사 승부가 아니라면 이길수 없어 보였다. 자신보다 낮은 실력의 사람이라면 제압을 하고서라도 자신이 슬리드를 잡으러 갔겠지만, 루크에 한해서는 막무가내로 말할수 없었던 것이다. 거기에 루크와 일전을 벌이고 난 후의 몸으로 슬리드를 잡는다는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도대체 어디서 나온거냐. 이 괴물은.'
"그럼 한가지 약속을 해준다면, 포기해주겠어."
"뭐냐 그건."
"좋아 좋아. 떨어진것은 사우스쪽이로군. 그러면, 슬슬 이쪽도 움직여 줘야겠지. 예상 외의 수확도 있었으니까, 술래잡기도 지겨워졌고,"
야금야금 기를 뿌리면서 슬리드는 도시를 벗어나 동쪽길로 접어 들었다. 헤이로카의 동쪽길은 난폭한 마수나 야수가 많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가 도착한곳은 한 폐허가 된 회랑 이었다. 아주 오랜 옛날 그곳에 살던 인간들이 서로의 의견을 논했다고 전해지는 곳이었지만, 지금에 이르러서는 단순히 폐허일 뿐이었다.
돌로된 장식물들은 꽤나 기품있어 보이고, 멋진 구조로 되어 있었지만,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성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것이 단 한개도 없었다. 이미 오래전에 인간 외의 생물들의 놀이터가 되어 버린 회랑 이었다.
슬리드가 도착하자 마수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야생의 생물들 답게 슬리드가 그들보다 더 강하다는것을 알고 곧 그자리를 떠났다.
"읍 웁."
레니아를 막고 있던 천을 슬리드는 손으로 빼 주었다.
"퉷 퉷. 이 더러운."
"이제 술래잡기는 이것으로 끝이다."
"너 로오나에게 무슨 짓을 한거야?"
죽은듯이 기절해 있는 로오나를 보고 슬리드가 말했다.
"생명에 지장을 주는것도 아니 그녀에게는 어떠한 손해도 없다. 단지 오늘 내에 움직일수 없을 뿐으로, 나같은 악한이 할수 있는 행동 치고는 꽤나 너그러운게 아닌가?"
"이런 말을 하는건 정말 싫지만, 루안이 빨리 왔으면 좋겠네."
"아아 이쪽도 기다리고 있다. 네가 믿고 있는 희망이 얼마나 부질 없었는가를 보여주도록 하기 위해서. 일단 준비나 해둘까?"
"뭐하는.. 이이!"
'도시를 나갔군. 이제부터는 일방적인 길이었지.'
굳이 추적을 할필요가 없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루크는 전속력으로 길을 따라 달렸다. 마치 야생의 다른 어떤 동물들이 달리는것보다 빠른 속도로 풍경이 지나갔다.
기가 끊기는곳에서 멈춰 그는 회랑에 이르렀다.
'유적지었나. 너무 위험해져서 출입금지가 되었다고 들었는데, 꽤 머리를 쓴 모양이군.'
"나와라."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낮은 목소리지만, 주변에 넓게 울려 퍼지자 한차례 새들이 들고 일어나 정신없이 지저귀기 시작했다.
"아직도 상처가 쑤시는것 같다."
어둠 안에서 슬리드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었다. 한손에는 검을 들고 한손에는 자신의 기로 만든 끈을 들고 있었다. 그 끈을 따라 시선이 이른 곳에는 레니아와 로오나가 묶여 있었다. 과거에는 종이 놓여있었다고 추측만 하고 있는 회랑중 가장 높은 곳. 아무 저항 없이 떨어져 내리면 레니아는 물론이고 로오나도 목숨을 부지할수 없음이 뻔했다.
"버러지가 생각할수 있을만한 생각이군."
엮어서 만들어낸 기를 나뭇가지에 묶어 둔뒤 슬리드는 검을 루크에게 겨눴다.
"나는 지는게 싫다. 그러니 어떤수를 써서라도 너를 이겨야 겠다."
"그래서 생각한것이 인질극인것이냐? 조잡하군."
루크의 신형이 사라지는가 싶더니 어느샌가 슬리드의 앞에 다가와 그는 검을 휘둘렀다. 기술을 사용한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슬리드가 피하지 못할것을 확신할정도의 일격.
최소한도 슬리드에게 상처는 줄수 있는 그런공격은 너무도 여지 없이 슬리드에게 간단히 막혀 버렸다. 도리어 역으로 튕겨내서 순간 루크는 자세를 잡지 못하고 슬리드의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인질극? 물론 사용안할 생각은 아니었으니 부정은 하지 않겠다만, 저건 내 선택폭을 넓히기 위한 보험이다. 어차피 고수들의 싸움 만에 하나라도 진다는것은 생각하기 싫기 때문이지."
'이녀석의 힘. 뭐지?'
"사우스는 만났겠지? 그러니 내 실력을 어느정도 눈치는 채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렇기에 이런 공격을 했겠지. 네 시종이었나? 선물은 잘 받았다."
루크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는 슬리드를 무시하고 로오나를 바라 보았다. 미약하게 숨은 쉬고 있는데 아무리 당했다고는 하나 그녀의 평상시의 기호흡과는 거리가 멀었다.
'강해진 힘에 로오나의 저 상태라..'
"흡기(吸氣) 였군."
슬리드가 사용한것은 다른 사람의 기를 빨아들이는 흡기라는 기술이었다. 순간적으로 평소보다 더 상대만큼 강해질수 있다는 이점을 얻을수 있지만 이 기술에는 몇가지의 페널티가 따랐다. 첫번째로 1회성이라는것. 한번의 전투가 끝날 정도 까지는 힘을 보존시킬수 있지만, 그 후에는 다시 예전의 그로 돌아가야만 했다. 반대로 기를 빨린 사람이라고 해도 하루를 요양하면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수 있었다. 두번째는 자신보다 강한 사람의 기를 흡수 하지는 못한다는 것이었다. 세번째는 연거푸 사용할수 없다는것. 하루에 한번 정도로 그 이상 사용하면 부작용이 일게 되어 있었다. 본래 사우스보다 실력이 어느정도 아래였던 슬리드가 사우스를 이길수 있었던것은 이 기술 덕분이었다. 무도를 하는 사람이 많은 헤이로카는 그만큼 슬리드가 먹이로 삼을수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것을 뜻하는 것이었다.
"좋은 '기'술에는 그만큼의 불이익이 따르지. 어차피 내가 너를 이기면 그뿐이라는 이야기로 간단해서 좋군."
"너의 시종은 보기와는 다르게 굉장히 강하더군. 정면으로 승부했다면 나라고 해도 쉽게 이기지는 못할 정도로, 이럴때는 짐이있다는것은 여러 모로 즐거운 일이다. 새삼스럽게 이때 까지 참은 내가 정말 자랑스러워 질정도로 말이야."
"읍 으으읍!!"
"그렇게 된건가."
루크의 여유로운 모습을 보고 그는 입술을 깨물면서 검을 바로 잡았다. 그리고는 루크에게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는듯 달려 들었다.
"어이 신."
"!?"
슬리드의 첫번째 공격을 피하고 두번째 공격을 검을 들어 올려 막으면서 루크가 말했다.
"잘 봐둬라. 밀리는 자가 싸우는 법을."
"어떻게!!"
슬리드는 귀신이라도 본것처럼 루크를 보며 뒷걸음질 쳤다. 루크는 몇가지 잔 상처를 입고 있기는 했지만 꽤나 여유롭게 슬리드를 향해 걸어갔다.
"검술의 재능도 뛰어나고 사용하는 기술도 좋다. 힘이 뒷받혀 주니 나도 조금은 힘에 부치는군. 하지만 너와 사우스라는 녀석은 근본적으로 사용하는 기술의 질이 다르다."
슬리드가 일방적으로 어딘가를 다치거나 한것은 아니었다. 단지 이정도가 되어서 루크를 이기지는 못한다고 스스로가 납득을 해버린것일 뿐으로 그는 전의를 상실하고 있었다. 이것이 일반적인 싸움이었다면 분명히 루크는 그를 이겼을 것이었지만,
"포기해라. 목숨은 살려주지."
[찌지지]
로오나를 걸고 있었던 기가 풀려 나 로오나는 높은 곳에서 죽 떨어져 내렸다.
"....."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채 로오나쪽으로 몸을 날리려는데 로오나의 몸이 공중에서 우뚝 멈춰섰다. 그와 동시에 시큰 거리는 아픔이 루크의 어깨를 관통했다.
"만에 하나라도 지지 않는 싸움이 진정으로 자유를 누릴수 있는 길이다."
루크는 일섬으로 검을 휘둘러 슬리드를 떨어 뜨려 놓았지만, 상처의 위치가 너무도 않좋았다. 어깨와 심장의 중간에 찔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크의 공격은 날카롭게 슬리드의 급소를 노리고 들어갔다. 하지만 슬리드가 손하나를 까딱하자 그 공격은 멈출수 밖에 없었다. 슬리드를 베고 가기에는 시간이 부족하게, 슬리드를 베지 않고 달린다면 잡을수 있도록 슬리드 본인이 속도를 조종하고 있었기 때문에 '설사 그것이 그의 생각에 낚여 주는 일이라고 해도' 루크는 그의 생각대로 움직여 줄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벌써 세번째의 검상. 하나하나가 죽기에 충분할 정도로 강력한 일격일격이었다.
"이제 저 종은 거리가 많이 모자르게 되었으니, 저쪽의 여자로 해볼까?"
"....."
한참을 찾아해매고 벤하르트는 혹시라도 사람들이 돌아와 있나 싶어 루크의 집으로 돌아왔다. 루크의 집의 문에는 한장의 쪽지가 덩그러니 붙어있었다.
[셋을 되찾고 싶다면 동쪽길의 유적회랑으로 와라 -슬리드-]
"슬리드!!?"
====================================
한번 되돌아서 보고 싶은데, 으음 ;;; 시간이 아주 애매한 관계로
연참대전 룰 이 엄격해지기도 했고
내일에나 고쳐야 겠군요.
Comment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