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202화-구출(7)
벤하르트와 마왕은 대치하고 있었다. 서로가 어떤 행동도 하지 않은채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벤하르트를 쥐고 있던 마왕의 손이 서서히 풀려 나가는듯 싶더니 벤하르트의 머리를 잡고 창살에 휘둘렀다.
"벤!"
"건방진 녀석이.. 잔재주를 피우다니,"
날아간것은 마왕의 왼쪽 팔. 잘라진 팔에서는 진홍색 피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당하는 와중에도 이 일격을 먹일 궁리를 하고 있었던 건가? 소리를 지른것에 비하면 상당히 침착한 녀석이었군."
벤하르트는 당하면서 자신의 검을 바닥에 놓아 두었었다. 그리고 손가락을 이용해 기의 끈을 만들어 마왕에게 있어서 사각지대로 검을 움직였다. 그리고 마왕에게 검을 들어 기습을 가한것이었다. 차라리 싸우던 중이었다면 그런 공격에 당할리가 없었지만 이미 몸의 어떤것도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정도로 승리는 확정적이었다. 굳이 마지막 일격을 거들것도 없을 정도로 하지만 그것이 바로 마왕에게 있어서는 가장 큰 오산이었다. 손가락 하나를 움직일 틈만 있었다면 벤하르트는 언제든지 환마왕의 목을 칠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의 필사의 일격조차도 마왕의 한쪽 팔을 잘라낸것에서 그쳤다.
"잠깐만.. 내가"
레니아의 조급한 목소리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그가 말했다.
"신이여. 이제는 어떤 대답이 들리더라도 살려두지 않겠다. 시간 초과야. 설사 우리를 따른다고 해도 이녀석의 목숨은 없다."
"어이 아버지!"
"닥쳐라. 쓸모 없는놈. 아니면 팔이 하나 날아가 보기라도 해야 정신을 차릴거냐?"
"아.... 아."
입안에 들어있는것이 침인지 피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인지 알아차리지 못한채 벤하르트는 풀린눈으로 그의 손을 잡았다. 그와 동시에 마왕은 급히 벤하르트에게서 손을 뗏다.
"이녀석."
손에 맺혀 있는것은 과거에도 몇번 본적이 있는 누군가의 기술이었다. 비교할수도 없을정도로 본연의 위력은 차이났지만 변수를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 그는 벤하르트에게서 손을 뗀 것이다. 그러던 차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렇군. 어찌 되었든 운이 좋다고 말할수 있겠군. 절대적으로 적이 될 이정도의 남자가 이곳에서 죽는다는것은 한쪽 팔을 잃었다고 해도 충분히 이득인 일이겠군."
그때까지도 그는 눈치 채지 못했다. 자신이 진영에 바로 있을수 없었던 이유를 제공했던 자. 이곳에 벤하르트가 오기까지의 수없이 많은 오차를 수정했던 자. 그에게 있어서 최대의 변수가 지척까지 와 있다는 사실을.
성한 오른손이 파열 되었다. 시야가 붉게 바뀌었다. 한쪽 팔을 잃지 않아도 상대할수 있을지 없을지 알수 없을 그 존재가 눈앞에 드러났다.
"원... 이라고?"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마계의 세계에서는 유명하고도 유명한 원의 흡혈귀중 하나. 이처럼 가까히에서 '의미를 가지고' 만난것은 생전 처음으로 겪는 경험이었던 것이다.
이샤에게도 자신의 부하들에게도 아직까지 그는 그녀가 관계 되어 있다는것을 듣지 못했기에 아마도 살면서 최대였을 혼란을 느끼고 있었다.
"우와 아버지 저건 누구야?"
벤하르트에게 당한것은 그에게 있어서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고 지금의 상황에 혼란해 하고 있던 상황에서 아들이 계속해서 철부지 같이 굴자 그는 참을수 없어 발로 베스의 머리를 걷어 차버렸다. 구멍이라도 나버릴것 같은 강렬한 발차기에 베스는 비명을 지르며 단번에 기절해버렸다.
"커억."
"그쪽에 있는 피투성이는 장래 내 부하가 될지 안될지 모르는 녀석이지. 놔주면 고맙겠는데,"
말투는 너그러웠지만 그녀의 몸은 이미 완연히 전투태세로 변화해 있었다.
"놓아줄수 없다면?"
"죽여주지."
거짓과 진실을 가늠하거나 구별하려는 노력조차 필요없었다. 그정도로 확실하게 전해지는 그녀의 살기는 진짜 였다.
'정말인가? 전 나라를 적으로 돌리면서 까지 이 남자를 구하겠다는 건가?'
그녀의 태도로 인해 그는 더더욱 벤하르트를 죽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이순간이야 말로 죽이기에 최고의 적기였다. 팔 하나가 대수롭지 않을 절호의 기회. 벤하르트와 그는 양립할수 없었다. 서로가 생각하는 정의는 물과 기름과 같았다. 아직 약할때 아직 죽일수 있을때 죽여 두어야 하는 것이다. 강해지기전에,, 손을 데기 어려워 지기전에.. 자신의 절대적인 무력을 지키기 위해서 그는 벤하르트를 죽여야만 했다.
애초에 그 이상의 실력자가 존재하는 시점에서 수많은 모순을 짊어진 것이었지만 그런 거짓된 위선적인 강함일지라도 그는 지키야만 했다. 아무리 어긋나 있을지라도 그에게 '강함'이란 신념과도 같았기에,
"도박은 하고 싶지 않지만, '이런 상황'에 남자라면 한번쯤은 해봐야겠군"
남은 한 팔을 휘둘러 환술을 부렸다. 아들쪽과는 비교도 안될만큼의 비현실을 순식간에 만들어 내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는 벤하르트의 머리를 온힘을 다해 가격했다.
"쓸데 없어. 그렇게 버젓히 나를 목표로 하지 않은 공격을 하면 당연히 이쪽이라는걸 알게 되잖아?"
그녀의 가는 팔에 매달린 핏덩이. 벤하르트는 마치 시체같이 늘어져 있었다. 어느샌가 레니아의 철창 근처로 온 그녀는 벤하르트를 내려 놓으며 말했다.
"네가 바로 레니아?"
"응? 어."
처음 만났지만 둘의 서로에 대한 첫인상은 썩 좋지는 않았다. 이전의 한마디를 들었을 뿐이었지만 그녀의 그 말은 머리좋은 레니아가 경각심을 품게 하기에 충분했다. 반면에 흡혈귀도 레니아의 인상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쪽이든 쉽게 끝나지는 않겠는데, 벤이던 환마왕 루그벨트건."
"원의 흡혈귀. 상상을 초월하는 괴물이로군. 대결하는 쪽으로는 초면이지만, 역시나 대단해.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는것을 용서할수가 없군."
어떤 잘못된 행동이라도 힘으로 정의를 믿는 괴물은 더 큰 힘을 눈앞에 두고 질투하고 있었다. 힘이 정의라는 확고한 사상은 더 큰 힘 앞에서 무너지게 되어 있었다. 신중한 그가 그녀와 싸우는것도 그에 따른 결과물인 것이다. 그녀를 이기지 못하는것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 장차 자신을 위협할지 모르는 벤하르트 만은 제거할수 있을때 제거해야만 했다. 볼수 없었다면 어찌되었든 상관 없었다. 서로 만나지 않았다면 벤하르트같은 남자가 몇명이 있다한들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둘은 이미 알아버린 것이다. 서로의 존재를. 루그벨트에게 무서운 적이 될줄 알면서도 살려준다는 선택지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루그벨트. 조금 더 나를 타오르게 만들어 줄건가?"
즐거워 질때 내는 그녀의 흥얼 거리는 음. 그 음률에 레니아는 물론이고 루그벨트조차도 몸에 소름이 돛았다. 루그벨트는 웃으며 말했다.
"아니. 이쯤에서 물러 나도록 하지. 한쪽 팔만 가지고는 역시 무리일테니까, 아쉽지만 다음기회를 노려야겠군."
"그건 정말로 아쉽네."
루그벨트는 발치에 떨어져 있던 자신의 왼팔을 거슬린다는듯 발로 찼다.
"전리품으로 가져가게나."
"필요 없는데 이런 팔을 받으면 저주 받을것 같아서 말이지."
자신의 손에 묻어 있는 피를 핥으며 그녀가 말했다.
"버려도 그뿐인 이야기다. 뭐 그럼 놓아 준것으로 알고,,"
그는 오른손을 꾹 하고 쥐고 아들 베스를 들고는 서서히 사라져 갔다.
이겼다 라는 기분에 도취된것은 루그벨트 뿐만이 아니었다. 그녀도 그 순간 만큼은 방심하고 있었다. 아니 그녀였기에 그 순간만은 확실하게 방심하고 있었다. 가장 위험한것은 이겼을때 라는것을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기에 그 둘은 고스란히 걸려 버린 것이다. 처음에는 벤하르트가 루그벨트에게 루그벨트는 그것을 곧바로 흡혈귀에게 복습하듯 사용했다. 벤하르트가 루그벨트에게 했던 행동을 역으로 되돌려 준것이나 다름 없는 행동.
남겨둔 루그벨트의 한쪽 팔은 벤하르트의 코앞에서 폭발했다.
폭발자체의 범위는 넓지 않았지만 집약된 곳을 폭파시키는 위력은 굉장했다. 처음부터 벤하르트만을 목표로 한 마왕의 팔은 그 목적을 완벽하게 달성했다. 벤하르트는 검게 그을려 이제는 그것이 인간인지 아닌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벤!"
눈앞에서 폭발하는 팔을 보면서도 레니아는 아무것도 할수 없었다. 벤하르트가 등장한 처음부터 지금까지 아무것도 그저 보고있는것 외에 아무것도 그녀는 해줄수 있는것이 없었다. 지독한 무력감을 느끼며 그녀는 창살에 붙어 벤하르트의 이름을 불렀다. 신으로서의 권위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모습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그녀는 통과할수 없는 창살밖으로 손을 뻗고 있었다.
"루그벨트!!!"
이미 공간을 너머 다른 곳으로 가버린 환마왕을 쫓는다는 것은 원의 흡혈귀인 그녀로서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미 그 폭발전부터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에 있었던 벤하르트는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것처럼 꿈틀 거렸다.
"벤!"
"시끄러워!"
그녀는 눈을 감고 있었다. 살면서 노력이라는 것을 해본적은 거의 없었다. 원하는것이 있으면 빼앗으면 그만이었고 굴복시키면 그만이었다. 만남 같은것을 하찮게 여겼기에 긴 세월 동안에도 벤하르트 같은 남자를 본 일은 없었다. 짜증나면 죽였고 원하면 강탈을 하는 일에 어려움이 없기에 노력하지 않았다. 마치 루그벨트와 같이.. 약하디 약한 벤하르트 같은 자를 도울때나 간신히 그녀는 노력다운 노력을 할수 있었다. 풀리지 않기에 풀리도록 애를 쓰는 행동. 오랜만이라고 말하기도 뭣한 세월만에 그녀는 즐겁게 노력 했다.
얻는것은 쥐꼬리 만도 못한 될지 안될지 조차 알수 없는 애매한 투자임에도 뭔가 즐겁게 도와 주었다.
그것이 일순간의 방심으로 인해 무너져 버렸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마왕을 갈기갈기 찢어 버리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찼지만 곧 안정을 되찾았다. 그런것을 참지 못했다면 그녀가 원(原)의 흡혈귀라 불리며 공포를 불러들이는 존재가 될일은 없었을 것이다.
"어이. 레니아 라고 했었지?"
대답은 없었다.
"어이!"
멍하게 풀린 부어오른 두 눈이 충격으로 흔들렸다. 창살은 이미 동강 나 있었다.
"뭐하는거야!"
단번에 부어오른 뺨을 움켜 쥐고 레니아가 소리쳤다.
"멍하니 있지 마. 벤을 되살릴수 있는 방법 혹시 알고 있어?"
있을리 없기에 입을 다물었다. 잘 돌아가는 머리도 이때만큼은 방법을 찾아낼수 없었기에 어떤 반박을 하고 싶다고 해도 반박하지 못했다. 애초에 반박이 필요한 시점도 아니었지만,
"왜 왜온거야. 왜!"
방법이 없다는 것은 그녀의 심정을 뒤흔들어 다시금 혼란에 빠지게 만들었다.
짝 하는 소리와 함께 레니아의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지독한 고통에 그녀는 눈을 부라리고는 흡혈귀에게 외쳤다.
"뭐하는 짓이야! 아까부터."
"벤 그녀석은 나름의 각오를 하고 이곳에 왔어. 그리고 너를 구했지. 그런데 구했다는 녀석은 이렇게 한심함만을 보여주는 녀석이었던 거야? 내가 부하로 삼으려고 했던 녀석이 목숨까지 걸어가며 구하려 했던 녀석이 이런 한심한 신 이라면 너무 실망해서 아니 화가 치밀어서 죽여 버릴지도 몰라."
"....."
죽여버린다는 말보다도 레니아는 그외의 여러가지. 벤 이라던가 부하 라던가 하는 말이 거슬렸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굳이 그것에 대해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두번이나 맞았기 때문일까 무언가의 압박에서 벗어난 듯한 느낌이었다. 애써 맞았다는 사실을 부정하며 다시 눈을 떳을때 그녀는 평상시의 그녀로 돌아가 있었다.
"확실히 한심했을지도.. 아니 한심했어. 벤이 이곳으로 왔다는것을 알았을때 부터 제정신은 아니었던것 같아. 분하지만 인정할게. 네 말대로야. 그건 그렇고 방법이 없다고 시인한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주는것을 보면 방법은 네가 손에 쥐고 있다는 이야기겠지?"
"조금은 머리가 트인건가?"
긍정의 말. 그리고 레니아는 그 방법에 대해 예상하면서도 답을 재촉했다.
"덕분에 라고는 말하지 않겠어. 그래서 어떤거지? 빨리 말해."
차분하게 가라앉은 말투에서도 그녀는 조급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래 나는 지금 이상태의 벤을 되살릴수 있어. 원의 흡혈귀로서 나의 피를 주어 그를 흡혈귀로 만듬으로서 불사성을 부여하는것으로. 하지만 그것은 그에게 있었던 한줌의 너에 관한 끈을 끊어낼지도 모르지. 그래도 좋다면 흡혈귀로 만들겠어."
"그것을 나에게 말해주는 이유가 뭐지?"
대화 속에서 그녀는 어떤 상황인지 대충 갈피를 잡고 있었다.
"너는 벤하르트를 부하로 만들고 싶은 거지? 그렇다면 나에게 그런 '사실'을 말해줄 필요는 없는것일텐데, 차라리 속이고 그런 방법을 취하는 쪽이 목적을 성취하는 쪽으로는 더 확실하고 좋은 방법일텐데 굳이 그런 사실을 나에게 말해주는 이유는 뭐야?"
"이건 내가 그에게 해줄수 있는 최소한의 예우인 거야. 확실히 네 말대로 속이고 벤을 흡혈귀로 만드는쪽이 더 낫겠지. 그건 확실해. 하지만 그는 항상 나의 요구를 거절해 왔으니까, 처음에는 속박되기가 싫은건가 하고 생각했어. 아니면 힘을 원하지 않는건가? 하고도 생각했지. 그게 아니었어. 이미 그는 너에게 확실하게 속박되어 있었기 때문에 나를 받아들이지 않은거야. 절대적으로 힘이 필요할때 조차도."
"한심한 인간이지. 그게 벤다워. 무슨 뜻인지는 알겠어. 네가 나에게 전하고자 하는것은 그 사실을 나에게 인지하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최소한의 예우는 지키고 벤하르트는 손에 넣겠다 하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것 같이 말이지. 단순한 선의일리가 없지. 당신은 벤을 부하로 만들고 싶어 했으니까. 저 괴물과 싸워서 까지라면 이정도야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네."
"대답은?"
"당연한것 아냐? 그것외에 방법은 없다고 이미 결정나 있다면 선택은 이미 결정된것이나 다름없지. 하지만 네 말은 아마 틀릴거야. 내가 아는 벤하르트 하르크의 경우 나를 잊는다거나 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테니까, 있다고 해도 기억나게 만들어줄거야. 절대로.. 동의는 해주겠지만 너에게 벤을 넘기지는 않을거야. 벤하르트가 나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버린것도 각오라면 지금 말한것은 바로 나의 각오야. 자 빨리 해줘. 원(原)이라고 해도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재주는 부리지 못할것 아냐?"
그래 라고 말하고 그녀는 벤하르트에게로 천천히 다가갔다. 그녀는 금발의 머리에 벤하르트의 피가 묻을 정도로 접근해 중얼거렸다.
"정말이지 서로가 괴짜들이로군. 이녀석들."
그녀는 벤하르트의 목이었을 부분에 얼굴을 가져가 입을 맞추었다.
=====================================
선작은 왠일인지 오릅니다. 지난번의 글이 막 창피해질것 같이 말이죠.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선작에 대해 신경을 끄고 살아야 겠습니다. 선작관련한 이야기는 될수 있으면 자제 해야 겠어요. 하지만 이런 글을 남기면서도 제 눈은 언제나 선작을 주시 하지요. -_-*
어찌 되었든 구출 (7)로 드디어 레니아를 구출했습니다!
200회도 넘었습니다~ 선작도 늘었습니다. 여러모로 기쁩니다.
Comment '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