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247화-약속
온몸의 통증으로 그가 일어났을때 처음으로 본것은 하얀 백설같은 풍경과 그에 어울리는 레니아의 모습이었다. 온몸이 깨어질것 같은 통증에 추스르는것 조차도 원할하지 않았다.
"으윽."
"벤!"
창밖의 눈을 바라보던 레니아는 벤하르트에게 달려들었다. 그런 행동을 보인 일례가 없었기에 그는 놀라 물었다.
"왜 그래? 레니아."
평상시와 다름없는 차분한 벤하르트의 목소리에 레니아는 정신을 차리고는 조금 떨어졌다.
"큼 흐음. 너말야. 오늘로 일주일 째라고,"
"일주일?"
"죽은 듯이 자고 있었으니까, 뭐 딴에는 걱정 했다는 거지."
그제야 그는 주위를 둘러 그날 있었던 일을 상기 했다. 뜬금없는 습격과 고야마와의 사투 그리고 마지막의 공격 까지.. 만약 레니아와 자신이 반대같은 상황이라 해도 레니아같은 행동을 취했을것만 같았다. 그렇게 진중한 상황속에서도 그는 조금 두근 거렸었던 기억을 애써 무시하고 레니아를 바라 보았다.
일주일간 굉장히 고생을 한 듯 본래가 수려했던 그녀의 얼굴은 꽤나 초췌해져 있었다. 그것 조차 아름다워 보일 정도였지만 레니아의 그런 모습을 보니 가슴이 차갑게 식어갔다.
"고마워 레니아."
"흥 뭘 말하는거야?"
방금전의 치부가 신경쓰이기라도 했는지 그녀는 침대위에서 살짝 내려와 앉고는 말했다.
"몸은 어떤데?"
벤하르트는 한차례 몸을 움직여 보았다. 마치 마디마디에 무엇인가가 걸려 있기라도 한듯이 둔탁하게 한마디씩만 움직여 지는듯해서 굳이 그의 대답을 듣지 않아도 충분히 그녀는 몸상태를 파악할수 있었다.
"이번일은 말야."
레니아가 입을 열었다.
"누가 뭐라 해도 네 잘못은 아니라고 봐."
그 누군가에게는 자기자신조차도 포함되어 있는 말. 자신을 탓하려 한다 해도 애초에 그 자신도 어찌 보면 피해자나 다름 없는 상황인 것이다. 아오이스의 추격자를 탓할수도 팔을 베어버린 자신을 탓할수도 없는 일. 그도 그런쪽으로의 눈치는 없는 편이 아니어서 레니아의 의도를 어느정도 파악할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신경을 쓰는게 벤하르트라는 인간인 것이었다.
그런 고뇌를 느끼는 듯한 그의 얼굴을 보고 그녀는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살짝 말했다.
"바보."
고야마가 나타났던 밤. 그날의 일은 도시사람들에게는 신비스러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도시민들중 몇몇은 기절해 하루부터 시작해 삼일까지 깨어나지 않은 사람들이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도시 유일의 공방은 하룻밤 사이에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지게 된 것이다. 이따금씩 기절하기 직전 까지 구경했던 사람들은 기억을 곱씹어 그날 있었던 일을 말하곤 했지만, 하나같이 비슷하고 애매한 내용들 뿐이었기에 이야기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오랜만에 다시금 눈이 내리고 있었다. 계절상으로 보면 이번 년의 마지막이 될 터인 눈은 도시를 새하얗게 물들였다.
'눈이라.'
그는 눈을 좋아했다. 차가운것도 잡티 하나 없는 흰색의 아름다움도 말로는 표현하지 못할 추상적인 것도 포함해서 좋아했다. 밖으로 나가서 눈을 만져 보고 싶기도 했지만 도끼눈을 한채 방안에서 책을 읽으며 감시하는 레니아에 몸상태 까지 않좋았기 때문에 꼼짝없이 방에 있을수 밖에 없었다.
"벤. 이제 고야마는 오지 않겠지?"
"아마 다시 오게 될걸?"
"뭐? 어째서?"
"검을 만들때 잠시 조율을 해뒀으니까, 사용할수 있을때 까지는 명검으로 사용할수 있을거야. 하지만 언젠가는 부수어 질거야."
벤하르트가 덤덤하게 이야기 하고 있는 와중에 레니아는 벌떡 일어나 그의 머리를 가격했다. 몸이 움직이지 않으니 눈에 보이는 공격에도 몸으로 막을수도 피할수도 없어서 마치 바보가 된것처럼 그저 맞을수 밖에 없었다.
"어째서 그렇게 한거야. 검같은건 제대로 만들어 주면 되는 거잖아."
"으으. 하지만 로엔의 일도 있고 해서.."
"바보야. 설사 그렇다고 해서 그걸 왜 벤이 짊어지지 않으면 안되는 건데? 왜 그런쪽으로는 그렇게 답답할정도로 미련하게 구는거냐고."
혼자 라면 할말이 얼마든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둘은 같이 여행을 하는 입장. 레니아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다만 벤하르트가 생각하는 레니아의 권리와 레니아가 생각하는 벤하르트의 안전이란 점에서 서로의 생각의 논점은 틀리다고 할수 있었지만,
"도저히 인정 못해. 인간이라면 얼마든지 말야. 그런거 있잖아. 좀더 약게 좀스럽게 살아갈수는 없는거야?"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인간상인데,"
"그게 좋은거야! 적어도 지금의 우리들한테는. 이번 일을 나에게 빚을 졌다고 생각하고 이번에는 절대적으로 한가지 약조를 받아 둬야 겠어."
"음 뭐?"
레니아는 벤하르트에게 서서히 다가 오더니 검지와 중지로 눈을 찌르려 했다.
"으아 뭐하는거야?"
"반응 하네?"
"그럼 찔리기라도 하라는 거냐."
"나는 벤의 동료잖아. 동료가 장난을 치는것에도 이렇게 반응을 보일진대 적이 죽이려 오는것은 더 말할것도 없지 않겠어? 벤. 인정을 베푸는건 좋아. 네가 죽이지 않겠다고 마음먹은것도 나쁘지 않아. 하지만 그게 주가 되는 것은 보고 싶지 않아. 죽이러 왔으면 죽여도 할말이 없는거야. 평생을 불구로 살아가야 되는게 어떤건지 겪어 보지 않았으니 나는 알수 없지만, 죽음보다 낫다는것 정도는 알아. 죽이려 든 상대를 동정하지 마. 인정을 베풀지 마.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 라는 말도 있듯이. 벤 네가 확실하게 가능하다면 그렇게 해도 좋아. 하지만 예상외의 상황에 벤이 생각하지 않았던 전개가 되더라도 절대 나약한 모습은 보이지마. 그건 약속해 줘야겠어."
절대로 더는 물러나지 않겠다는 듯이 단호한 눈으로 그녀가 말한다. 이상한것은 벤하르트의 쪽. 그것은 그 본인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 본질을 바꾸는것을 할수 없기에 그녀의 말에도 확답을 내려 줄수는 없었다. 그런게 그의 성격이니까,
"대답해."
"네 말은 지극히 맞아 레니아. 하지만 가능할지는 모르겠어."
"극단적으로 말해줄게. 죽이지 않아 살려줘서 내가 죽었다고 생각한다면 어때? 그래도 그 포장을 드러내지 않을거야?"
"....."
"여차 할때는 언제든 올수 있어. 그때에도 지금과 같으면 곤란해. 내가 약한만큼 네가 확실하게 강하지 않으면 곤란하니까,"
자신을 걸고 넘어지면 언제든 벤하르트를 조여 맬수 있었다. 벤하르트에게 있어서 약속을 하지 못하는것은 그 약속을 어길까 두렵기 때문, 그렇기에 약속을 한다면 그는 그대로 행동을 해줄것임에 틀림 없었다. 벤하르트에게 있어서 생각하지 않고 레니아 자신을 건다면 약속을 하지 않을수도 없다는것을 그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죽어도 좋아?"
"좋을리가 있겠어?"
"그렇다면 약속해. 다시는 설사 그런일이 일어나더라도 절대 약한 모습은 보이지 않겠다고 너도 알고 있을것 아냐. 내가 말한 일은 언제든 일어날수 있는 일이라는것 정도는."
"알았어. 약속할게. 그럼 되지?"
"약속이야."
그녀의 눈은 벤하르트라는 자물쇠를 거는 열쇠처럼 사냥감을 앞둔 맹수처럼 빛이나고 있었다.
음식을 깨작거리며 책을 보던 레니아는 벤하르트에게 물었다.
"그런데 여행도 시작할거지?"
"물론이지. 내 몸이 여행을 할수 있을정도 까지 회복되고 눈이 그치면 바로 가는게 어때?"
"아 뭐 바로 가는거야 찬성이지만,"
레니아는 잠시 머뭇거리는것 같더니 이내 표정을 다잡았다.
"그럼 이돈으로는 힘들겠네. 벤을 치료하느라고 조금 돈을 많이 사용했거든."
"나를 치료하는데 돈이 왜 들어?"
"마법으로는 한계가 있으니까 몸에 좋은 영약이란 영약은 다 넣어 줬어. 그래서 남은 돈은 그렇게 많지 않으니까 나가서 일이라도 좀 하고 올게. 어차피 그 몸으로는 나가지 못하겠지만, 절대 밖으로는 나오지 마."
"영약이라니 무슨 수로?"
"비밀."
짤막하게 대답하고 그녀는 문을 열고 나가 버렸다.
"일주일..은 왠지 길구나."
남겨진 수수께끼와 같이 나오지 않는 해답을 생각하며 그는 한동안 방안에서 느긋하게 쉬었다.
레니아는 절대로 나오지 말라고 했지만, 가만히 방에만 있자니 굉장히 지루하기도 했고 끊임없이 몸을 움직여 이제는 몸을 기댈게 있으면 거동을 할수 있는 벤하르트였기에 눈도 보고 레니아도 마중 나갈겸 지팡이대용의 막대를 의지해 밖으로 비틀거리면서 걸어 나왔다.
"으으 시리는데,"
그나마도 느껴지는 기를 조금이나마 둘렀음에도 불구하고 허약해진 신체는 추위에 너무도 약했다. 눈을 만지려고 허리를 굽히려 해도 몸상태가 너무도 안좋았기 때문에 가만히 선 상태에서 한참이나 뒤에야 행동할수 있었다.
"차갑다. 으음."
겨울에 눈은 꽤 보았지만 움직일수 있을때는 별로 느끼지 못한 반가움이 새삼스레 느껴졌다.
"아."
눈을 만지려다 그는 꼴사납게 쓰러지고 말았다. 푹신하게 쌓여 있는 눈에 얼굴을 파묻다가 온몸에 차가움을 느끼며 바둥바둥 거리는것을 지나가던 사람이 도와줘 겨우 일어설수 있었다.
'레니아나 데리러 가자.'
추잡스런 꼴을 보였다 자책하면서 그는 절뚝 거리며 레니아가 일하는 서원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절뚝 거리는 발은 많이 번거롭고 힘들었지만 레니아가 일하는 곳은 그가 머물던 여관에서 별로 먼곳이 아니었기에 어찌어찌 시간을 들여 도착할수 있었다.
"레니아가 나오려면 아직 멀었나?"
말이 끝나고 조금 후에 레니아는 싱글싱글 웃으면서 입김을 불며 밖으로 나왔다. 손에는 언제나와 같이 자랑스러운 돈이 들려 있었다.
'조심좀 하지.'
유명한 도둑이라면 저런 것은 훔쳐가줍쇼 하는 움직임처럼 느껴질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레니아를 맞이하려 하다가 벤하르트는 발을 멈추고 천천히 사각지대로 이동했다.
'뭐지?'
한남자가 레니아를 붙잡고 무어라 이야기 하고는 뭔가를 전해주고는 벌게진 얼굴로 쏜살같이 달려가는 것이었다. 제 삼자가 보기에는 당연한듯이 답이 나올것만 같은 광경.
'저건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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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쓸게 있었는데, 기억이 잘 안나는 군요. 이럴때가 가장 싫다죠. 3초 머리.. ㅡㅡ;; 그나저나 전국적으로 폭설이 내렸는데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저희는 아침에 버스가 안다닐 정도로 길이 얼어서,, 꽤나 곤욕을 치렀었지요.
그정도로 눈이 왔다 보니 멋지게 눈사람도 하나 만들수 있었지만요, 어쨋든 다들 마지막 꽃샘추위에 감기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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