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242화-답례
다음날 무난하게 그들은 페펜도시에 도착했다. 고야마 라는 불안 덩어리를 떨어 뜨려서 인지 그 흉악한 얼굴에도 미소가 번져 있는 베라스키와 언제나 긍정적인 벤렌 모녀는 페펜 도시에 도착하자 마자 작은 아버지라는 사람의 집으로 향했다.
"그럼 아무쪼록 몸 조심들 하거라."
"....."
구해준것에 살짝 후회를 느낄정도로 매몰찬 태도인것 처럼 느껴졌지만 오히려 베라스키에 한해서는 그런 끝도 나쁠것 같지는 않았다.
"어? 오빠랑 언니는 안가?"
"그래. 즐거운 시간 보내라. 벤렌."
벤하르트가 말하는 것을 흘끗 쳐다본 레니아는 자신도 한마디를 하려 했지만 마땅히 생각나는 말이 없었다.
"같이 가면 좋을텐데,"
아이답게 그녀는 아쉬운 기색을 역력하게 드러내면서 말했지만 그녀 혼자만의 생각으로 벤하르트와 레니아가 움직일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언제까지 궁시렁 거리고 있을거냐? 벤렌. 어서 차비를 끝내지 않고,"
"네."
벤하르트와 레니아는 점차적으로 멀어져 가는 벤렌모녀를 우두커니 보고 있었다. 사라질때까지 볼 요량으로 서 있었던 그들에게 베라스키는 돌아와 물었다.
"언제까지 보고 있을거냐?"
그는 베라스키의 말의 진의를 전혀 파악 할수 없었다. 제멋대로 가더니 돌아와 하는 말이 언제까지 자신들을 보고 있을것이냐고 묻는 것이라니. 전혀 그녀가 뜻하는것이 무엇인지 예상할수 없었던 것이다.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겁니까? 보던 말던 그거야 우리 마음이죠."
"쳇. 머저리 같은 녀석."
사실 그녀는 벤하르트가 그들에게서 눈을 떼는 순간 목을 잡아 채는둥 화를 유도해 따로 보답을 줄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끝까지 벤렌과 함께 사라지는 것을 보고 있었던 탓에 기회를 잡지 못했던 것이다. 심술을 부리면서 주는것은 그녀에게는 쉬웠으나 상황이 이래서야 도리어 무언가를 해주기도 어려웠다. 그런 베라스키의 생각을 벤하르트나 레니아가 알수 있을리 없었기에 그들은 그녀의 행동을 의아한 눈으로 볼 뿐이었다. 베라스키의 뒤에 서 있는 벤렌도 제 어미의 뜻을 헤아릴수가 있을리 없었으니 결국 베라스키 혼자만의 생각을 가장한 망상에 세명이 놀아난게 되어 버렸다. 잠시 침을 삼키고 그녀는 갈라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대로 빚을 지고 갈수는 없는 노릇이지. 고야마를 네게 돌릴 정도로 빚을 져버렸으니 그에 따른 보답은 해주고 가야 내 마음이 편할것 아니냐!"
"필요 없습니다. 보답이랍시고 이상한것에 말리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단칼에 잘라내듯 벤하르트는 거절의 의사를 표했다.
"이번에는 그런건 없다. 잠자코 받아라."
당연히 베라스키가 이대로 물러날리는 없었다.
"레니아 네가 받아라. 보답이라고 하잖아."
레니아를 들먹이면서 그가 말했다.
"뭘 떠넘기려 드는거야. 하지만 나는 벤처럼 겁쟁이가 아니니까, 받아줄게."
이번 만큼은 확실한 보답이라는 것을 확신할수 있었기에 레니아는 선뜻 웃으면서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그에 날아오는 대답은 엉뚱한 대답이었다.
"보답을 줄 대상은 네가 아닌데?"
"이봐. 내가 아니었으면 벤은 물론이고 벤렌도 살아남지 못했을거라고, 그런 생색 따위 받고 싶지도 않지만, 대상이 안된다는건 그냥 듣고 넘길수 없겠는데?"
"흐음. 그 고야마가 고작해야 너같은 녀석 때문에 물러 났을것 같지는 않은데,"
의심이 가득 시린 눈초리로 말하는 베라스키의 태도는 레니아의 자존심에 불을 질렀다.
"좋아. 그딴 선물 받을까 보냐. 벤 말해두겠는데 너도 절대 받지마. 절대. 저 따위 보답은 받지 말고 평생 빚으로 재워 뒀다가 중요한것에서 터트리라고,"
베라스키는 둘을 번갈아 쳐다 보았다. 힘이라면 모를까 말주변이나 태도를 보면 레니아가 우위에 있는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벤하르트도 군말없이 레니아의 의견을 따르려 하는것 같은 낌새를 보이기 시작하자 그녀로서도 가만히 있을수 없었다. 거의 병적인 수준에까지 이르른 '갚기'근성이 마치 본능 처럼 사고를 휘저어 고쳐버렸다.
"하기사 그 상황이라면 역시 네 도움도 컸다고 볼수 있겠지. 결계 덕에 고야마의 힘이 부족하기라도 했던 모양이니. 네게도 받을 권리는 충분히 있겠구나."
"이제와서 늦었어."
한번 고집을 부리기 시작하면 레니아도 좀체 간단히 풀어주질 않았기 때문에 이자리에서는 별로 결판이 날것 같지 않은 분위기를 읽고 벤하르트가 권했다.
"이렇게 페펜도시에 무사히 도착하기도 했으니까, 이대로 그냥 헤어지지 말고 식사나 한번 하고 깔끔하게 헤어지는건 어떻겠습니까?"
그는 전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태연자약하게 꺼냈다. 벤렌은 무슨 이야긴지 도무지 눈치채지 못하고 애매하게 서 있다가 벤하르트의 말만 알아 듣고 뛰면서 그러자고 보챘다. 좀체 자존심을 거두지 않는 레니아와 어떻해서든 이곳에서 답례를 치르고자 하는 베라스키도 한발자국씩 물러나 식사를 하러 자리를 옮겼다.
'레니아의 화를 풀기 위해서 가장 좋은것은 맛있는 음식입니다.'
라는 벤하르트의 말에 도시를 돌기 시작했으나 슬슬 베라스키도 한계에 이르고 있었다. 그간 배불리 먹었던 일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보복이라도 하려는 심보인지 레니아는 언제나 전투를 눈앞에둔 전사처럼 식당에 들어가 승전하고 돌아온 용사마냥 나오고 있기를 벌써 수번째 저지르고 있었다.
'이...'
레니아와 베라스키간에 오간 말은 단 한마디도 없었고 마치 소외된 것같은 기분 마저 느낄 정도로 벤하르트와 벤렌 레니아 간의 대화만 이루어 졌다. 그런 것도 참을수 있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답례를 해야 한다는 그녀의 강박관념 때문이었다.
"다음은.."
'또!'
레니아도 레니아였지만 옆에서 조용히 먹는 벤하르트도 만만치 않아서 베라스키의 성격이 좋은것도 아니었기에 슬슬 열이 목까지 차오르고 있었다. 그녀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레니아와 벤하르트는 다음 목적지를 고르고 있었다. 아마도 벤하르트가 살아오면서 처음 느꼈을 느낌. 타인의 돈을 이렇듯 마음 편하게 쓰는것은 두번다시 보기 힘든 경험일 것이었다. 하지만 이래보나 저래보나 고야마라는 괴물을 딸리게 한 대가로 받기에는 이것도 짜다 할수 있었다. 설사 여기에 무언가를 더 얹어 준다고 한들 그 계약에 응할까. 문제가 있다고 한다면 그들의 태도에 슬슬 베라스키가 열을 받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참았다. 그래도 딴에는 그자리의 누구보다 오래 살아온 노괴답게 방금전 한번의 말실수로 인해 얻게 된 이 노력을 또 다른 실수로 망쳐 버리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다시 몇가지 식사를 끝내고 나오면서 레니아는 작은 배를 두드렸다.
"잘 먹었다."
'드디어 끝난 게로군.'
레니아의 포만감 가득한 미소에 베라스키는 괜시리 자신이 행복감을 느낄 정도였다.
"그럼 셈을 치뤄 볼까?"
레니아의 다분히 옭아 매는 말투에도 베라스키는 간신히 화를 억눌렀다. 다만 이제는 선물이고 답례고 보답이고 뭐고 다 때려 치워 버리고 싶을 정도의 짜증만이 남을 뿐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이기적인 생각이 뇌를 가득히 메우고 있는데 그 몽롱한 상태를 레니아의 말이 깨워냈다.
"베라스키?"
"그러니까 이번일의 보답을 하겠다. 휘말리게 한 장본인이 할말은 아니지만,"
쓸데 없는 이야기를 꺼낼 필요는 없었지만 그녀도 적당히 화가 나 있었기에 왠만큼의 반격을 했다. 하지만 벤하르트고 레니아고 둘다 전혀 표정에는 반응이 없었다. 그게 더 화가 뻗혀 또다시 그녀는 쓸데 없는 말을 꺼냈다.
"고야마라는 녀석이 얼마나 지독한지는 알고 있느냐? 봉인을 당했을때도 잡귀들을 보내면서 몇번이고 나를 잡아 내려 했었지."
"고야마에 대한 것은 이제 얼추 알았으니 답례를 줄거면 빨리 주시지요."
냉담한 벤하르트의 말 때문에 베라스키는 울컥 치미는 화를 삼켜냈다.
'기껏해야 백년도 못사는 인간 나부랭이에게 이 현묘요매가!'
본래가 흉측한 얼굴에 붉게 변했다가 가라앉았다가 하는 모습을 보고 벤하르트가 물었다.
"내키지 않으면 안주셔도 됩니다. 얻어 먹은 것으로도 충분히 답례는 했다 생각하거든요."
레니아의 계획에 따라 지금껏 감정을 내리 깔고 도발하기 위해 꺼내는 그의 말에 베라스키는 기분나쁜 가벼운 말투로 말했다.
"그런건 내 마음이 내키질 않는단 말이다."
그녀에게 있어서 답례는 순수한 의미의 답례가 아니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빚의 청산. 즉 갚는다는 의미인 것이다. 고야마에 휘말리게 한것은 어느정도의 의도가 깔려 있었고 그에 대한 죄책감은 벤하르트나 레니아가 느끼는것보다는 훨씬 강한 것이었다. 그만큼 고야마라는 것은 두려움의 대상이었기에..
'나도 참 간사해졌군. 받은 만큼 돌려주는게 뭐 그리 어렵다고. 조금의 농락 정도야 휘말리게 한 대가에 비하면 싸고도 싼 것이지.'
거기까지 생각하자 마음이 편해졌다.
"받아라."
그녀는 끈에 묶여진 무언가를 빙글빙글 돌리다가 레니아에게 던져 주었다. 새하얀 이였는데 중간 중간에는 오래되어서인지 상아빛으로 그을려 있었다.
"묘괴중에서도 최고위에 군림하는 왕의 이빨이다."
"어디에 쓰는 물건입니까?"
"원한다면 어디에든. 어떠한 것에든지 사용할수 있지. 운 좋은줄이나 알아라. 구하려고 기를 써도 구할수 없는 물건이니."
"엄마 묘괴가 뭐야? 저건 뭐고?"
격앙된 감정과 가라앉은 감정에 뒤죽박죽이 되었다가 돌아와서 미처 벤렌의 존재를 생각하지 못했던 베라스키는 그 특유의 억지 섞인 화를 내며 말했다.
"그런것에 신경을 쓸것 없다. 시간도 되었으니 어서 루블캔트의 집으로나 가자꾸나."
"어 오빠랑 언니는?"
"이미 값은 치렀으니 갈데로 가겠지. 뭘 그리 따지느냐? 어차피 만날때 만나고 헤어질때 헤어지는게 인생이라는 것이다."
빠르다 못해 갑작스러운 그녀의 돌변에 벤하르트는 물론이거니와 레니아조차 적응하지 못했다. 아까와는 다르게 벤렌을 데리고 그녀는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다.
"하.."
"빠르다."
이쯤 되면 역의 역으로 인사조차 제대로 못하게 되서 약간 씁쓸한 기분이 되어 버릴 정도였다. 벤렌은 물론이고 베라스키에게도..
"그럼.. 갈까?"
"음... 그래."
어정쩡 하게 그들은 페펜 도시를 거닐었다.
=====================================
최근들어 느낀 가장 무섭다고 느낀 생각은..
'내일 하지 뭐..'
그게 벌써 10일째;;; 무섭습니다 제 자신이.. 올리는 시각은 3시.. 저는 왜 이러는 건지.. ...
Comment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