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252화-헤이로카(3)
헤이로카에 머문지 3일째 되는날 아침 벤하르트는 레니아를 불렀다.
"레니아."
"어?"
"슬슬 말야. 그 신에 대해 말해 줘야 할것 같은데, 우리가 이곳에 온것은 사령을 찾으러 온거잖아. 넓게는 엔쿠라스에 도달하기 위해서고,"
"그렇지."
미루고 미뤄도 언제고 찾아올 일은 분명히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레니아도 어느정도 마음은 잡고 있었다.
"일단 나갈까? 보여주고 싶은게 있어."
"그래."
하루가 다르게 추위가 가시고 따뜻함이 몰아져 왔다. 봄을 만끽하면서 그들은 도시를 거닐었다. 여러 곳에서 환호성이 들려오는 결투장을 지나 그들이 도착한곳은 도시의 중앙에 놓여 있는 한 석상이었다.
"이건?"
"이게 바로 우리가 찾아야 할 그 신이지. '나가샤'라고 불리우는 신으로 아마도 '사랑'의 신이었을거야."
"사랑? 듣기만 해도 뭐 약신보다는 높아보이네."
따각 하는 머리때리는 소리가 일순간 들리고 레니아가 말을 이어 나갔다.
"뭐 그녀가 어떤 신이거나 하는것은 사실 네게 중요하지 않잖아. 그냥 덤으로 이야기 해 둔거라고, 머리속에 잘 넣어둬. 어쨋든 결론부터 말하자면 말야. 그녀석에게 어떻게 가는지에 대해서는 사실 잘 몰라. 이걸 보면 알다시피 이곳에서 모시는 신이라는것은 확실한데, 신에게 어떻게 당도해야 하는지는 알수 없다는 말이지. 나는 노시엘트를 빠져 나와 본적이 없거든. 뭔가 초대를 받아 본적도 없고. 당연히 나가샤가 이곳에 있다는 것은 알아도 가는 방법은 모른다는거지."
"신들만의 특별한 방법이라거나 그런건 없는거야?"
"그래."
"헤이로카까지 도착해서 원점이로군."
벤하르트가 묵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저나 석상을 보니, 나가샤라는 신도 미인이겠군. 신은 원래 다 저런가?'
"벤 그 석상에 뭐라도 있어?"
그녀의 음성이 저릿저릿하게 느껴져 털이 곤두선 벤하르트는 배시시 웃으면서 바로 내달렸다.
"너 말야!"
'빨리 몸이 완쾌 되어야 할텐데,'
금방 끝날줄 알았던 쫓고 쫓기는 공방은 꽤나 집요하게 계속되었다. 그냥 단순한 주먹놀음으로 끝날줄 알았건만 레니아는 마법까지 부려 벤하르트를 추격한 것이었다.
'장난이 아니잖아.'
기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지금에 레니아의 마법을 맞았다가는 하루는 꼬박 누워 있어야 할 정도였다. 몸 자체는 건강했기 때문에 쉽사리 맞지도 않고 검으로 베어낼수도 있어서 위험할 정도는 아니라고 해도 쉽사리 끝내기에는 간단한 문제가 아닌것이다.
시큰 거리는 느낌이 어깨부근을 스쳐 지나갔다.
'어?'
"오랜만이구만,"
"앗!"
레니아도 사태를 파악하고는 준비된 마법을 곧바로 슬리드에게 쏘아 내었다. 하지만 슬리드는 여유롭게 그것을 검으로 쳐내었다. 그가 쳐낸 마법구는 건물로 날려 보냈는데 레니아가 아무리 조종하려고 해도 조종을 할수가 없어 결국 건물쪽에 맞아 버리고 말았다.
"하하. 능력이 부족한걸 보니 역시나 쓸모없는 마법사로구만,"
"너!"
헤이로카의 시민들은 싸움 냄새를 기가 막히게 잘 맡아서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주변은 인파로 둘러 쌓였다.
"일단 이전의 빚은 갚아 둬야겠지? 하룻밤을 지내면 더 좋을것 같지만, 일단은 포기하도록 하고,"
그에게 잡혀 있던 벤하르트는 한바퀴 몸을 돌리면서 검을 뽑아 공격에 들어갔다. 신체의 능력은 좋지 않았지만 그것은 애초에 로엔과 있을대 배웠던 기술로써 막아내도 거리를 벌릴수 있고 막지 않으면 배나 팔중 한군데를 베어 낼수 있는 기예였다. 검에게서 멀어진 슬리드는 벤하르트를 보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네놈에게도 빚이 있었지."
그는 벤하르트에게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주먹으로 그의 복부를 강타했다. 눈으로 보고 반응을 하는것은 무리였던터라 검쪽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있었던 벤하르트는 예상 밖의 주먹 공격에 상처부위를 감싸안고 무릎을 꿇었다.
"벤에게서 떨어져."
"안됐지만 네년도 똑같은 꼴을 당하게 해줄테니 걱정 하지 마라."
그가 움직이려는때 멀리서 경비병의 신호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가 싸움의 신고를 한 것이다. 일단 경비병을 건드리면 도시에게 적을 선포하는것이나 다름 없었기 때문에 슬리드는 혀를 차며 벤하르트의 복부를 한번 걷어 찼다.
"아쉽지만 여기서 끝내야 겠군. 물론 네놈들에게는 이게 시작이지만,"
"무슨 소리지?"
"곧 알게 될거다."
두번만 맞았을 뿐인데도 벤하르트의 정신은 몽롱해지는가 싶더니 세상이 일그러졌다.
"하!!"
벤하르트가 깨어난 곳은 여관방이 아니었다. 돌에서 올라오는 냉기와 한줄기 빛만이 들어오는 창문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검은 줄의 쇠창살.
"여기는 뭐지?"
"뭐긴 뭐야. 감옥이지."
"레니아 무사했구나. 다행이다."
"감옥에 갇힌게 뭐가 그렇게 다행이야. 쳇 뭐가 위험인물이냐. 돈까지 다 물어 냈으면 충분한것 아냐?"
"어떻게 된건데?"
벤하르트가 기절한뒤 마을 내를 순찰하던 경비병은 그들사이에 도착했다. 충분히 도망칠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슬리드는 그자리에서 병사들을 기다렸다. 그리고 병사들이 도착해 사정청취를 시작하자 슬리드는 벤하르트와 레니아에게 불리한 사항만을 꼬집어 말한 것이다.
"그러니까, 애초에 마법을 날린것에 대한 정당방위였다는 거야. 거기에 너에게 검으로 위협까지 당해서 기절 시키지 않고는 도저히 손을 쓸수 없었다고 하더라는 거지. 거기에 사람들이 그렇게 많았으니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전부 그녀석이 맞다고 생각 했겠지. 그 건방진 녀석은 어느샌가 검도 집어 넣고 있더라고, 결국 수리비를 물어내고 몇주간 이곳에서 머물라고 한거지."
"수 리 비?"
"그래 수리비."
"1마크닐 정도?"
"3마크닐 정도. 아니 더 됐었나."
"레니아 어째서 그렇게 힘을 잔뜩 실었던 거야. 그러니 위험인물이 되어 버리지."
벤하르트의 그말에 레니아는 성을 내면서 반격했다.
"그럼 내가 그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했다는 거야. 힘조절은 충분히 했어. 그녀석이 수를 부린것 뿐이지. 그렇게 까지 위험한 공격은 아니었단 말야. 물론 사람이 맞으면 꽤 충격은 있겠지만 그게 그렇게 건물을 부숴 버릴 정도로 강하지는 않았어. 애초에 강했다고 해도 벤을 구하려고 한 행동인데 정작 당사자란 사람은.."
"으으.. 어찌 되었든 둘다 무사하니 다행 아냐."
"이게 무슨 꼴이야. 정말 분해 죽겠어. 그녀석 나가기만 하면."
"이정도로 끝내는게 어때? 우리가 그녀석을 혼내주기가 쉬워 보이지도 않고,"
"당한채로 끝내라는 거야? 그런 녀석은 말야. 한번 호되게 당해 봐야 정신을 차린다구. 벤. 너는 여기서 몸을 요양 해서 한시라도 빨리 몸을 낫게 하란 말야. 그동안 나는 생각좀 하고 있을게. 어차피 이용해 먹을수 있는거 이곳의 법으로 그녀석을 낚아 주자고, 정말 재밌겠는데?"
그러고는 감방에서 그녀는 이따금씩 키득키득 웃었던 것이다.
'나라고 그렇게 할수 있을줄 알면 얼마나 좋겠냐.'
애시당초 힘이 있었다면 최소한도 슬리드에게 당할일도 없었고 이런 곳까지 오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니 벤하르트도 슬슬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슬리드에 대한 화는 자신에 대한 짜증으로 바뀌었다.
'도대체 왜 이런 거지? 베라스키가 뭘 해버렸나.'
베라스키의 마지막을 떠올리면서 그녀라면 충분히 그럴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으로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이리 됐느냐가 중요한게 아니지.'
집중해서 몸을 풀려고 하는데 문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곳에 있다는 말입니까. 네 감사합니다."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고 곧 슬리드의 얼굴을 한 사우스가 들어내었다.
"이이이!"
레니아의 당수가 사우스의 머리를 가격했다.
"아야야 뭐하는 거지? 나는 슬리드가 아니고 사우스라고,"
"형관리를 제대로 하란 말야."
"에이 사정을 들어보니 도시 내를 시끄럽게 돌아 다녔다고 하던데, 그런 일만 아니었어도 이 큰 헤이로카에서 형을 만날수나 있었을까?"
"그래서 여긴 무슨 일이야?"
"나가게 해주려고 왔지."
"탈옥은 하지 않을거야."
슬리드와 같은 외견을 가져선지 레니아는 믿음이 안간다는듯 말했다.
"탈옥이라니 이미 설명은 다 해뒀다고, 나가기만 하면 돼. 형의 일은 내가 책임을 져야 겠지. 이것도 다 일이니까."
"그럼 사양 않고."
열린 문으로 레니아가 나오고 나자 사우스는 문을 걸어 잠궜다. 철컹 하는 소리가 마치 얼음갈라지는 소리를 연상시켰다.
"어이"
"아 있었나? 미안 미안 너무 구석에 있어서 있는줄 몰랐지 뭐야. 나도 참."
벤하르트는 형제가 쌍으로 얄밉다고 생각했다.
정말 따로 다른 생각이 있었던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사우스는 그들을 구해주고 곧장 바로 다른 곳으로 달려갔다.
"한시라도 빨리 사우스가 슬리드를 잡았으면 좋겠다."
"글세."
그는 기운이 빠진것처럼 늘어지는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글세라니. 그런 녀석이 잡히면 좋은것 아냐?"
"잡히면 나쁘지 않지. 확실히. 나도 개인적으로는 별로 좋지 않았으니까, 잡힌다면, 괜찮아. 그렇지만 사우스가 말했잖아. 처단한다고.. 그말은 동생이 형을 죽인다는 이야기가 되어 버리는 것이니까. 아 오해하지 마라. 이건 누구나 할수 있는 평범한 생각이니까,"
"그래 그렇게 생각하면 분명 그래. 형제라는것은 내가 생각하는것보다는 더 엄청난 것일테니까, 가족인걸."
"왠일로 순순히 인정을 하는데 그래?"
그는 레니아의 생각에 조금 놀라고 있었다. 틀림없이 나약하기는! 이라고 하면서 뒤통수를 맞을줄로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책을 많이 읽었으니까 말야. 어느 책에나 가족이 소중하지 않다고 적혀진건 없었거든.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그정도가 되면 누구나 머릿속에 각인이 된다고,"
"그래."
훈훈하게 끝이 날것 같은 분위기에서 벤하르트는 번개같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생각해내었다.
"아 레니아. 그래서 얼마나 남았는데 돈은."
"그렇군. 얼마 안남았는데?"
레니아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맛있는 음식을 더 추가했던 지난밤이 후회로 일그러져 가고 있었다.
'틀림없이...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했었거늘..'
후회는 언제나 늦을 뿐이었다.
"일? 헤이로카에서 일을 한다고 하면 역시 '그것'이지."
"자네 체격이 조금 되는구만, 젊은 사람이라며 '그것'이 인기라네."
"검도 차고 있으니 검사일테고, 그럼 더더욱 다행아닌가?"
이런 저럼 사람들에게 물어도 정작 자신들의 집에서 일을 하라는 이야기는 건질수 없이 나오는 이야기라고는 다 비슷한 말들 뿐이었다. 막노동 일은 꽤나 질색을 하는 레니아는 헤이로카에서 별로 맡을 일이 없었다. 따지고 보면 페펜도시가 특별하다 할수 있었기에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지만, 결국 일거리는 벤하르트에게 몰리게 된 것이다. 이전 같았으면 당연하다 생각했겠지만, 이미 지금은 레니아가 벌어오는 돈의 감미로움을 맛봤던 터라 다소 불만 스럽게 그는 거리를 돌아 다니고 있었다.
그가 기분이 울적한것은 그것뿐만이 아닌 어느곳에서도 자신을 쓰려 하지 않는다는것에 있었다. 참고 찾아보면 나올법도 한데 가는곳마다 이미 일을 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벤하르트처럼 외지인들이 많았기에 일거리를 찾기고 굉장히 어려웠던 것이다. 그런 그에게 사장은 언제나와 같은 말 뿐이었다.
"돈을 버는데에는 역시 '그거'라니까,"
"역시 그렇습니까?"
헤이로카 다운 변명 거리며 헤이로카 다운 돈벌이였지만, 지금의 그에게는 아무래도 무리였다. 저급한 싸움꾼 정도라면 충분했지만 그리해서는 돈벌이가 되지 않았다. 기회를 잡아 싸운다해도 종일 벌어 하루연명라고 조금 남길 돈 정도 밖에 되지 않는것이다. 그런가 하면 더 강한 사람들과 싸우는 것은 지금의 벤하르트에게는 지러 나가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계속해서 지게 되면 평가가 떨어져 결국 나오지도 못하는곳이 헤이로카였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몸이 나쁠때 나가고 싶지는 않았다.
'역시 자기 최면으로..'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헤이로카의 수준은 굉장히 높아서 어느정도의 수준부터는 전부 기를 다룰줄 아는 사람들만이 살아 남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생각을 해 힘을 강하게 할수는 있어도 몇분 계속되다 보면 그 최면 조차도 점점 느슨해질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슬리드가 미처 반응하지 못하고 얼굴에 상처를 입은것도 벤하르트의 세뇌로 인한 공격 때문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그냥 맥없이 주저앉고만 있을 필요는 없을법도 싶었다.
그런 이런 저런 고민으로 그는 삼류들이나 노니는 결투장을 드문 드문 걸어 다니고 있었다.
'하아.'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레니아에게 부탁을 해볼...'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만은 하고 싶지 않았다. 레니아라면 분명히 쉽게 일을 구할테지만, 그런 일은 그도 원하는 바가 아닐뿐더러 애초에 남자가 여자에게 일을 구해달라고 하는게 구차해 보이는 것이다.
'안돼 이것만은 안되지.'
"어이 오늘은 그날이라면서?"
"디레인의 두명이 붙는다는군. 아 나도 돈만 있다면 보고 싶은데, 디레인끼리 붙는 경우는 거의 없는 일이니까 말야. 아 그러고 보니 그중 한명은 이전의 명당에 올랐던 사람의 손자라는데? 이름이 루안 샐던 이었던가?"
"뭐?"
무심결에 벤하르트는 사내의 말에 대답을 걸어 버렸다.
"응 자네는 뭔가?"
"아니 아니 죄송합니다. 실수로 그만,"
말을 끝마치자 마자 벤하르트는 인파속으로 녹아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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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줄 고민 없이 쓰기는 했는데, 그렇게 절약된 체력 이상으로 피로가 몰려 오는군요. 최근에 여러가지 하는게 많아서..
내일은 단합회 때문에 더 힘 빼겠는데, 걱정이 태산 같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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