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224화-수배(1)
그것은 배신 아닌 배신이었다. 그녀 헤일프에게 있어서 그는 용서할수 없는 인간이었고 그녀가 그렇게 살아가게 된 원동력이 된 동기였다.
이제는 그녀 스스로도 생생하게 기억할수 없을정도로 먼 과거의 일이라 여겼건만, 그를 눈앞에서 보았을때 비로소 그에 대한 분노가 전혀 쇄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수년전 그녀는 고아였다. 훔치고 도망치고 구걸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비렁뱅이 고아였다. 주변에서는 몇번인가 그녀를 도와주고자 하기도 했지만 어느때나 그녀는 거절했다. 그쪽이 훨씬 편하고 보통의 삶을 살아갈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스스로 살아가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그녀의 앞에 나타난것이 바로 루가프 라고 불리우는 폭력배였다. 당시에는 아직 이름을 날리지 못했던 그 야심찬 남자는 그녀의 반 야생동물 같은 눈빛에 무언가를 느꼈던 까닭에 그녀를 채용했다.
그녀는 기뻤다. 배운것이 없었고 기술도 없었다. 스스로가 살아가고자 했지만 능력이 없었던 그때 상대가 얼마나 더러운 인간이던간에 자신을 인정해준것이 기뻤다. 그리고 스스로가 살아갈수 있는 상황도 포함해서 그때가 가장 즐거웠다고 생각했다.
살인도 도둑질도 몸을 파는일까지도 서슴치 않았다.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가장 즐거웠던 시간은 두목인 루가프에게 칭찬을 받을때였다. 언제부터인가 그녀는 자신을 위해가 아닌 루가프를 위해 일을 하고 있었다. 마치 신앙심에 도취된 신도마냥. 차가웠고 스스로에게 자부심을 부여해야만 했던 그녀였기에 그녀는 그에게서 '인정'을 요구하고 있었다.
도둑질에 능통했던 그녀는 언제나 퇴로를 확보해 두었다. 도망칠 구석을 살피어 놓았다. 그녀가 하는 일이란것이 썩 안전한 일은 아니었기에 루가프의 퇴로도 확보해 놓고 있었던 것이다. 비틀리고 비틀렸지만 언제부터인가 아버지 처럼 생각하고 있던 루가프에게 자신이 성공한 임무에 대해 다시 칭찬을 들을 생각을 하며 그는 전에 확보해 두었던 퇴로 아무도 알리 없는 방법으로 루가프의 방을 보았다.
성공했다는 사실을 남자가 보고 하자 그녀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밖에서 어떤 욕을 듣고 어떤 더러운 일을 하던간에 그 순간만큼은 소녀가 된것 마냥 즐거워 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날 그녀의 마음은 부수어졌다.
죄의 고백. 루가프가 매일 고백하는 행위. 거기에 그녀는 그저 도구였다. 그가 성공하기 위한 뛰어난 도구. 차라리 도구였으면 좋았을것을.. 그녀는 어느샌가 그에게서 걸림돌이 되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를 위해 희생적인 모습을 보여준 까닭에 도리어 수하들에게 인심을 얻게 된 그녀는 이미 그에게 제거해야할 대상이 되어 버린것이다. 하지만 그의 고백은 언제나 자신의 죄를 진정으로 전부 드러내는것에 진정한 의미를 두고 있었다.
걸림돌이었기에 관계가 악화된 것이었다면 괜찮았을까. 처음부터 루가프는 그녀에 대해 아무런 의미를 두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에게 걸림돌이 되어 버렸다는 것보다 그의 입에서 그녀를 죽여야 한다고 들었던것보다도 충격적인 말에 그녀는 이성을 잃고 그를 죽이려 했었다.
처음부터 루가프의 입장에서는 배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그녀는 배신당했다고 느끼고 있었으니 배신이기도 배신이지 않기도 한 이야기였지만 헤일프에게 있어 그 이야기는 분명 '배신'이었던 것이다.
"이제 와서는 별로 느낌도 없지만, 후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칠흑같은 어둠에 쇳소리가 들려왔다. 겨우 목숨만 부지해 탈출한 이후 몇년이 지났을까. 본래대로라면 아직 시기상조로 생각했을 터였지만 벤하르트라는 남자가 등장했기에 그녀는 계획을 바꾸었다. 루가프를 옆에서 수년간 지켜본 경험이있었기에 그 뒤의 일도 충분히 알아낼수 있었다.
'화려하게 장식해주지. 각오하고 있어 루가프.'
굳은 손을 쥐고 그녀는 몸을 일으켰다.
밤의 거리는 언제나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였다. 맞추어져 있는 그림에 부조리한 느낌을 주는 몇몇이 분위기를 망친다고 할까. 검은양복의남자들은 류슈반을 따라 거리를 헤매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위에서 내려다 보는 두명의 그림자가 있었다.
"후우 한동안은 여기에 있어서 들키거나 하지는 않겠다."
어깨에는 여관에서 가져온 짐을 메고 벤하르트는 기로 강화한 눈으로 그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그래서 어쩔거야? 벤."
"글세. 저들과 붙어 봐야 좋은일이 일어날리가 없으니까. 오늘은 여기서 노숙이라도 해볼.."
레니아의 무호흡 일격을 벤하르트는 쉽사리 피했다. 되려 너무 쉽게 피해서 화가났지만 일일히 그것에 화내고 싶지 않았기에 짧게 말했다.
"추워."
"그야 그렇겠지. 그래도 말야. 여관에 갈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이렇게 된건 분명 안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어쩔수 없지."
"뭐가 어쩔수 없지.. 야? 애초에 그런 여자의 말을 듣지 않고 그냥 가져다 주었으면 그것으로 좋은 일이었잖아. 그런 녀석이 어떻게 되든 우리가 참견할 일은 없잖아. 안그래? 결과가 어떻게 되던간에 이런 결과로는 오지 않아도 될일이었다고, 하여간."
"그렇기야 하지만,"
"사람은 말야 적당히 무시할줄도 알아야 돼. 뭐 이런 이야기는 선문답 밖에 되지 않으니까 별로 하고 싶지는 않은데, 지금부터 여기서 어떻게 잠을 자라는 거야."
"가지고 왔잖아. 침낭."
"그 급한 도망치는 와중에 왜 여관을 들리나 했더니.."
기가찬 얼굴로 레니아가 말했다.
"레니아 역시 미안해."
"그만해. 이전의 일 같은걸 듣고 싶은게 아냐. 네 행동을 탓하려는것도 아니고, 내가 묻고 싶은건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냐는 거지."
"그러니까 아까 노.."
레니아의 눈빛에 벤하르트는 입을 다물었다.
"일단 노숙하자는건 거짓말이 아니야. 붙는다 해도 썩 좋은 꼴을 면할수 있을것 같지는 않고, 지금은 밤이니까 필요한것을 구할수가 없거든."
"음식이라던가.."
"이 상황에서. 농담하는건 아니겠지?"
"그럴리가 있겠어? 진담이야. 이곳 페이렌은 중앙도시이니 만큼 그 크기가 엄청나지. 그래서 페이렌 주위의 작은 마을들은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먹고 살기가 매우 어려워. 머물 사람들이 없으니까, 개중에는 주위에서도 자급자족이라던가 살아갈수 있는 마을이 없는것은 아니지만, 그건 별개로 우리가 가려고 하는 길에는 마을이 없다는 거야."
마을이 없다는것은 나갔을 경우 한동안은 식량을 구할수도 없거니와 주변의 아마도 몇일은 될 장거리 여행길이 될것이라는 것을 뜻했다. 즉 떠나려 해도 페이렌에서 확실하게 식량을 사두지 않으면 안된다는 말이었다.
"얼마나 걸어야 되는건데,"
"뛰어도 이틀 정도는 잡아야 하지 않을까."
"하아아아.. 왜 이렇게 되어 버린거야."
"그 생각에는 전적으로 동감이지만,, 우리 운이 없는게 아닐까?"
요란하게 세어나오는 빛을 보며 그는 생각없이 중얼거렸다.
"하하. 이런곳에서 재미좀 보고 계신건가? 뒤뚱뒤뚱 뛰어다니는 저 미친 양반들을 보면서?"
벤하르트의 몸이 경직되었다. 말을 꺼내고 있는것은 아까 라고 말하기에도 우습게 그들을 함정에 빠뜨렸던 그 여자 헤일프였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여기에 있는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생각하는것 보다도 먼저 그의 몸이 반응했다.
"너!!"
"그때의 빚은 나중에 갚아 주도록 하고. 일단은 화풀이 대상이나 좀 되어 주실까?"
곧바로 그녀의 품에서 몇개의 덩어리가 세어 나왔다.
'셋?'
그것이 무엇인지 바로 오늘 알게 되었기에 깨닺는것은 어렵지 않았다. 벤하르트는 곧장 검을 뽑아 휘두르면서 레니아를 밀쳤다.
"앗."
세개의 덩어리중 검이 가른것은 두개. 던지는것도 꽤나 교묘하게 던져서 미처 제거 하지 못한 남은 하나는 벤하르트의 발 아래에서 폭발했다. 그와 동시에 멀리서도 한가닥의 폭발음이 들려왔다.
"크윽."
표피를 상처가 붉게 물들였다. 그는 얼굴부터 시작해 팔과 다리 몸에 이르러 그을린 자국과 붉은 핏자국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직후 기를 몸에 짙게 둘러 치명상은 피했지만 분명 한눈에 봐도 꽤 심한 상처를 입었다는것을 알수 있을 정도의 충격을 받아 있었던 것이다. 그런 벤하르트를 보고 헤일프는 입가를 올리더니 자리에서 벗어났다.
"저녀석이!"
"쫓지마. 레니아."
쫓아가봐야 대응할수 없다는것은 레니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알고 있어. 하지만.."
"나에게 이정도의 충격을 주어 놓고도 끝을 보지 않은것은 무언가 다른 생각이 있어서 일거야. 방금 이게 터질때 저쪽에서 터지는 소리가 들렸어."
벤하르트가 가리킨 방향은 고용주였던 루가프가 머물고 있었던 곳이었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빨리 여기서 벗어나야 해."
"알았어."
상황을 재빠르게 파악한 레니아는 벤하르트를 부축했다. 벤하르트의 상처는 굳이 스스로 걸으려고 노력하면 못걸을 정도의 상처는 아니었지만 무시할정도로 가벼운 상처도 아니었다. 그녀도 트레이야에게 배웠던 자기 세뇌를 어느정도 익히고 있었기에 보통 사람들보다 뛰어난 완력으로 벤하르트를 부축할수 있었다.
"잠깐 레니아. 여기는 안되겠어. 여기로 내려가자."
"왜?"
"아래에서 누군가가 올라오고 있어. 곧 도착하니까 어서."
벤하르트가 가리킨 작은 창문틈으로 레니아는 기듯이 나갔다. 5층이나 되는 건물이었지만 이미 그녀는 부유마법을 익히고 있었기 때문에 별반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벤하르트도 그녀의 부축을 받으며 문으로 나와 레니아의 부축을 받으며 서서히 내려가고 나서야 다급한듯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꼭 잡아야 한다. 알겠나!"
헤실헤실 웃으며 띄우는 목소리는 온데간데 없었고 식은땀을 흘리며 다급한 목소리로 지휘하는 류슈반이 그곳에 있었다.
"저...녀석."
결과적으로 류슈반에게 속은것이나 다름 없었다는 것을 상기하며 레니아는 다시 이를 갈았다.
"참아야 돼. 이런 몸으로 싸움을 걸어서 어쩌자는 거야? 몸이 정말 좋지 않지만, 한시간 정도..면 어느정도는 움직일수 있을것 같아. 그때까지만 좀 참아줘."
"후우, 알고는 있어. 속이 터져서 그렇지. 그나저나 이정도까지 와서 참을수 있다니 나도 참 성장한것 같아.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노릴수 있는데도,"
손을 뻗어 벤하르트의 상처를 치유 하면서 중얼거렸다.
"치유쪽은 역시 전문이 아니라서. 그냥 시간이 지나면 아무는 정도지만 안해두는것 보다야 낫지."
"약신이 치유가 전문이 아니라니 왠지 조금 이상하네. 그래도 마법이란게 대단하긴 하다. 이정도 속도라면 20분 정도만 기다리면 어느정도 움직일수 있을것 같아."
"뭐 이정도야.."
"어쨋든 같은 장소에 계속 있는건 위험하니까 조심하면서 자리를 옮기자."
어둠을 틈타 벤하르트와 레니아는 천천히 자리를 이동했다.
여행객들이 모이는 선술집내 한 남자가 술을 들이키며 호탕하게 말했다.
"이거 이거 아주 오랜만에 도시의 뒷켠의 신경을 거슬리게 한 녀석들이 나온 모양이군."
선술집의 한켠에서 중년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가 재밌다는듯 웃으며 말한다. 얼굴은 중년이었는데 백발이어서 머리서 보면 노인으로 착각할 정도의 생김새였다. 그의 말에 주인이 넌지시 운을 띄우듯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요?"
"자네 페이렌에서 가장 높은 자가 누군지 알고 있나?"
"글세요. 키로스 파르텐님이 아닙니까?"
페이렌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라고 하면 당연히 떠올라야 할 이름에 중년의 남자는 살짝 웃고는 말했다.
"그것도 틀린건 아냐. 다만 그쪽은 낮에 군림하는것. 밤은 다르지. 이것을 보게."
"현상금입니까요?"
50마크닐이라는 파격적인 금액이 적혀 있는 현상금수배서에는 세명의 얼굴이 찍혀 있었다.
"구석에 있는 쌍검의 문양 이것이 바로 페이렌의 밤의 지배자라고 불리우는 자의 표식이지. 잘 알아 두게나. 그럼 어디 한번 오랜만에 몸을 움직여 볼까. 슬슬 돈도 부족해지기 시작했고, 벌써 부터 하이에나들이 냄새를 맡은 모양이니. 조금 늦은 셈인가. 오늘밤은 꽤나 시끌벅적하겠군."
돈을 지불하고 쇠스랑 울리는 소리를 내며 남자는 술집의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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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올립니다. 너무 오랜만에 올려서 되려 올리기가 무안해지는군요.
10일까지만 쉬자... 라고 했는데 이번 연말 공연행사가 잡혀서 뭔가 연습하고 준비하고 하다보니 피곤하기도 하고 지어지지도 않고 심란하기도 해서 안쓰고 있었는데,,(문피아에도 거의 못들어오다가,) 한번 들어와보니 앤드류님의 글을 발견,, 부랴부랴 3일만에 써내렸습니다. (이정도 분량을 3일... ㅠㅠ)
근데 올리고 보니 왠지 낯선 타인의 집에 들어선 기분이랄까 뒤숭숭하네요. 좀더 짧은 주기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쉬는 동안 선작이 80이나 떨어진건 중요하면서도 중요하지 않은 문제,, 애초에 선작과 조회수가 안맞아 떨어지는것도, OTL...
어쨋든 횡설수설하면서 드리고 싶은 말은 늦게 올려 죄송하다는것 입니다. 죄송합니다. ㅠㅠ..
그리고 앤드류님 감사합니다. 한달 내리 쉬어 버릴뻔 했는데 일깨워 주시다니.. 쪽지에 일반 아이디로 뭔가가 온건 처음이에요 !!
여튼 게으름 안피우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슬럼프라고 생각해주세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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