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248화-약속(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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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하는 거지."
주위에 있던 벽에 등을 기대어 몸을 붙히고 벤하르트는 레니아를 보았다. 검은 하늘을 가득 메울듯 내리는 흰 눈과 그녀는 정말 잘 어울려서 지금의 상황조차 잠시 잊을정도였다. 레니아는 잠시 남자가 준 편지를 바라 보더니 양손을 편지에 가져갔다.
"으힉."
종이 찢어지는 소리.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표정으로 레니아는 편지를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후우."
계단을 내려와 여관으로 돌아가려는 레니아는 무심결에 옆을 쳐다보았다. 놀라고 있는 벤하르트와 레니아의 눈이 마주쳤다.
"호오. 무슨 일이야 벤. 이런 곳에를 다."
"아니 뭐 그냥 산책이나 하려고, 여관에만 있으면 몸을 풀수가 없으니까 말야."
"그런데 이런곳까지 오다니 그냥 주변에서 놀았으면 좋았을텐데,"
"그러게. 으아아."
벤하르트는 도망 치려고 바둥거렸지만 레니아의 손을 벗어날수는 없었다.
"잠깐 잠깐 애초에 내가 왜 이런꼴을 당해야 하는거야. 그냥 널 데리러 온것 뿐인데,"
"봤잖아. 방금."
차갑게 레니아가 말했다. 어째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벤하르트는 알수 없었지만 그 말투 한마디로 이 상황을 타계할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네."
눈에서 한바탕 구르고 조르고 맞기를 반복하고 오랜만에 둘은 음식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말야. 레니아 그건 무슨 편지였어?"
"그거? 말해도 되겠어?"
히히 하고 웃으면서 우위를 점한듯 레니아가 말했다. 그 태도로 이미 눈치 채고도 남았지만, 만에 하나라는 점을 생각해 그는 재차 물었다.
"시덥잖은 일. 나와 사귀어 달라는 편지야."
"크흑. 역시 그런거야?"
벤하르트는 왠지 힘이 탁 풀려 눈앞의 음식에 얼굴을 박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렇지. 그녀석 얼굴은 봤지?"
"어. 꽤나.."
곱상하게 생겼지만 다른 의미로 얼굴을 해 미남인 얼굴이었다.
'하기사 그쯤은 되어야 레니아에게 고백을 할수 있겠지.'
"능력도 꽤 좋아."
"마음에 든다는 이야기야?"
"왜?"
왠지 레니아의 눈이 초롱초롱 하다고 느꼈지만 애써 그는 내색하지 않으려 했다.
"마음에 든다면, 뭐 자유는 너한테 있으니까,"
[짝]
거침없이 레니아의 손이 벤하르트의 뺨을 후려 쳤다.
"한심하기는."
"잠깐 도대체 이 대사의 어느 부분이 맞아야 하는 거였던 거야?"
"전부 다."
"너말야. 내 몸이 이런것을 기회로 보고 있는것 아냐?"
레니아가 때린 부위가 얼얼하게 저려온다.
"설마."
딴청부리며 레니아는 음식을 입안으로 가져갔다.
'나날이 약올리는게 늘어만 가는듯한 기분이..'
이래서야 처음 여행할때의 레니아의 모습이 그리워질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도 그에게 있어서는 썩 나쁘지도 않았다. 좋다 라고 말해도 좋은 모습인 것이다.
"그런데, 편지는 어째서 찢은거야?"
"당연하잖아. 내가 그녀석과 사귈리가 없으니까,"
'당연하지 않지. 읽어보지도 않는건.'
"근데 너 그 남자 이름은 알고 있는거냐?"
시종일관 '그녀석'으로 부르기에 벤하르트는 의구심이 들어 살짝 레니아에게 지나가듯 물었다.
"당연하지. 이곳에 얼마나 있었는데 이름 하나 못외울까,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청소부까지 포함해서 다 알고 있단 말야."
"당당하게 자랑하는구나. 그래서 이름은 뭔데?"
"알아서 뭐하려고?"
"아니 그냥 이름도 알고 있는데 그녀석이라고 하니까.. 왠지 정없어 보인다고 할까."
"타인이잖아? 그정도야 내 자유지. 벤을 벤이라고 부르는것에 이유가 있듯이.. 그녀석을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것도 다 이유가 있어."
"그게 뭔데?"
"고백 했으니까 나에게."
레니아는 당연하다는듯이 말했지만, 벤하르트는 이해할수가 없었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가 되물었다.
"그게 무슨 이유야?"
"벤. 내가 이곳에 있으면서 이런 고백을 몇번이나 받았을것 같아?"
레니아가 웃으면서 말했다.
"뭐? 한번이 아닌거야?"
"당연하지. 설마하니 수많은 일중 우연히 벤에게 걸릴리가 없잖아. 이번까지 포함하면 9명이야. 어서 먹어."
손이 멈춰 있는 벤하르트에게 그녀는 친절하게 권유했지만 묵묵 부답으로 벤하르트는 식은땀까지 흘려가면서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 9명은 이제 전부 '그녀석'이지. 왜 인줄 알아?"
"글세."
"나는 그녀석들과 사귀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야. 벤이 처음에 물었던 편지를 왜 찢었는가 하는것에도 대답이 되었으려나. 이곳의 누구라고 해도 나는 그럴 마음이 전혀 없었어. 그러니까, 읽어볼것도 없이. 그것으로 인해 흔들릴것도 없이 처음부터 남이었다고 생각하는 거지. 더 정을 붙히기는 싫었어. 이런 태도는 후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지니까, 더 다가오지 않게 하는효과도 있고, 어때 대답은 됐어?"
그런점이야 말로 벤하르트와 레니아의 차이일 것이다. 전체적으로 레니아도 벤하르트에게 물들어 느슨할정도로 착한 성향이 없는것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분별만은 확실하게 하고 있었다. 그것이 싸움이던 생활이던 일체 망설임은 없었다. 반면에 벤하르트는 레니아가 이전에도 약속을 요구했듯이 상대에게 한없이 물렀다. 설사 그것이 '적' 이라고 해도 상대의 뒤를 걱정해주는 것이다.
"그건. 왠지 너무 매정하잖아."
레니아의 눈살이 조금 찌푸려졌다. 전날 했던 자신의 말을 잊은것 같은 대답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외에도 분명한 이유가 있었기에 서서히 그녀는 인상을 찡그렸다.
"매정? 어째서? 어중간한거야 말로 더 잔혹한것 아냐?"
"성의 라는게 있잖아. 얼마나 노심초사 하면서 그 편지를 썼겠어. 최소한도 읽어보기라도 해야.."
그는 말을 멈추었다. 그럴수 밖에 없는것이 손을 들거나 때리지는 않았지만 레니아의 표정이 더할나위 없이 무섭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기를 쓰고 몇대를 맞거나 했으면 했지 더는 보고 싶지 않은 눈빛이었다. 평상시의 차가운 눈이 애교로 느껴질 정도로 마치 타인을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난 너와 달라."
"그 그래."
"하지만 뭐. 네가 바라는게 정말 그거라면 그렇게 해볼까?"
"뭐?"
레니아가 인정하고 들어오니 그의 마음에 괜시리 불안함이 들끓기 시작했다.
"벤이 정말 그런것을 바랬다면 말야. 그렇게 해주겠다고. 그녀석을 위해 읽어 주기도 하고, 상처입지 않게 잘 대해주고 그렇게 '친해져' 볼까?"
"아니 거기까지는 전혀 바라지 않았잖아. 친하게 지낸다니 그건 무슨 소리야?"
레니아의 의미 심장해 보이는 말에 불안감을 느끼면서 그는 황급히 수정했다.
"뭐 그런 의미로 들리는데, 방금 그녀석쪽을 배려 했잖아. 그러니까 원한다면 그렇게 해주겠다고 했어.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산사람중에서도 가장 '친한' 벤의 부탁하나도 못 들어줄까."
'윽.'
비수를 꽃는듯이 콱콱 그의 가슴이 막혀왔다.
"아니,, 뭐 그런건 별로 원하지 않아."
"그렇지?"
언제 화라도 냈냐는듯 그녀는 밝게 웃었다.
"여기 음식 맛있네. 조금 더 먹을까?"
"그 그래."
사흘째 되는날 계속해서 내리던 눈이 그쳤다. 그리고 벤하르트의 몸도 서서히 이전과 같이 돌아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기는 미약하게만 돌아와 기를 활용하는 기술들은 어느것 하나 사용할수 없었다. 평범하게 걷고 평범하게 생활하는것은 가능했지만 그이상은 할수 없는 것이다.
"벤도 그런 꼴이니. 그저 그런 사람이네."
"원래부터 특별한건 없었어. 나보다 강한 사람이야 얼마든지 있고,"
"그런가. 저기 말야 오늘도 하나 더 받았어. 어때 읽어 볼래?"
"사양하겠어. 진심으로."
그날 이후 레니아는 고백을 받을때마다 벤하르트에게 와서 보여 주며 놀리곤 했다. 그래봐야 두명뿐이었지만 벤하르트의 심정을 자극하기에는 더할나위 없을 정도의 일이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레니아가 확실하게 거절의 의사를 표한다는 것이었다. 며칠전에 레니아가 아직까지도 그녀석이라고 부르는 고백남들을 조금이라도 동정한것을 지금은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었다.
'만약 일일히 답이라도 했다고 하면,,'
모른다면 모를까 안다면 눈앞이 깜깜해 질것만 같았다.
"아직도 소심하구나 나란 녀석은."
"음 뭐라고?"
"아무것도 아니야. 그나저나 레니아 슬슬 준비 하자. 눈이 녹을때 까지는 아직 시간이 조금 있지만, 이대로 눈이 오지 않는다면 눈을 지나서라도 갈수는 있으니까,"
"그건 별로 원하는 바가 아닌데 말이지."
"저번부터 느꼈는데 왠지 너 헤이로카에 가는걸 미루는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기 기분탓이야."
'글세.'
레니아와 같이 여행한지도 벌써 1년을 넘기고 있는 벤하르트인지라 조금이라도 반응이 늦으면 늦는대로 위화감을 느끼기 쉬워져 있었다. 레니아는 레니아 나름대로 벤하르트는 벤하르트 나름대로 상대에게 적응하게 된것이다.
"뭐 빌붙어 얻어먹고 있는 주제에 이런 말을 하는것도 우습지. 눈이 녹을때 까지만이라도 기다릴까?"
"하기사 요즘의 수입원은 전체적으로 내가 하고 있으니까,"
"그래.. 역시나 레니아다."
한번 운을 띄워 주는것도 작지만 좋은 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하지만 반쯤 장난으로 말하는 벤하르트의 태도와 달리 실제로 그녀가 하는 일은 대단해서 나라의 해석 불가능한 고서가 페펜도시로 몰려 들 정도였다. 왕도 한번쯤 보고 싶다는 의사를 표할정도로 레니아의 명성은 브렌모스 전역에 퍼져 나가고 있었다. 물론 그것에는 실력 뿐만 아니라 외모의 덕도 보고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녀는 벤하르트가 생각하는것보다 훨씬 더 유명인사가 되었던 것이다.
"바보취급 하지 마."
"안했어. 순수한 의도로 말한건데 너무한걸."
"퍽이나. 에잇."
난데없는 레니아의 밀치기에 그는 미처 반응하지 못하고 주저 앉았다.
"무슨 짓이야 레니아."
"아니 이제 이런 것도 끝이라고 생각하니 좀 섭섭해서."
"다분히 계산하고 있었잖아."
그녀의 생각은 그녀 자신주의가 강했지만 딱히 이해할수 없는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벤하르트는 웃으면서 넘어가는척 했다. 속으로는 몸이 돌아왔을때 어떻게 행동해서 골려줄까 하는점을 모색하고 있었지만 특유의 표정관리로 그런 생각을 내비치는건 일체 금하고 있었다. 투덜투덜 거리는 척하면서 장난으로 어줍잖게 넘기고 있는데 낯익은 목소리가 등뒤에서 들려왔다.
"여전히 재밌게들 노는구나. 사이가 좋다고 해둬야 하나. 낄낄."
"뭐 뭐하는겁니까."
쭈글 쭈글한 손이 그의 어깨위에서 노니는데 차마 그는 뒤를 돌아볼수없었다.
"베라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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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만들었던 눈사람이 하루만에 쭈글쭈글해지더니 결국 사망했습니다. 그렇게 잘 만들었는데, 하루도 못버티다니 왠지 조금 아렸네요.. ㅠㅠ;;
그나저나 일도 있는데 맨날 3시 넘기고 뭐하는 짓인지..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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