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222화-모방(4)
"아 이런 제기랄. 그래. 여자다 어쩔건데? 응?"
어깨까지 내려오는 검은 생머리 여자 치고 긴머리는 아니었음에도 왠지 치렁치렁하다 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머리였다. 그리고 사냥감을 노리는 독사 같은 눈으로 그녀는 벤하르트를 노려 보고 있었다.
"근데 목소리는 아무리 봐도 남자인데,"
"퉷."
여자의 입에서 정육각형의 물체가 떨어졌다.
'마도구.'
"썩은 개야. 빨리 이 결박을 풀어. 아니면 나를 죽이던가."
마르고 갈라진 목소리로 그녀가 말했다.
"죽이다니 그런 짓을 할리가 없잖아. 내가 원하는건 훔쳐간 물건뿐이야. 너에 대한 판결은 고용주에게나 맡기면 되는 일이라고,"
"하. 그러니까 고용주에게 나를 넘길 생각이라면 더욱 여기서 죽이라는 이야기다. 물건을 넘기고 싶은 마음은 없어. 그럴리는 없겠지만 설사 넘기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하더라도 이미 전부 처분해 버렸으니까. 남은것은 이 추잡한 육체 뿐이라는거지. 알겠냐? '그렇게 되느니' 죽고 말겠어."
여인의 눈은 그야 말로 독기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허세나 거짓말이 아니었다. 당연한듯한 각오로 그렇게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벤."
공중에서 떨어지듯 레니아는 옥상에 착지했다.
"레니아. 돌아가라고 했었잖아."
"그건 그렇지만, 신경이 쓰여서 말이지. 그것보다 그녀석이 K의 모방범이야?"
모방범의 모습을 보고 레니아도 적지 않게 놀라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말 돌리지 말고."
"후우 답답하다고, 벤 너의 말은 결국 여관에 박혀서 일이 끝날때 까지 기다리라는 이야기잖아. 위험을 내포한 일을 좋아하는건 아니지만, 가만히 앉아서 아기처럼 받아먹기만 하는건 싫어. 정 그렇게 위험하다고 생각하면 네가 나에게 붙도록 해."
"나 참."
벤하르트의 검이 슬쩍 움직였다. 그가 휘두른것이 아니었다. 휘둘림을 당한것. 그리고 그를 스치는 빠른 인영. 그 움직임에 대한 무의식적인 반응에 의해 그는 더 중요한 지켜야 할 대상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하핫. 방심 했군. 나같은 여자에 상황은 압도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까? 그러니까 너희들은 명령이나 받는 수동적인 개일수밖에 없는거야. 잡으라고 시키면 잡는다. 주워오라고 하면 주워온다. 아무 생각없이 그 행동이 빚는 결과도 모른채.."
그녀의 검은 레니아의 목에 정확하게 달라붙어 있었다. 아무리 벤하르트가 빨라도 조금이라도 움직였다가는 바로 그녀의 목이 떨어지는 위기인 것이다.
"너.."
확실히 몸은 구속해뒀다 라고 생각해 뒀기에 그는 방심하고 있었다. 자살이라는 말까지 꺼낼정도로 상대도 이미 답이 없다고 시인한것 이 그것을 더부추긴 것이었지만 실제 그것은 그의 착각으로 그녀는 그 와중에도 자신의 기로 벤하르트의 결박을 풀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시끄러워. 인질에 손을 대고 싶은 마음은 없으니 닥치고 있으시지."
"아 그래? 그 말 정말이지?"
레니아의 주먹이 모방범의 복부를 가격했다.
"뭐...으어."
"여자라고 마법사라고 방심한것은 네쪽이겠지."
복부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그녀가 생각한것은 확실히 실수 였다는 것이었다. 그 거리에서 이런 예기치 못한 공격을 받게 될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거기에 레니아가 짧게 말한것 때문에도 깨닫는 반응속도 또한 늦어졌고 레니아의 공격에 당해 버린것이다. 그리고 그 일순간의 경직을 놓칠 벤하르트가 아니었다. 수식간에 모방범의 자유를 빼앗고 가지고 있던 쇠사슬로 그녀의 몸을 묶어 냈다.
"하하. 어때?"
얼버무리는게 가능할리 없었다. 벤하르트가 취할 행동도 예측할수 있었다. 아마 자신이었어도 화를 낼 상황이었기에.. 덤덤할수 있었다. 고개가 젖혀질정도의 충격이 뺨에 느껴졌다.
"무슨짓을 한거야! 죽고 싶어?"
"왜 치는거야?"
"위험했잖아."
"헛소리 그만하라고! 내가 바라는것은 너의 맹목적인 보살핌이 아니야. 대등한 관계에서의 여행이지. 이 행동 분명히 내가 네 입장이었어도 화를 냈겠지만, 벤 네가 요즘 보이는 행동은 그저 과잉적인 보살핌에 지나지 않아. 너는 내 보호자가 아니야. 억지 부리지 마. 너만이 자신을 희생할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 그거야 말로 위선이자 이기주의의 극치니까."
"하지만 너.."
그는 더 말을 꺼낼수가 없었다. 상대가 얼마나 강했는지 강하지 않았던지 그런것을 구구절절히 설명할 필요는 없는것이다. 방금의 상황에서 레니아의 행동은 그야말로 최적의 행동이나 다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역시 네가 이곳에 온것은 뭐라고 말해둬야 겠다. 애초에 오지 않았으면 이런꼴은 당하지 않았을것 아냐."
"놀고들 있군. 사랑 놀음이라도 하려는거냐? 정말 쓰레기 같은 녀석들. 구역질이 올라올것만 같은 광경이군. 특히나 그쪽의 여자에게 당한것은 일생의 수치였어."
"꽤나 말투가 험악한걸. 지금 누가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지 모르는 모양인데."
"그걸 쥐고 있는것은 오로지 나 자신 뿐이지. 누구에게라도 넘길까 보냐!"
머리를 흔들며 그녀는 입을 벌렸다. 그리고 힘을 주듯 입을 다물었다,
"읏."
그 즉시 튕기듯 벤하르트의 몸이 움직였다. 검에서 나온 백색의 빛이 다물어지는 입보다 빠르게 들어갔다.
"웁우압."
무른것 같은 기 덩어리를 입에 물고 그녀는 연신 고개를 흔들어 내며 온몸을 움직였다. 거친 쇠사슬 소리만이 요란하게 들려왔다.
"벤 방금 뭘한거야?"
"아니 아무래도 혀를 깨물려고 한것 같아서 이녀석. 나도 이렇게 될줄 알고 사용한것은 아니었지만,,"
말도 할수 없고 쇠사슬에 몸과 다리를 묶인채로도 그녀는 광분하고 있었다. 흡사 미친개처럼.
"웁 우우우우웁우우웁 웁!"
여관에 정면으로 들어갈수도 없기에 벤하르트는 여관의 창문을 통해 그녀를 데리고 조심스레 들어왔다. 여유롭게 정문으로 들어온 레니아는 딱하다는 눈으로 둘을 바라 보고 있었다.
"그녀석은 그냥 넘기면 되잖아?"
"그거야 그렇지만,"
벤하르트로서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폭탄을 쥐고 싶지는 않았다. 방금까지만 해도 서로 목숨을 위협했고 위협 받았기 때문에 더욱 그런 기분이 들었지만, 이대로 그냥 넘기는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자살하지만 않는다면 입의 그건 풀어줄게."
"웁우우웅웁우우우웁"
쩔렁 쩔렁 거리는 쇠사슬 소리와 함께 여자의 몸이 움직였다. 당장이라도 벤하르트의 얼굴을 한대 쳐 버리고 싶다고 하는 듯 보였지만 여전히 정상과는 거리가 멀다 할수 있었다.
"헛소리 지껄이지 마! 네녀석들과 할말 따윈 아무것도 없다!"
다시 그녀의 입에 가득했던 기가 눈녹듯 사라져 내렸다.
"어? 어떻게 풀어 낸거지? 잠깐 잠깐 알았으니까 제발 자살시도만은 하지 말아줘. 넘기거나 하는 일은 아직은 보류해볼테니까, 생각해 봤는데 안넘긴다거나 결정됬는데 죽으면 너만 손해잖아. 기다려 보라고,"
"하아? 풀어주기라도 하겠다는거야? 어차피 다시 도둑질을 하고 쫓고 쫓기는 관계가 될텐데?"
"이런 선택지는 어때? 도둑질에서 손을 떼고 서로에게 좋은 방식으로."
"거절하겠어."
싸늘함이 풍기다 못해 온몸이 떨릴정도로 살벌한 말투였다. 그러느니 죽겠다는게 그녀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럼 전에 훔쳤던 물건이라도 돌려줘. 그걸로 이번만은 놓아 주도록 할게."
최소한도 전에 훔쳤던 물건까지만 돌려 받는다고 하면 적어도 벤하르트는 무언가를 물어내거나 할 필요는 없었고 그녀를 쫓는 일도 정당하게 그만둘수 있게 될수 있기에 그는 지난번 물품을 요구했다.
"말했을텐데 그런건 이미 오래전에 처분해버렸다고, 물건도 그 것을 팔아 번 돈도 이미 내 수중에는 없어. 네녀석에게는 아쉽게 됬지만,"
말과는 달리 진심으로 기쁜듯 큭큭 대면서 그녀가 웃었다. 마치 벤하르트의 불행이 자신의 기쁨이라도 된다는 듯이..
"그럼 너를 넘길수 밖에 없어."
"그거야 아무래도 상관 없지만 넘겨질바에는 죽는다. 시체라도 끌고 가 보시지."
"....."
'이러니.. 벤이 저렇게 나온건가. 귀찮아 죽겠군.'
도둑질을 한 죄가 분명하게 있기에 그녀쪽에는 아무런 내세울게 없었지만 이렇게 죽는다는 말 일변도라면 벤하르트의 경우 순순히 내어줄리가 만무했다. 언뜻 보면 답답한 듯한 그의 행동이지만 그렇기에 그가 벤하르트라는것을 새삼스레 다시 느끼는 것이다. 좋은점도 있었지만 이런 경우에는 그저 답답하고 안좋은 의미밖에 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렇게 잠시 침묵하자 그녀는 광소하며 말했다.
"으흐흐흐 아하하하 정말 웃기는 녀석이네. 지금 망설였지? 아니면 아직도 망설이고 있는건가? 생각할것도 없는 이미 정답이 존재하는 사실을 고민하다니 네녀석의 상태도 꽤나 불량한데 그래?"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거지?"
"역겹다고 이 위선자야. 너는 그저 실력만 좋은 인형일 뿐이야. 선한 사람인 척 놀고 있을 뿐이지. 인간의 본성은 틀림없는 악이다. 그 외에는 전부 위선이야."
끝에 하나의 욕을 덧붙히며 그녀가 말한다. 이런 형식의 여자는 한번도 상대해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는 남자를 대하듯 무미건조한 어조로 말했다.
"너 꽤나 꼬여 있구나."
"그래서 어쩔거지? 검사양반. 어느쪽을 선택하더라도 나는 아무런 상관 없지만,"
"그전에 한가지 묻고 싶은게 있다. 너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수 있나?"
"물론. 그런건 당연하잖아. 인간은 언제나 자신을 위해서만 사는 존재니까."
그녀의 말에는 한치의 거짓말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 어째서 그 소년에게 너에 대한 사실을 '말하라고' 한거지?"
계속해서 미친듯 비틀린 미소를 짓고 있는 얼굴이 살짝 경직되었다. 마치 잘 단련된 검이 무뎌지기라도 한듯한 얼굴로 그녀는 다시 한번 웃음소리를 내었다.
"하하하하. 무슨 말인가 했더니. 그쪽이 나의 위치를 더 숨기기 좋은 조건이었기 때문이야. 빌어먹을 꼬맹이가 뭐라고 했는지 몰라도, 나는 단순히 그 꼬맹이를 이용한것 뿐이다."
"아 그래?"
덤덤하게 맞받아치고 그는 구석에 붙어 등을 기대었다.
"어서 풀던가 죽이거나 어느쪽을 선택해 봐. 미적이는건 내 성격에 맞지 않는다고,"
"기다려. 어차피 잡힌 이상 미적이거나 하는 정도는 우리의 권한이라고, 읏."
"벤 그렇게 많이 다쳤어?"
만났을때부터 상처를 발견하기는 했지만 레니아의 입장에서 보기에 움직임이 썩 더뎌보이지 않아 그녀는 잔 상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 뭐 그정도는 아니야. 뭐 무시할정도의 상처도 아닌것은 사실이지만, 걱정할 정도는 아니야."
"눈물겹구만,"
그녀는 비꼬듯 억양을 달리하며 말했다.
"음.. 레니아 저녀석 품안을 좀 뒤져 주겠어?"
혹시라도 허세를 부리는건 아닐까 싶어 벤하르트는 레니아에게 부탁했다.
"어? 나?"
"내가 할수는 없잖아."
"으음. 그럼 일단 벤은 나가 있는게."
조금 자신이 없었기에 레니아는 약간 힘없는 말투로 말했다.
"눈만 감고 있을게. 레니아 아무리 사슬로 묶었다지만 어느정도의 틈만 있어도 충분히 너를 제압할수 있으니까, 위험하단 말이지."
'빌어먹을 놈.'
속으로 모방범은 욕했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레니아의 어중간한 태도의 행동을 보고 기회라고 생각했지만 벤하르트까지 있어서야 기회고 뭐고 무리나 다름 없었던 것이다. 은백색의 검은 그녀의 목에 대어 있었기 때문에 별다르게 다른짓을 할 여유는 없었다.
"다됐다."
"그래?"
하지만 그녀의 품에서 나온것은 몇가지의 숨겨놓은 무기들과 소량의 돈 그리고 이번에 훔친 물품 뿐이었다.
"알겠냐? 나는 어떤것도 가지고 있지 않아."
"조금 물어도 될까? 그 돈을 도대체 어디에 쓴거지? 적어도 지금껏 훔친 물품들이라면 수백 마크닐은 되었을텐데,"
"너는 남의 사생활까지 신경 쓰는건가? 정말 어설프군. 어딘가의 칼을 내리쳐서 목을 잘라 주고 싶을 정도로. 하지만 그렇기에 교섭이 가능할수도 있겠어."
"음?"
"너희 샨 이로그 에게 명령을 받은거지? 이 물품의 주인. 그 재수없는 늙은이 말야."
발버둥 치던 몸을 멈추고 그녀는 몸을 일으켰다. 예의 '교섭'을 하기 위해서.
"샨 이로그인지 아닌지는 몰라. 다만 중년의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었다."
방금가지만 해도 광적으로 흥분했던 그녀는 표정을 바꿔 히죽히죽 거리면서 그녀는 벤하르트의 말을 받았다.
"딴에는 대비하려 하는것 같은데 너 이래저래 잘 속아 넘어가는데 소질이 있는데? 그녀석이 바로 샨 이로그다. 제대로 속아 넘어갔어. 하긴 그쪽은 녀석들의 특기니까 단순히 몸만 좋은 멍청이가 당해낼수 있을리가 없지. 나를 풀어주면 '속아 넘어간 만큼'만 가르쳐 주지."
"속았다니 그게 무슨 소리지?"
콧방귀를 끼면서 모방범은 한심스럽다는듯 말했다.
"하. 맨입으로 들으려 하다니 네 머리는 장식이냐? 지금 나는 교섭을 하고 있는 거라고, 풀어주면 알려준다. 한번 말하면 못알아 듣는거냐?"
"벤. '어차피' 네가 저녀석을 그냥 죽일리도 없을테니까, 그냥 풀어 준다고 하고 정보나 빼내는게 어때? 저렇게 자신있다면 그만큼 자신이 가지고 있는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일테니까,"
"하지만 설사 그만한 내용이라고 해도 저녀석 본인을 믿는것도 어려워. 정말 잠시 눈떼면 놓칠지 모를정도로."
"그럼 교섭은 내가 할게. 보통은 벤이 더 잘하겠지만 이번에는 생각해둔게 있거든."
레니아는 K의 모방범에게 다가가 말했다.
"좋아. 풀어줄게. 하지만 조건이 있어. 지금 풀어주지는 않아. 네 정보를 듣고 나서 풀어주겠어. 이 내가 보장할게. 내 뒤의 남자는 어차피 너를 죽이지 못해. 그걸 알고 교섭이니 뭐니 잔재주를 부릴 생각인가 본데, '나는' 그런게 아무 상관 없거든. 지금 당장에라도 죽여 줄수 있어. 너는 바로 얼마 전에 나를 죽이려고 했으니까, 지금도 손이 간질간질 거리거든. 하지만 정보부터라면 이야기는 다르지. 어떻게 할래?"
"저 위선자보다는 훨씬 사람이 되어 있군."
그 말에 레니아는 가슴이 뜨끔 거렸다. 이제와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직접적으로 그런말을 듣는것은 썩 좋지 않았던 것이다.
"좋다. 하지만 그 정보는 여기서 '증명'할수는 없으니까, 증명할수 있는곳으로 가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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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화라.. 연참대전도 단 하루를 남겨두고 있습니다.
11000자 기염 따위는 못 토해내지만, 그래도 참가한 연참대전은 다 통과하는것에 대해서는 자부심을 가져도 되겠지요??
그보다 글이나 잘쓰는게 더 좋지만,,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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