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219화-모방(1)
다음날 아침 레니아와 벤하르트는 페이렌의 경매장으로 향했다. 하늘을 메울듯 높고 비좁은 도시의 틈새속에서 그들은 천천히 목적지에 도달하고 있었다.
"벤하르트와 레니아님 되십니까."
"음."
누군가가 쫓아오고 있다는 기척을 느끼기는 했지만 그 정확한 위치를 알수 없었던 벤하르트는 눈앞의 흑의흑발의 남자가 보통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보통이 아닐지라도 그는 흑의의 남자가 자신보다 약하다는 확신을 가질수 있었다.
'안좋은데 이런 생각은.'
상대가 약하다는 생각보다는 언제나 상대가 자신보다 강하다고 생각하고 있을때가 더 안정된 것이라는것을 그는 숱하게 보아 왔기 때문에 그런 사실을 애써 아닌척 무마시키려 했다.
"따라 오시지요."
골목을 돌아 여러가지 미로와 같은 길을 걷는게 왠지 가렌더 부크에서 에시오르를 만나는 듯한 느낌이었다. 길은 칙칙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여러개의 방문을 지나고 있을때 레니아는 벤하르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벤. 지금 온 길 기억할수 있겠어?"
그녀는 발을 들고 눈앞의 남자가 눈치채지 못하게 귀엣말했다. 레니아가 묻자 벤하르트는 답을 하려다 말을 멈추었다.
"물.. 어?"
어딘가를 가는법을 기억하는것은 그의 특기나 다름 없는 것이었지만 아무리 떠올리려 해도 오는 방법은 기억나지 않았다. 마치 눈을 감았다 떴을때 이곳에 도착한것처럼 기억에서 지워진 것이다.
"마법이야."
"마법이라고?"
"그래. '무해'를 원칙으로 하는 마법은 다른 마법보다도 더 걸기가 쉬운 법이거든. 하마터면 나도 걸려 들뻔 했어. 어쨋든 나도 모르는척 할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알겠어."
방에는 벤하르트 외에도 몇명의 사람들이 더 있었지만 척 보기에도 따로 불려 온것은 벤하르트뿐이었다. 벤하르트를 제외한 다섯은 단정한 검은색의 양복을 입고 있었고 그 머리모양마저도 비슷해서 한눈에 보기에도 그룹을 이루고 있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그래. 자네가 바로 류슈반이 데리고 온 호위인가. 그래 이름이 뭔가?"
그림자속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지만 목소리로 미루어 보아 상대는 중년의 남자라는것을 알수 있었다.
"벤하르트 하르크입니다."
"그쪽의 처자는?"
"처자?"
"쉿."
벤하르트의 만류에 표정을 바로 하고 레니아가 말했다.
"레니아 입니다."
"레니아라.. 어디선가 들어본적이 있는데,, 기분 탓인가?"
"....."
남자의 혼잣말에 레니아의 표정이 의기양양하게 바뀌었다. 누군가가 자신에 대해 어렴풋하게만 알고 있을뿐인데도 그것을 좋아라 하고 있는 것이다.
'천성 신이라니까,'
"여기에 모인 이유는 알고 있겠군. 자네들이 해줘야 할 일은 불특정다수의 물품을 모방범K에게서 지키는 일이라네. 하지만 다수라고 해도 그가 노리는것은 그나마도 한정되어 있지. 자 이것을 받게."
남자는 옆의 수하를 통해 한 종이를 벤하르트에게 전해 주었다. 종이에는 물품의 그림과 특징 그리고 자세한 설명이 되어 있었다.
"이 그림은."
"그것은 라군델에서 수입해온 기술이라네. 그것보다 그 종이를 보면 일수별로 놓여질 물품에 대한 설명이 되어 있지. 그것이 바로 모방범K가 노리는 물품들이지."
"어떻게 알수 있는 겁니까?"
"그가 노린 도난품을 기준으로 잡아 놓은 것이니까, 그 미만의 물품은 전혀 건드리지 않았으니 그점은 신용해도 될거야. 허나 만약에라도 거기 적힌 물품이 아닌 물건이 도난 당한다면 책임은 물지 않도록 하지."
"책임이라니?"
"그래도 자네들을 고용한 득은 보아야 하지 않겠나? 만약 도난만 당하고 잡지도 못한다면 고용한 보람은 없는것이나 다름 없다는 이야기라네. 물품 하나당 그 물건의 10분지 일에 해당하는 가치는 내주었으면 좋겠군. 못하겠다고 하면 몸으로 떼워도 상관은 없네. 아아 오해하지 말게. 그저 일을 해주면 된다는 의미었으니."
벤하르트의 눈초리가 바뀌는 것을 보고 중년의 남자는 황급히 말을 바꾸었다. 뭐라 더 따지고 싶었지만 벤하르트는 차마 그렇게 할수 없었다. 중년 남자의 곁에 있는 수하들 때문이었다.
'이곳에 모인 자들은 전부 저자의 수하인가.'
살기를 내뿜을때 모여 있던 몇명의 남자들은 순식간에 전투의 준비를 끝내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도 상당한 달인들로 벤하르트의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레니아마저 지키며 싸우기에는 거의 역부족이나 다름없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그녀석 중요한 말들은 전부 빼고 가르쳐 주었군. 묵인에 속은건가. 한심하다.'
이곳에 오기 전에 거절을 했어야 했다는 후회심이 파도처럼 몰려왔다.
"뭐 결과적으로 K를 잡는다면 어찌되든 상관 없는일 아니겠나. 물품을 도난 당한다고 해도 결과적으로 잡을수만 있다면 상관 없는 것이니."
그렇다 라고 호응할수는 없었다. 바꿔말하면 K를 잡지 못했을경우 자신과 레니아는 그의 밑에서 얼마간이나 썩어 있어야 한다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녀석들은 안좋은데,'
벤하르트는 소문으로나 들었던 악질 빚쟁이들의 내용을 떠올렸다. 이자조차 해결해 내지 못해 결국 평생을 썩히고 죽음을 맞이한 비운의 이야기.
'몇년 전에 들었더라.'
"그러니 아무쪼록 잘 부탁하네. 물건은 한정되어 있으니 잘 대처한다면 막을수 있을게야."
왠지 적당히 하면 된다는 듯한 말투였으나 벤하르트는 절대 그가 말한것처럼 간단한 이야기가 아닐것이라고 생각했다. 종이에 적힌 물품만 해도 하루에 열가지가 넘는 물품을 확인해야 한다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음?'
가는 팔로 치는 움직임이었다.
"괜찮아."
자신만만한 얼굴로 레니아는 웃었다. 벤하르트의 얼굴이 한없이 심각하기에 위로차 말한것이 아닌 무언가 방법이 있을때의 자신감에 그는 왠지 자신을 얻었다.
"그럼 부탁하지. 일단 이 계약서에 서명을 해주었으면 하는데,"
꼬투리를 잡을 곳이 없는한 거부의 의사를 표할수는 없었다. 상대측에서는 얇게나마 적의를 드러내고 있었다. 가져다 붙힐 명분이야 억지성으로 따지면 넘치고 넘치는 일이었기 때문에 벤하르트는 계약서의 내용을 꼼꼼하게 확인했다. 행여나 자신들에게 명백히 불리한 조항이 있지나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지만 상대쪽은 노리다 시피 벤하르트를 잡았기 때문에 그런 실수는 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평범한 계약서이자 자신을 묶는 조항에 벤하르트는 서명을 하고 말았다.
"젠장."
"왜그러는데 벤."
"몰라서 묻는것은 아니지? 너무 경계를 풀었나. 그녀석 애초에 믿는게 아니었는데,"
"이번에 나는 따라 오지 않는게 좋았을텐데, 괜히 나때문에 움직이지 못한거지?"
벤하르트는 레니아가 자책하는 말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건 아니야. 그 남자가 부리는 사람들 중에는 대단한 실력자도 한둘 섞여 있었고, 물론 도망만 친다면야 충분했지만, 레니아 너때문이라던가 한건 아니야. 애초에 류슈반이라는 녀석의 말을 거절하지 않은게 잘못이었어."
"상대쪽은 어느 양쪽으로도 이득을 보는 계약이니까 이건. 따지고 들자면 못따질것도 없었겠지만, 내쪽이 신경 쓰였겠지."
"지금의 상황만 놓고 본다면 그렇겠지.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이렇게 될수 밖에 없는거야. 적어도 이곳에 있을때는 레니아 너를 두고 나만 올수는 없거든. 바오윈의 을의 일도 있고, 류슈반은 자신의 신용이 낮다고 하는것을 고의적으로 드러냈으니까, 그러니 너를 두고 가는 일은 불안해서라도 할수 없지. 그것까지 계산했다고 하면 정말 대단한 녀석일거야."
"나쁜의미로 말이지."
레니아가 한마디를 덧붙혔다.
"그래."
"그러니까 저 인간은 도난을 당한다 해도 우리라는 인력을 손에 넣게 되는것이고, 우리로 인해 K를 잡는다면 그것 나름대로 이득이라는 이야기지?"
"뭐 그렇지."
떫은 표정으로 벤하르트가 대답했다.
"하지만 그건 저쪽의 일이고 우리는 맡은 일을 잘해서 K를 잡아 버리면 되는 거잖아. 우리에게는 분명 기분 나쁜일이지만 저쪽 입장에서 보면 최대한 위험을 적게 잡으려 하는 일이니까, 굉장히 인간다운 일이라고 할수 있지."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밝은 일만 있다면 좋겠지만,"
"벤. 뒤를 생각해두는것도 분명 나쁜건 아니지만, 그것보다 확실하게 K를 잡는 방법을 생각해두는게 낫지 않겠어? 뭐 실패하더라도 도망이야 칠수 있을텐데,"
"맞는 말이다. 그래서 어떤 방법을 쓸건데? 아깐 아주 자신있다는 듯한 표정이었지?"
"추적의 마법을 달아 두는거야."
자신있게 레니아는 마음속에 있었던 일을 소리로 내었다.
"잠깐만, 여긴 마법을 전문적으로 사용하는 곳이잖아. 추적 같은걸 사용하지 않았을리도 없을텐데,"
"내가 말하는 추적은 그런게 아니야. 적어도 절대 훔쳐가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을 사용하자. 벤 네 기를 이용해서 물건에 붙혀 놓을수 있어?"
"글세 해보지 않아서 모르겠는데,"
"뭐 할수 있던 없던 결과에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가급적이면 할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한번 해볼게."
그렇게 말하고 벤하르트는 의식을 양손으로 집중했다. 마법을 다루는 사람이나 기를 다루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볼수 없는 기의 가루들이 바닥에 떨어졌다.
"실험이야. 지금부터 여관까지 갔다가 돌아와."
"너만 두고 갈수 있겠냐. 위험하다니까 여기는."
"그럼 같이 가던가. 그나저나 벤 요즘 너무 과잉보호 하는것 아냐?"
약간 짜증섞인 목소리로 불평하는 레니아에게 여유로운 목소리로 받았다.
"부인은 하지 않겠어. 환마왕의 일도 있고 하니까 왠지 불안하잖아. 근데 방금 실험이라는 말을 들으니 왠지 노시엘트의 일들이 살짝 떠오르더라."
"흥. 헛소리를."
한번 여관까지 다녀오고 레니아는 아직까지 남아있는 벤하르트의 기를 확인할수 있었다.
"그래서 이게 어쨋다는건데?"
"소유자가 멀어져도 기는 남아 있다는 거지? 이거 어느정도나 갈것 같아?"
"양에 따라 다르겠지. 어느정도인지는 확인해 보지 않아서 알수 없을것 같은데,"
"묻고 싶은게 있는데 이 '기'라는 건 물이나 이런것으로 씻는다거나 떼어낼수 있는거야?"
"가능이야 하겠지만, 그렇게 되지 않게 기를 만들면 꽤나 버겁겠지."
"다행이다. 솔직히 물품을 상하게 하는 짓을 하기는 싫었거든."
레니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상하게 하려고 했었던 거냐?"
"하지만 확실하게 추적의 마법을 쓰는것과는 근본적으로 그 성격이 다르거든. 절대적으로 찾을수 밖에 없고 누구도 막을수 없는 추적이라는 이야기. 너무 멀면 안되지만, 내가 하려는 마법은 무언가를 달아 놓는다거나 마법을 섞어 추적을 하는것과는 조금 다른 방식이거든."
"무슨 마법이길래 그리 거창하게 말하는건데?"
말투와 다르게 벤하르트도 약간은 레니아의 말을 기대했다.
"그 왜 있잖아? 책을 보다가 생각난건데, 개는 무언가 매개체의 냄새로 범인을 찾아내거나 그런게 있잖아. 그것을 생각해서 마법을 만들었지. 요령은 이래. 벤의 기를 덕지덕지 발라 놓는다. 그리고 그 기를 내 손에도 놓아서 '이 기가 있는 곳'을 찾는다 같은거지. 만약에 벤이 불가능 하다면 물품에 조금의 흠집을 내서 그 흠집을 밑거름으로.."
"말이 된다고 보냐! 물품을 지키기 위해 쓰는 우리가 대상을 파괴 하면 어쩌자는 거야."
"뭐 그래도 확실하게 K를 잡을수 있다면 그정도는 감수해도 되는거잖아."
"그전에 우리가 옭아 메일것 아냐. 우리는 자선사업을 해주는게 아니라고, 최대한 상처 없이 깨끗하게 그리고 확실하게 득을 보고 나와야 된다는 이야기야."
"그런 설교는 별로 듣고 싶지 않은걸. 결론적으로 벤의 기를 이용하면 되는것이니까, 그런데 확실히 상대가 기를 없애지 않게 할수는 있는거지?"
"노력은 해보마. 아마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가렌더 부크에서 수련을 할때도 넌지시 요셉은 벤하르트에게 말했던 말을 떠올렸다.
'기를 사용하는데에는 여러가지 특징이 있지. 나같은 경우는 기를 이용해 손을 날카롭게 라던가 한정적으로 변화시키는 부류지만, 너는 기로 인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쪽으로 재능이 있는것 같아. 또 그것을 유지한다던가,, 그 검을 이용한 기술에서도 조금 드러나듯이. 생각해보면 나는 너와 다르게 기를 날리는 방식으로는 잘 사용하지 않잖아? 그런 차이지. 너의 본래의 직업인 대장장이때문일지는 잘 모르겠다. 어쨋든 그런 재능에 따라서 나름대로의 기술을 만드는게 좋겠지. 뭐 어느쪽이던 강해지고 기를 잘 다룰수 있게 되면 모두 잘 사용할수 있게 되는 것이지만,'
'만드는 쪽 인가.'
하나 하나 물품을 점검하면서 기로 덮어 씌우는 작업을 계속할때 주위가 왠지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검은 양복차림의 남자는 분주하게 움직이던중 레니아와 벤하르트를 발견하고는 소리쳤다.
"어이 너희들 이런곳에서 뭘 하고 있는거냐? 야키란의 날개가 K에게 당했다고 한다."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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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로 휴가도 끝났네요. 쌩뚱맞지만 3일간 휴가였거든요. 왠지 슬프고 귀찮고 아쉬운 기분이 마블되어 패닉 상태에 이를것 같았는데 소설은 그나마도 여파가 미치지 않더군요..
그나저나 내일은... (후우..)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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