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216화-준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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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달이나 지난후 찾아온 페이렌은 트레이야와 왔을때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여느때와 다름 없는 경매장에 여느때와 다름 없는 북적이는 인파는 그 크기를 짐작케 해주었다. 그 중심구의 중앙도서실에 두명의 남녀는 앉아 있었다.
"헤이로카라.."
로터스강으로 양분된 두개의 땅을 나타낸 세계지도를 보면서 벤하르트는 헤이로카를 찾았다.
"그렇군. 그래서 헤이로카가 낯익었던 것이었어. 레니아 찾았다. 어?"
바로 옆에서 책을 읽고 있어야 하는 레니아는 그자리에 없었다. 그녀는 이미 다른곳에서 새로운 책을 읽고 있었다. 그녀가 읽는 책은 다양했다. 굳이 말하자면 잡식성이어서 흥미만 생긴다면 어떤 책이든 손에 쥐고 읽는 것이다.
"저래서야 머리가 안좋아 질래야 안좋아 질수도 없겠군. 책을 읽는다고 머리가 좋은것은 아니지만, 어이 레니아 찾았어."
"그래?"
"내가 노시엘트로 오기전에 머물렀던 곳이 어딘지 알지?"
"위치는 모르지만 라프티 라고 들었었는데,"
벤하르트가 반 평생을 살았던 곳인 라프티 그리고 거리가 가깝다고는 할수 없었지만 헤이로카라는 곳의 소문은 벤하르트도 들어서 조금 알고 있었다. 다만 굉장히 오래전의 일이었고 그에게는 별로 상관할 바가 없었기에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근처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도시였지. 나와는 너무 거리가 멀어서 신경 쓰지 않고 있었지만 읽어보니 알겠더라."
"알겠다니 뭘?"
"그 도시는 투사의 성지라고 불리우는 곳이야."
"엔쿠라스와 뭔가 관계가 있어 보이는 별칭이네."
"실제 관계는 전혀 없지만, 말해보니 그렇네."
헤이로카가 투사의 성지라고 불리우는 이유는 간단했다. 일년에 한번 열리는 투야제의 존재 때문이었다. 강함을 겨루는 장소. 해마다 이어온 전통은 전설이 되어 각지에서 사람이 몰려올 정도로 큰 축제가 된 것이다. 무도를 하는 사람에게는 자신을 시험하기에 더할나위 없이 좋은 장소중 하나로 투야제가 열릴때마다 헤이로카에는 구경꾼과 싸움꾼으로 거리를 메워 노숙이 신기하지 않는 광경이 존재한다는 풍문까지 떠돌 정도였다. 그것이 수십년전 벤하르트가 들었던 소문이었다.
"그런 곳이긴 한데, 네가 말한 신이 있을것 같아?"
"전혀 그 여자와는 맞지 않는 내용이지만, 어쨋든 그렇게 자신있게 자신이 헤이로카에 있다고 말했으니 있겠지. 근데 그곳은 어디야?"
"아 그것 말인데, 이런 방식으로 가면 어떨까? 이곳의 위치를 잘 봐. 어때 보여?"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은 미묘하게 푸른 선에 놓여 있었고 딱히 그것이 없다고 해도 레니아는 벤하르트의 의도를 충분히 알아 챌수 있었다.
"강이 있군. 작지만, 이어지는건 로터스 강이네."
"그래. 어차피 헤이로카에 가기 위해서는 싫든 좋은 로터스강을 지나지 않으면 안돼. 거기에 라군델 쪽으로 향하게 되면 엄청난 거리를 걸어 가야 하고, 하지만 이 강을 따라 가게 되면.."
"직선으로 갈수 있겠네. 그렇지만, 헤이로카는 항구도시가 아니잖아."
"금새 금새 알아 버리는구나."
별다른 설명을 해주거나 나와 있지 않아도 즉각즉각 순식간에 알아나가는 레니아에게 왠지 부러움을 느끼며 그가 말했다.
"항구가 있는 곳에는 파란 점이 찍혀 있잖아. 그와 비슷한 위치에 찍혀진 다른곳들도 확인해보면 충분히 알수 있는 사실이지. 누 구 나 말야."
"맞는 말씀이군요. 천재 아가씨. 뭐 어찌됐든 우리는 이곳 호라반으로 가서 올라가는 형식으로 길을 갈거야."
지도를 보여주고 벤하르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일단 정보를 얻으러 다녀 볼까. 호라반은 작은 마을이기 때문에 그곳을 딱 지나가는 배를 구하는건 어렵거든. 그리고 뱃 여행이라는건 의외로 길거든. 이정도 거리면 두달 정도는 가야 할지도 몰라."
"뭐!?"
지난번 겪었던 아넷테르타를 떠올리며 본래 하얫던 레니아의 얼굴이 더욱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했다. 그때의 기억은 벤하르트도 좋지 않아서 레니아가 겁을 집어 먹자 그도 덩달아 겁이 나기 시작했다.
"일단은.. 정보부터 얻어야 겠지?"
석달정도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어느새 페이렌 시민들의 기억에서 K의 기억은 거의 사라져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문으로만 접했기 때문이리라. 실제로 본 사람들은 아직도 자신이 영웅이라도 된 마냥 즐겁게 떠들기 바빴지만 이미 K는 그들의 기억속에서 서서히 잊혀져 가고 있었다.
'신기하군.'
아직도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단번에 소름이 돋았다. 소름 잘 돋기 대회 같은 곳이 있어 가게 된다면 우승이라도 할수 있을것만 같이 K의 모습과 행동을 떠올리면 머릿속은 하얗게 비고 생각은 한없이 검은 나락으로 빠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확실히 강해졌다는 것을 느낀 지금도 K를 이길수 있을것 같지는 않았다. 가장 연관성이 많았던 그에게 도시민들의 반응은 왠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다.
작은 마을 수준이라면 몰라도 페이렌정도로 큰 도시에는 언제나 정보꾼이 존재하고 있다. 정보를 얻고 그 정보를 팔며 살아가는 자들이다. 도시를 돌아다니다 보면 심심찮게 볼수 있을정도의 수가 있었지만 왠만한 사람들은 어중이 떠중이들로 가득했다.
"그러니까, 그때 K가 내 앞을 확 하고 지나갔다는 말이지. 나는 놀랐지만 진정하고 K의 얼굴을 지켜 봤어. 그리고 발을 내밀어 한번 걸어 볼까도 생각했지만, 생각하고 있던 그 때 K는 내 옆을 스치듯 지나간거야."
"그 이야기 몇번이나 들었다고, 그나저나 류슈반 요즘은 왜 이렇게 일이 뜸해?"
"매물이 안나오는걸 나보고 어쩌... 어?"
"음?"
류슈반이라고 불리우는 남자와 벤하르트의 눈이 마주쳤다.
'이녀석은 그때 내 검을 사서 팔려 했었던..'
"어이 형씨 오래간만이구만, 혹시 돈이 궁하지 않아?"
"별로 궁하지도 않고, 궁하다 해도 말야. 이 검을 넘기지는 않아."
"에헤이. 저번에 입고 있었던 옷이랑 지금 옷 확실히 다르잖아. 내 눈썰미를 벗어날수는 없다고 지금 상당히 가난한 상태지?"
벤하르트가 이전에 입고 있었던 옷은 아직 자금 사정이 넉넉할때 입었던 어느정도 고급스런 옷이었고 지금 입은것은 평민들보다 더 아래나 입을만한 확실히 절약하기 위해 입을수만 있는 옷이나 다름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보통 사람들은 눈치 채지 못할정도로 옷 자체는 나쁘지 않았는데 류슈나는 금새 그의 옷을 파악한 것이다.
"그때 분명히 말했을텐데, 검은 넘기지 않겠다고,"
"에헤이. 상황이야 바뀌.."
류슈반의 말문이 막혔다. 숨막혀 오는 느낌 턱까지 산소가 통하는 입구가 막혀 버린듯한 느낌때문이었다. 그것은 지금껏 몇백번을 말했을지 모를 K에 대한 이야기속 그때 K가 지나갔을때 느꼈던 느낌과도 비슷했다. 오금이 저려 한발짝도 내밀지 못했던 그때의 느낌이."
"어쨋든 분명히 말했지만 팔지는 않는다. 아는척도 되도록이면 안해줬으면 좋겠어."
"여부가 있겠습니까요. 형씨 아무쪼록 잘 가십쇼."
한껏 겁을 집어 먹은채 빨리 벤하르트가 사라지기를 기도했던 그의 바램은 보기좋게 빗나가 버렸다.
"그런데 너. 이곳 주변의 정보에 대해 잘 알고 있겠지?"
시세를 조작해서 올려 팔정도로 물정에 밝은 남자가 주변의 정보를 모른다는것은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 벤하르트에게 공포를 느끼고 있었던 그는 냅다 고개를 숙였다 펴면서 말했다.
"물론입죠. 어떤것이든 물어 보십쇼."
류슈반의 친구는 그의 옆에서 류슈나을 한심스러운듯한 눈으로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 갈 곳은 패길으로 결정 됐어."
"패길? 그게 어딘데,"
"결론적으로 우리가 가야 할 곳은 로터스강을 따라 서쪽으로 향하는 것이잖아. 페이렌이 중앙도시라는것은 알고 있지? 서쪽에는 패길이라는 도시가 있어. 그곳에서 로터스강을 따라 서쪽으로 가는 배는 상당히 많다고 하더라."
"나는 파투나에서 갈줄 알았는데,"
파투나도 위치상으로 보면 호라반으로 가는 방향과 일치했기 때문에 레니아는 파투나에서 가는 쪽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거긴 너무 작아서. 기껏 해야 우리가 타고 왔던 수준의 배정도 밖에 안될거야. 그런 배로 두달 항해는 무리라고."
"그렇군."
"하지만 이번에 갈 패길은 원래가 여행객들도 자주 태우곤 하니까 부탁하는것 보다도 자연스럽게 뱃여행을 할수 있게 되거든."
"오오. 그럼 배도 더 크다는거야?"
"그래봐야 아스포에라의 크기를 상상하면 빈궁하게 느껴질 크기지만, 나룻배같은 배보다야 훨씬 크지."
"왠지 기대된다."
"그렇지?"
레니아도 기대를 가지고 있는것 같아 벤하르트도 왠지 기분이 좋아져 웃고 있는데 레니아가 말했다.
"그럼 그때 같은 일도 일어나지 않겠지?"
계속 지속할수 있을것만 같았던 기분은 거짓말처럼 착 가라앉아 버린다.
여관에서 해주는 평범한 밥을 먹으면서 돈을 절약하는 벤하르트지만 가끔은 레니아의 오기에 밀려 외식을 하기도 했다. 페이렌에 온지 3일만에 처음으로 조금 큰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레니아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배를 통통 두드리며 걷고 있었고 벤하르트는 돈주머니를 열어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이 거기 가는 두분 꽤 그림 좋은걸?"
"음?"
"책..에서나 볼수 있는 대사잖아. 저건."
왠지 반짝거리는 눈으로 레니아는 건달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아니 그렇지는 않아. 어디서라도 볼수 있는 대사이긴 하지만,,"
레니아는 조금 놀라며 흥미롭게 건달들을 보고 있었지만 벤하르트는 다른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지금껏 잘도 이런녀석들을 만나지 않았군.'
레니아의 얼굴은 경국지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였고 그 옆의 자신은 평범하다 못해 약해보일것같은 외모와 체격의 남자. 여행을 하면서 몇번 가량 부딪힌 일은 있었지만 몇달간 그런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한번 있었군. 너무 상상을 뛰어 넘어서 논외로 쳐버렸다.'
환마왕 루그벨트를 떠올리며 그는 눈썹을 팔자로 만들며 왠지 모를 웃음소리를 내었다. 지금의 상황이 굉장히 어이가 없던 것이다.
"어이 이런 녀석은 상대 하지 말.. 아다다다 우악."
가볍게 상대의 팔을 쥐고 당기듯 밀어 내자 비명소리를 내며 한 건달이 쓰러졌다.
"네놈!"
수준의 차이가 너무 나는 대결이었다. 사자에게 병아리가 덤비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대결. 그리고 결정적으로 벤하르트가 먼저 손을 쓴 이유는 그만큼의 실력차를 스스로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죄송합니다."
"하. 다시 한번!"
'묘하게 들떠 있잖아 레니아 녀석. 분명 책에 저런 장면이 나오기라도 했던 것이겠지. 처음에도 그런 이야기를 했었고,'
"죄송했습니다. 다시는 이런 짓을 벌이지 않겠습니다!"
이제는 거의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건달 한명이 말했다. 분명 건달이 나쁜짓을 했던것은 사실이지만 이정도까지 오니 벤하르트도 측은심이 묻어나는 눈으로 그들을 보지 않을수 없었다.
'자업자득이기는 하지만, 왠지 불쌍하군. 여러가지 의미로.. 그리고 무엇보다 나까지 창피하다고 이 상황.'
그들이 외치고 있는곳은 페이렌에서도 가장 인파가 몰리는 중앙로로 지나가던 사람들은 건달들의 몰골을 보고 키득거리면서 구경하고 있었다. 레니아의 마법으로 형형 색색의 화장을 한채 무릎을 꿇고 벌을 서고 있는 건달들의 모습은 너무도 애처로워 보였다. 그리고 그옆에서 벤하르트는 최대한 관계 없는 사람인것 마냥 물건을 사는 척을 했다.
"저기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건가요?"
"글세. 뉘우칠때까지?"
"뉘우쳤습니다. 제발 용서해주십시오."
"용서해주십시오. 누님!"
절묘하게 합창이 되는 목소리들이었건만 레니아는 눈하나 깜박하지 않고 다음 명령을 내렸다. 흘끔흘끔 눈치를 살폈지만 그들의 편이 되어줄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전부는 아니어도 몇몇부터 시작해서 그들을 아는 사람도 있었기에 더 했으면 더 하라 했지 그만하라는 부탁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주변의 사람들은 낄낄대면서 웃기만 할뿐 어느 하나 그들에게 불쌍하다는 시선을 보내는 이는 없었다. 한명 있다면 벤하르트였을까.
"자 한번 더. 이번에는 뭘로 할까."
결국 그들은 한시간이나 광장에서 떠들고 나서야 레니아의 손에서 벗어날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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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참대전 종료까지 앞으로 8개..
내일부터 3일간 휴식이군요. 2주간 쉬지 못했던 것을 조금 풀어 봐야 겠습니다. 그리고 모두 즐거운 주말들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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