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217화-준비(3)
"적당히좀 해둬. 레니아. 물론 이번일은 전적으로 그녀석들의 잘못이지만, 벌을 준다면 좀더 다양한 방법이 있잖아. 왜 하필이면 그런쪽이냐고 보는 나까지 뭐할 정도였어 그건."
여관으로 돌아와 자리에 앉으면서 그는 말을 꺼냈다.
"그정도로 난리를 쳐 줘야 정신을 차리겠지. 아 혹시라도 정신을 못차렸을때의 생각도 미리 해둘까?"
"다시한번 말하지만 역시 적당한게 최고라고 생각한다. 근데 그것보다 심한것도 있는거야?"
벤하르트도 괜시리 궁금해진 까닭에 넌지시 묻듯 말했다.
"반나체로 도시를 돌아다니며 춤을 추게 한다거나.."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그런 생각을 하는거냐. 반나체라니 뭐야 그 반이라는 말은 어디까지로 해석해야 되는거야?'
묻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레니아의 입에서 무언가 듣고 싶지 않은 말이 튀어 나올것만 같아 그는 말하기를 그만두었다.
"미안 물어본 내가 바보였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무심결에 그 광경을 상상해 버려 벤하르트는 다음에 그들을 만나면 꼭 이것의 이야기도 해두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상대가 벤이 아니었다면, 정말 위험한거잖아. 어떤 의미로는"
축소판이잖아... 하고 레니아는 작게 중얼거렸다.
"그래. 고치지 않는다면 말이지. 그래도 그건 상상으로 끝내자고, 다른 방법이야 얼마든지 있으니까,"
"할때 확실히 하지 않으면 곤란하다는 말이지. 그때도 네 부탁을 들어줬고 지금은 어느정도 이해할수 있을것도 같지만, 사실 그녀석들은 그대로 살게 놔두려 했었거든."
"아 디논의 일 말이지."
노시엘트산 아랫 마을의 디논을 떠올린다.
"보통은 그렇게 생각은 안하지 않나? 보복하고 싶다는게 정상이잖아."
"그렇지만 역으로 생각해보자고, 물론 이것도 굉장한 모순이지만, 예를들어 눈앞에 평생 먹고 살수 있을 만큼의 거금이 생겨서 본래 평범하게 살고 있었던 사람이 나쁜 마음을 먹었는데, 아 이경우에는 사람을 죽인다거나 하는 건 아니고, 강탈 정도의 의미로 생각해서.. 그 돈의 본 주인이 그 행동 때문에 그를 죽였어. 맞는 말이기는 한데, 왠지 사람을 좌지우지 한다는것은 느낌이 이상하다고 생각해서 말야."
"글세. 잘 모르겠는데? 죄를 받은 만큼 대가를 취한다는건 보통의 생각이잖아. 분명히 벤쪽이 이상한 거라고,"
그녀의 답변에 벤하르트는 잠시 고개를 숙인채 생각했다.
"그런 이런건 어때? 죽는다라는 것에 생각을 한건데 말이지. 전쟁을 나가거나 하면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가게 되잖아. 적어도 곁에 있었던 세사람중 한사람은 시체가 되서 돌아올 정도로,, 그런데 본래 살았다면 그사람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하고 생각을 하게 되는데, 분명 내가 생각하지 못하는 것들이나 많은것을 경험하고 살아갈수 있을텐데 그것을 끊어버렸다는게 꺼림칙 하지 않아?"
"음 그런 식으로 보면 분명 '생각할수는 있겠지만,' 벤. 그건 정말 자기중심적인 생각이야. 이단적인 생각이라고 생각해도 좋겠네. 결론은 자신에게 편한 행동을 취했을 뿐이잖아. 동물을 먹을수는 있어도 차마 죽일수는 없다같이 비겁한 행동이지. 네 경우에는 이미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지만, 목숨을 노렸던 녀석을 용서할수 있다는건 이미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것과는 별개의 문제나 다름 없으니까,"
문제점은 이미 벤하르트 본인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자각하고 있으나 고치지 못하는 고질적인 문제에 그는 쓴웃음지었다.
"벤 너는 네가 바라는대로 행동하면 돼. 나는 그런 벤이 훨씬 나으니까, 반대에 해당하는 역할은 내가 맡아줄게. 억지로 고치거나 할필요는 없잖아? 너에게 없는건 내가 나에게 없는건 네가 행동해 주면 되는거야. 다행히도 나는 이런쪽은 자신있거든."
"자신 있다니.. 무 무슨 소리를 하는거냐."
"어? 나는 공격적이거든. 너도 여러번 봤을테니 알것 아냐. 당하는것은 못참아. 하지만 이쪽에서라면야.."
벤하르트의 살이 살짝 떨렸다.
"나는 공(攻) 벤하르트는 수(守)! 라는 이야기지."
그렇게 말하며 웃는 모습이 왠지 선정적이어서 벤하르트는 순간 고개를 돌렸다.
"그런걸 묻는게 아니라고,,"
이런 이야기는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이자. 이런 이야기가 있기에 그들의 관계는 완성된다고 할수 있었다.
"그래 그러니까 나는 당하는 역할 이라는 거지?"
"정답. 이런 나와 여행을 하고 있는거니까 말야. 하지만 벤은 천성적이라서,,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이런 관계가 되지 않았을까 싶어. 예를들면 그 흡혈귀 라던가."
벤하르트의 몸이 움찔 거렸다.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왠지 정곡을 찔린듯한 기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럴때는 거절을 하는게 여자의 입장에서는 더 듣기 좋은데 말야. 이런걸 소유욕이라고 하나?"
"여자의 입장과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니 애초에 넌 신이잖아! 여자라고 스스로를 칭하는거냐? 소유욕이라는 말은 의미야 맞는 말이지만, 어쨋든 그런걸 안하는건 내 천성.. 이라는 것이겠지?"
"천성 같은 소리하네. 자신이 천성이라고 하는게 얼마나 웃긴 일인지 알고 있어?"
'웃긴 일인가?'
왠지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속이 뜨끔 거렸다.
"알리가 없잖아. 너무 몰아 부치지 말라고,"
너털웃음을 지으며 가볍게 벤하르트는 끝맺음 지었다.
페이렌에서 머무르면서 벤하르트는 정보를 얻는것을 주력으로 하려고 했다. 페이렌 정도의 도시가 되면 페이렌 뿐만 아니라 많은 도시의 소문을 알고 있는 여행객들도 있었기에 그는 여행객들에게 소량의 돈을 주면서 여러가지 소문을 모았다. 석달이나 다른 세계에 있었던 벤하르트였기에 달라진 점에 의거해 정보를 모으고 있었지만 '결과적'인 달라짐은 어디에도 없었다.
"시시각각 변하는게 소문이라지만,, 이건."
그들이 말하는것은 섞어 놓고 보면 굉장히 난잡했다. 중복되는 일도 있었지만 도저히 두가지 일이 동시에 벌어질수 없는 일들도 많았고 버려야할 내용이나 주의해서 들어야 할 내용들도 많았다.
"그러니까 역시 통신문을 보는게 좋겠지."
구수한 회색 종이를 들며 벤하르트는 천천히 읽어 나갔다. 눈앞에 있는것은 한달치 정도의 신문이었다. 오로지 글로만 되어 있었지만 돌아가는 정세를 파악하는것에는 부족함이 없다 할수 있었다.
"근데 벤. 그럴거면 아까 왜 그 고생을 한거야?"
"아 그거. 대략적인 일은 이 신문으로 알아낼수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대략적인 일이거든. 직접 경험해서 얻은 사실과는 많이 다른 경우가 많아. 여기 보면 불이 났다 라고 하는 일도, 단순한 실수 라고 해석할수도 있지만 주변에서는 거진 방화범의 짓이다 라고 생각하고 있을수 있는 거거든. 주변의 이목을 두려워해서 진실을 왜곡 시키는 일은 빈번한 일이니까."
"그렇군. 이해했어. 그런데 벤 너는 그 사실을 구별할수 있는거야?"
미덥지 않은 눈으로 레니아가 묻자 벤하르트는 콧방귀를 끼며 말했다.
"하.. 레니아 은근히 나를 무시하는것 같은데, 이래뵈도 90평생을 남을 의심하면서 살아온 남자라고, 진위 여부야 수십명의 정보를 토대로 하면 충분히 뽑아낼수 있지."
"그거.. 자랑할 일은 아닐텐데,"
"자랑이야. 아니 자랑이라고 말하게 해줘. 의심은 중요하다고, 레니아 너도 너무 남을 믿거나 해서는 안돼. 설사 나라고 해도."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지금 '벤'이 그런 말을 '내'게 할수 있는 처지라고 생각해? 웃음이 나올것만 같아."
웃음이 나올것만 같다라고 말하면서 그녀의 표정은 어이 없다는 듯한 냉랭한 표정 그 자체였다.
"어쨋든 결론은 가능하다는 거야. 자꾸 딴길로 세지 말도록 하자. 집중에 방해가 되니까 말야."
"근데 왜 이런 일을 하는거야?"
벤하르트는 정신없이 신문을 뒤지며 레니아의 말에 답했다.
"우리가 여행을 할때는 길어도 일주일 안에는 사람이 닿는 곳에 도착했었지. 거기에 하루만에 출발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일이었고, 며칠만 머물잖아. 그럴때는 이런짓을 꼭 할 필요가 없지. 머물면서 자연스레 돌아가는 정세는 들리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우리는 거진 석달씩이나 이 세계와 격리되어 있었어. 가렌더 부크가 어떤 곳인지는 레니아 네가 더 잘알겠지? 적어도 우리가 있는 이곳과는 그 성격자체가 틀린곳이야. 이곳이 멸망한다고 해도 그곳에서는 별 신경도 안쓰겠지. 석달 이라는것은 짧으면서도 긴 시간이어서 그 사이에 어떻게 세상이 바뀌었나 하는것은 알아 두는게 좋단 말이지. 그냥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모를까 우리는 여행자니까 정보를 무시해선 안돼."
"아 그럼. 마을이나 도시에 도착했을때 혼자 돌아다닌것도 그런 이유에서?"
"그렇..지."
정보 활동을 안한것은 아니었지만 주된 활동은 퇴로 확보였기 때문에 그는 약간 떨떠름하게 대답했지만 레니아는 별 신경쓰지 않고는 신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
그녀의 눈이 놀람으로 커졌다.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언제나 여유로움을 자랑하는 레니아였기에 벤하르트는 뒤지던 신문을 놓고 레니아가 보고 있는 신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인데?"
"이걸 봐."
페이렌의 신문은 대부분의 내용을 남쪽의 마도왕국을 기준으로 하고 있었는데 그 신문은 다른것과 달리 다른 나라를 배경으로 말하고 있었다. 놉스 함락되다 라는 글이 크게 나타나 있었는데 그 기사를 보고도 벤하르트의 표정은 별로 놀라지 않은듯 했다.
"벤?"
"음. 결과만을 말하자면 아직 놉스는 함락 되지 않았어. 함락이 되었었는데 다시 샤이 한에서 되찾았거든. 나도 처음에 그 소문을 들었을때는 놀랐지만 말야. 뭐 다시 재함락 시켰다고는 해도 그쪽이 여전히 위험한것은 사실이지만,"
벤하르트는 그렇게 말하며 한 사람을 떠올렸다. 치엔 다루만. 샤이 한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라고 생각해도 좋을 지장이자 용장. 그의 명성은 벤하르트가 노인이었을때 먼 나라에서 까지 살짝 들을수 있을만큼 대단했다. 대부분은 악명이었지만, 그 악명조차도 나라를 대비해 생각해보면 전혀 악명이 아닐정도로 대단하다 할수 있었다.
"어이 벤. 뭘 그렇게 멍하니 있어?"
"아니 잠시 다른 생각을 했는데, 치엔이라고 기억 나?"
"아 그때 우리.. 아니 벤쪽인가.. 를 죽이려고 했던 녀석이었지?"
자신과 달리 레니아는 치엔의 명성을 모르고 있었기에 기억하지 못할까도 왠지 모르게 반쯤 기대했지만 한순간에 부질없는 생각이었음을 깨달았다.
"근데 그녀석은 왜?"
"아니 그냥 그녀석에 대해 생각해 봤어. 치엔이 있는한 샤이 한이 쉽사리 망하는 일은 없겠지. 망하지 않는게 꼭 좋은 일일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겠지만,"
"전쟁은 어느 시대에나 있어왔어. 네가 살던 때도 내가 살던 때도, 전쟁이 없었던 적은 단 한번도 없으니까, 전쟁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 인간이기에 전쟁을 하게 되는 것일거야. 언제나 예외는 있었지만, 전쟁이 없었던 적은 없었으니까,"
그런 말을 하는 레니아의 표정은 어딘가 슬픈듯한 얼굴이었다.
"레니아 네가 살던 때라고 하지만, 너는 노시엘트에서 벗어난 적이 거의 없잖아. 책으로나 읽었겠지만, 네가 살던 옛날이라 하면 어느정도라고 생각해야 되는거냐?"
"어? 내가 살던때 라고 이야기 했었나?"
벤하르트는 레니아가 농담을 하는것으로 생각했다. 치엔을 기억할수 있을 정도로 기억력이 좋은 레니아가 바로 전에 말했던 내용을 까먹을리 없다고 생각한 벤하르트는 빈정대듯 놀렸지만 몇번을 들으면서 레니아가 폭발할때까지 그녀는 그런 말을 한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렇게 티격태격 대는 말싸움은 서로가 서로에게 우기기로 발전해 난타전에 까지 이르렀다. 대부분은 벤하르트가 맞아야 하는 일방적인 난타전이었지만,
"으아. 근데 이상하네. 분명히 들었던것 같은데, 하지만 말했던 말하지 않았던 별로 대단한 내용도 아닌데 왜 그렇게 열받은건데?"
"하아 하아. 왠지 인정하면 지는듯한 기분이 전신을 뒤덮는것 같아서 말야. 그리고 확실하게 말해두는데 나는 그런 소리를 한적이 없어."
이제 신체의 범주는 거의 평범한 인간 수준으로 떨어져 버린 레니아는 격하게 움직였는지 숨소리를 내면서 말했다.
그들의 대화를 중단시킨건 방문 소리였다.
"실례합니다. 혹시 이곳에 벤하르트라는 분이 계시는지요?"
가벼운 목소리는 분명 어딘가에서 들었던 목소리였는데, 말투 때문에 벤하르트는 순간적으로 누구였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벤하르트와 레니아가 허가의 뜻을 내보이기도 전에 문은 움직여 한 남자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여 형씨. 오래간만이군요."
들어온 남자는 류슈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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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속성을 따지고 들자면 레니아는 S 벤하르트는 M 일까요? 따지는것도 이상한 내용이지만,,
에 정확하게 연참대전은 7일 남았습니다. 연참대전이 끝나면 구상해뒀던 소설도 조금 만져 봐야 겠습니다. 지금껏 써놓은것도 있지만 지우고 일단 제목부터 만들어야 OTL....
연참대전은 이번에도 별일 없으면 무사히 끝날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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