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235화-밀항(4)
"서 선장님"
"이것들은 뭐냐."
날카로운 부리가 가드바드를 향해 날아왔다. 억센 손에서 피가 흘러 내렸다.
"새들에게 쩔쩔 메고 있는것이냐!"
"보통 새들이 아닙니다. 아무래도 마수(魔獸)인듯 보입니다."
'이곳에서 마수들이 나왔다는 말은 선장질 20년중 처음 듣는 일인데, 어찌된 일이지?'
"받아라!"
화약을 실은 대포를 어깨에 이고 가드바드는 공중을 향해 한방을 쏘았다. 마조 무리가 몇마리 가량 기절해 떨어져 내렸다.
"역시나 선장!"
"잡담할 틈이 있다면 어서 무기나 들어라."
가드바드를 중심으로 선원들은 각자의 사냥용 무기를 들고 전투준비를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마수였기 때문에 당황하기는 했지만 바다에서 마수를 만나는 일은 빈번하지 않아도 각오는 해두어야 할정도로 이따금씩 일어나는 일이었다.
"저건!"
"무슨 일이야 벤. 나도 좀 보여줘."
지하실의 출입구는 한명이 들어가고 나갈수 있을 정도의 틈이었기 때문에 둘이 동시에 볼수는 없었다.
"왜 저것이 이곳에."
마조의 무리는 가크마로 향하는 도중 본적이 있었던 디노사인트였던 것이다. 떼지은 무리의 숫자로 볼때 이전보다 많으면 많았지 결코 적지 않은 양이었다.
"뭔데 그래?"
"디노사인트야."
마조의 무리에게 죽기 직전 까지 당했던 기억이 그녀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근데 그게 왜 여기에 있어?"
"글세. 상당한 숫자인데,"
선원들은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잘 싸우고 있었지만, 디노사인트의 무리의 숫자는 일반적으로 그들이 감당할수 있을 마수의 무리가 아니었다.
'위험해!'
"잠깐! 벤 들킨다고,"
레니아의 말에도 한치의 망설임 없이 벤하르트는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다.
"하여간!"
투덜거리면서 레니아도 벤하르트를 따라 갑판 위로 올라갔다.
"으아앗!"
벤하르트에게 출발할 시간을 알려주었던 항구에 머물렀던 청년을 덮치는 디노사인트를 백색의 섬광이 덮쳤다. 멱따는 소리가 들리더니 빛에 밀려 디노사인트는 멀직이 날아갔다. 한창의 싸움중에도 그 빛은 주위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어이."
가드바드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그 자신에게 있어 벤하르트가 나온것은 원치 않는 상황임에 틀림 없었지만 그것은 벤하르트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인 상황이었다. 벤하르트가 나온 이유는 다름아닌 자신의 선원이 위험에 처했기 때문이었다.
"저 저사람은?"
"그때 그 사람 아니야?"
어수선한 분위기로 그들은 며칠전에 있었던 사건을 떠올렸다. 그런 분위기를 읽고 쉔은 소리쳤다.
"어이 너희들 뭐하는거야! 멍하니 있을때냐!"
벤하르트가 나올때 가장 가까히에 있었던 쉔은 그가 신입 선원을 구해준것을 똑똑히 목격했었다. 그것으로 벤하르트를 신임한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지금 상황에는 아군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결단력있게 주위를 안정시킨 것이다.
벤하르트는 정신을 집중했다. 몇마리 디노사인트가 자신에게 다가왔지만 움직임을 보지도 못한채 그들은 맞아 떨어져 내렸다. 스믈스믈 올라오는 기운을 뒤덮고 벤하르트는 검을 한번 휘둘렀다.
백색의 빛이 하늘을 뒤덮었다. 공중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많은 수의 디노사인트들은 찍 소리도 못하고 떨어져 내렸다. 그 모습이 마치 거대한 우박덩어리들이 떨어져 내리는듯 했다. 거기에 레니아도 옆에서 마법을 날려 디노사인트들을 처리했다.
"우와."
벤하르트가 무섭다는 것도 잊고 그들은 그 광경에 잠시 넋을 잃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벤하르트는 배안에서 접전을 벌이고 있는 새를 쳐서 쓰러 트렸다. 남은 디노사인트들은 선원에게서 눈을 떼고 벤하르트를 보고 서로를 두리번 거리더니 벤하르트에게 뭉쳐서 돌진했다. 이전의 벤하르트였다면 모를까 지금의 벤하르트에게 디노사인트의 움직임은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정해 뒀다는듯 물흐르는듯한 움직임으로 눈한번 깜박 거릴 시간에 세마리를 바닥에 떨어뜨리자 그제서야 디노사인트들은 날갯짓하면서 그들에게서 멀어졌다.
"대단하다."
페켓이 중얼거렸다.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그자리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은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디노사인트들이 모두 물러 나자 그제서야 벤하르트는 상황을 파악하고 당황했다.
'일단 나오기는 나왔는데 어떻하지?'
"어쩔거야?"
아무도 듣지 못할 작은 목소리로 레니아가 물었다. 선원들은 벤하르트를 마치 역병에 걸린 사람처럼 무섭게 쳐다 보고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벤하르트와 얽히면 언제라도 가드바드와 같은 꼴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중 가장 당황하고 있는것은 가드바드였다.
그는 진정한 남자 처럼 사는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는데 모른척을 하자니 마치 벤하르트를 배반한것 같았고 아는척을 했다간 다시 배를 일으킬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어쩐다.'
그때였다.
"조용히 밀항해 가려고 했더니 그렇게 놔두지를 않는구나!"
최대한 험악한 얼굴을 지어보이면서 벤하르트는 어울리지도 않는 어눌한 말투로 소리쳤다. 이런 상황만 아니라면 웃음이 나올정도로 어색한 말투였지만 이미 그의 무용을 보고 현상범이라는것을 아는 선원들에게는 그저 공포의 대상일 뿐이었다.
"밀항?"
"밀항이래."
"너희들 전부 입 다물어라! 한마디라도 더 했다가는 입을 잘라서 바다에 던져 버릴테니까,"
벤하르트의 실력을 본 그들은 곧장 입을 다물고 말았다.
"너희들이 알다시피 나는 수배범이다. 도망치기 위해 이 배에 타 밀항을 했지. 말만 잘 듣는다면 아무 일은 없을것이다. 우리가 바라는건 단 하나 호라반에 내리는것 뿐이다. 혹시라도 불만이 있다면 앞으로 나와라."
"네녀석 여기가 어디라고!"
분을 이기지 못한 척을 하면서 가드바드는 큰 작살을 들고 일어났다.
"선장님 그만하세요 마음은 알겠지만 저 사람에게 대들었다가는 끝장이라구요."
"..... 호라반에만 내려주면 되는것이냐!"
"그렇다. 그리고 약조해줘야 할것이 있다. 만약 내가 이 배에 타고 있었다는것을 어떤 사람에게라도 말하는 날에는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그 말한 사람을 찾아 죽이러 갈것이다. 모두 잘 알아 둬라."
본래 사람들에게 살기 어린 말을 하는 법을 잘 모르는 벤하르트는 왠지 배어나오는 웃음과 슬슬 갈라지려 하는 목소리를 참아 내면서 최대한 위엄과 공포스러운 얼굴을 보이려 애썼다.
"좋다. 선원들에게는 손을 대지 말아라."
"즉석에서 만든 연기 치고는 쓸만하네."
중얼 거리는 레니아를 벤하르트는 뒷꿈치로 살짝 밟듯이 쳐서 그만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좋아. 밀항도 끝났으니 이제는 갑판 생활을 해도 되겠지? 어서 먹을것을 가지고 와라!"
검게 그을린 천을 휘저으면서 레니아는 마치 여자 해적이라도 된듯이 명령했다.
'저 여자가!'
'지금껏 마르고 맛없는 음식만 줬겠다.'
가드바드와 레니아는 무언으로 스치듯 한번 싸웠다.
"뭣들 하는거냐. 건드리지만 않으면 상관 없다고 제입으로 말했으니 우리는 우리가 할일만 하면 되는거다. 저녀석들이 있건 없건 바다사람은 바다사람다운 일을 해야지!"
조금 겁을 먹고 있었던 선원들도 당당한 가드바드의 태도에 조금 힘입어 애써 벤하르트와 레니아를 무시하면서 디노사인트들에게 찢긴 돛을 갈고 조타를 바로 잡는둥 일을 시작했다. 그런 선원들과 가드바드를 보면서 벤하르트는 마치 자신의 일인것 마냥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뭐하는거야?"
헤실 거리면서 웃는 벤하르트의 등짝을 치면서 레니아가 물었다.
"웃지도 못하냐."
"여기서 우리는 악당이라고, 인자한 웃음 따위는 집어 치워. 연극을 했다는것은 걸리게 되면 끝장이라는거야. 우리는 상관 없지만, 이정도의 신임을 가지고 있는 가드바드는 어떻게 되겠어?"
현상범과 같이 짜고 돈을 위해 놀아 났다 라는 소문이 돌게 되면 가드바드는 망한것이나 다름 없었다.
"자중할게."
"어이 너!"
"네 넷."
줄을 묶고 있던 벤하르트에게 구출 된 선원이 빳빳하게 서서 대답했다. 반은 레니아가 무섭기 때문이었고 반은 살면서 그처럼 아름다운 여자를 본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묵어야 할 방은 어디야?"
"에 저기.."
일개 신입 선원에게 설명할수 있는 권한은 없었다. 설사 답을 안다 해도 버릇없이 그가 왈가왈부 할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저곳으로 들어가 끝쪽 줄침대 두자리가 네녀석들이 묵을 곳이다."
쉔이 천천히 걸어 오면서 말했다. 그는 조금도 주눅들거나 겁을 먹은 기색을 보이지 않았는데, 그 모습을 보고 몇몇의 선원들은 가드바드 못지 않게 속으로 감탄했고 몇몇의 선원들은 미쳤다고 비웃었다. 하지만 쉔은 벤하르트가 이미 악인이 아니라는것을 어느정도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정도로 침착하게 말할수 있었다.
'처음에도 분명히 선장님 딸을 구해주려 했고 지금도 누브를 구해줬다.'
"어제 기절했던 녀석이네?"
'윽?'
"서 설마?"
자세히 보지 못해 알수는 없었지만 대충 흰 그림자의 윤곽이 레니아와 닮은것 같다고 그는 생각했다.
'역시 유령의 정체는 이녀석들이었군. 유령 같은게 있을리가 없지. 이 내가 놀아나다니..'
자신을 흘끗 흘끗 보면서 싱글 거리는 레니아의 얼굴이 괜시리 밉상처럼 느껴졌다.
"그럼 어디 가볼까."
기왕에 악역이 되었으면 실컷 이용이나 하자는 심보로 레니아는 쉔이 말해 주었던 잠자리로 걸음을 옮겼다. 이제는 조금 익숙해졌지만 비린내가 나는 바닥에 얼굴을 박고 자는 생활은 진저리가 날 정도였던 것이다. 마치 고삐풀린 말처럼 말도 못할 해방감에 흥얼거리면서 그녀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를 따라 들어가려는 벤하르트는 자신을 바라 보고 있는 쉔을 보고 발을 멈추었다.
"무슨 할말이라도 있나?"
자신이 말하면서도 생소함에 온몸에 소름이 끼쳐왔다. 마치 레니아에게 처음 말을 놓았을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이런 말투도 적응하게 되면 자연스레 사용할수 있으려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쉔이 말했다.
"정말 나쁜 녀석인거냐?"
존대를 붙힐만도 할법한데 쉔은 전혀 밀리지 않고 하대했다.
"이자식!"
꽝 소리가 날정도로 세게 페켓은 쉔의 머리를 쥐어 박았다.
"너 죽고 싶은거야? 이사람에게 대들면 정말 입이 날아갈지도 모른다고!"
호들갑을 떨면서 그는 쉔을 잡아 흔들었다.
"사과해. 어서 사과하란말야. 나는 네가 죽는걸 보고 싶지 않아."
"좀.."
어깨를 잡고 정신없이 흔드는 페켓을 밀치면서 둘은 엎치락 뒤치락 싸우기 시작했다.
"진정좀 해라! 도대체가 진중하게 말을 할수가 없네."
힘으로 쉔을 당할수는 없었던 페켓은 대에 머리를 박고 헤롱거리면서 쓰러져 있었다.
"그래서 대답은?"
헝크러진 머리를 가다듬으면서 쉔이 물었다.
"악인이니까, 현상금이 걸리고 이렇게 밀항을 하고 있겠지."
"그럼 어째서 아까 누브를 구해준 거냐?"
누브라는 말에 벤하르트는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곧 자신이 디노사인트에게서 구해준 선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선원이 죽으면 호라반에 도착하는것이 더 느려지기 때문이었다. 대답은 되었겠지?"
미심쩍은 눈으로 쉔은 벤하르트를 쳐다보았다. 더 의심을 샀다가 정말 가드바드에게 폐를 끼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벤하르트는 검을 뽑아들면서 말했다.
"입이라도 잘려 보고 싶은거냐?"
살기를 품는것은 기를 연마하는 벤하르트에게는 쉬운 일이었다. 되려 흠이 있다면 그건 어설픈 말투인 것이다.
"....."
쉔도 방금전 벤하르트의 무위를 보았기에 더는 말하지 못했다. 그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온몸이 떨려 왔기 때문이었다.
"알았..다. 그만하지."
무심결에 그는 존대를 할뻔 했다. 그만큼 방금의 벤하르트가 두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지난 행동을 보면 전혀 악인 답지가 않았다. 선원 한둘쯤 그에게 있어 죽던 말던 무슨 상관 이란 말인가. 가드바드가 검을 내리치는 순간에도 자기 방어를 하지 않고 그 딸을 구한것도 그러했다.
'정말 악인인가?'
벤하르트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는 어쩔수 없이 궁금증을 일단 접어 두었다.
"....."
"왔어?"
줄 침대를 보면서 레니아는 만족스러운 얼굴을 했다.
"레니아."
"어?"
"하아... 나쁜 역할을 하는것도 쉬운건 아닌가봐."
"....."
그렇게 말하며 그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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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추노를 하나 안하나.. 뭐 늦게 올리는것은 같나 봅니다. 시작하는 시간이 달라져서.. ^^;;;
그래도 오늘은 조금 여유롭게 10분을 남기고 올리네요. 이제 주말인데 모두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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