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쿠라스 198화-구출(3)
벤하르트는 찌릿 하고 저리는 통증에 잠에서 깨어났다. 창에서 들어오는 한줄기 빛이 이미 해가 밝았다는 것을 알게 해 주고 있었다.
"뭐지?"
저리는 통증이 느껴지는것은 목덜미. 꿈틀 거리면서 그의 어깨로 무언가 떨어져 내렸다. 붉은 색의 흐르는 무언가와 함께 그의 다리에 떨어진것은 흡혈귀가 놓고 간 분신체인 인형이었다. 그것의 입은 어설프게 핏방울이 묻어 있었다.
"좋은 아침이야."
"....."
"그런 눈으로 보면 싫은데,"
"이런 눈으로 보지 않을수 있겠냐? 흡혈귀에게 목을 물리고 깨어난 아침이라니 생각하기도 싫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흡혈귀가 되었다던가 하는 류의 이야기는 사절이라고."
"단순한 인사니까 그렇게 신경 쓰지는 않아도 되는데,"
할짝 하고 입맛을 다시는 소리가 인형으로 부터 들려 왔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행동을 인형같은 그녀의 작은 분신체는 그대로 흉내내고 있었다.
'죄악감을 전혀 느끼지 않는 모양이군.'
그런 장난스런 모습이기에 농담이라도 흡혈귀로 만들지 않았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그보다 너 로엔을 만났던 거야?"
"어? 그렇지. 그녀석이 잘 전달해 주었지? 그녀석의 제자는 나름대로는 쓸만 했으니까 실전 경험이 조금 부족한것이 흠이라면 흠이겠지만,"
"괜찮은거냐.."
작게 그가 중얼거렸다. 뭐라해도 돌아오지 않는 삼천잔재였지만 그녀의 입장에서는 어떨런지 생각해봐도 별반 답은 나오지 않았다. 레니아가 레나스르를 잃어버렸을때와 비슷한 느낌으로 그는 그녀의 심정을 알수 없었다.
"뭐라고?"
"아니. 그런데 흡혈귀라는 녀석이 아침부터 뭐하는거지?"
"아 이제부터 자려고, 어젯밤에는 조금 돌아 다녀서 말이지. 연락을 한것은 미리 전해두기 위해서야."
"무엇을?"
"결행일. 오늘로 하자고,"
그들의 입장에서 필요한것은 기습이었다. 집단적인 강함으로 보면 단신의 그녀라고 해도 쉽사리 이길수 없을 정도의 전력에 정면으로 쳐들어갈수는 없는것이다. 그녀의 입장에서 볼때 낮이던 밤이던 존재하는것에는 별반 상관이 없었지만 뭐라고 해도 가장 좋은 상태라는것은 밤이 아닐수 없었다.
그렇기에 결행의 시간은 밤. 벤하르트는 나우스와 판치스 인을 불러 들였다. 묘한 정적 인을 제외한 나머지가 느끼는 기분은 대체로 비슷했다. 외로운 촛불 한개에 의지해 어두운 여관방에도 그들은 암묵적으로 침묵하고 있었다. 그런 분위기가 싫었던 벤하르트는 뭐가 그리고 즐거운지 싱글 거리는 인에게 말했다.
"인 지금 뭐하러 가는 건지 알고는 있는거지?"
"어. 그러니까 나쁜놈들을 제거 한다고 들었는데, 맞지?"
"틀리다고는 할수 없지만,"
제자와 스승의 관계도 이쯤 되면 거진 신봉(信奉)의 수준이었다.
"그 밖에 다른 말이라던가 한건 없어? 뭐 나에 대한 것이라던가."
"아니 전혀. 나쁜놈들을 제거 하라는 말 밖에는.."
천연덕스럽게 그가 말했다.
'제거라.. 제거? 로엔이 그런 말을 인에게 했다는건가?'
요셉이 욕을 하는것 만으로도 눈살을 찌푸리던 로엔이 그런 말을 했다는것을 믿기 어려웠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인이었기에 그 말에 거짓말은 없을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저기 벤하르트님?"
"어. 왜?"
"그 언제 출발하는 건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쭈삣 거리면서 나우스가 물었다.
"아니 물어보는거야 당연히 상관 없지만 사실 나도 대답해줄수가 없어. 나도 잘 모르거든."
"음 음.. 애늙은이 아니.. 주인..? 애늙은이는 말이지."
"방금건 뭐야? 일부러 틀렸던 거냐? 주인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지만 애늙은이도 마찬가지야. 그냥 벤하르트로 불러줘."
"그거야 어쨋든 애늙은이는 휘둘리는 쪽인거지?"
그녀는 벤하르트의 의견을 가볍게 무시하며 말했다.
"휘둘린다는건 무슨 의미야?"
"말 그대론데, 휘두르는게 아니라 휘둘리는 쪽이 아닌가 싶어서. 관계라던가. 저기.. 우리들도 그렇고, 주종의 관계라는건 허울 뿐이고 사실은 우리 멋대로 하는것 뿐이잖아? 따라오지 말라는데도 따라 오고 말로는 참여하지 말라고 해도 참여하고, 아마 그런게 아닐까 싶어서."
생각해보면 말 그대로였다. 리드나 트레이야 요셉이나 흡혈귀 레니아까지 생각해보면 그런 위치가 아니라고는 잡아 뗄수 없었다. 예리하게 정곡을 찔러온 판치스의 말에 특기인 자연스러운 거짓말 조차도 내뱉을수 없었다.
"참고로 같은 남자라도 나우스는 휘두르는 쪽이랄까,"
"응?"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가 판치스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어딘지 벤하르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수긍할수 있었다.
'힘내라 판치스'
"좋아. 그럼 이쯤에서는. 나도 한번 휘두르는쪽으로 가볼까. 모두 절대로 죽지 마라. 부탁이자.. 명령이야."
"그런데 그 말. 휘두르는것과는 관계가 없는데,,"
"어쨋든.."
누그러진 분위기에 젖어 풀어지려 하는 마음을 다잡았다. 분명 속안에서는 두려움이 끓어 오르고 있었다. 마치 폭발 할것 처럼. 자신이 죽는다 라는것도 그중 한가지 였음에 틀림 없었으나 그보다도 더한것은 나우스와 판치스 인 그리고 레니아에 이르기 까지의 타인에 대한 문제였다. 단순한 재회였다면 마냥 기뻐했을터였으나 오늘은 그런 밝은 분위기의 그것이 아니었다. 아마도 피튀기는 혈전 아비규환을 지나야 만날수 있을터였다. 그는 잠시 따듯하게 데워진 가슴을 차갑게 식혔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고 다시금 말수가 적어졌다. 이따금씩 인의 의미없는 질문과 그에 답하는 벤하르트의 말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언제 오는 거야. 그녀석."
"지금?"
어 하는 말이 들리기도 전에 그녀는 나타나 있었다. 주위에는 벤하르트와 일생을 함께 했던 철과도 비슷한 잔향이 나는것 같았다. 있는듯 없는듯 붉은 색의 안개가 그녀의 형상을 이루었다. 판치스와 나우스는 곧장 적개심을 들어 내었지만 이미 그녀에게 그들은 안중에도 없는듯 했다.
"벤. 잘 지냈겠지? 이제 와서 피곤하다 라던가 상태가 안좋다던가 하는 변명은 하지 않겠지?"
"아무렴. 하라고 협박해도 하지 않을거다."
"그쪽의 애송이 둘도 오랜만이로구나. 그래 '선물'은 잘 받았겠지?"
나우스와 판치스는 각자 나름의 의미로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놈의 선물? 동료의 죽음을 선물이라고 말한거야!?"
"음? 무슨 소리지?"
그녀는 나름대로의 호의를 베풀어 준것이었기에 고맙다 라는 말까지는 아니어도 호의 정도의 수준까지는 이르고 싶었다. 나우스의 쪽은 나름대로는 그녀에 대한 앙금을 풀어내었기에 표정을 좋게 하지는 못해도 판치스의 뒤에서 살짝 인사했지만 판치스는 경우가 달랐다.
"뭐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고 자 자."
그는 중간에 끼어 들어서 중재를 시도 했다.
"잠깐 이상하잖아. 감사의 인사를 들을 생각은 아니지만 이정도 까지 오면 나라해도 살심이 끓는다고, 나의 선의(善意)가 이런 녀석들에게 이렇게 까지 무시를 당하면 말야. 이경우에는 되려 악의(堊意)로 돌아온 경우잖아?"
"이정도 일로 살심을 끓게 하지 마. 뭐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면 되는 일이고 같은 편끼리 싸울 필요는 없잖아?"
"같은편 아니야!"
신기하게도 둘은 목소리의 높이까지 맞춰서 동시에 대답했다.
"뭐 그거면 됐어. 나로서도 저급한 종족과 같은 편이 된다. 정도의 의미는 필요 없으니까. 너희는 이녀석을 따르고 나는 이녀석을 도와준다. 이거면 충분해. 그 멋모르는 어설픈 살기도 벤의 한마디면 넘어가주도록 하지."
난데 없이 표적이 벤하르트로 바뀌자 그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뭐야 그건. 무슨 한마디?"
"수하가 되겠습니다. 라거나. 흡혈귀로 만들어 주세요. 라던가."
건성 건성 그녀가 말했다.
"할것 같냐? 애초에 처음의 그 억지로 만들지 않겠다는 그 생각은 어디로 사라진거냐. 억지로 만들생각으로 충만해 있잖아."
"농담이야. 한마디라고 했잖아. 열내기는."
"농담인것 같지가 않아. 아니 사실 진담아니었나?"
"진담인 농담."
아리송한 표현이라고 생각하며 벤하르트가 물었다.
"그래서 듣고 싶은건 뭔데?"
"내가 말하기는 뭐하긴 한데, 감사의 인사정도는 받아도 되지 않나 싶어서."
"그거라면,"
말뿐이아니라 행동으로라도 보여줄수 있었다. 정중하게 예의를 다해서 어떻게 생각하던 상관 없이 그는 무릎을 꿇었다. 어떻게 보면 마치 주종의 관계에 이른것 같아 보일정도의 오해도 생길수 있는 그런 행동이었지만 그런 생각조차 머릿속에 전혀 남아 있지 않을 정도의 정성을 담아 그가 말했다.
"감사합니다."
입을 벌리고 하 하고 한숨소리와 함께 그녀가 말했다.
"너무 의외라 조금 놀랐네."
레니아와 비슷한 다소 흰 얼굴이었기에 붉게 물드는것이 묘하게 티가 났다. 그녀로서도 벤하르트가 이런 모습을 보여줄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그녀로서는 수백년만에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준것이나 다름 없었지만 그다지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더욱 벤하르트를 수하로 삼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을뿐.
"답례라기는 뭐하지만 성심껏 도와주도록 하지. 이건 이것대로 일거양득이라 할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그래 하고 그녀는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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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많이 쓴것 같았는데 4200자 정도라니,, 어차피 연참대전이 아니니 상관 없어~ 라는 기분이 안드는것도 아니지만요,
그러고 보면 곧 10월도 끝나는군요. 그리고 생각나는것은 11월달의 연참대전. 기쁜데 힘들것 같은 이 미묘한기분. 미묘해요. 'ㅅ'
어쨋든 돌입 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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